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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football itself

축구 선수들, 수줍음 털고 팬에게 다가가라

by walk around 2009. 9. 10.


한국축구, 변해야 한다 ④

몇 번 갔는지 무의미할 정도로 여러번 K리그 경기를 갔지만 경기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팬과 선수들의 교감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같은 외국 경기를 보면 골을 넣은 선수들이 골대 뒤 관중에게 다가가 함께 환호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천문학적인 몸값을 자랑하는 귀하신 몸이 머플러를 두른 대머리 아저씨를 찾아가 와락 껴안고 골을 기뻐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 순간에는 선수와 팬의 경제적 격차는 무의미하다 오직 공동의 목표를 이룬 희열만이 있다.

원정 경기에서는 골을 넣은 선수가 함께 원정을 온 팬들에게 다가가 함께 즐거움을 만끽하기도 한다. 원정 팬들이 멀리 있을 때는 키스를 보내거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기쁨을 공유한다.

경기 후 서포터와 일사분란한 퍼포먼스를 펼치는 선수들. 수줍고 힘겹게 팬에게 인사하는 우리 축구장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팬에게 최대한 가까이. 위쪽 상대팀도 팬을 찾아 걸어간다. 너무나 오래된 자료. 팀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경기의 본질과 상관없는 쇼맨십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당 부분 선수와 팬의 교감인 것도 사실이다.

지난 7월 부천FC 1995와 친선 경기를 위해 한국에 방문한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의 앤디 워시 대표는 "축구는 커뮤니케이션이다"라고 말했다. 선수가 경기장에서 상대 선수 제끼고, 공격을 막는 기량을 선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을 찾은 팬들과 교감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팬들에게 "내가 당신들을 인식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보내면 팬들은 열광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붉은악마가 해외 원정을 떠나 수만의 홈 팬 사이에 옹기종기 자리를 잡았을 때, 대표팀이 경기장에 입장해서 경기장 구석의 몇십명 붉은악마에게 다가와 손을 흔들면 붉은악마는 바로 흥분모드로 접어든다. 마음 속으로 선수들에게 몸을 바친 풀 서포트를 약속한다.

좀 야박하게 말해서 축구선수들의 팬에 대한 관심은 팬들이 수요자, 즉 소비자이기 때문에 당연한 측면이 있다. 선수들은 팬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들의 높은 연봉, 높은 사회적 관심은 결국 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들의 존재의 기반인 팬을 우대하고 관심을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프로야구가 요즘 흥행 몰이를 하는 것은 야구월드컵에서의 감동적인 승부도 큰 역할을 했지만, 빤스만 입고 경기장을 뛰는 관계자들의 팬 우선 마인드도 한몫했다. 다가가니, 반응이 온 것이다.

경기를 끝낸 우라와레즈 선수들이 팬에게 다가오고 있다. A보드를 넘어 최대한 가깝게 다가온다. 그리고 인사하고 약간의 대화도 나눈다. "오늘 피곤해 보여" "죄송해요" 뭐 이런 대화. 마지막으로 서포터 앞에서는 한참 놀아(?)준다. 경기장 온 관중들은 본전 확실하게 뽑고 나간다. 콘서트 후 앵콜을 찐하게 본 느낌.


모든 J리그 구단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관전한 우라와레즈, 센다이 베갈타, 도쿄 베르디, 세레소 오사카 등의 팀들은 경기 후 경기장 4면의 관중들에게 인사를 했다. 경기장 중앙에서 손들고 인사하는 게 아니라, A보드를 넘어서 관중석 바로 앞에까지 와서 인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서포터석 앞에서는 이긴 경기에서는 한참 같이 노래하며 춤을 주고, 진 경기에서도 한참 서서 대화 같은 것을 했다. 관중들은 큰 소리로 선수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선수들도 몸짓 등으로 반응한다. 특히, 우라와레즈는 경기 후 한찬동안 선수와 팬들이 어울렸다. 그저 평범한 리그 경기였는데…

경기 시작 전에 선수소개를 할 때도 선수마다 경기장 4면을 모두 돌았다. 11명이 모두 돌았다. 그와중에도 관중들과 대화를 했다. "오늘 어때!" "이길께요!"

K리그의 경우 하프라인에서 단체로 손들고 인사를 하고는 서포터에게 힘겹게 걸어 간다. 피곤하거나 기분 안좋은 선수들 한두명 빠지고 A보드 앞까지 가서 대충 줄을 서고 고개 까딱. 몇 시간 동안 험한 원정을 떠나 90분 내내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한 서포터들은 허탈. 힘든 것 이해한다. 하지만 J리그나 프리미어리그 선수는 안힘들까? 그렇다고 우리가 관중이 많아서 공급자가 목에 힘줄 분위기는 되나.

2002년에는 J리그가 리그경기에도 연장이 있었는데, 연장전이 끝난 후에도 선수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팬들과 함께 했다.

프리미어리그의 경우도 한눈에 봐도 치열한 경기 후에 선수들은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팬과 언론을 만나러 다시 나타난다. 덕분에 우리는 맨유경기 후에 정장입고 머리 젖은 박지성 선수의 멘트를 뉴스를 통해 볼 수 있다.

어쩌면 이런 문화의 차이는 구단의 수익구조와도 연결이 되는지 모르겠다. 우리 프로구단이 모기업이나 스폰서 또는 지자체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제적 기여도가 늦은 팬이 홀대 받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모기업의 지원이라는 것도 결국 팬이 없다면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팬을 더이상 무시하면 곤란하다.

우리나라에는 팬 앞에서 폼 잡는 선수들이 더 많다. 어쩌면 부끄러워 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선수들이 더 팬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표현해야 한다. 골을 넣고 감독에게 가지 말고, 팬에게 달려가고, 원정경기에서 만난 응원단에게 높은 관심을 보이고, 물어보는 말에 답변하고… 이런 노력이 경기장을 찾는 팬을 늘리는 묘약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내가 지지하는 부천FC 1995는 선수들과 팬이 한 가족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서로 서먹할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서로 가까이 다가가면서 적어도 올시즌에는 정확하게 일치하는 꿈을 함께 키우고 있다. 덕분에 비록 하부리그이지만 축구문화만큼은 선진적이라 생각한다. 부천에서 축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한국축구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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