본문 바로가기

축구/The Fan44

축구장에서 사라져야할 단어 - '폭력' 종종 열정적인 서포터들은 자신이 폭력적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일본의 우라와레즈 서포터의 일부도 2002년 찾아갔을 때 경기 후 "우린 센다이 베갈타 서포터와 싸우러 갑니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S구단 서포터와 D구단 서포터가 싸움이 났을 때도, "난 누구를 얼마나 때렸다"며 버스에서 자랑하던 한 서포터 회원이 인터넷에서 뭇매를 맞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던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렸기 때문입니다. 일부 서포터의 폭력성은 축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한 여름밤의 허튼 짓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욕설이 섞이지 않은 말싸움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욕설이나 폭력은 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축구를 망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의 저자 닉 혼비도 잠깐 .. 2010. 7. 24.
축구단에게 서포터가 중요한 이유 서포터는 구단과 일반 팬에게는 때로는 짜증나는 존재입니다. 한참 좋다가도 갑자기 폭력적인 모습으로 돌변하기도 하고, 욕설을 해서 아이와 함께 경기장에 온 부모님들의 눈살을 찌뿌리게 합니다.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소 다를 수 있지만, 유럽이나 남미의 대부분의 서포터는 구매력마저 평균이하입니다. 서포터가 입장권이 가장 싼 골대 뒤에 모이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15년 가까이 축구장을 드나들면서 서포터에 대한 구단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접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돈도 안되는 것들이 말이 많다"는 말은 기본입니다. 심지어 멀리 원정을 가는 구단을 따라 응원을 한다고 갔는데, 면전에서 "참 할일도 없는 양반이구만"이라는 구단 관계자의 자상하신 지적도 들어봤습니다. 하긴 연간 100억~200억원짜리 예산의 축구단을 .. 2010. 6. 30.
축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적지 않은 종목을 현장에서 봤지만 선수와 팬이 경기장 현장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종목은 많지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장도 숱하게 가봤고, 배드민턴, 배구, 농구, 탁구 경기장도 가봤습니다. 올림픽 양국 경기도 가봤고, 심지어 피겨스케이트, 역도 경기도 보았습니다. 야구장에서 응원단장을 따라서 응원도 해봤고, 양궁이 생각보다 다이나믹하고 재미있는 종목이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배구가 그렇게 파워풀하고 시원한 종목이고, 농구도 좋아하는 선수가 생기니까 경기를 보는 내내 긴장감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1995년부터 완전하게 매료된 축구에 비할 때 공허한 점이 있었습니다(다른 종목 팬들은 당연히 생각이 다르겠지만, 그것 역시 인정합니다. 축구에 대한 생각은 제 주장입니다). 즉 대부분의 스포츠는 응원.. 2010. 6. 29.
우리나라 축구장 관중석, 너무 얌전하다 2002년 월드컵은 축구를 보는 자세에 약간의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경기장이 잘 보이는 경기장 중앙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누가 잘 하고, 누가 실수를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전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2002년에 붉은악마 응원 방법이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고 거리 응원을 통해 학습할 기회가 제공되면서 '선수들과 함께 하는' 응원이 알려질 기회를 잡았다. 그럼에도 K리그나 내셔널리그, K3리그 경기장 관중석은 아직도 너무나 조용하다. 심지어 월드컵이 아닌 국가대표 경기장도 차분하기만 하다. 일부 관중이 상대팀에게 야유를 하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매너가 없다"고 비난하기 일쑤다. 상대를 비꼬는 응원구호가 나오면 인상을 쓰기도 한다. 상대팀이지만 한국을 찾은 손님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2010. 6. 24.
축구 서포터는 특정 선수를 좋아하면 안된다 축구 서포터는 특정팀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팬을 말합니다. 너무 좋아한 나머지 평생 오직 한팀만을 사랑할 것을 맹세한 사람들입니다. 서포터는 당연히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선수들과도 친분이 쌓이게 됩니다. 먼 곳으로 원정을 떠나서 교통편이 마땅치 않을 때 갑자기 구단관계자가 선수단 버스를 태워줘서 선수들과 친분을 쌓기도 하고, 선수가 이런저런 부탁을 하려고 연락을 하는 바람에 선수와 말을 트기도 합니다. 팬과 선수의 모임같은 행사에 갔다가 전화번호를 교환하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한국에 서포터라는 조직이 생기기 시작한 90년대 중후반부터 서포터들 사이에는 "선수들과 연락하지 말라"는 일종의 불문율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이런 원칙아닌 원칙은 서포터에.. 2010. 6. 18.
국가대표 경기에 열광하지 않는 축구팬이 있다고? "1970년대 초, 나는 잉글랜드인 대열에 동참했다." 축구 에세이 의 48페이지에 나오는 말입니다. 축구책에서 "잉글랜드인 대열에 동참했다"는 표현은 "축구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일 것 같은데, 그 다음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전 잉글랜드인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이들과 나란히, 나 역시 잉글랜드를 미워하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전체 문맥으로 볼 때 농담반 진담반인 것 같은데, 아무튼 국가대표팀에 대해서 다소 애매한 태도를 갖고 있는 축구팬의 존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토튼햄, 리즈,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 선수들에게 깊은 반감을 갖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의 경기를 볼 때면 온몸을 비비 꼬기 시작했고, 우리들 대다수가 그러했듯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경기.. 2010. 6. 15.
거리응원, 축구에게 어떤 의미일까? 거리응원은 축구관전이라기 보다는 축제의 의미가 강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경기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응원이라는 것도 선수들에게 전달되지 않아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즉, 거리응원은 서포터와 같은 축구 마니아에게는 어울리지 않고, 평소에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이벤트 같습니다. 광장의 아름답고 패셔너블한 여성들을 월드컵 이후 리그 경기장에서 볼 수 있을까요? 설마!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체코 프라하에 설치된 대형 화면입니다. 지난해 7월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유맨·현지에서는 'FC United'로 칭함)의 단장은 "맨유의 경기장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경기장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팀을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맨유 경기를 눈 앞에서 직접 볼 수 없게 .. 2010. 6. 11.
오늘은 역사적인 날? 오늘 무거운 짐을 하나 내려놨습니다. 제가 속했던 한 모임에서 탈퇴했습니다. 모임의 직함을 내려두고, 모임의 운영자 방에서 나와서 일반 회원이 된 것인데요. 그 직함이란 게 사실 오래 전부터 유명무실 했기 때문에 실제 생활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지만, 어째 가슴에 구멍이 하나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네요. 그래도 한 때는 젊음을 모두 던지다시피 했기 때문에 추억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모임의 진정한 발전을 기원하며, 힘겨웠던 추억의 페이지를 덮습니다. ※ 이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음주 수요일 남아공 여행도 못가게 되었네요. 비행기, 호텔 등 예약도 모두 환불불가인데.. 오늘 정말 역사적인 날이 되었네요. 모임에서 나오면서 남아공 간다는 말도 했는데, 본의 아니게 헛말이 되었네요. 경제적 손실이.. 2010. 6. 10.
부천FC 서포터즈 헤르메스의 홍염 2016년 10월 26일 FA컵 준결승 as. FC서울 경기 홍염 영상 링크 https://youtu.be/_F5mtvUY4Mc 축구장에서 보는 홍염은 사람을 흥분시키는 묘약입니다. 붉은 불빛이 보는 사람들의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하는 것 같고, 마치 뜨거운 열정을 태우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문제는 홍염이 원래 조난 당한 배의 구조용이라는 건데, 사용하려면 소방법 관련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모양입니다. 자격이 있어도 축구장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것은 안전상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응원도구입니다. 부천서포터는 홍염을 제작해서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헤르메스에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튼 당시 서포터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마그네슘 등을.. 2010. 5. 21.
부천FC 서포터 헤르메스의 통천 부천FC 서포터 헤르메스는 한국 최초로 통천을 응원에 사용한 서포터입니다. 그리고 한국 최초로 한방에 두개의 대형 통천을 펼친 서포터이기도 합니다. 1999년 목동입니다. 이제 막 전성기에 접어들기 직전의 헤르메스 모습입니다. 이 통천 색깔이 이렇게 밝은 것이었군요. 지금은 누리끼끼. 2000년 대한화재컵 결승. 잠실종합운동장. 걸개를 용달차로 가지고 와서 아예 세팅을 해버렸다. 2000년의 모습입니다. 둘 다 대형 통천입니다. 한번에 두개 모두 펼치고 헤르메스는 기쁨에 빠져서 이를 기념하는 시계 등 기념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2010. 5. 18.
우라와레즈 서포터와 부천FC 서포터의 2002년 만남 → 우라와보이즈 대표 가타(좌), 헤르메스 대표 이희천(우). 2002년 5월. 부천FC 서포터즈 헤르메스와 교류관계에 있는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드(이하 우라와레즈) 서포터모임 '우라와 보이즈(Urawa Boys)'의 대표 '가타'가 2002년 5월29일 한국을 방문해 헤르메스 대표 이희천님과 약 4시간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당시 만남은 약1년만이었습니다. 1년 전에는 가타 외에 아비스파 후쿠오카 등 J리그 서포터 대표 10명 정도가 함께 왔습니다. 우라와레즈 서포터와 헤르메스(이희천, 신동민)는 사전에 미팅을 하기로 했었는데, 국내 축구관련 행사 때문에 왔던 다른 구단 서포터들도 따라왔습니다. 명동의 한 삽겹살 집에서 만났는데, 10여명의 청년들이 무지하게 먹어대는 바람에 출혈이 엄청났습니다. 특이.. 2010. 5. 18.
부천FC 서포터즈, 자존심 강했던 초심 잊었나! 우라와 레즈는 역사가 화려한 팀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적만 두고 보면 별거 아닌 팀입니다. 우라와 레즈의 화려함 뒤의 무언가를 설명하는 글이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링크 : J리그, 우라와 레즈에 대한 환상과...진실...ACL 이런 지적을 상당 부분 인정해도 관중은 3만 이상이고, 원정 서포터는 대체로 대규모이며, 지역연고에 힘쓰고, 팬을 위한 마케팅에 열중한다는 것은 사실 같습니다. 한 지인이 "우라와 레즈가 2부리그에 있을 때, 당시 리그 팀 중에는 서포터 문화가 정착하지 않은 곳이 있었다. 홈경기 때 서포터가 따라오지 않는 팀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K3의 부천 서포터 상황과 좀 비슷하네요. "우라와 서포터는 매 경기 대규모 원정단이 떠났고, 상대 서포터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사생결단 .. 2010. 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