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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 story

창단 대행사 선정 결국 실패, 남은 것은 팬이 직접 창단

by walk around 2011. 11. 28.

기대가 컷다. 이번에 접근한 업체는 그래도 한국 스포츠마케팅 업체 중에는 베스트급에 속하는 곳이었고, 개인적인 친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 설립 때 우연찮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업체도 심사숙고 끝에 참여가 어렵다고 최종 통보를 했다. 결정을 알리는 과정이 너무나 젠틀해서 불만을 가질 수도 없었다. 다만 너무나 아쉬울 뿐이었다.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제 정말 직접 팬이 구단을 창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먼저 가진 것을 점검했다. 일단 시청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방해세력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지역사회는 표면적으로는 대부분 이름을 걸었다. 그러나 스킨십은 절대 부족한 상황이었다.

관내 정치인들은 관심은 있으나 적극성은 떨어졌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힘은 주었다. 배기선 당시 의원이 매우 적극적이었다. 스폰서는 스포츠토토가 확보됐다. 액수는 밝힐 수 없으나 대략 구단의 한달 운영비 수준이었다. 그리고 창단 TF 정해춘 대표가 내놓은 활동비가 있었다. 또 TF팀원이 갹출한 소정의 활동비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나아졌지만,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K3리그 등록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길어야 2,3개월이 남았다. 그때까지 가입비와 회비 3~4천만원. 대략적인 선수단 구성. 1년 운영비 등을 만들어 내야했다. 다행히 부천에는 한국 최고의 서포터 헤르메스가 있었다. 이들의 논의와 격려는 TF에게는 큰 힘이었다.

다시 배기선 의원 등이 힘을 냈다. 그 과정에서 SK에너지와 협의가 시작됐다. 후원이 구체적으로 이야기 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TF는 잠시 갈등에 빠졌다. 연고지 이전을 감행한 SK의 후원을 받는 것이 말이 되는가의 문제였다. 물론 팀이 없었던 근 2년을 생각하면 누구 돈이든 그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팬들 사이의 공감대가 중요했다.

헤르메스 대표자 모임에 의견 조회를 했다. 시위 때 SK는 부천에서의 팀 창단과 운영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목표였다며 받자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그렇다면 이제 액수가 문제였다. 얼마나 받아야 되는가. 일단 SK 쪽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않는 액수의 제안이 왔다. 받을 수 없었다.

액수를 정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워봤다.

"K3에 진입하여 3년 동안 생존하면 자체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다. 운영비의 30% 정도는 스스로 벌어야 한다."

결국 SK에게는 1년 운영비의 70%선을 3년 동안 후원하는 정도의 제안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TF에서 동의 후 헤르메스 대표자 모임에 알려서 몇 일 동안 의견을 받아서 과반의 동의를 구한 후, 우리 쪽 의견이 정리되어 SK로 전달이 됐다.

우리의 제안은 당초 SK에너지 측에서 제안한 액수의 거의 2배였다. 그러니 결과는 알 수 없었다. 여러 경로로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SK 측에 전달했다. 결국 우리 뜻대로 액수가 합의됐다. 이제 창단은 7부 능선을 넘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제 잘 하면 다시 부천구단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디 가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밤새 수많은 전화 통화가 오갔다.

이제 중요한 고비가 또 있었다. 시청의 연고지 협약이었다. 이것을 해야 K3리그에 참가가 가능했다. 하지만 당시 시청은 창단운동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이 아니었다. 산을 하나 겨우 넘었는데, 또 만만치 않은 산을 만난 것이다. 시와 협약을 위한 TF의 노력을 크게 2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