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고이전17

붉은악마 홈페이지의 부천FC 창단 응원 칼럼 2007년 3월 15일 붉은악마 홈페이지에는 문답식의 칼럼이 게재 되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연고이전은 이제 없다고 믿는다. 2006년 3월 1일 한국프로축구 서포터연합과 부천 서포터는 붉은 악마 여러분들의 깊은 배려와 협조 속에 연고이전 반대 시위를 무사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위로 인해 붉은악마에게 상처가 된 부분에 있어서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절박한 저희들의 심정을 알리기에는 대한민국 언론들은 대기업 앞에 무기력 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축구를 사랑하시는 붉은 악마 여러분들과 프로축구 서포터스 여러분의 도움으로 막혀 있던 언론들의 벽을 허물면서 이제 겨우 시작의 활을 당기게 되었습니다. 붉은 악마 여러분이 지금 받고 있는 상처 절대 모른척.. 2020. 8. 25.
2006 올스타전에서의 연고이전 반대시위 2006년 국가대표 앙골라전에서의 시위 이후, 부천 축구팬의 자체적인 창단 작업이 진행되는 와중에 한번의 시위가 더 있었다. 2006년 8월 20일 인천 문학경기장. 2006 하우젠 K리그 올스타전 경기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각 구단의 서포터들은 연고이전 반대시위를 다시 한번 했다. 국가대표 경기 보다 사람 수는 적었지만, 강도는 쳐지지 않았다. 덕분에 경기장은 좀 어수선했다. 하지만, 중계진도 일부 인터넷 매체를 제외한 언론도 이 시위를 외면했다. 서포터들은 게속해서 옛 부천과 안양의 응원가를 불러댔다. 부천의 팬들은 참으로 오랜만에 자신들의 응원가를 목놓아 불러볼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안양팬은 말할 것도 없고.. 관련 시위는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이 시위 역시 한국 연고지이전사에 남을 시위였다. 당.. 2011. 11. 22.
2006년 삼일절 국가대표 앙골라 평가전에서의 연고이전 반대시위 이전글 : "反연고이전 시위를 국가대표 경기 때 하면 어떨까?" 이전글을 먼저 봐야 이 글이 이해될지 모르겠다. 부천SK의 연고지 이전을 비난하는 시위를 국가대표 경기 때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된 후, 일부 축구팬들은 자발적으로 활발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축구팬들이 준비를 하는지는 몰랐다. 그런데, 실제 경기장에서 시위를 하는 것을 보고 준비가 대단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위준비 사실이 알려지자, SK에서는 이를 심각하게 본 것 같다. 마침 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점에서 전국에 중계되는 경기에서 자사를 비판하는 시위가 열릴 예정이라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SK 측은 이 경기시간에 시청 앞에서 거리응원을 할 예정이었다. 자사가 개최한 대형 이벤트에.. 2011. 10. 27.
부천SK 연고지이전 후 준비한 성명서 및 축구팬에 대한 제안 부천SK의 제주 연고이전 발표(2006.2.2) 이후, 연고이전 반대 비대위·붉은악마·프로축구 서포터즈 연합 공동 기자회견(2.8), 당시 붉은악마 의장이었던 오중권씨와 헤르메스 정해춘 등의 부천시청 방문(2.10), 대한축구협회 및 SK본사 앞에서의 연고이전 반대 시위(2.14), 손학규 도지사·김문수 의원 만남(2.19) 등 팬들의 숨가쁜 행보는 비대위의 사전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부천서포터 창단 멤버였던 이희천님이 최종적으로 정리한 성명서와 행동강령을 지금까지도 하드에 저장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글을 적어내려갈 때의 배신감과 상실감이 사무치게 느껴진다. 지금은 물론 아래와 같은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상황이었고 지금도 아픔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지금 정리하.. 2011. 10. 15.
"反연고이전 시위를 국가대표 경기 때 하면 어떨까?" 2006년 2월 14일 대한축구협회 앞에서서 연고이전 반대 시위 이후 오프라인에서의 연고이전 반대 운동은 일단 사라졌다. 대부분의 팬들은 직장인 또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오프라인 활동이 꾸준하게 이어지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온라인에서의 활동은 꾸준하게 이어졌다. 특히 부천SK 연고지이전을 계기로 재결성된 프로축구 서포터즈 연합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전에도 프로축구 서포터즈 연합이 존재했지만, 각 단체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흐지부지 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연고이전'이라는 서포터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터지면서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축구 서포터즈 연합 카페의 게시판에서는 각종 시위 아이디어와 연고이전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대표는 전북현대 서포터즈클럽 대표였다. 당시에는 부산, 울산,.. 2011. 10. 12.
시위대, 축구협회에서 자연스럽게 부천SK 모기업으로 이동 2006년 부천SK의 연고지이전 상황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2003년말부터 2004년초에 있었던 부천SK 매각·시민구단 전환 해프닝을 다뤘다. 이전 이야기 : 부천 STORY 다시 2006년 부천SK의 연고지이전 상황으로 돌아와서... 2006년 2월 14일 대한축구협회 앞에서 연고이전 반대 시위를 했던 축구팬들은 종로 쪽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누가 인솔하지도 않았는데, 발길은 SK주식회사 본사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향하는 동안 팬들은 각 팀들의 응원가를 불렀다. SK를 비난하는 응원가를 급조해서 부르기도 했다. 그중에 "그따위로 축구하려면~"으로 시작하는 노래는 향후 연고이전 반대 시위의 주제가 역할을 했다. SK주식회사 본사 앞에 모인 팬들은 돌아가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부천SK의 팬들은 눈물을 .. 2011. 2. 1.
연고이전 이전에 구단매각, 시민구단 전환 논란 이전 이야기 : 부천 STORY 계속해서 2003년말부터 2004년 초까지 부천SK 팬을 불안하게 했던 구단 매각과 시민구단 관련 이야기이다. 당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팬들은 아예 '부천시민구단창단시민모임'를 만들어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2003년 12월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강OO 부천 단장은 12월 30일 부천시의 주도로 시민 구단을 창단할 경우 비용 부담 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구단이 보유하고 있는 100억원 상당의 자산인 K리그 가입권( 40억원)과 선수단을 무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시에 전달했다고 한다. 강 단장은 "중국의 다롄 스더와 매각 협상이 상당 부분 진행됐지만 그동안 구단을 성원해온 부천 시민들에게 연고지를 존속시키도록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이 순 리라고 판단해 시의 .. 2011. 2. 1.
부천SK, 연고이전 하기 전에도 그렇게 힘들게 하더니... 이전 이야기 : 부천 STORY 기자회견, 시위... 일단 간단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행동은 다 했다. 하지만 연고이전 이라는 것이 되돌릴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계속 비난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게다가 축구에서의 연고이전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크게 부각될 문제도 아니었다. 물론 연고이전 문제는 우리나라에 축구문화가 정착되고, 팬이 늘어날수록 점점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느 정도 뜻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문제로 여겨졌다. 언론의 관심도 큰 편은 아니었다. 부천서포터가 할 수 있는 것 또는 해야할 것은 이제 두 가지. 첫번째는 SK주식회사나 제주유나이티드를 비난하며 화풀이를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새로운 팀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하는 것이다. 2002시즌 개막전. 부천은.. 2011. 1. 31.
연고이전 반대 거리시위(2006.2.14) 이전 이야기 : 부천 STORY 연고이전반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기자회견(2006.2.8)에 이어서 축구 서포터즈 단체들은 거리시위에 나섰다. D데이는 2월 14일. 축구장이 아닌 곳에 서포터즈들이 많이 모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무리 연고이전이 축구를 망치는 행위라고 하지만, 14일 시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지는 미지수였다. 행사 당일 오후 서포터들은 신문로 대한축구협회 앞에서 모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 모인 서포터는 어느새 100명을 훌쩍 넘겼다. 가장 사람들이 많을 때는 약 300명에 달했다. 누구도 예상못한 숫자였다. 그날은 평일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팬도 상당수 있었다. 매우 추운 날이었다. 추운날 개인사를 제치고 시위를 나올 정도였기 때문에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한 사람들이.. 2011. 1. 28.
연고이전 반대 비대위 기자회견 - 붉은악마, 부천서포터 발표문 이전 이야기 : 부천 STORY 2006년 2월 8일 서울 대학로 붉은악마 쉼터에서의 연고이전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비대위 위원장의 성명에 이어서 당시 붉은악마 의장의 성명도 낭독이 됐다. 공교롭게도 당시 의장은 부천SK의 서포터였다. 붉은악마 쉼터에 모인 서포터들은 상당히 진지했다. 뜨거운 동지애마저 느껴졌다. 언제나 기세등등하고 강한 모습을 보이던 부천서포터들은 완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비대위의 준비는 비교적 치밀했다. 관련자료, 발표문, 회의실의 걸개까지.. 흡사 장례식장을 방불케 했다. 팬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온 걸개도 상당수였다. 붉은악마 의장의 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6년은 독일월드컵이 열리는 희망적인 한해 시작이었습니다. 붉은악마 역시 독일월드컵 원정을 준비하며, 어느 때 보다.. 2011. 1. 28.
연고이전 반대 비상대책위 기자회견(2006.2.8) 이전 이야기 : 부천 STORY 프로축구서포터즈연합과 붉은악마가 함께 구성한 연고이전 반대 비상대책위는 2006년 2월 8일 서울 대학로의 붉은악마 쉼터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각 프로축구단 서포터들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사무실은 연고이전을 감행한 부천SK의 모기업 SK주식회사와 이를 승인한 프로축구연맹을 비난하는 현수막이 가득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관련자들이 한 명씩 의견을 밝혔다. 먼저 비대위 의장이 발표문을 낭독했다. 이 발표문에는 당시 연고이전에 반대하던 프로축구팬의 의견이 녹아 있다. 그리고 도대체 축구에서 '연고'라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을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난 지금, SK비난 여부를 떠나 축구를 좋아한다면 꼭 한번 유심히 읽어볼만한 것 같다. 내용이 길.. 2011. 1. 28.
1부에서 2부로 강등되는 경기, 어떤 분위기일까? ④ 구단 간부에게 야유하는 서포터들 블로그 운영를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자기만족' 같습니다. 광고를 붙이긴 했지만 수익이라고 표현하기도 무안한 수준(아예 없는 수준)이고, 방문자 수도 그다지 많은 것도 아닙니다. 95년 일본여행 당시 접했던 도쿄 베르디와 오이타 트리니타의 경기를 정리하면서 "이런 노가다를 내가 왜 하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폴더 속 파일로 머물고 있는 자료를 가공하여 콘텐츠로 선보이는 것은 제 스스로에게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축구에서 '연고이전'의 부당성을 알리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일조하는 것과 '강등'이라는 한국 축구에 곧 다가올 생소한 시스템에 대한 예방주사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 경기가 끝나고 선수단이.. 2010.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