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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선3

첫번째 후원사 확정 그리고 다시 창단업체 찾기 창단위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여야가 모두 힘을 합친 모양새였고, 부천시축구협회 등 여러 단체들이 이름을 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과 단체를 엮었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역사회를 엮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사람들을 만났고, 이광열님 등 서포터 내 연장자(?)들의 인적 네트워크도 큰 도움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뜻으로 힘을 합친 셈이다. 2007년 6월경이었다. 든든한 지원군을 확보한 부천FC 창단TF는 먼저 창단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배기선 의원 등의 노력으로 먼저 스포츠토토의 후원이 약정됐다. 첫번째 후원 약정이었다. 엄청난 진정이었다. 곧이어 SK에너지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의 대화도 시작됐다. 뭐가 되어 가는 것 같았다. TF의.. 2011. 11. 27.
부천시에 도대체 왜 축구단이 있어야 하는가? 1 배기선 의원 앞에서 주어진 5분 동안, 부천에 왜 축구단이 있어야 하는지 5가지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 논리 중 일부는 다른 도시에 적용이 가능하다. "첫번째. 축구단이 사리진 후 미디어에 부천의 노출 빈도가 급속히 낮아졌습니다. 도시 인지도 제고차원에서 축구단이 필요합니다." 실제 그랬다. 부천SK가 있던 시절에는 관련 기사가 많았다. 수원, 성남, 부천은 축구단이 있는 수도권 도시였다. 안양, 고양, 의정부 등과 비교해 보면 느낌이 온다. 당시 TF는 축구단이 없던 시절과 있던 시절의 '부천시' 관련 기사 수를 세었다. 거의 2배, 3배 차이가 났다(사진 참고). 노출은 인지도와 연결이 된다. 대중은 인지도가 높은 곳에 여행을 하고, 이주를 고려한다. 지금 이야기 중인 미팅이 끝나고.. 2011. 11. 23.
K3팀 창단으로 방향 전환 그리고 배기선 의원과 만남 대행사에 의한 창단과 유명인과 함께 한 창단이 차례로 무산된 후 창단TF는 한달 정도 패닉에 빠졌다. 다시 의욕을 불러일으킨 일은 아마도 5월 경에 일어났다. 당시 개인적으로 대한축구협회의 '주니어보드'라는 조직에서 한국축구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논의할 기회가 있었다. 주니어보드에는 서형욱 해설위원을 비롯한 언론인, 당시 FC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마케팅 담당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동렬 붉은악마 전 부회장 그리고 나와 같은 팬들도 서너명 있었다. 이 모임을 담당하던 축구협회 직원 신만길씨는 AFC로 파견을 가게되었고, 김종윤씨가 담당을 하게되었다. 정기모임이 끝나고 간단한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김종윤씨가 "K3 구단은 1년에 3억원 정도면 운영이 가능하다. 현재 창단하는 구단이 많다... 2011.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