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2002년 9월 오사카를 방문했는데, 일이 끝난 후 도쿄에 갔습니다. 도쿄 인근 사이타마에서 열리는 축구경기를 볼 계획이었습니다.

당시 일시적 휴직자여서 시간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돈은 없었죠. 오사카에서 도쿄까지 신간센 12만원은 부담이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신간센 흡연석을 탔는데 3시간 정도 소요되는 긴 시간이었지만 담배를 마음껏 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때는 담배를 끊기 전이었으니까.

우라와 레즈 경기를 보기 위해 지하철에서 내려 경기장으로 향가는 팬. 가족단위가 많았다.

도쿄역에서 약 한 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옆의 부천정도. 내가 가야할 곳은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였습니다. 가까운 역 이름은 '우라와 미노소'.

사이타마는 도쿄 옆의 현이고, 우라와는 사이타마 현의 수도입니다. 사이타마에는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라는 미쯔비시 자동차가 설립한 프로축구단이 있고, 역시 사이타마 내에 있는 오미야라는 도시도 '오미야 아르디자'라는 프로축구단이 있습니다. 수원에서 뛰었던 주총련계 재일동포 안영학 선수가 요즘 오미야에서 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었던 장외룡씨가 감독으로 있습니다.

경기장 앞 간이 기념품 판매대. 상품은 다양, 소비자는 바글바글.

오미야가 "J1을 향해!"라는 내용의 포스터를 시내 곳곳에 붙였던데, 지금은 그들은 꿈을 이룬 셈이군요. J1잔류에 성공하고 있고, 외국인 선수와 감독도 선임할 정도니까요.

당시 우라와 레즈는 J1에 있었고, 오미야는 J2 또는 JFL에 있었습니다. 제가 보러간 경기는 우라와 레즈와 이제 막 J1에 올라온 센다이 베갈타의 경기였습니다. 지금은 센다이 베갈타는 J2로 주저 앉았을 것입니다.

우라와 미소노 역에서 내려서 멀리 보이는 사이타마 경기장을 향해 걸었습니다. 이미 역은 우라와 레즈의 상징색인 붉은색 물결입니다. 2002월드컵 거리응원 분위기입니다.

경기장 내부 복도. 더위를 피해 경기 전까지 휴식하는 사람들.

지하철 안에서 붉은옷을 입은 팬들은 온통 축구이야기 입니다. 아니, 우라와 레즈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축구경기가 없었을 1,2주를 어떻게 살았는지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연령대는 다양했습니다. 노인부터 어리 아이까지 옷은 대부분 붉은색이었습니다. 특히 가족단위가 많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이타마 스타디움은 2002 월드컵을 위해 신축된 축구 전용 구장입니다. 경기장에서는 2002월드컵 때 카메룬-사우디, 터키-브라질, 잉글랜드-스웨덴 그리고 일본-벨기에전이 열렸습니다.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 이들이 서포터가 아닌 일반 팬이라는 점이 놀랍다.

정원은 무려 6만3천명. 초대형 경기장인데요, A매치가 아닌 리그경기인데, 2층을 약간 빼고는 거의 들어 찼습니다. 팀 관계자는 "연간회원권은 이미 매진"이라고 했는데, 현장판매분은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포터석은 N석은 일찌감치 매진. S석도 자리가 없었습니다. 1층 자리도 없었습니다. 결국 2층 표를 사서 메뚜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티켓 가격은 3만원.

우라와 미소노역에 내려 경기장으로 걸을 때에는 30분 정도 걷습니다. 셔틀버스도 없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린 수천명의 붉은 응원단이 우르르 걸어갑니다.

경기장 앞. 간이 기념품 판매소가 있었습니다. 머플러는 모두 타올식. 가격은 우리 돈 2만원 선, 약 5종류, 티셔츠는 10 종류가 넘었고, 우리돈 4만원선.그 밖에 가방, 열쇠고리, 스티커, 볼펜 등 없는 게 없었습니다. 매대 앞은 사람들도 바글바글.

경기장 중앙석 1층을 서성거렸습니다. 주변에는 아저씨, 아줌마, 아이들, 할머니 모여 앉아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대형 깃발을 들고, 웃통까지 벗어제낀 한 아저씨에게 "당신은 서포터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우리는 서포터의 친구들"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신간센으로 2시간 도쿄로 와서, 도쿄에서 지하철로 1시간 30분. 사이타마까지 이렇게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 수천명이 센다이 베갈타의 승리를 기원하며 사이타마 스타디움을 찾았다. 서포터 고유 응원도구인 절단통천, 깃발, 게이트기 등이 보인다.

사이타마에서는 일반관중도 서포터처럼 응원을 합니다. 서포터는 아니지만 응원의 수준은 서포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강도가 좀 차이가 날뿐, 이들은 스스로 '서포터의 친구들'이라고 칭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모두 일어나서 펄쩍펄쩍 뛰지는 않았지만, 대형 깃발을 흔드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 아저씨는 맥주까지 사주며 “우라와 보이즈석(서포터석)으로 가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표는 매진이지만, 자리는 구해 줄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운데서 경기와 홈, 원정 서포터 모두 볼 수 있어 거절했습니다.

경기 시작 30분 전. 그러다 먼저 우라와 선수 하나가 뛰어 나왔습니다. 우라와 서포터는 거의 광란의 도가니 직전까지 갔습니다. 거의 5만의 관중이 자아내는 탄식은 중저음이 뛰어난 고급 오디오의 음향 같았습니다.

선수도 손을 흔들며 홈 관중에게 친밀함을 표시했습니다. 동네 동생, 형님 만난 듯이 흔들고, 광중석 가까이 다가와 인사를 하며 한두마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홈 관중과 선수가 매우 친밀해 보였습니다.

경기장의 수천개 깃발은 모두 기립. 전투를 위해 선수들이 하프라인에 도열했기 때문.

잠시 후 상대인 센다이 베갈타(vegalta) 선수들이 나왔습니다. 우라와 서포터의 야유. 인원이 많아서인지 야유가 정말 야유다웠습니다. 야! 이 정도면 상대가 위축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서포터 일반 관중 할 것 없이, 모두 센다이 선수들에게 뻑큐를 날렸습니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습니다. 수천명이 경기장을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날리는 뻑큐. --; 정망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라와 팬들은 상대와 우라와와 경기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에 대한 무한한 적대감을 나타내며 거의 증오심에 가까운 경쟁의식을 마음껏 드러냈습니다. 제가 우라와 선수라면 이런 홈팬의 기세에 눌려 경기에 진다는 생각을 못할 것입니다.

S석 센타이 서포터들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일단 인원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처음으로 J1에 올라온 팀인데, 지난 번 우라와가 센다이 원정 갔을 때 우라와 서포터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여 양측의 감정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대형 유니폼 통천을 펼쳐든 우라와 보이즈. 사람들 사이로 촬영되어 좀 아쉽습니다.

사이타마 오기 전 친분이 있는 우라와 서포터에게 연락을 했을 때 “경기 후 센다이 서포터 패주러 간다”고 말하며 경기 후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로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손님이 갔는데, 상대 서포터와 분쟁을 위해 무시하는 셈입니다.

다른 친구와 시간을 보냈지만, 한국의 정서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들은 손님 보다는 자신 스스로의 일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약이나, 중대한 일이 있으면 손님이 와도 일단 자기 일 먼저 다 하고 보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센다이 서포터들은 다른 서포터들이 에지간해서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우라와 보이즈를 건드렸습니다. 원정에서도 자기들 관중석에 레이스 풀고, 우렁찬 야유를 하는 등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순간순간 센다이 서포터가 더 사납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센다이와 사이타마는 원정을 다니기에는 먼 거리입니다. 줄잡아 4시간 이상 걸립니다. 그럼에도 센다이 원정 서포터의 규모는 수천명에 달했습니다.

골대 뒤를 꽉 채운 우라와 레즈 서포터들.

야유 공방 후 먼저 센다이 서포터가 응원을 시작했습니다. 일본 고유의 노래로 응원가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트위스트 시스터즈의 ‘위 낫 거너 테이크 잇’ 등 록음악도 많이 변형했습니다. 이 노래는 부천SK 서포터이고 지금은 부천FC 1995를 창단한 서포터 헤르메스가 90년대 후반부터 사용하던 응원가이기도 합니다.

센다이 서포터와 우라와 홈 관중 사이에는 거의 두 블럭을 비웠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경찰에 곳곳에 서 있었습니다. 이는 J 리그 다른 경기에서도 보기 힘든 것으로 우라와 홈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센다이가 좀 오래 설친다 싶은 생각이 들을 때 우라와 보이즈가 응원을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붉은 곰이 눈 앞의 노란 삵쾡이의 거친 재롱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용트림을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들의 첫 곡(?)은 클레멘타인 이었습니다.

<관련 포스팅>

서포터 무서워 열심히 뛰는 축구선수들 - 사이타마 방문기 2

"선수들이 가장 꺼렸던 서포터는 부천 헤르메스"
부천FC 선수들과 서포터, 철문 사이에 두고 랄랄라
K3 부천FC 서포터, 거리에서 합창

게이트 기, 축구클럽의 영광을 표현하는 응원도구
황선홍과 홍명보 뛰었던 가시와 레이솔 홈구장에 가봤습니다
축구 선수들, 수줍음 털고 팬에게 다가가라




calypso

소음에 가까운 2개의 음악 파일입니다. 90년대 중·후반에 축구장 응원에 심취했던 사람들은 전화선으로 접속된 인터넷을 타고 외국 사이트에서 축구 응원과 관련된 정보를 얻어내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한 음악에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단을 위한 문구를 넣어서 응원가를 만들고 실제로 축구장에서 동료들과 합창을 했습니다.


CHAMPS

이 2개의 파일은 출처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앞에 것은 파일명이 'calypso'라고 되어 있고, 뒤에 것은 'CHAMPS'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초고속 인터넷을 타고 외국 축구장의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케이블TV에서는 외국 리그를 생중계합니다. 이런 파일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1. 김뽀 2009.11.27 17:30 신고

    1등 찜!!!!!ㅋ

    • walk around 2009.11.27 18:16

      ㅋㅋ 여기 일등하기 쉬운 곳이예요. T.T

  2. 영웅전쟁 2009.11.28 10:02 신고

    잘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walk around 2009.11.30 08:34

      주말 잘 쉬셨어요? 오늘 아침 꽤 쌀쌀하네요. 으슬으슬...


서정원 코치를 만나기 위해 오스트리아 리트로 가는 길. 기차밖 풍경.

2006년 독일월드컵 조별 예선이 한창이던 6월. 유럽은 완전히 찜통이었습니다. 낮 온도가 거의 40도에 육박했습니다. 19일 늙은 프랑스와 극적으로 1:1로 비긴 한국은 1승 1무로 일약 G조 1위로 올라섰습니다.


프랑스와 경기는 구동독 지역의 라이프찌히에서 벌어졌습니다. 조별예선 3차전 스위스와의 경기는 24일에 하노버에서 시작됩니다. 줄잡아 4일 정도의 시간이 비는 것입니다.


월드컵을 관전하러 떠난 축구 팬들은 이 시간 동안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의 관광지를 주로 돌았습니다. 일찌감치 하노버로 가서 체력을 비축하는 팬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일행과 함께 남는 시간을 좀 더 의미있게 써보자고 결정하고, 체코 프라하와 오스트리아 빈 등을 거쳐서 당시 서정원이 뛰고 있는 클럽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리트 가는 길에 찬 1량 짜리 기차의 소박한 인테리어

찾아가는 길에 잠시 혼동했습니다. 당시 서정원이 뛰던 팀은 SV리트라는 팀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최성용 선수가 라스크린츠에서 뛰었습니다. 두 정보가 머리에서 꼬이고 일행 모두 피곤 속에 집단환각(?)에 빠져서 '린츠'라는 도시로 갔습니다. 서정원이 있을리 없습니다.


리트 풍경

다행히 오스트리아는 작은 나라입니다. 반나절만 기차타면 에지간한 곳은 갈 수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리트'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리트가는 길은 완전 전원길이었습니다. 농촌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가는 길에 간이역에서 기차를 갈아타는데, 기차가 단 1량이었습니다. 리트가 얼마나 작은 도시인지 대충 짐작이 갔습니다. 승객은 거의 우리 일행이 전부였습니다.

NORD. 북쪽구역. 서포터석이군요.

1량짜리 기차를 타고가며 소똥 냄새를 제대로 맡을 수 있었습니다. 소똥을 농사에 쓰는지, 아니면 주변의 목축업을 하는 농가가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림옆서 같은 유럽의 농촌에서도 소똥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리트는 정말 조용한 전원마을이었습니다. 인기척도 거의 없었습니다. 듣기로는 리트와 주변마을 인구를 다 합쳐서 1만5천명이라고 합니다. 정말일까? 눈에 보이는 규모로는 그보다 훨씬 적어 보였습니다.


구단 사무실 앞. 기념품 홍보부스. 서정원 맨 위 오른쪽.

길을 엉터리로 설명해 준 동네 주민 덕분에 가까운 거리를 빙 돌아서 어렵게 리트구단의 홈구장을 찾았습니다. "야! 이 정도면 딱 적당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아담한 구장이었습니다. 좌석은 약 8,000석 동네 주민 2명 중 하나가 와야 만원이라는데, 실제 경기마다 만원이라고 합니다.

서정원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친구처럼 대해 준 리트구단 직원

당시 서정원은 이 팀에서 발군의 실력으로 대활약을 펼치면서 2부리그에서 갓올라온 약체 리트를 1부리그 상위권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경기장 주위를 맴돌다 구단 관계자를 만나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경기장 전경. 많은 A보도 광고판이 부럽다.

서정원은 리트에 없었습니다. 당시 월드컵 해설을 위해 독일로 갔다고 합니다. 리트까지 먼 길을 갔지만 허탕을 친 셈입니다. 하지만, 뭐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가 돌아와서 "한국의 축구팬 대여섯명이 와서 당신 유니폼을 사갔다"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구단 직원들은 "기자가 아닌 팬이 온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시골 마을에 한국인이 올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소박한 벤치

리트 구단 직원들은 우리를 환대했습니다. 문이 잠긴 기념품 샵도 열어주고, 구단 사무실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작은 구단이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지도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당시 구단 창단과 운영이 지상과제 였던 부천FC와 서울유나이티드의 서포터로 구성된 우리 일행은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습니다.

2006 독일월드컵 조별 예선 3차전 응원을 위해 하노버로 가는 길에 들른 짤즈부르크.
서정원이 리트에 가기 전에 있던 곳

길에서 만난 리트 주민들은 "세오를 아느냐"는 질문에 엄지 손을 치켜들었습니다. 그는 리트에서 영웅이었습니다. 물론 리트역 앞에서 만난 한 더벅머리 총각은 같은 질문에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답했습니다. 어디나 인구의 100%가 다 축구팬은 아니겠죠? --;

하노버로 가는 기차. 이때까지는 좋았다. 하노버에서 울며 돌아올 줄 몰랐다.

아쉬웠던 점은 비시즌 중이란 구단 상품이 빈약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일행은 돈을 걷어서 필요한 물품을 적은 메모를 리트구단 직원에게 주었습니다. 사이즈가 입고되면 한국으로 보내달라며 명함도 주었습니다.

그렇게 돌아온 후 한달이 지나 사무실로 소포가 왔습니다. 리트에서 온 소포였습니다. 이런 옷에는 서정원 코치의 사인도 있습니다. 서 코치가 "정말 한국에서 팬들이 리트에 왔었느냐"며 신나게 사인을 했다는 에피소드도 메모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는 사인을 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사실 부천SK 서포터였던 나에게 그는 안양LG, 수원삼성 유니폼을 입고 우리를 공격하던 적이었습니다. 뿌연 기억이네요. 그가 수원의 퍼런 유니폼을 입고 우리측 진영에서 찬스를 맞을 때 "안돼! 세오!"라고 외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무튼 그는 지금 이집트에서 청소년 대표 코치로 있고, 그의 지도를 받은 공격수들은 2경기 연속 3골을 터뜨리며 8강에 가 있습니다. 오늘 4강 역사를 위한 한판이 벌어지는군요. 그리고 이렇게 난리를 치면서 리트까지 다녀왔는데 아직 서정원 코치를 직접 만나본 일은 없네요. 그냥 추억입니다.


서정원

안양 LG(현 FC서울) : 1992~1997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1998년
수원 삼성 : 1999~2004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 2005년 2~6월
오스트리아 SV리트 : 2005년 7월~2007년 5월
現 청소년 국가대표 코치




아래 동영상은 2000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 서정원의 극적 동점골 장면입니다.



<포스트 링크>

청소년 축구대표 입장에서 바라 본 코칭스탭 
청소년대표, 8강전의 적은 어수선한 경기장 분위기

  1. 기현 2009.10.09 17:27

    작년 서유홈경기때 놀러온 쎄오를 만났을때 "우리가 갔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뭔가 할말이 많아보였는데 주변인들이 쎄오에게 하도 말을 시켜서 짧게 헤어져서 아쉬웠습니다. 뭐 또 만날날이 있겠죠~

    • 동쪽사람 2009.10.09 17:36

      늙어서 만날수록 좋을 듯.. 남자들은 나이들수록 수다가 늘어나니까..

사진은 2002 시즌에 터키로 떠난다며 부천SK 서포터즈 헤르메스에게 인사를 하는 이을용 선수를 환송하는 모습입니다. 어김없이 게이트 기가 있습니다.

지난 1998 월드컵의 개최국이자 우승국인 프랑스에는 ‘개선문’이라는 관광 명소가 있다. 이 개선문은 19세기 초반 나폴레옹이 자신이 주도한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개선문은 사실 일반적인 ‘문’의 역할은 하지 않는다. 개선문에 이어진 담벼락도 없고, 안팎으로 눈에 띄는 차이점도 없다. 다만 나폴레옹이 자신의 영광을 상징하는 도구로 만들었고, 이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따름이다.

이탈리아에도 많은 개선문이 있다. 이탈리아의 개선문의 역사는 고대 로마 공화정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는 큰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돌아올 때 시내에서 개선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이 개선식을 위해 개선문이라는 개선기념 건조물을 만들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지원전 19년에는 리미니에 아우구스투스의 개선문이 세워졌고,  4세기에는 로마에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이 세워졌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외에도 유럽 각국에는 자국의 영광과 희망을 표현하는 크고 작은 개선문이 있다. 이러한 개선문은 축구장에도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축구팀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또는 그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팬들은 개선문을 경기장으로 들고 왔다.

99년 목동운동장에서 게이트를 들고 있는 헤르메스.

축구장의 개선문은 거리의 개선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초라한 형식이다. 거리의 개선문은 대부분 화강암 등 석재에 시대를 대표하는 화려한 문양을 넣기 마련이다. 누구나 숙연한 생각이 들 정도로 웅장한 크기로 만들어진다.

J리그 센다이 베갈타 서포터즈입니다. 절단통천 사이에 게이트 기가 보입니다.
사용 빈도를 보면 J리그 서포터들은 게이트 기를 몹시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

팬들이 축구장에서 선보이는 개선문은 큼직한 천과 긴 막대기 두 개로 만들어진다. 천 양 끝에 막대기를 하나씩 꽂아 개선문의 모양을 본뜨는 것이다. 팬들이 이를 ‘게이트 기(gateflag)’라 부른다.

외양은 초라하지만 게이트기에 담긴 의미는 개선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팬들이 두 팔을 펼쳐 선보이는 게이트 기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클럽을 상징하는 문구나 그림, 또는 바람이 담겨있고, 이를 지켜보는 선수들은 팬들이 보내는 한없는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유럽이나 남미의 축구장에서는 종종 게이트기로 가득 메워진 관중석을 볼 수 있는데 하나같이 기존 개선문이 담고 있는 거창한 의미를 담고 있어 축구와 클럽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목동에 등장한 게이트 기

우리나라에도 개선문과 유사한 건축물이 있다. 1896년 독립협회의 발의로 세워진 독립문이 바로 그것이다. 독립문은 갑오경장 이후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세웠다. 사대외교를 상장하던 자리에 자주적인 권리과 자강운동의 기념물을 세운 것이다.

부천SK의 홈구장인 목동 운동장에도 개선문이 있다. 부천SK 서포터인 헤르메스는 2000 시즌을 앞두고 목동에 모여 각양각색의 게이트 기를 제작했다. 시즌을 준비하는 게이트 제작작업에는 30명이 넘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경기 때마다 셀수 없는 게이트 기가 등장하는 우라와레즈 다이아몬드 서포터즈입니다.


헤르메스는 한국 최초로 응원에 게이트 기를 선보인 서포터로 이번 시즌을 위해 게이트 기를 제작하기 이전에도 열 개가 넘는 게이트 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제작에서는 물량에서 제작 내용에서 여러모로 특별한 내용이 있다.

우선 물량에서 헤르메스는 30개가 넘는 게이트 기를 제작해 서포터석을 온통 게이트 기로 채울 수 있을 정도가 됐고, 제작 내용에서는 부천 서포터의 이름인 ‘헤르메스(Hermes)’와 연관된 이미지를 많이 수용하려 했다.

헤르메스는 ‘기둥’이라는 의미로 그리스 신화의 12번째 신으로 수성을 상징한다. 신화에서는 학문의 창시자이자 연금술, 전령, 상업, 교역의 신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는 언제나 두 마리의 뱀이 서로 얽혀 올라가는 두 개의 날개를 가진 카두세우스(Caduceus) 지팡이를 가지고 있는데, 역시 게이트 기 제작에도 반영됐다.

헤르메스가 제작한 게이트 기도 유럽의 개선문과 같이 사람이 드나드는 문은 아니다. 소속 집단의 영광과 희망을 상징하며 특히 클럽에 대한 지지와 사랑을 나타낸다.

카두세우스 지팡이를 비롯한 헤르메스의 게이트 기는 경기 2000 시즌 개막 후 경기 때마다 등장해 이미 헤르메스는 물론 부천 홈구장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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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에 작성한 글입니다. 당시 제가 지지하는 축구클럽인 부천SK가 목동종합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단의 서포터즈 클럽 헤르메스는 한국 서포터 역사상 최초로 게이트기를 만들어 응원에 사용했습니다. 지금 K3 리그 구단을 지지하는 헤르메스는 지금도 변함없이 같은 응원을 하고 있습니다.

서핑을 하다보면 멋진 사진들이 참 많은데, 요즘 저작권이 무서워서 직찍만을 쓰다보니 아무래도 사진 퀄리티가 딸립니다. --;


  1. 부천팬 2016.05.24 02:57

    우연히 와서 옛 부천 현부천 영상 및 사진등 잘 보고갑니다..연고지이전 후 십수년간 경기장을 떠났었는데
    다시 한번 찾고싶은 마음이 막 올라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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