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0일 부천종합운동장. 1년 이상 준비한 구단 창단현황을 팬에게 설명하는 '창단설명회'를 개최했다. 축구기자들과 지역기자들에게도 연락을 했다. 지역 인사들도 대거 초대했다.

행사 당일. 행사장은 팬들로 가득찼다. 부천SK의 연고이전 이후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팬, 특히 서포터는 흩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위기였다.

창단설명회는 희망으로 가득차있었다. 준비하는 사람도 팬도 모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창단TF는 빨리 설명을 하고, 팬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창단설명회에 모인 사람들. 앞에 명패가 있는 분들은 창단시민모임 간부들이다. 창단 작업 중 이렇게 지역인사들을 동참토록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후 이분들이 음으로 양으로 많은 협조를 해주었다.



우측 붉은 옷을 입고 인사하고 앉는 분이 한선재 부천시의원이다. 창단 때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관심과 지원을 그치지 않는 지역 정치인이다.

왼쪽은 변채옥 당시 시의원. 왼쪽은 정해춘 당시 이사. 정해춘님은 이후 단장을 거쳐 현재는 구단의 대표이사이고, 구단의 큰 형님이다. 왼편은 김동수 당시 이사. 이사 중 대표직을 수행하여 시 연고지 협약 등을 진행했다.



PT자료를 바탕으로 팬과 시민에게 진행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많은 팬들이 "Bucheon is Back"이라고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 온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 말이다.



유니폼 등 용품후원을 하게된 KIKA의 김준형 대표는 "부천FC만의 유니폼을 만들기 위해 부천만의 디자인이 반영된 유니폼을 제작하겠다"고 소개하여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창단설명회 후 창단시민모임 간부들이 따로 모였다. 이들은 서로 인사를 하고, 선임된 코칭스탭의 인사를 받았다. 또 향후 일정을 공유했고, 협조를 약속했다.

창단설명회를 성공적으로 끝낸 창단TF는 이제 부천팬뿐 아니라 한국 축구계 전체에 대한 창단발표를 할 일이 남았다. 이를 위한 창단기자회견 준비를 시작했다.





연고지 협약, 최소한의 후원사 확보 등이 진행되면서 감독 선임과 선수단 구성도 이뤄지기 시작했다.

팀을 만들어 가는 주체가 팬 집단이었기 때문에 경기인 출신 감독을 선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됐다. 하지만 지역의 축구인과 생활체육인들의 소개로 부명정보고등학교 곽창규 감독을 알게되었고 선임되었다.

곽창규 감독에 대한 느낌과 공적은 아래 포스팅에 비료적 자세히 설명을 했다. 코치로는 박영수 코치가 선임됐다. 부천FC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 박영수 코치에 대해서도 이 블로그에서 조만간 이야기를 할 기회가 올 것 같다.

링크 : 부천FC 1995 초대감독 곽창규

그사이 단 한명 뽑기로 한 직원도 뽑았다. 당시 뽑힌 직원은 호주 유학 중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을 하고는, 급기야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유학은 중단됐다.

문제는 선수였다. 당시 부천FC의 수당 수준은 3부리그에서 중간 정도였다. 모집 공고를 내면 많은 선수들이 몰리겠지만, 이중에 좋은 자원을 고르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다.

밤 새워 만든 창단설명회 자료. 세상에 떠들고 싶어서 입이 간질간질하던 내용들이 잔뜩 담겨있다

당시 구단TF의 이희천 사무국장은 TNT라는 축구팀과 연결이 되어서 많은 검증된 선수들을 수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TNT는 아마추어팀이지만,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스태프도 있었다. 창단 후 스태프들은 경기 운영에도 큰 역할을 했다.

곽창규 감독도 선수를 몇 데리고 왔다. TNT의 대표 김태륭 선수는 인맥을 동원해 TNT 소속이 아닌 다른 선수들도 여럿 데리고 왔다(TNT는 주축 선수들이 부천FC에 속한 이후에도 계속 존속됐고, 현재도 운영 중이다). 일부 다른 선수들도 선수들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선수들도 대략 구성이 됐다. 이제 설레는 발표의 순간이 남았다. 2007년 10월 10일. 세상을 향해 부천FC가 곧 출범한다는 것을 알릴 날짜였다.

장소는 부천종합운동장. 발표자료가 만들어졌다.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2007년 후반. 부천FC 창단 작업이 탄력을 받고, 스폰서도 확보되는 가운데 다음커뮤니케이션과의 마케팅 협약도 체결되었다. 당시에는 현금이 오가는 협약은 아니었지만 DAUM이라는 국내 최고의 플랫폼을 통해 부천FC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는 의미가 있었다.

특히 DAUM은 로고가 예쁘기 때문에 유니폼 디자인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유니폼 디자인 과정에서 구단의 디자인 부문 자원봉사자들은 DAUM 로고를 유니폼 메인에 넣고 싶어했다. 후원금액으로 치면 당연히 SK에너지가 유니폼 메인에 가야했다.

위 사진은 부천FC 서포터즈클럽 헤르메스(bucheonfc.net) 게시판의 게시물 일부 캡쳐입니다.
후원사인 석수앤퓨리스에 감사하며 "우리 사무실에서는 석수만 마신다"는 내용을 게시했습니다.
실제 대부분의 서포터들은 석수만 마시며, 석수를 팔지 않은 마트에 석수 제품을 판매할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구단 창단TF는 SK에너지 측에 유니폼 메인 자리를 다른 회사에 양보해 줄 것을 요구했다. SK에너지 측은 이에 흔쾌하게 응했다. 유니폼에서 로고를 아예 빼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TF는 SK에너지 로고를 유니폼 어깨에 넣기로 결정했다.

이후 후원사는 예손병원으로 결정이 됐다. 매 경기 때마다 구급차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의료후원사는 응급차와 의료 할인 등을 제공하게 된다. 매우 중요한 후원사인 셈이다.

예손병원은 2008년 시즌 시작과 함께 했는데, 협약식은 5월에 했군요.
당시 배기선 단장, 오중권 2대 사무국장이 보입니다.

생수 후원사로는 진로계열 석수앤퓨리스가 결정됐다. 석수앤퓨리스는 2012년 현재까지도 후원을 하고 있는 고마운 후원사이다. 현재 구단은 석수앤퓨리스에 대해 한 단계 격상한 홍보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축구단은 연습과 시합 때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

연고지 협약, 스폰서 확보 등과 동시에 진행된 것이 코칭스탭과 선수단 구성이다. 초대 감독으로는 당시 부명정보고등학교 축구단 감독이었던 곽창규 감독이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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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부천FC 1995 창단 작업 당시 키카(KIKA)는 부천FC 후원에 적극적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있는 회사였고 업계에서의 평판도 좋았다. 우선 키카는 부천FC 유니폼 디자인을 구단에 맡겼다. K리그라면 모를까, K3 구단이 직접 유니폼을 디자인하고, 이를 업체가 생산해 주는 구도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카는 이를 받아들였다. 오히려 권장했다.

이 작업에는 부천FC의 당시 디자인 팀장 김준형님과 서유유나이티드의 당시 장부다 이사님이 동참했고, 장부다님은 유니폼 바탕에 부천과 구단을 상징하는 '복숭아', '1995' 문양을 희미하게 담을 것을 제안하였고, 구단은 좋은 아이디어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김준형 팀장도 열정을 보태서 유니폼이 완성됐다.

나중 이야기지만, 키카는 법인 자격으로 부천FC의 주식공모에도 참여했다. 비록 구단 운영에 영향을 줄 정도의 투자는 아니지만, 부천FC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참여였다. 키카는 부천FC가 3부리그이지만, 팬이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질적인 마케팅 효과도 기대한 것이다.



유니폼 가슴은 DAUM이 차지했다. 사실 가장 큰 비용을 제공한 제1 스폰서는 SK에너지였다. 하지만 SK에너지는 유니폼 메인 스폰 자리를 고집하지 않았다. 부천FC가 원한다면 유니폼에 로고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었다. 구단은 SK에너지의 로고를 팔뚝에 달았다.



유니폼 그림이다. 당시에는 김태륭 선수가 부천FC의 최고 스타였기 때문에 유니폼 디자인이나 촬영은 김태륭 선수 전담이었다. 아, 하지만 저 위에 실착 사진은 한석진 선수다.

팬들의 반응도 좋았다. 당시 서포터 대표 김도영님 등도 감회를 게시판에 표현하곤 했다. 아마 모든 부천FC 팬들이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일을 추진하던 창단 TF는 창단과 관련된 좋은 소식이 생길 때마다 입이 근질 거렸다. 빨리 모두에게 말하고 함께 기뻐하고 싶었다. 계약 등의 문제로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키카 이야기를 하다가 디자인 이야기까지 하는 바람에 시간 순서가 좀 어그러졌는데, 다른 후원사들과 거의 동시에 섭외된 또 다른 후원사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이었다. 역시 부천FC 최고의 파트너쉽이 탄생했다.


부천FC 1995 창단 작업을 진행하면서 막판에 창단TF에게 부담이 된 것은 "팬들이 내셔널리그(2부)도 아닌 3부리그 팀을 받아들일까" 하는 것이었다. 팀이 없다보니 3부리그 팀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팀이 만들어 지면 그 초라함에 다시 좌절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이제 원정을 가도 상대는 서포터가 없을 것이고, 월드컵 경기장에서의 경기는 있을 수 없었다. 경기 중에 트랙에는 주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을 수 있고, 천연잔디가 아닌 인조잔디 구장에서 경기를 할 수도 있고, 관중석조차 없을 수 있다.

이 때문에 K리그를 호령하던 부천FC의 서포터들이 경기장에 와서 "고작 이딴 구단을 만드었다말이냐"며 실망할까 걱정이었다. 더 팀 창단을 진행하기 전에 K3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알리는 글을 정리해서 팬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 2007년 6월 15일에 부천서포터 헤르메스 게시판에 게시된 글이다.

시민모임에서 팬과 함께 팀을 만들기 시작한지도 꽤 되었군요. 그간 상처도 많이 받고 한계 속에서 좌절도 많이 했습니다. 그 과정은 여러분께서 지켜보신 바와 같습니다.

아쉽게도 현재 시민모임은 K3리그를 목표로 작업을 하고있습니다. N리그를 염두에 뒀지만 최소 15억원이라는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K3리그는 1억원이면 일단 배를 띄울 수는 있어서 목표를 낮추었는데, 문제는 함께 고생한 서포터 등 팬들의 상실감입니다. 우리가 명색이 1부리그 팀의 서포터였는데, 우리가 무슨 죄를 졌다고 3부리그 팀을 응원해야하는지 가슴이 아플 수도 있습니다.

아직 K3팀도 준비되지 않았지만, 막상 리그를 시작하면 그 초라함에 정이 뚝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

정말 이런 K3리그팀을 만드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외부적인 요인으로 1부나 2부리그 팀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려야 할까요?

한번 솔직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누구 눈치도 보지말고 개인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그 의견을 존중해 줍시다. 의견이 다른다고 적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일단 현재 상황은...

- 올해 안에 K3 가입에 실패하면 내년에는 자리가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가입대기 중인 팀이 10곳이라고 합니다. 내년이후에는 신설될 K4에 들어가야 합니다.

- 사실 지금 K1이나 K2급 팀을 만들어도 자리가 없어서 K3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어쩌면 유일한 방법은 연고지 이전해서 팀을 끌어오는 겁니다. --; 아직 지역 연고의식이 희박하고 서포터가 없는 N리그 팀을 모시고 오는 것도 방법일 수 있으나....

- K3팀이라도, 동네 아저씨가 뛰는 팀이라도 만들어진다면 우리팀이다라는 의식이 있다면 의외로 작업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 조만간 과거 부천팀 선수들과 접촉할 예정이며, 최소 2~3명 정도는 과거 부천 소속 선수들로 엔트리를 채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정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K3든, K4든 우리팀이면 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이 맞는지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두렵습니다. 

서유도 K3팀이 만들어지자 소수 서포터가 "우리가 K3 가려고 그 고생을 했느냐"는 반응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만들고자 하는 팀은 우리 모두의 팀이며, 만드는 과정에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팀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자는 것입니다.

다른 도시의 예에서 보듯 지역 축구팬의 중심인 서포터가 갈라지면 팀을 만드는 작업은 최소 3년 이상 미뤄질 정도의 문제가 생깁니다. 안양의 한 친구는 "부천 서포터는 절대 갈라지지 말라. 안양은 분열되어 힘들다"는 말을 몇번이나 강조했습니다. 

신나게 한번 떠들어 봅시다. 참고로 K3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사이트의 주소입니다.

http://justfootball.co.kr/k3/k3.html (지금은 이 사이트가 사라졌습니다)

이 게시글에 대해 부천서포터의 반응은 역시 최고의 서포터다웠다. 최고의 축구가 아니라 우리의 축구를 원한다는 점,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운영하는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우리의 팀이 하는 축구를 원한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래가 부천서포터의 '위대한 반응'이다.

 

 
덕분에 창단 TF는 마음의 짐을 덜었다. 이제 K3이건 뭐건 최선을 다해 만들면 되는 상황이 되었다.

다시 2007년 10월 경으로 돌아간다. 스포츠토토와 SK에너지가 스폰서로 확정이 됐고, 용품 후원사를 정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됐다. 다행히 용품 후원사는 어렵지 않게 정해졌다. 업체는 키카(KIKA)였다.


 


부천FC 1995 창단 작업을 자료와 기록으로 정리하며 지금까지 대행사 선정과정에서의 좌절 내지는 아픔과 지자체와의 엇박자 등을 다루었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정리를 하다보니 한참 진도를 나가다가 "앗! 그 이야기를 빠뜨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도 2007년 11월 1일 부천시와의 연고지 협약식까지 진도가 나가고 보니 이전에 있었던 이야기 중 빠뜨린 것이 좀 있다.

여기서 잠시 시계를 2007년 2월로 돌려서 몇 가지 이야기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 시점에는 축구단 창단을 위한 시민모임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가는 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에는 시의 각종 단체를 하나로 엮어내는 시점이었고, 그것이 의외로 매우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당시, 2007년 2월 27일 부천서포터 헤르메스 게시판에 게시된 글을 소개한다.



잘들 지내십니까..

현재 창단 작업은 1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약간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입니다. 물론 이번에도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많은 분들이 힘을 합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부천시에 대한 대표성을 확보하는 시민모임과 후원회 조직도 마무리 단계에 있고, 시의 협조와 스폰서 영입이 남았습니다. 이 문제만 해결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구단법인 설립, 그리고 이어지는 선수영입 소식을 들으며 즐거운 논쟁을 벌일 수 있겠죠. 뭐 저런 애를 뽑았냐, 우리 돈 좀 더 없냐.. 등등 ^^

잘 아시다시피 스폰서 영입문제는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 서포터처럼 회원 중에 부자가 많으면 십시일반으로 걷어서 요코하마FC같은 팀을 후딱 만들겠지만, 저도 그렇고 우리 서포터에는 그런 재력을 가진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스폰서 영입은 팀 창단 작업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시민모임 구축도 어쩌면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습니다. 부천이라는 지역에도 축구와 관련해서 수많은 이해관계가 있고, 서로 절대 어울리지 않는 분들이 존재하더군요. 우리 서포터도 크게는 둘로 찢어 졌듯, 부천 축구판도 그랬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지역에 그렇게 융화될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것인지 씁쓸했습니다. 

현재는 서포터도 모두 힘을 합치고 있고, 시민모임에도 대부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이런 문제들을 1년 동안 풀고 있었다고 하면 마음은 좀 편할 것입니다.

특히 부천 축구계 섭외 과정에서 최근 창단 작업에 참여해 시민모임의 위원장이 되신 곽성호님과 회원 중 박기택, 이광열님 등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제 현안은 스폰서 영입인데요, 다행스럽게도 한두 군데에서 구두로 '어디 한번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현재 시민모임은 이들 스폰서 후보들에게 제공할 제안서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이 작업에는 서포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시민모임 게시판의 공지를 참고해 주시고 많은 아이디어를 주시기 바랍니다. 팀은 특정한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팀이 창단되기를 원했지만 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K3팀 창단을 추진하는 몇몇 서포터들은 월 수입의 10~20%를 일괄적으로 내놓기도 합니다. 모든 생업을 포기하고 그쪽으로 뛰어든 사람도 몇 있습니다. 우리 중에 그만한 열정과 희생을 감수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목숨을 걸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누구도 목숨을 걸지 않았고, 가슴 아파 죽을 듯 이야기 하지만, 누구도 피를 토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조금 더 힘을 내봅시다. 일단은 시민모임 게시판 활성화가 중요합니다. 스폰서 후보들이 그 홈페이지를 소개받고 하나 둘 들어와서 볼 것입니다. 소비자가 많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스폰서 작업이 가시화될 경우 대한 우호적인 입장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브라질 서포터들은 수십km를 가서라도 자신의 팀을 후원하는 석유회사의 기름을 넣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종합운동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한번도 가보지도 않았던 부천과 인연을 맺고, 인근지역에 이사오는 등 부천이라는 곳에 정을 쏟으며 지낸지 이제 13년이 됐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창단작업이 수포로 돌아가면, 그냥 지켜보는 사람이 될 생각입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진행 중입니다. 시민모임 공지에도 썼지만, 창단을 원하는 만큼 게시판에 의견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PS/ 부산원정에서 사고가 나면 스폰서 영입 등이 매우 어려워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잘 통제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해들었습니다. 우리들의 열정과 바람을 보여주면서도 사고없는 원정을 기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휴일 내내 창단관련 회의와 문서 작업을 할 것 같습니다. 잘들 다녀오시길... 

글 내용 중 "피를 토하지 않았습니다" 등 운운한 것은 당시 팬들의 참여가 다소 부족했다고 느껴서 실망한 것을 에둘러 말한 것이었다. 많은 팬들이 "부천SK 연고지 이전 이후 피눈물을 흘렸다"고 말했지만, 그런 살벌한 표현에 걸맞는참여를 몸소 보여준 삶은 소수에 불과했다. 

물론 먹고사는 문제, 학업문제가 있었겠으나 하루 5분이면 되는 게시판 글쓰기 등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매번 보이는 이름들 뿐이었다. 그래도 부천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였지 다른 지역이었다면 참여도는 더욱 적었을 것이다. 또 이후 창단 과정에서 설명회, 창단식 등에 보여준 팬의 열기는 K리그 이상이었다. 역시 부천서포터는 '썩어도 준치'였다.  
 
창단 작업이 진행되면 K리그, 내셔널리그 팀이 아닌 K3로 가닥이 잡히면서 걱정거리가 생겼다. 과연 팬들이 K3를 받아들일까 하는 점 때문이었다. 


 

팀을 창단하고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 준비되고, 팀을 구성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면서 이제 현안인 부천시와의 연고지 협약을 위한 노력을 했다.

시 측은 연고지 협약 자체를 거부했다. "연고지 협약을 하기 위해서는 구단이 대표성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시민구단이 지역을 대표한다는 근거가 무엇인가", "연고지 협약 이후 팀이 운영되다가 운영자금이 바닥나면 시가 이를 보전해 주어야하는 것인가" 이렇게 두 가지가 주된 거부 이유였다.

첫번째 문제제기는 매우 절절하지만, 이미 부천시 축구협회를 비롯한 관내 많은 단체들이 참여를 하고 있고, 여야 정치인이 모두 참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답변이 비교적 간단했다.

문제는 두번째 문제제기였다. 이 때문에 시에 대한 제안서를 또 준비했다. 제안서에는 팀의 운영방안이 담겨 있었는데, 여기에 "구단은 시에 직접적인 금전적 요구를 하지 않겠다"라고 명시했다. 구단으로서는 엄청난 포기였다. 물론 "법적, 제도적 변화가 생길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아무튼 당분간은 시에게 예산을 요청할 기회를 가지기 힘들게 됐다. 그만큼 연고지 협약이 급했고, TF 차원에서는 시에서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아도 팀을 창단하고 운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나중에 구단은 시와 협약을 위해 구단이 "향후 5년 안에는 시에 재정적 요청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시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K3 등록 마감일은 다가왔다. 당시 경향신문 김세훈 기자가 이 사정을 알게됐다. 그리고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시 측에서는 구단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다. 축구팬들의 목소리도 전달이 됐다.

결국, 시는 연고지 협약을 하기로 결정했다. 행사일은 11월 1일로 잡혔다. 드디어 부천시민구단은 명실공히 부천시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가슴 벅찬 일이었다. 사실 협약이 되지 않아도 리그 참여에는 문제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 구단을 부천연고 구단으로 만들고 있었다. 팬 입장에서 연고지 협약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당시 <부천신문>은 협약식에 대해 이렇게 보도했다.

홍건표 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부천 FC창단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프로축구단의 필요성을 느끼고 갈망하고 있다, SK축구단이 부천을 떠날 때 사전협의가 없었다. 시장이 방관했다는 등 모든 비난을 받을 때 가슴이 아팠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 시장은 “현재 부천시 재정사정상 부천시민구단을 지원할 여력이 없음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송구스럽다”며 “지하철사업이 끝나는 시점인 5년 후부터 예산지원이 가능하다면 최대한 협조하겠다. 희망을 갖고 부천구단 발전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임동수 부천FC 의장은 “홍건표 시장의 부천시 축구발전에 대한 열정과 의지에 감사를 드린다”며 “부천시와 연고지계약을 체결한 만큼 더 열심히 하는 부천FC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주요협약 내용은

△ 부천시는  ‘부천FC'의 관중동원을 위해 거리현수막 게시, 지역 언론홍보 등을 적극 지원
△ 경기장 사용료는 부천시 체육시설운영조례에 정하는 금액(감면포함)으로 한다
△ ’부천FC'는 협약체결일로부터 5년 이내에 경영상 어려움이 있어도 부천시에 재정지원 요청을 하지 않는 조건이다.


 

기대가 컷다. 이번에 접근한 업체는 그래도 한국 스포츠마케팅 업체 중에는 베스트급에 속하는 곳이었고, 개인적인 친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 설립 때 우연찮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업체도 심사숙고 끝에 참여가 어렵다고 최종 통보를 했다. 결정을 알리는 과정이 너무나 젠틀해서 불만을 가질 수도 없었다. 다만 너무나 아쉬울 뿐이었다.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제 정말 직접 팬이 구단을 창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먼저 가진 것을 점검했다. 일단 시청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방해세력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지역사회는 표면적으로는 대부분 이름을 걸었다. 그러나 스킨십은 절대 부족한 상황이었다.

관내 정치인들은 관심은 있으나 적극성은 떨어졌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힘은 주었다. 배기선 당시 의원이 매우 적극적이었다. 스폰서는 스포츠토토가 확보됐다. 액수는 밝힐 수 없으나 대략 구단의 한달 운영비 수준이었다. 그리고 창단 TF 정해춘 대표가 내놓은 활동비가 있었다. 또 TF팀원이 갹출한 소정의 활동비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나아졌지만,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K3리그 등록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길어야 2,3개월이 남았다. 그때까지 가입비와 회비 3~4천만원. 대략적인 선수단 구성. 1년 운영비 등을 만들어 내야했다. 다행히 부천에는 한국 최고의 서포터 헤르메스가 있었다. 이들의 논의와 격려는 TF에게는 큰 힘이었다.

다시 배기선 의원 등이 힘을 냈다. 그 과정에서 SK에너지와 협의가 시작됐다. 후원이 구체적으로 이야기 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TF는 잠시 갈등에 빠졌다. 연고지 이전을 감행한 SK의 후원을 받는 것이 말이 되는가의 문제였다. 물론 팀이 없었던 근 2년을 생각하면 누구 돈이든 그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팬들 사이의 공감대가 중요했다.

헤르메스 대표자 모임에 의견 조회를 했다. 시위 때 SK는 부천에서의 팀 창단과 운영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목표였다며 받자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그렇다면 이제 액수가 문제였다. 얼마나 받아야 되는가. 일단 SK 쪽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않는 액수의 제안이 왔다. 받을 수 없었다.

액수를 정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워봤다.

"K3에 진입하여 3년 동안 생존하면 자체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다. 운영비의 30% 정도는 스스로 벌어야 한다."

결국 SK에게는 1년 운영비의 70%선을 3년 동안 후원하는 정도의 제안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TF에서 동의 후 헤르메스 대표자 모임에 알려서 몇 일 동안 의견을 받아서 과반의 동의를 구한 후, 우리 쪽 의견이 정리되어 SK로 전달이 됐다.

우리의 제안은 당초 SK에너지 측에서 제안한 액수의 거의 2배였다. 그러니 결과는 알 수 없었다. 여러 경로로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SK 측에 전달했다. 결국 우리 뜻대로 액수가 합의됐다. 이제 창단은 7부 능선을 넘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제 잘 하면 다시 부천구단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디 가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밤새 수많은 전화 통화가 오갔다.

이제 중요한 고비가 또 있었다. 시청의 연고지 협약이었다. 이것을 해야 K3리그에 참가가 가능했다. 하지만 당시 시청은 창단운동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이 아니었다. 산을 하나 겨우 넘었는데, 또 만만치 않은 산을 만난 것이다. 시와 협약을 위한 TF의 노력을 크게 2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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