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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The Fan

거리응원, 축구에게 어떤 의미일까?

by walk around 2010. 6. 11.

거리응원은 축구관전이라기 보다는 축제의 의미가 강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경기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응원이라는 것도 선수들에게 전달되지 않아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즉, 거리응원은 서포터와 같은 축구 마니아에게는 어울리지 않고, 평소에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이벤트 같습니다. 광장의 아름답고 패셔너블한 여성들을 월드컵 이후 리그 경기장에서 볼 수 있을까요? 설마!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체코 프라하에 설치된 대형 화면입니다.


지난해 7월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유맨·현지에서는 'FC United'로 칭함)의 단장은 "맨유의 경기장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경기장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팀을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맨유 경기를 눈 앞에서 직접 볼 수 없게 되자, 그들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축구를 보기위해 팀을 새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축구는 커뮤니티이자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입니다. 유맨의 팬들은 그들이 맨유 경기에 갈 수 없다는 이유로 커뮤니티가 와해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또 변함없는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매개체로서의 축구팀이 필요했고, 그렇게 만든 팀과 경기장에서 커뮤니케이션하며 한경기 한경기를 함께 치뤄나가고 있습니다.

혹자는 "맨유 경기 보러갈 돈이 없으면, 펍에서 TV로 경기를 보며 응원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서포터에게는 잔인한 말입니다. 경기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뛰며 경기를 보는 것과 맥주병 들고 TV보며 옹알거리며 축구를 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점이 유맨의 팬들을 세계 최강팀의 서포터에서 순식간에 잉글랜드 7부리그 팀의 서포터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축구팬에게 현장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12번째 선수도 선수입니다. 경기에 개입해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TV 모니터 앞에서는 경기에 영향을 주기 어렵겠죠.

"아스날과 나의 관계는 완전히 개인적인 것이었다. 아스날은 내가 경기장에 들어가 있을 때만 존재했다. 따라서 원정경기에서 저조한 성적을 내더라도 나는 그다지 실망하지 않았다."

요즘 손에서 떼지 않고 있는 닉 혼비의 피버 피치(Fever Pitch)에 나오는 말입니다(앞으로 열개 이상의 포스팅에 이 책의 인용문구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닉 혼비는 경기장에서 호흡할 때 진짜 축구관전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그렇다고 거리응원을 '모니터 앞의 딴따라 짓'으로 폄훼하기에는 몇 가지 장점도 있습니다.

한국의 거리응원은 1997년 10월 11일 카자흐스탄과 경기 때 처음으로 시작됐습니다. 당시 결성 초창기의 붉은악마는 신문사가 설치한 대형화면이 있는 광화문을 거리응원 장소로 정했고, 열정적인 응원을 선보인 뒤에 그 모습을 카자흐스탄으로 보내서, 전반전을 마친 선수들에게 '에너지'를 전달해 주고자 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커뮤니티가 커뮤니케이션하려고 한 축구 마니아적 행위였습니다.

당시 종로경찰서는 집회 신청을 붉은악마 초창기 멤버 전명준님에게 "축구를 이유로 집회 신청한 경우는 처음"이라며 집회를 허가했습니다. 모인 인원은 수십명에 불과했습니다. 경기 중에 수백명으로 늘었죠.

서포터가 해외원정을 떠나기 어려운 시절. 서포터의 입장에서 선수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만든 열혈 서포터들의 순수한 열정에서 거리응원이 시작됐습니다.

2002년에도 선수들은 "경기 후 TV에서 거리응원 인파를 보고 힘을 얻었다"고 언론에 밝혔습니다. 아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거리응원은 대중에게 '축구' 자체를 알리는 효과도 있습니다. 90년대 후반, 지금에 비해 초라했던 거리응원을 할 때는 정말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거리응원단은 마치 하라주쿠의 노란머리 소녀 취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홍보효과는 있었습니다.

이런 순기능이 있지만 여하튼 간접응원이라는 것은 정작 경기 중에는 힘을 줄 수 없는 한계는 있습니다. 부상을 입고 쓰러진 선수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힘들어 하는 선수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성질이 급한 저에게 개인적으로 맞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2002년 거리응원에 감명을 받은 2006년 월드컵 개최국 독일이 거리응원을 한국에서 '수입'했지만, 사람들은 화면 앞에서 점핑을 하지 않았습니다. '축구는 현장'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 다른 유럽국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 월드컵도 거리응원 때문에 떠들썩합니다. 큰 축제가 준비 중인 셈입니다. 이 축제가 축구자체 보다는 어쩌면 그간 너무 힘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신나게 응어리를 풀 수 있는 일종의 록 콘서트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거리응원이 축구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면 2002년 이후 그렇게 허무하게 K리그 관중이 줄어들지 않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