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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FC 1995

친정팀과 경기할 때, 죽어라 뛰는 이유?

by walk around 2010. 6. 19.

지난 3월 20일. 2010 하나은행 FA컵 2라운드 부천FC 1995와 천안시청의 경기. 1라운드에서 고려대를 4-0으로 대파하는 이변을 연출한 부천FC는 천안을 상대로 선제골을 뽑으며 기적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 경기를 이기면 부천FC는 K리그팀과 경기를 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죠. 하지만 과거 부천SK 시절, 부천서포터가 그토록 사랑했던 이원식 선수가 교체되어 그러운드에 들어오면서 모든 게 꼬였습니다.

이원식 선수는 경기가 거의 끝나갈 때쯤 만회골을 직접 넣고, 종료 직전에는 PK까지 따냈습니다. 결국 부천FC는 1-2로 패했고, 팬들은 눈물을 삼켰습니다.

경기 후 천안시청의 하재훈 감독, 남기일 이원식 플레잉코치 등이 헤르메스에게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이때 절반은 박수를 쳤고, 절반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육두문자를 선사했습니다. 팬들은 "이원식이 이럴 수 있느냐"며 아쉬움을 뛰어 넘어 거의 절규하다시피 했습니다. 특히 이원식 선수는 골을 넣거나 PK 획득 후 세레모니를 하여 부천팬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경기 내내 남기일도 발군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중거리슛으로 부천FC의 간담을 거늘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남기일, 이원식 모두 뛰다 안뛰다 하는 선수들이고 이미 코치급인데, 굳이 부천FC와 경기에서 그렇게 나와서 맹활약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경기를 보면서 "과거 부천의 선수들이 자신들이 건재하다는 것을 팬 앞에서 보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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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조기축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이른 시간(6시)이라 그런지 상대 선수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찌어찌하다 제가 상대팀으로 넘어갔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상한 심리가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잘해서 원래 소속팀 사람들에게 나를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하필 나를 상대팀으로 보낸 것을 조금 후회하게 만들겠다는 묘한 경쟁심도 생겼습니다.

저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뛰었고, 어시스트는 아니지만 어시스트로 연결되는 패스를 초반에 잇따라 2개나 했습니다. 평소에 저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원래 우리팀 멤버가 곁을 지나며 "왜 그래? 약 먹었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더욱 웃기는 것은 골에 기여한 후 마치 원래 소속팀이 골을 넣었을 때처럼 주먹을 쥐고 '나이스!'라고 외친 것인데, 그렇게 하고 저도 놀랐습니다. 뭐가 '나이스'지!

후반에는 역시 상대팀에서 골키퍼를 했는데, 일대일 위기 두번을 모두 막아내면서 상대팀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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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등에서도 많은 경우 그저그런 선수들이 친정팀을 상대로 맹활약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정들었던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인사'이고, 어쩌면 자연스러운 인간의 심리인 것 같습니다.(정대세가 한국과 경기할 때 이런 심정이 아닐까? 추성훈도 마찬가지 일 것 같습니다)

이원식과 남기일은 연말 추운날씨에 부천FC 선수들과 경기를 위해 부천을 찾아왔던 선수들입니다. 경기 후 식사 자리에서 "계속 오겠다"며 부천과 부천 팬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던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부천FC의 골대를 향해 공격을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과거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팬들 앞에서 "나!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라고 외치고 싶었던 것을까요.

경기 후 이원식과 남기일은 일부 헤르메스의 비난을 받은 것에 대해서 "이해합니다. 모두 다 그런 것도 아닌데요 뭐"라고 말하고 경기장을 떠났습니다. 적어도 정신이 좀 수습된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하재훈, 이원식 모두 표정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습니다. 하재훈은 부천FC 관계자와 눈이 마주치자 묻지도 않았는데, "PK, 그거 시뮬레이션 아니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 별로 없었는데…

그나저나 요즘에 경주시민구단에서는 윤정춘 플레잉코치가 뛰던데… 후반기 경주와 경기 걱정되네… 지난 2008년 10월 26일에는 용인시민구단에 등록된 조현두가 잘 나오지도 않다가 굳이 부천FC와 경기 때(그것도 원정인데) 와서 골을 넣는 바람에 1-3으로 부천이 패했습니다. 

은퇴 전 선수들이 앞으로 K3에서 마지막을 풀뿌리 축구에 기여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 같습니다. 친청 앞에서 더욱 열심히 하는 선수들을 부천FC 팬들은 앞으로 여러번 만나야할 것 같습니다. 운명의 장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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