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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 story

극도의 패닉상태에 빠진 부천서포터

by walk around 2009. 9. 15.


사실 연고이전 결정을 누가 내렸는지 알아내는 것은 당시 시점에서 중요한 일이 아닌지 모른다. 하지만 부천 팬은 졸지에 팀을 잃고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확실하게 부각되는 공공의 적이 필요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토해내야 그나마 제 정신이 돌아올 것 같았으니까.

연고이전을 발표하기 바로 직전까지 SK구단은 구단의 미래 전략을 도출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이 용역은 서울의 S대학교 대학원 체육과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한창 연구가 진행 중일 때 이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S대학교 대학원 조교를 만나 팬으로서 구단의 전략을 제안하기도 했다.

혹시 이 연구보고서가 "연고를 제주로 옮겨야 팀이 발전할 것"이라는 결론을 담고 있었을까? 확인해 봤다. 연구 참여자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하지만 연구보고서 말미에 "아름다운 경기장이 있지만 아직 연고 팀이 없는 서귀포 구장을 홈구장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는 언급을 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그간 이미 뿌리를 내린 부천에 머무를 것을 제안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하긴, SK구단은 연고이전을 발표하기 불과 수일 전에 부천 팬들을 모아두고 새 시즌을 대비한 계획을 발표하고 서로 상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연구에 따라 제주 이전이 준비 중이라면 그런 일정은 가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이전 계획을 갖고도 팬과 그런 만남을 가졌다면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니까.

연구에 참여한 사람 중 제주이전에 어떤 역할을 한 인사는 있는 것 같다. 연구 참여자 중 한 명이 훗날 SK구단과 제주시의 연고협약 관련 행사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주도 관계자가 이 연구 참여자에게 "고맙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창고에서의 대화는 대부분 망연자실한 상태에서의 넋두리였지만, 결국 연고이전에 대한 분노의 대상은 구단을 운영하는 SK주식회사로 굳어졌다.

서포터는 에너지가 넘치는 집단이다. 시즌을 앞두고 팀에 대한 기대를 응원으로 폭발시킬 각오를 다지는 상황에서 팀이 사라진 것은 에너지를 발산할 대상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연고지 이전을 결정한 부천SK의 모기업 SK주식회사에 대한 분노가 합쳐져서 험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기분이야 어떻든 팀은 떠났다. 다시 올 수도 없고 다시 온다고 해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서포터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과거 추억을 되살리며 한숨 짓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갑자기 구단과 관련된 모든 단어가 가슴 에리게 대가왔다. 목동, 니폼니시, 윤정환, 김기동, 곽경근, 헤르메스, 부천, 대한화재컵 우승… 그런 단어가 하나하나 떠오를 때마다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후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른다. 가끔 서포터 선후배들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흐느끼는 친구도 있었다. "왜 아필 우리예요!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어요!"라고 악을 쓰는 전화도 많았다. 차분하게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지?"라고 말을 거는 이성적인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부천구단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자살하겠다."는 전화를 받고, 그래도 정신이 좀 살아있는 친구를 자살소동을 하는 친구에게 보내서 밤새 붙어있도록 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퇴근 후 경기도 열리지 않는 부천종합운동장을 찾았다. 그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멍하니있다 왔다. 경기장 근처에서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해 배회하는 부천서포터를 만나기도 했다. 주말에 목동에 물건을 사기위해 갔다가 '목동운동장' 푯말을 보고 갑자기 눈물을 주루룩 흘리자 보다못한 와이프는 "당신에게 가족은 뭐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부천SK는 나에게 뭐였을까?

이런 패닉상태는 1주 정도 계속됐다. 그후 부천서포터는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다른 구단 서포터와 붉은악마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다는 심정과 보낼 때는 보내더라도 곱게 보낼 수 없다는 생각들이 얽여서 일이 추진되는 것 같았다. 암묵적으로는 SK주식회사와 제주유나이티드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주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