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부천FC 1995

대한민국 부천시와 일본 가와사키시의 기묘한 인연

by walk around 2010. 8. 6.

 

 

 

 

 

 

한때 부천시는 K리그 관중 동원 1위를 기록했던 축구도시입니다. 비교적 작은 규모에 100만에 가까운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직장을 서울이나 인천에 두고 있는 시민이 많아서 집에 와서 잠만자는 베드타운 성격이 강한 도시입니다.

몇 블럭 사이에 두고 초대형 백화점 2곳(롯데, 현대)과 대형할인점 3곳(킴스클럽, 이마트, 홈플러스)이 붙어 있어도 영업이 되는 동네입니다. 이렇게 소비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좁은 지역에 집중 거주하는 지역이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주말에 여가를 즐기기 위해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돈을 쓰더라도 갈곳을 찾는 동네입니다.

이 때문에 춘의동의 부천종합운동장 앞의 공원은 휴일에 많은 인파가 몰립니다. 목 좋은 곳에는 돗자리 펼칠 자리도 없습니다.

덕분에 2000년대 초반 부천SK가 몇명의 스타(다른 구단에 비해 그나마 스타성이 매우 낮은)를 데리고 중위권 정도의 성적만 냈을 뿐인데, 만원 관중이 붐볐습니다. 경기날마다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당시 K리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습니다.(아래 사진 참고) 

 

이후 스타선수를 타구단에 팔고, 트루판이라는 이상한 감독이 와서 함량미달 터키 선수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연패에 빠졌고 관중도 덩달아 빠졌습니다. 그리고는 정해성 감독이 자리를 잡고 슬슬 도약하던 2006년초 제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

2010년 7월 부천에서는 신임 김만수 시장의 취임식이 있었습니다. 취임식 사진들을 보다가 한참을 바라본 사진이 있었습니다.

이런, 부천시와 일본의 가와사키시가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군요. 순간 머리속이 복잡하게 굴러갔습니다. 하나의 재미난 스토리가 구성되었습니다.

가와사키. 우리에게는 웅장한 엔진소리를 내는 오토바이 브랜드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축구팬인 저에게는 저주받은 도시로 더 익숙합니다.

가와사키에는 베르디 가와사키라는 매력적인 팀이 있었습니다.  베르디(Verdy)는 포르투갈어로 녹색이라는 뜻입니다. 기세는 상당했습니다. 1993년 J리그에 참가하여, 원년부터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클럽 챔피언십 우승(1988)을 비롯해 일왕배(5회), 슈퍼컵(4회), 리그컵(6회) 등 각종 타이틀을 휩쓸었습니다.

스타도 즐비했습니다. 미우라 카즈요시, 루이 라모스, 테츠지 하시라타니, 기타자와 츠요시, 다카키 타쿠야 등 추억의 스타 이름이 줄줄이 나옵니다. 김도근, 이강진 등 국내 선수들이 뛰었습니다. 아마 노정윤도 뛰었을 것입니다. 재일동포인 이국수 감독, 장외룡 감독도 활약했습니다.

일본 축구팬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한 이야기입니다만 들어볼만 합니다. 구단의 대주주인 니뽄TV는 "힘들게 구단을 운영하면서 오토바이 회사만 홍보해준다"는 불만을 가졌다 합니다. 사람들 열이면 아홉이 베르디 가와사키는 가와사키 오토바이 회사가 운영하는 것이라고 오해를 했다는군요.

열받은 니뽄TV는 2001년 수도 도쿄로 연고지 이전을 감행합니다. 이름도 '도쿄 베르디'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일본만 해도 서포터들이 그렇게 아무생각없는 동네가 아닙니다.

연고이전의 댓가는 처절했습니다. 명문 베르디는 어디가고, 약체 베르디만 남았습니다. 관중이 줄면서 수익이 감소하고 선수영입이 줄면서 결국 2006년에는 2부리그인 J2로 강등됐습니다. 2008년 겨우 올라왔는데, 다시 한시즌만에 떨어져 나갔습니다.

(2005년에 강등을 확정 짓는 경기를 현장에서 보았습니다. 텅빈 경기장이 인상에 남습니다. 조만간 정리해서 포스팅할 생각입니다.- 사진참고)

 

결국 팀을 망친 니뽄TV는 재일동포 최창량씨가 운영하는 도쿄홀딩스에게 팀을 팔았습니다. 현재 구단의 법인 이름은 '도쿄 베르디 1969 풋볼 주식회사'입니다. 이전에는 'NTV FC주식회사'였습니다.

아무튼 가와사키시는 명문구단을 큰 시장에게 빼앗겼습니다. 하지만 가와사키에는 빌빌거리고 있던 가와사키 프론탈레가 있었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가와사키 프론탈레는 1955년에 후지쯔 축구부로 창단되어 1997년에 프로팀으로 전향하고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1998년에 JFL 준우승을 차지해 J1리그 참가결정전에 참가했으나 아비스파 후쿠오카에게 2:3으로 역전패해 J1승격이 좌절되고, 1999년에 출범한 J2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J1으로 승격했지만 다음해 다시 J2로 강등되었습니다.

2004년 J1에 복귀하고, 2006년 J1 준우승을 차지해 AFC 챔피언스리그에 참가. 2007년도에는 야마자키 나비스코컵 준우승 및 AFC 챔피언스리그 8강의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2008년과 2009년엔 2년 연속 J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는군요. 예전의 베르디 가와사키 정도의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독일로 떠난 정대세가 몸담았던 구단이기도 합니다.

다시 김만수 부천시장 취임식 사진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래 가와사키 시장의 인사말 화면을 보시면 집무실 책상 뒤에 가와사키 프론탈레 유니폼이 걸려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팀 하나를 보내고 가와사키는 프론탈레 친화적인 입장이라고 합니다.

 

시장은 중요한 사진이나 영상을 유니폼 앞에서 촬영합니다. 연고 축구단을 홍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가와사키 프론탈레는 일본 제패는 물론 아시아 제패도 노리는 강팀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부천과 가와사키는 모두 연고 축구단의 연고 이전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자매결연을 맺고 있군요. 참 묘한 인연입니다. 하지만 가와사키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부천에는 부천FC 1995가 있습니다. 두 도시 모두 100만 안팎의 인구, 수도 인근 등의 공통점도 있습니다.

부천FC도 프론탈레처럼 한국을 정복하고 아시아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을까요? 부천시도 가와사키시처럼 시장실에 팀의 유니폼을 걸어두고 취재에 응할 정도로 연고 축구단에 관심을 보일까요? 가와사키를 비롯한 일본 지자체들이 축구단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나라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K3팀을 창단하는 이유는 또 뭘까요?

사진 한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사진 한장입니다. 부천시 가와사키의 전철을 밟기를 기대합니다. 자매결연도시는 서로 성공사례에 대한 노하우 공유하는, 그런 사이 아니겠습니까? ^^

- 2010년 9월 21일 추가

아래는 김만수 부천시장의 트위터입니다. 가장 아래 빨간색 네모칸을 봐주세요.


이제 가와사키와 부천의 싱킹이 시작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