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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Worldcup

동네 축구팬이 분석한 레바논전 패인 7

by walk around 2011. 11. 17.

레바논 전은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경기에서 패해도 화는 나도 코치나 선수를 미워할 수 없는 경기가 있으나, 이번 경기는 전체적으로 '이해불가'였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정리해봤음.


- 멘탈이 무너진 상태에서 경기 시작

6-0으로 얼마전에 이긴 팀과 경기다. 2진으로 붙어도 이기는 팀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레바논이 변했다지만, 설마 6-0으로 진 팀이 변해봤자 얼마나 변했겠는가. 이런 생각이 이번 패배의 시작이다.

코치진도, 전력분석요원도, 선수들도 준비는했겠지만, 멘탈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이기 때문에 치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덤비는 경기는 상대가 약팀이라도 좋은 결과를 바랄 수 없다.

"약팀이라도 최선을 다하자"고 되뇌이는 것은 머리뿐이다. 가슴은 상대를 무시하고 있고, 그런 무의식이 근육을 지배한다.


- 심판에 적응 못했다

조광래 감독이 사우디 심판탓을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중동에서 중동심판이 진행한 경기 치고 무난했다. 레바논의 경기 지연도 알사드에 비하면 애교수준이었다.

경기를 보니 상대가 반칙성 플레이를 하면 우리 선수들이 심판을 보거나, 심판이 반칙으로 판정할 것으로 생각하고 한 템포 빼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스스로 흐름을 끊어가니 플레이가 제대로 될리 없다. 한마디로 매너리즘이 경기에 영향을 준 것.


- 아무리 유럽파이지만, 후보 아닌가

경기력은 경험을 통해 살아난다. 구자철, 지동원 등이 아무리 빅리그에 있다고 하지만, K리그에 그만한 선수가 없을까. 후보로 벤치에 있는 선수들은 개인능력이 우수해도 쉽게 경기감각이 살아나지 않는다.

매번 아시아를 재패하거나 제패하기 일보직전의 K리그 팀들의 주전이 당연히 기회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유럽만 가면 국가대표 주전이라는 공식은 팀내 K리그 선수들에게도 사기 전하 요인이다.


- 경기장 분위기에 적응 못했다

마치 실탄을 쏘는 듯한 폭죽, 레이저 빔, EPL같은 환호. 대표팀의 일부 선수들에게는 생소한 분위기다. 2002년 월드컵 때 경기장 분위기에 한국과 경기하는 강팀들도 정신이 없었다는데, 레바논에 간 한국선수들은 오죽했을까.

한국은 외국팀에게 야유를 하면 당장 다음날 인터넷에 "손님에게 야유했다"는 글이 올라오는 나라다. 하지만, 축구는 그런 종목이다. 얌전하고 조용한 국내리그 출신 선수들은 아마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 임기응변의 연속

적어도 대표팀이라면 큰 줄기가 있어야 한다. 축구강국의 팀들도 뻔한 약점이라고 지목받는 전술이나 포지션을 대부분 일관성있게 들고 나온다. 물론 이렇게 저렇게 주어진 조건에서 보완을 하면서...

그런데, 레바논전의 한국팀은 상황에 따라 틀이 마구 바뀌었다. 미들과 수비가 바뀌고, 수비와 공격이 바뀌었다. 이렇게 틀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은 "김씨는 오늘 수비만 했으니가 마지막 10분은 공격해"라는 멘트가 난무하는, 흡사 조기축구 같았다.


- 컨디션 조절에 완전히 실패

수많은 크로스가 골대는 넘어가거나, 골키퍼에게 갔다. 경기장 환경이 나쁘다는 점은 감안해도 너무 부정확했다.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는 증거다. 앞서 말한대로 멘탈이 무너졌으니 피지컬 케어도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선수들도 아마 시간이 갈수록 죽도록 뛰어서 결과를 돌리고 싶었을 텐데, 마음뿐이었다. 몸이 너무 무거워 보였다.


- 밀집 수비에 또 당하다니

전통적으로 밀집수비에 약한 한국이다. 골키퍼의 체형을 보니 골대 안으로 공만차면 서너개 중 하나는 들어갈 것 같던데, 슛을 너무 아꼈다. 막판에 슛을 쏘기 시작했는데, 공간이 열리면 때려야 하는데 서로 참았다.

공간이 열려도 빼주지 않고, 굳이 상대가 많은 중앙으로 끌고 들어가는 장면도 있었다. 풀어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시간만 보낸 셈이 됐다.


사실 이 경기는 0-3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경기였다. 우리팀의 PK는 안볼면 그만이었고, 상대의 골대 강타는 골이나 다름없었다. 전체적으로 팀이 하루 전에 소집한 것 처럼 모래알 같았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관련 링크 :  우리나라 축구장 관중석, 너무 얌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