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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The Fan

게이트 기, 축구클럽의 영광을 표현하는 응원도구

by walk around 2009. 10. 7.

사진은 2002 시즌에 터키로 떠난다며 부천SK 서포터즈 헤르메스에게 인사를 하는 이을용 선수를 환송하는 모습입니다. 어김없이 게이트 기가 있습니다.

지난 1998 월드컵의 개최국이자 우승국인 프랑스에는 ‘개선문’이라는 관광 명소가 있다. 이 개선문은 19세기 초반 나폴레옹이 자신이 주도한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개선문은 사실 일반적인 ‘문’의 역할은 하지 않는다. 개선문에 이어진 담벼락도 없고, 안팎으로 눈에 띄는 차이점도 없다. 다만 나폴레옹이 자신의 영광을 상징하는 도구로 만들었고, 이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따름이다.

이탈리아에도 많은 개선문이 있다. 이탈리아의 개선문의 역사는 고대 로마 공화정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는 큰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돌아올 때 시내에서 개선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이 개선식을 위해 개선문이라는 개선기념 건조물을 만들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지원전 19년에는 리미니에 아우구스투스의 개선문이 세워졌고,  4세기에는 로마에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이 세워졌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외에도 유럽 각국에는 자국의 영광과 희망을 표현하는 크고 작은 개선문이 있다. 이러한 개선문은 축구장에도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축구팀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또는 그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팬들은 개선문을 경기장으로 들고 왔다.

99년 목동운동장에서 게이트를 들고 있는 헤르메스.

축구장의 개선문은 거리의 개선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초라한 형식이다. 거리의 개선문은 대부분 화강암 등 석재에 시대를 대표하는 화려한 문양을 넣기 마련이다. 누구나 숙연한 생각이 들 정도로 웅장한 크기로 만들어진다.

J리그 센다이 베갈타 서포터즈입니다. 절단통천 사이에 게이트 기가 보입니다.
사용 빈도를 보면 J리그 서포터들은 게이트 기를 몹시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

팬들이 축구장에서 선보이는 개선문은 큼직한 천과 긴 막대기 두 개로 만들어진다. 천 양 끝에 막대기를 하나씩 꽂아 개선문의 모양을 본뜨는 것이다. 팬들이 이를 ‘게이트 기(gateflag)’라 부른다.

외양은 초라하지만 게이트기에 담긴 의미는 개선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팬들이 두 팔을 펼쳐 선보이는 게이트 기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클럽을 상징하는 문구나 그림, 또는 바람이 담겨있고, 이를 지켜보는 선수들은 팬들이 보내는 한없는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유럽이나 남미의 축구장에서는 종종 게이트기로 가득 메워진 관중석을 볼 수 있는데 하나같이 기존 개선문이 담고 있는 거창한 의미를 담고 있어 축구와 클럽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목동에 등장한 게이트 기

우리나라에도 개선문과 유사한 건축물이 있다. 1896년 독립협회의 발의로 세워진 독립문이 바로 그것이다. 독립문은 갑오경장 이후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세웠다. 사대외교를 상장하던 자리에 자주적인 권리과 자강운동의 기념물을 세운 것이다.

부천SK의 홈구장인 목동 운동장에도 개선문이 있다. 부천SK 서포터인 헤르메스는 2000 시즌을 앞두고 목동에 모여 각양각색의 게이트 기를 제작했다. 시즌을 준비하는 게이트 제작작업에는 30명이 넘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경기 때마다 셀수 없는 게이트 기가 등장하는 우라와레즈 다이아몬드 서포터즈입니다.


헤르메스는 한국 최초로 응원에 게이트 기를 선보인 서포터로 이번 시즌을 위해 게이트 기를 제작하기 이전에도 열 개가 넘는 게이트 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제작에서는 물량에서 제작 내용에서 여러모로 특별한 내용이 있다.

우선 물량에서 헤르메스는 30개가 넘는 게이트 기를 제작해 서포터석을 온통 게이트 기로 채울 수 있을 정도가 됐고, 제작 내용에서는 부천 서포터의 이름인 ‘헤르메스(Hermes)’와 연관된 이미지를 많이 수용하려 했다.

헤르메스는 ‘기둥’이라는 의미로 그리스 신화의 12번째 신으로 수성을 상징한다. 신화에서는 학문의 창시자이자 연금술, 전령, 상업, 교역의 신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는 언제나 두 마리의 뱀이 서로 얽혀 올라가는 두 개의 날개를 가진 카두세우스(Caduceus) 지팡이를 가지고 있는데, 역시 게이트 기 제작에도 반영됐다.

헤르메스가 제작한 게이트 기도 유럽의 개선문과 같이 사람이 드나드는 문은 아니다. 소속 집단의 영광과 희망을 상징하며 특히 클럽에 대한 지지와 사랑을 나타낸다.

카두세우스 지팡이를 비롯한 헤르메스의 게이트 기는 경기 2000 시즌 개막 후 경기 때마다 등장해 이미 헤르메스는 물론 부천 홈구장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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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에 작성한 글입니다. 당시 제가 지지하는 축구클럽인 부천SK가 목동종합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단의 서포터즈 클럽 헤르메스는 한국 서포터 역사상 최초로 게이트기를 만들어 응원에 사용했습니다. 지금 K3 리그 구단을 지지하는 헤르메스는 지금도 변함없이 같은 응원을 하고 있습니다.

서핑을 하다보면 멋진 사진들이 참 많은데, 요즘 저작권이 무서워서 직찍만을 쓰다보니 아무래도 사진 퀄리티가 딸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