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sing Sun is fobidden by many country like the NAZI simbol.


 

 

 

My Paul Smith Goods(link),
But I have atleast more than 5 time than these. 

https://eastman.tistory.com/category/things/paul%20smith

창단 작업은 팬들이 하더라도 위원장은 이름이 있는 분이 해주시면 큰 힘이 된다. TF는 부천 지역 국회의원과 접촉했다. 정치적인 성향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축구에 대한 애정이 더 큰 잣대였다. 당시 지역 국회의원 중 CHA 의원 측에 접촉을 했다.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또 다른 후보는 역시 지역 국회의원인 BAE. 역시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TF 입장에서는 두 분이 공동 위원장을 하면 최고의 그림이 된다. 

약속은 CHA가 먼저 잡혔다. 2007년 3월 17일 토요일이었다. 하지만 바쁜 일정이 생기면서 계속 미뤄졌다. 당시 TF 업무 메모에는 '당 공천위원회 소집으로 인해 취소'로 기록되어 있다. 일정을 취소하며 여전히 "참여에는 긍정적"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BAE 의원 측과는 TF 사무국장 LEE와 유선상으로 논의가 이어졌다. BAE는 "4월 14일까지 답을 주겠다"고 했다가 답변 날짜를 4월 20일로 연기했다. 엄청나게 고민하는 듯 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신중하게 판단을 하니, 일단 한다고 하면 큰 기여를 하실 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4월 20일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국회 의원회관 723호 BAE 의원 사무실. TF 사무국장 LEE가 다녀왔다. 이 자리에서 BAE 의원은 몇 가지 답을 내놨다. 1. 참여에 긍정적이다. 2. 후원사나 기관을 내가 찾는 건 어렵다. 3. 시민모임 차원에서 후원사를 찾는 건 좋다. 4. 10월까지 위원회를 운영하고 성과가 없으면 해체한다. 5. JEONG 등 축구계 인사와는 친분이 있으니 향후에 응원이 되는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다음날 사무국장 LEE는 또 BAE 의원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BAE는 "위원장을 하겠다"는 답변을 했다. 십여 명의 팬이 모인 창단 TF가 거물급 정치인을 설득해서 창단 위원장으로 영입한 어찌보면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젊은 TF 멤버들은 BAE 의원님과 수시로 대화를 나누며 많은 것을 배웠다. 

TF는 아직 부실한 TF 조직도를 BAE 의원 측에 전했고, 매주 진행상황을 전달하기로 했다. 한 편으로는 CHA 의원은 창단위원회 '고문'직을 수락했다. CHA의원 측에도 TF 조직도와 진행 상황을 공유했다. BAE 의원 측은 CHA 의원 측도 창단에 함께 힘을 보태는 것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호이안 저녁 산책,
투본강에서 보트 타며 소원빌기

 

호이안은 관광도시였다.

사람들이 좋아할 것을 팔고

좋아할 음식점이 있었다.

 

 

호이안의 시그니처가 된 등.

우산처럼 접히기 때문에 가방에 놓기 쉽다.

 

난 2개 사왔다.

품질은 별로다.

굳이 안 사셔도 되겠다. 

사진이 더 이쁘다 ㅎㅎ

 

 

많은 사람들.

이 글을 쓸 때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이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그립다.

 

 

그리운 사람 많은 사진 하나 더

 

 

투본강에는 보트가 많았다.

나도 흥정을 하고 배에 탔다.

소원을 빌며 강에 띄우는 양초도 샀다.

 

미래를 향해 가지는

불안한 마음을 상대로 만들어낸 서비스.

그래도 뭐 사람들 마음이 편해진다면..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다만.. 강에 버려지는 이 쓰레기 어쩔...

이제 사라져야할 문화 같다.

 

관광 가서도 이런 환경 오염 상품은 비추!

차라리 그 많은 베트남의 사찰에서 시주하고

소원을 비는 걸 추천한다.

 

 

거리 산책은 역시 길거리 음식.

납작 만두.

이건 뭐 맛이 없을 수 없다.

 

베트남 길거리 음식은 대체로 합격점.

 

 

크레뻬 같은 거.

그냥 먹을만 했다. 

 

이 동네 길거리 먹거리는 거의 먹은 듯

 

 

아주 달달하다. ㅋ

우리 동네에도 있으면

기분 나쁠 때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먹었을 듯

 

 

갑자기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그냥 들이부었다.

 

 

처마가 있는 곳마다 들러서

비를 비하고 피하다 본

어떤 가게의 냉장고.

특이한 코카콜라.

 

이것들 다 마셔봤는데, 

그냥 호기심 해소용. 딱 그수준.

 

 

겨우 호텔에 왔다.

2007년 2월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붉은악마 경인지부와 부천붉은악마의 부천FC 창단 지지 성명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붉은악마 경인지부에 부천팬만 있는 것도 아니고, 부천붉은악마에도 타 팀 팬이 있기 때문에 그냥 받아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부천FC 보다 앞서서 팬들이 창단한 서울유나이티드의 경우 붉은악마 서울지부의 지지 성명서를 받은 것이 큰 힘이 된 전례가 있었다. 아무래도 붉은악마의 인지도가 기업 후원이나 지역 내 관심을 높이는 데에는 득이 된다. 창단 계획을 시청 같은 곳에서 말하면서 "붉은악마도 지지합니다"라는 말 한 마디가 힘이 될 때가 있다.

 

다행히 TF멤버 중 OH는 붉은악마 의장을 2년 연속 역임했기 때문에 붉은악마와 커뮤니케이션에는 강점이 있었다.

 

다른 한 가지 현안은, 지금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그때는 정말 심각하게 논의했던 것인데, "일부 부천팬들이 2007년 시즌 개막전 제주유나이티드의 경기를 찾아가서 연고이전 반대 시위를 한다"는 것이었다. 

 

TF와 부천팬들은 "2006년을 끝으로 제주 유니아티드 경기장을 방문하여 진행하는 공식 시위는 없다"고 발표한 바 있었다. 연고이전이 모든 축구팬에게 현안은 아니기 때문에 관람을 방해하는 문제도 있었다. 거부감을 주는 시위는 오히려 창단 작업에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피끓는 일부 부천팬들은 2007년에도 시위를 하겠다고 밝혔고, 헤르메스 내 3개 소모임이 동참하기로 했다. OH는 이들에게 "만일 제주 팬과 충돌이 나면 창단 작업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 주의해달라"는 뜻을 전했다. 3개 소모임 중에 OH가 소속한 모임이 있기도 했다. 

 

TF에도 둘째 가라면 서러운 열혈 부천팬과 제주유나이티드 혐오파가 있었지만, 창단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마치 직장인들처럼 현실에 순응하는 태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주 경기에서 과격한 시위는 자제해달라"는 것 자체가 이미 많이 변한 것이다. 

 

서울유나이티드의 당시 사무국장은 JANG님이었는데, TF와 서유가 협력관계를 맺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우리로서는 서유의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좋은 제안이었다. 다만 TF는 서포터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다른 팀과 협력이라는 것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논의가 되기 시작했다. 고마은 제안이었다.

 

 

부천FC 창단 초기에 "내가 팀을 창단해주겠다"며 찾아오는 사업자나 축구인이 가끔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축구인 K. 그는 과거에 꽤 유명한 축구인이었다. 경기인 출신은 아니었고 방송에서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축구인 정도라고만 해둔다.

우리가 보기에는 연예인급의 인사였기 때문에 첫 만남부터 약간 현실성이 없게 느껴졌다. 그간 한 두 번의 약속 위반으로 상처를 입은 탓에 우리 자세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쭈뼜대는 우리를 보면서 그는 "어떻게 해야 나의 진심을 믿겠느냐. 내가 속을 꺼내 보여줄 수도 없고"라는 말로 자신의 진정성을 보이려 했다. 

그는 두세 번의 미팅을 통해 '창단준비위 사무국장'이라는 직함을 '우리끼리' 부여한 상태였고, 몇몇 부천 서포터는 '실무자'로 참여했다. 

2007년 2월 업무 기록에 따르면 K는 우리에게 몇 가지 지시를 한다. "시의원들이 창단 시민모임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선거법 위반은 아닌 지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창단 작업에 시의원의 협조는 매우 중요하다. 지자체에서 새로운 사업을 위한 가이드 라인 등은 주로 '조례'라는 형태로 시의회에서 결정되는데, 예산 지원을 비롯해 각종 협업이 이 조례를 근거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당시 실무자들은 제법 긴 보고를 했지만, 결론은 "시의원 각자가 선관위에 문의를 해서 답변을 받아두는 게 안전하다"였다. 지금봐도 가장 안전한 결론이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창단위에 참여하겠다는 시의원은 전혀 없었다는 점. ㅎㅎ

 

K씨와 실무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멀리 송파구 쪽에서 회의를 하곤했다. K의 편의에 맞춰준 것이다. 부천과 부천 인근의 실무자들이 송파로 가는 길은 참 멀었다. 그래도 매번 회의 때마다 뭔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힘이 났다. 새 축구 시즌이 다가오는 시점에 우리 팀이 없다는 것은 참 적응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K는 "내년에는 시즌에 꼭 참여합시다" 같은 희망을 주는 말을 많이 했다. 제법 유명한 사람이 하는 말이기 때문에 진짜 그렇게 될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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