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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FC 19952011.12.22 21:16
[부천시는 부천FC를 다시 봐야 한다①]

경기도 부천시에는 부천FC 1995라는 3부리그, 즉 챌린저스리그 축구팀이 있습니다. 이 축구단은 부천시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부천FC 구단과 팬들은 연고지역 자치단체인 부천시에 구단에 대한 지원을 늘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요구는 정당한 것일까요? 아니면 축구팬들의 이기적인 부탁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부천FC는 불과 2억 5천만원의 1년 예산으로 운영되면서 연고지역인 부천시를 수억원의 가치만큼 홍보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겠네요. "지자체를 홍보해서 뭐하지?" 오.. 예리하면서 일리있는 질문입니다. 시청마다 지자체를 홍보하는 조직이 있습니다. 필요하니까 있는 것이겠죠.

수원, 부천, 성남, 고양, 포천, 의정부, 남양주, 양주, 이천, 시흥 … 서울 인근 도시입니다. 편견없이 도시 이름들을 쪽 읽어보시죠.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지명도가 있는 도시가 있고 지명도가 다소 떨어지는 도시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중 어떤 도시에 가고 싶을까요?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을까요? 혹시 축구단이 있는 도시와 없는 도시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2006년 2월 3일 부천SK가 제주로 떠나고 부천시는 미디어와 인터넷에서 급격히 존재감이 사라집니다. 부천시에 있는 중동, 상동 등 신도시들의 존재감도 같이 꺼져 갑니다. 연고이전 년도인 2005년 한해 동안 부천시는 부천SK라는 축구단 덕분에 1,843건에 가까운 기사에 도시 이름을 내밀었습니다.(DAUM 검색 기준 이하 동일, 아래 그림)

 


부천SK라는 팀이 사라지면서 부천시는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에서 노출 빈도가 확연히 줄어 들었습니다. 특히 축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수원, 성남 등 축구단이 있는 도시에 밀려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사실 부천이라는 도시는 홍보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도시입니다. 서울과 인천 사이에 끼어서 정체성도 모호합니다. 시계 안에는 중동과 상동이라는 만만치 않은 신도시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남시의 분당, 고양시의 일산에 비해 인지도가 많이 낮습니다. 이유는 당연합니다. 노출빈도가 적기 때문입니다.

맨체스터라는 도시가 산업이 엄청나고 볼 것이 많고, 관내 교육시설이 훌륭해서 유명한 것 아닙니다. 유명 축구단 3개가 쌍끌이로 맨체스터의 지명도를 한없이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라진 부천시의 미디어 노출은 부천FC 1995 덕분에 급격히 상승합니다. 먼저 실질적 창단 이듬해인 2008년에는 566건의 보도가 이뤄집니다. 2005년 부천SK의 1,843건에 비해서는 적습니다. 하지만 2005년 부천SK 보도 건수는 사상 최대였고. 2008년 부천FC 보도 건수는 비교적 적었던 해였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부천SK는 1년 예산이 100억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초대형 1부리그 구단이었고, 부천FC는 단돈(?) 2억 5천만원짜리 초미니 구단이라는 점입니다.

부천FC 보도 건수는 계속 많아 집니다. 2009년에는 811건으로 올라 섭니다. 부천SK의 1년 예산과 단순 비교할 경우, 부천FC는 거의 50억원에 육박하는 규모의 구단이 낼 수 있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부천시 입장에서 부천FC 1995는 보배와 같은 존재입니다. 2011년 부천시가 부천FC에 지원한 현금은 7천만원입니다. 나머지 2억에 가까운 현금은 부천FC 스스로 벌었습니다. 그러나 부천시를 홍보한 효과는 미디어의 기사 분야 하나만 두고봐도 엄청난 수준입니다.

이제 부천시는 작은 축구단 부천FC 하나 덕분에 축구판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분석은 앞으로 부천FC의 엄청난 효과를 설명하는 첫번째 포스팅에 불과 합니다.

부천시와 시민들은 부천FC를 유심히 지켜봐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더 지원을 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지원을 하고 지출이나 활용내역을 철저하게 감사를 해야합니다. 에너지가 끓고 있는 이 축구단에 지자체의 관심이 더해지면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 시간 날 때는 부천FC의 무지막지한 지자체 PPL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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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 story2011.10.15 07:34

부천SK의 제주 연고이전 발표(2006.2.2) 이후, 연고이전 반대 비대위·붉은악마·프로축구 서포터즈 연합 공동 기자회견(2.8), 당시 붉은악마 의장이었던 오중권씨와 헤르메스 정해춘 등의 부천시청 방문(2.10), 대한축구협회 및 SK본사 앞에서의 연고이전 반대 시위(2.14), 손학규 도지사·김문수 의원 만남(2.19) 등 팬들의 숨가쁜 행보는 비대위의 사전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부천서포터 창단 멤버였던 이희천님이 최종적으로 정리한 성명서와 행동강령을 지금까지도 하드에 저장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글을 적어내려갈 때의 배신감과 상실감이 사무치게 느껴진다.

지금은 물론 아래와 같은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상황이었고 지금도 아픔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지금 정리하는 것은 한국 축구사에서의 중요한 사건이고 팩트들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했는지 정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 명 서>

지난 2004년 2월 2일. 안양 축구 팬들은 안양시의 자랑이었던 안양LG 치타스 축구팀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2년 뒤인 2006년 2월 2일. 부천 시민들과 부천을 사랑하는 모든 축구 팬 그리고 부천 서포터스는 부천SK 라는 축구팀을 잃었습니다.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SK는 제주도로 연고지를 옮겼지만 10년간 피와 땀을 흘리며 팀을 사랑하고 가족같이 키워 온 부천시민들과 팬들은 SK에게 결국 소모품에 불과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SK는 관중수가 적고 한국 축구 발전의 대의를 위한 길이라는 형식적이고 엉뚱한 답안만 내 놓았을 뿐 그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고 대책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잊고 싶은 일이지만 철저히 무시당하고 버림받은 많은 팬들은 지금도 가슴앓이를 하고 있고 자신의 축구팀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하루하루 살아 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SK는 홈페이지에 단 몇 줄의 안내문만 적어 놓은 체 연고지 이전에 대한 항의도 한번 하지 못한 체 10년간 아끼고 사랑했던 팀을 빼앗겨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좀 더 낳은 미래를 위해 지난 일을 잊어 버리겠습니다. 다만 연고지 이전이라는 한국축구의 뿌리를 뽑는 최악의 사태가 다시는 없기를 바라며 또한 버림받은 연고지에 새로운 축구단의 탄생을 위해 대한민국의 4천3백만 붉은 악마와 축구팬이 하나가 되어 다음과 같이 하겠습니다.

폐단적인 운영으로 한국축구를 망치고 있는 SK와 그 행위를 방조 방만의 공동 책임을 물어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개혁도 같이 요구 하겠습니다. 진정한 한국 축구를 위한 길이 어떤 것인지 여러분들 모두가 같이 해 주시길 바랍니다.

                국내 최초 대형 유니폼 통천. 국내 최초 홍염 사용. 국내 최초 게이트기 사용.
                한국 최고의 서포터즈클럽 부천 헤르메스

[붉은 악마 & 프로축구 서포터스 연합]

1) 국내의 모든 축구경기에서 응원 시 SK 축구단(現 제주 유나이티드 FC)에 대한 항의 운동 시행
2) 2006 독일 월드컵 및 모든 해외 원정 시 전세계 축구팬을 상대로 SK의 만행 및 한국프로축구연맹의 문제점 전달 (플래카드 및 전단지 살포)
3) SK 광고에 무단 삽입된 초상권 신고
4) 향후 일어날 수 있는 연고지 이전 반대운동
5) 연고지 이전 지역의 프로축구팀 창단을 위해 대의적인 가맹비, 발전기금 면제
6) 연고지 이전 문제에 따른 프로축구연맹과 연고지 이전 구단들과의 100분 토론
7) 한국프로축구발전을 위한 연맹의 100년 대계 발표 촉구

[행동 강령]
① SK 제품 불매 운동
= SK 텔레콤
= SK 주유소
= 기타 SK 관련 상품
② 손해배상 청구
= SK 텔레콤 초상권 침해
= 부천시민과 축구팬을 농락, 사기죄 및 정신적 손해 배상 청구
= SK 기업광고 무시하기
③ 한국프로축구연맹
= 연고지 이전으로 인해 축구단을 잃은 지역의 신생구단 창단 시 리그 가입비, 축구발전기금 면제
= 한국프로축구 100년 대계 요구
= 연고지 이전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요구



계 획 서
(붉은악마 & 서포터스 연합 요청사항)

■목적: SK 및 프로축구연맹은 연고지 이전 사태에 대해서 너무나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떳떳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4천만 붉은 악마와 축구팬들에 대한 모독이며 내 고장의 내 팀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SK같은 비윤리적인 기업정신의 기업은 충분히 지탄 받아야 마땅하며 더 더욱이 아시아 최초의 프로축구리그인 K리그가 90년대 출범한 J-리그 보다도 비전이 없다는 것에 매우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SK같은 비윤리적인 기업의 행위로 인해 한국 축구가 퇴행하고 있으며 수많은 축구팬들은 축구장에서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진정 축구를 사랑하고 대한민국이 전세계에 우뚝 설수 있는 실력과 탄탄한 인프라를 갖추기 위한다면 지금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할 때 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그들이 한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묻고 연고지 이전을 감행한 값은 반드시 치러야 합니다.

[붉은 악마 & 프로축구 서포터스 연합 요청사항]
1) 국내의 모든 축구경기에서 응원 시 SK 축구단(現 제주 유나이티드 FC)에 대한 항의 운동 시행
2) 2006 독일 월드컵 및 모든 해외 원정 시 전세계 축구팬을 상대로 SK의 만행 및 한국프로축구연맹의 문제점 전달 (플래카드 및 전단지 살포)
3) SK 광고에 무단 삽입된 초상권 신고
4) 향후 일어날 수 있는 연고지 이전 반대운동
5) 연고지 이전 지역의 프로축구팀 창단을 위해 대의적인 가맹비, 발전기금 면제
6) 연고지 이전 문제에 따른 프로축구연맹과 연고지 이전 구단들과의 100분 토론
7) 한국프로축구발전을 위한 연맹의 100년 대계 발표 촉구

[붉은 악마 요청사항]
= 항의 운동에 대한 회원들의 문제점
(1) 장기적인 운동은 붉은 악마 회원 모두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
(2) 일반인들이 기업을 대상으로 한 불매운동의 반감을 살수 있다.
(3) 서포팅 보이콧은 전국민들의 붉은 악마가 갖고 있는 이미지와 틀리다.

= 대응책
서포팅은 정상적으로 진행하며, 항의 운동에 대한 특별한 혜택이 느껴지지 않고 반감이 없는 범위에서 진행.
붉은 악마 차원에서 축구팀을 잊어 버린 부천에 새로운 축구팀이 생기길 바라는 차원의 퍼포먼스와 SK와 방만한 정책의 연맹에 대한 항의를 병행.

= 퍼포먼스 (3월1일: 앙골라 전)
  (1)타이틀: Bucheon Never Die
    다시 경기장에서 부천의 팀이 생기길 바라며 그간의 서포팅 장비를 이용하여 그 내용을 관중들에게 알림.
    - 찢겨진 유니폼 통천 (SK, 연맹 X표시)
    - 리사이클 통천 (SK,연맹 X표시)
    - 항의용 및 그간 사용했던 게이트기 사용
    - Main 걸개: 붉은 악마와 프로축구 서포터스 연합의 SK 와 연맹 항의용 사용(붉은 악마 지원 요청)
           
  (2) 항의 방법
      - 경기 전: 부천의 대형 유니폼 통천 및 리사이클 통천, 게이트기 사용
      - 전반종료 후: 일반석에 3분 정도 유니폼 통천, 리사이클 통천 사용

= 국가대표 경기 시
(1) TV에 비쳐지는 모든 사항에 SK퇴진 통천 및 프로축구연맹 개혁 통천 사용
(2) 해외 원정 시 항의용 Main 걸개 사용
(3) 몇 회에 걸쳐 SK의 실상 및 프로축구 연맹 개혁 요구 전단지 살포

= 홈페이지 및 기타
(1) 축구관련 모든 머리말에 [SK퇴진], [연맹개혁] 사용
(2) SK 불매 운동
(3) 네이버 “세상을 우리가 바꾸자” 사이트 운영 협조 요청
(서명 및 전문지식란 : 서명은 “연고지 가맹비 감면, SK 축구행사 퇴진 등...)

[프로축구서포터연합 지원요청 사항]
= SK팀(제주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 시 서포팅 보이콧
 = “우리는 제주 유나이티드 FC(SK축구단)을 프로축구팀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Main 걸개 사용
 = 인터넷 서명운동 참여

[부천 서포터스 해결사항] - 부천 서포터즈가 해결해야할 사안이라는 의미
 = 부천시의 적극적인 축구단 유치 공식적 입장 표명
 = 부천시를 연고로 하는 축구단 창단의 선거 공약자 지원
 = 경기장 및 연습장, 숙소부지 등의 지원 해결
 = 부천출신 선수 창단기원 기사 및 지원금
 = 지명도 인사 후원회 결성

[언론 및 일반인들의 이해도에 대한 문제점]
 = 장기적 서포팅 보이콧은 일반회원에게 불만이 된다.[단기전으로 끝내야 함]
 = 운영진이 위협당할 수 있음.[가급적 부천 및 안양 창단위에서 협조하는 모습으로 진행해야 함.]
 = 통일성이 각 서포터스의 개성 무시로 인식될 수 있음.[지금 뭉치지 않으면 같은 결과를 우리 팀도 당할 수 있다는 쪽으로 서포터스 유도]
 = 월드컵 효과[월드컵으로 인해 SK 및 연맹이 더욱 움츠려 들며 대중들에게만 어필된다면 효과2배가 됨]

[비용 및 선행위]
= 항의 전단지
= 플래카드 (통일된 항의문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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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 story2011.10.14 00:30

부천SK의 제주 연고이전 발표(2006.2.2), 연고이전 반대 비대위·붉은악마·프로축구 서포터즈 연합 공동 기자회견(2.8), 당시 붉은악마 의장이었던 오중권씨와 헤르메스 정해춘 등의 부천시청 방문(2.10), 대한축구협회 및 SK본사 앞에서의 연고이전 반대 시위(2.14)가 이뤄지던 시점에서 부천서포터즈 헤르메스는 긴급하게 창단 준비위를 구성했다.

연고이전에 대한 비난 여론이 있을 때 창단 작업이 흐름을 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팬들의 중론이었다. 무엇보다 부천 서포터즈들은 지역에 축구단이 없다는 것에 히스테리컬한 반응은 보였고, 무엇이되었든 어서 만들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관련글 : 부천SK 연고 이전 후, 부천시청 찾아간 서포터즈

준비위는 2006년 2월 19일에는 당시 부천 소사구 국회의원이었던 김문수 의원을 찾아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준비위는 지역의 유력인사들과 만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고, 그 와중에 김문수 당시 의원과 만날 수 있게 됐다.

김문수 의원을 만나는 자리에서 당시 손학규 경기도 지사까지 만나게 됐다.

이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는 축구전문 매체 <플라마>의 보도로 대체한다. 사진 속 형, 동생들의 얼굴이 너무 짠하게 다가온다.

 

<손학규 경기도지사 깜짝 방문, “함께 고민해 봅시다.”>

부천 SK프로축구단이 제주 연고이전을 발표한지 약 보름 만인 19일(토) 오후 6시 전 부천SK프로축구단의 서포터즈 ‘헤르메스’와 김문수 국회의원 (부천 소사구)이 부천시 소사구에 위치한 김문수의원 사무실에서 만남의 시간을 갖고, SK프로축구단의 연고 이전 사안에 대한 의견들을 허심탄회하게 밝혔습니다.

이날 대화에서 김문수 의원은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며 “부천 서포터가 이 정도의 열의와 성의를 다한다면 안도와 줄 이유가 없다“는 말과 함께 부천 연고의 새로운 팀 창단을 위한 준비에 나선 부천 서포터의 어깨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특히 이 자리에는 같은 날 부천시 관내에서 학생들과 약 두 시간 가량의 연탄 배달 봉사 행사를 마친 손학규 경기도 지사가 함께 방문,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여 부천 서포터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가며 부천 서포터의 상처에 대한 위로와 더불어 새로운 구단 창단을 모색하기 시작한 부천 열의에 대한 격려도 잊지 않았습니다.

붉은악마의 오중권 의장과 부천의 서포터즈 클럽 ‘헤르메스’의 김도영 회장을 비롯한 7명의 부천 서포터와 손학규 경기도지사, 부천 소사구의 김문수 의원이 함께 자리한 이 자리에서 서포터측은 “시민구단 창단을 위해 부천시민, 축구팬, 부천시장과 관계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것"을 다짐했습니다. 
 
▲뜻 밖의 방문한 손학규 경기도지사, 진지한 태도로 경청-사태의 심각성 인지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참여한 가운데 김문수 의원 사무실에서 시작된 약 1시간 남짓의 대화에서 손학규 경기도 지사는 애초 ‘위로의 말이라도 전하러 왔다’는 다소 가벼운 목적을 밝힌 것과는 달리 서포터 측의 진지하고 적극적인 자세에 귀를 기울이며 “축구단이라는 것이 시 단위로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도 입장에서는 관심을 가지기가 어렵다. 이 일 또한 내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며 솔직한 대답을 깔아 놓고도 시종일관 서포터측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K2리그 창단이라도 된다면 좋겠다. 이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함께 고민해 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오중권 붉은악마 의장이 “부천 서포터는 붉은악마 태생의 근원지였다. 우리나라 서포터 문화의 뿌리임에 틀림이 없고, 부천 서포터들 중 대다수가 10년 가까이 이 팀에게 열과 성의를 다했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났다. 일방적으로 떠난 데에 대해 다시 한번 짚어보아야 할 일이다”라고 설명한 후 부천 서포터 측의 이희천 씨가 “안양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이다. 2년 사이에 경기도에서는 프로팀을 두 팀이나 잃었다. 여기에 성남 팀도 한 때 강원도로의 연고이전을 고려했던 때가 있었다.”며 침착하게 손 지사에 경기도를 연고로 한 팀들의 연고 이전 실태에 대한 의사를 전달했고, 이에 손학규 도지사는 K2리그 팀 창단에 대한 조건과, 이전 부천 SK시절 SK기업에서의 지원 수준 등을 세심하게 묻기도 하였습니다.

손 지사는 이어 “지난 안양팀 연고이전 당시에는 안양시 측에서 답답해 하기에 LG에다가 얘기를 한마디라도 해봤는데, 이번일은 공개도 잘 안되고 너무 갑자기 진행된 것이라서 뭐라 얘기도 못해보고, 사실 내막을 잘 알지도 못했다”며 진심어린 사과도 함께 전했습니다.

이러한 손 지사의 성의 있는 답변에 부천 서포터의 이희천 씨는 J리그의 우라와 레즈의 예를 들며 “우라와의 경우 연고지가 수도인 도쿄에 인접한 도시로 한국의 부천과 비슷하다. 이 팀은 순수한 시민들만의 힘으로 만들어져 현재는 관중이 가득 들어차고, 경기4-5시간 전부터는 지하철역에서도 응원가가 울려 퍼지는 등 J리그를 대표하는 팀으로 자리 잡았다. 만약 부천시에서 팀을 창단하게 된다면, 비록 하위리그에서 시작할지라도 시민들이 주체로 만들어져 창단한 후 성장하는 단계를 밟아 ‘기업 구단’이라는 국내 구단들의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덧붙여 이번 새롭게 창단 될 구단은 시민이 주체가 되어 창단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이후 “서포터 여러분들의 이러한 열의와 성의에 깊이 감명 받았고, 이런 분들이 있으니 이 일은 반드시 잘 해결 될 것”이라며 덕담을 건네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김문수 의원, “간절한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뤄진다" _"창단준비위원회 고문이라도 맡고 싶은 심정"

손 지사가 자리를 떠난 후 서포터들과의 대화를 재개한 김문수 의원 역시 서포터들의 열의 있고 진지한 태도에 이 사태에 대해 귀를 기울이기 시작,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며 점차 구체적인 방안 제시에 대해 의견을 내놓기 시작 했습니다.

"간절한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뤄집니다. 이것이 월드컵 붉은악마, 한국 서포터즈의 정신아닙니까? 저도 맨 주먹 맨 손으로 살아 왔습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두드리면 열릴 것입니다"

김문수 의원은, 부천 서포터 측이 부천에 프로팀 혹은 실업팀 등 부천을 연고로 한 클럽 팀이 생길 경우에 대한 효과와 의미 등을 다방면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SK축구단의 연고이전 이유로 밝힌‘관중이 부족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지난 2001년 당시 최다 관중 기록을 세운 점, 그리고 애초 많았던 관중을 SK측이 상습적인 해체발언 등 ‘관중 몰아내기’행태를 보이며 스스로 쫓아냈다는 점을 꼬집는 등 서포터즈들의 진지한 의견을 들으며, 직접 홍건표 부천 시장에게 휴대폰으로 연락을 시도하는 등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절실히 느끼고,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스스로 보여주시기도 하였습니다.

김문수 의원이 시도한 첫 통화는 홍건표 부천시장이 ‘개그 콘서트’를 관람하고 있는 관계로 의사 전달에 실패했습니다.

통화 실패 후 김 의원은 서포터와의 대화를 이어가며 “K2리그 팀 창단의 경우 조건이 어떻게 되느냐, 과연 K2팀을 창단하더라도 부천SK 시절 만큼 시민들의 체육문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 할 수 있겠느냐”는 등의 적극적인 질문을 던졌고, “만약 팀이 만들어 진다면 기업을 좀 잡아야 할 텐데 어떤 기업이 좋을 것인가”에 대한, 한층 더 발전된 수준의 고민 또한 그 자리에서 함께 했습니다. 
 
▲김문수 의원, 부천 시장에 “서포터즈 사무실 사용기간 등 애로사항" 직접 전화로 전달

특히 김문수 의원과의 대화 도중 부천 서포터측이 ‘창단 작업을 위해서는 함께 모여 일을 추진할 만한 장소가 필요한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부천 종합운동장 내 11평짜리 서포터 사무실이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이 사무실도 오는 2월 25일까지 부천시 시설관리공단으로부터 현재 서포터 사무실을 비워달라고 요청 받았다.’며 창단 작업에 있어 최소한의 여건조차 갖추기 힘든 현 상황을 호소했고, 이에 김 의원은 부천의 홍건표 시장과 통화해 부천 서포터측의 힘든 사정을 적극 전달했습니다.

또 통화 과정에서 김 의원은 홍 시장에게 ‘이 일(부천 팀의 연고이전 사태)이 알아보니 정말 큰일은 큰일이다. 다음에 만나 자세한 이야기 좀 하자’며 부천 시장에게 이번 사태에 대한 심각성을 직접 알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김문수 의원의 적극적인 태도에 서포터들은 오랜만에 환한 미소와 함께, 새로운 부천 연고 팀 창단에 대한 희망을 되찾았습니다.

끝으로 김 의원은 "이 일에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은 최선을 다해 돕고 싶다. 시 의원이나 시장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 등은 어렵지 않다. 창단 준비위원회 고문을 해 달라면 고문도 맡아주겠다”며 적극적인 동참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부천 서포터“천군 만마 얻은 기분, 기대 이상의 소득이었다.”

손학규 도지사, 김문수 의원과의 약 3시간가량에 걸친 면담을 마친 부천 서포터측은 ‘기대 이상의 소득이었다.’,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기분이다. 이제 숨통이 좀 트였다.’는 등 이번 면담에 대한 만족을 표했습니다

...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이 자리에서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잠시나마 팬들이 희망을 가지게 됐다는 점과 이 자리에서 퇴거 압력에 직면해 있던 부천종합운동장 내 부천서포터 창고겸 사무실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점이다.

공간 문제가 해결된 것은 매우 중요했다. 준비위가 이 공간을 바탕으로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와 전통의 헤르메스 응원도구도 보존이 될 수 있었다.

이후 김문수, 손학규 두 명사가 구단 창단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어쩌면 준비위 쪽에서 보다 구체성있는 대안을 들고 후속 미팅 등을 진행해야 했지만, 두 명사도 바빴고, 준비위도 일단 울분을 털어내기 위한 행동에 더 몰입했던 것 같다. 

김문수 의원의 경우 이후 준비위 및 이후 구단의 고문으로 이름을 걸도록 해주는 방식으로 힘을 보탰다.

여기까지 진행된 이후 3월 1일 앙골라 전에서의 연고이전 반대 시위가 준비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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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 story2011.10.13 00:35

지난 이야기 : "反연고이전 시위를 국가대표 경기 때 하면 어떨까?"

지난 이야기에 이어서 앙골라전 상황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시기적으로 부천FC 서포터즈가 각계 인사를 만나 의견을 교환한 이야기를 먼저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다. 시간적으로 보면 2월 14일 진행된 대한축구협회 및 SK본사 앞 시위 보다 앞선다.

2006년 2월 10일. SK구단 연고이전의 충격이 진동하던 시점이었다. 부천서포터 대표단은 당시 홍건표 부천시장을 면담할 수 있었다. 면담의 상황은 <부천타임즈>의 2009년 보도로 대체한다.

"3년 전, 지난 2006년 2월 3일 부천을 연고지로 한 sk축구단이 갑작스럽게  제주도로 연고지를 이전하자 붉은악마와 부천 축구 서포터즈 '부천 헤르메스' 회원 등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2006년 2월 10일 오전 10시 홍건표 시장과 면담을 갖고 시민구단 창단을 도와달라고 읍소했다.

이 자리에서 서포터즈 신동민 씨는  홍건표 시장에게 "시민축구단 창단과 운영은 현재 15억 원 정도가 예상되는 만큼 부천시에서 최소 2억원 정도 지원해 주면 나머지는 기업체 등의 후원을 받아 창단하겠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홍건표 시장은 "현재 지하철 건설공사 등으로 인한 시의 재정여건이 악화일로에 있을 뿐 아니라 노인복지 등에도 증액이 어려운 상황에서  시민축구단 운영비를 부담해야 하는 일은 현재로선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고 난색을 표명했다."

기사에서 설명되지 않은 것은 앞으로 시간을 두고 더 이야기를 하자는 대회가 있었다는 점인데, 물론 그다지 부천 축구팬 입장에서는 희망적인 분위기는 아니었고, 어쩌면 수사에 가까웠다.

부천서포터의 창단 계획도 설익은 것이었다. 하긴 SK구단의 연고이전 발표 후 불과 약 일주일만이었으니, 실질적 창단 계획은 무리였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대략의 아웃라인은 잡고 시청에 들어갔다.

여하간, 이 만남 이후 부천시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하였다. 우선 SK축구단의 연고지 이전이 안타까운 일이고, 부천시에도 축구단이 있는 게 좋다는 원론적인 이야기 정도가 성과라고 할 수 있을까?

사진을 보니 그때 생각이 난다. 거의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시장을 만나기 위해 양복을 꺼내 입고, 동료들을 만나 우울한 이야기를 나누고 엘리베이터를 탔던... 그래도 같은 슬픔을 느끼며 동행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이 시기는 거의 미친듯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시기였다. 어디서 그렇게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가 나왔을까.

아래는 당시 시 측에서 내놓은 자료이다. 자료의 일부를 소개한다.

□ 시민구단을 포함한 K(K-2)리그팀 창단과 관련하여

2006. 2. 2(목) 오전 10시경 부천SK프로축구단 구단주가 신년인사차 우리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부천SK프로축구단의 연고지를 제주도로 이전한다는 전격적인 통보(?)와 함께 당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이사회에서 지역 연고건을 변경 승인하였습니다.

이 일은 사전에 단 한마디 협의 또는 양해도 없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사항으로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구단주는 연고지 이전 사유를 관중동원 저조를 제기하였으나 2001년 아디다스컵에서 최하위임에도 평균관중 2만7천명으로 평균관중 동원 1위를 차지했고, 2002년도에는 평균관중이 20,000명에 달하는 관중이 제일 많은 프로축구단이었다는 것은 축구팬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저조한 성적과 많은 유능한 선수와 지도자가 타구단으로 방출되는 되는 가운데도 변함없이 축구단을 성원하며 부천시민임을 자랑스럽게 알던 시민들과 축구동호인 그리고 부천SK서포터즈들에게 커다란 실망과 허탈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특히 지난 2006. 1. 3(화) 부천SK프로축구단의 활성화를 위해 부천SK프로축구단과 부천시시설관리공단 그리고 부천시의 관계자가 종합운동장에서 2006 시즌을 대비한 각종시설 및 선수와 관중의 안전대책에 대해 논의하고 작년 시즌 4위에서 올해는 더 좋은 성적을 내어 시민에게 사랑받는 축구단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염원하였습니다.

그동안 우리시에서는

○ 목동구장 서포터즈(축구동호인) 운행버스 지원

○ 서포터즈 가입 및 연회원 입장권사주기운동전개

○ 동민의 날 행사 및 기업인 ․ 학생 참여의 날 운동 전개

○ 소외계층(생활보호대상자, 장애인) 참여운동 전개

○ 시 홈페이지 SK축구단 홍보

○ 경기일정 주요일간지 및 시정홍보지 안내

○ 부천종합운동장 사용료 50% 감면 및 운동장 청소용역비 전액지원

○ 종합운동장 주경기장 관람석 구역구분(섹터) 설치공사 추진

○ 2006년 시즌대비 간담회 개최 : 2006. 1. 3(화) 11:00 종합운동장

- 경기장 섹터 설치공사 및 관중 안전문제

- 선수단 이동통로 등 개막전 준비사항

등의 사업을 지원했고 지원하려 했으나 그 답은 연고지 이전이라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기업윤리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축구는 강력한 지역연고 의식을 배경하는 종목으로 연고지가 영속적이어야 발전하는 것이나, 기업은 미래의 비젼과 수익을 가지는 일종의 사업으로 생각하기에 우리시로서는 할 말이 없는 것이나 이러한 것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면 축구발전에 저해될 것임을 SK축구단,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들은 깊이 인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10년 동안 연고를 맺어온 연고도시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이런 기업행태는 우리부천시가 마지막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며, 다시 한번 확언하건데 이번 부천SK프로축구단의 작금의 행태는 우리 부천시와 단 한마디의 상의와 협의도 없이 이루어졌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SK프로축구단의 연고가 제주도로 이전됨에 따라 축구를 사랑하시는 분들은 부천FC(시민구단) 창단을 요청하고 있지만, 시민구단창단은 축구인들 만의 열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적 합의는 물론 관내기업체 사회․경제적 여건등 시집행부와 삼위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금년부터 K리그에 참여하는 경남FC(구단주 : 도지사)와 타지역의 시민구단들은 광역단체로서 현재 부천시와 같은 기초단체에서 시민구단이 운영되는 곳은 한곳도 없습니다. 시민구단으로 운영되면 기업의 횡포를 방지하고 축구발전에 가일층 속도를 낼 수 있지만, 시민구단을 창단하기에는 우리시의 모든 여건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현재 11개팀이 참여하고 있는 K-2리그 참여도 체육인프라 미확충(선수숙소, 전용훈련구장, 체력단련장 등) 맟 스폰서 대상업체 물색이 어려워 운용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재정적지원에 따른 시민합의 또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시에서는 지속적으로 체육인프라를 확충하고 향후 시세가 호전될 경우 실업팀 창단을 적극 검토할 것이며, 종합운동장은 학교체육발전, 생활체육대회 개최, 전국대회유치 등에 활용할 것입니다. 또한 체육시설물 활용도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재검토하여 시설 이용률을 2005년 보다 더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일로 인해 시민여론이 분열되지 않고 화합과 결속의 계기가 되어, 우리 부천시가 체육도시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시민여러분의 넓은 이해와 성원을 당부 드리며, 축구팬 여러분 가정에 행복과 번영이 가득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결국은 안타깝지만 현재로서는 답이 없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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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 story2011.10.12 00:11

2006년 2월 14일 대한축구협회 앞에서서 연고이전 반대 시위 이후 오프라인에서의 연고이전 반대 운동은 일단 사라졌다. 대부분의 팬들은 직장인 또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오프라인 활동이 꾸준하게 이어지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온라인에서의 활동은 꾸준하게 이어졌다. 특히 부천SK 연고지이전을 계기로 재결성된 프로축구 서포터즈 연합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전에도 프로축구 서포터즈 연합이 존재했지만, 각 단체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흐지부지 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연고이전'이라는 서포터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터지면서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축구 서포터즈 연합 카페의 게시판에서는 각종 시위 아이디어와 연고이전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대표는 전북현대 서포터즈클럽 대표였다. 당시에는 부산, 울산, 전북 등 여러 팀들의 연고이전 루머가 풍성했다. 덕분에 서포터즈들이 더 뭉친 측면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SK의 연고지 이전 이후 팬들의 저항이 워낙 격렬했기 때문에 "SK가 마지막 연고이전 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SK의 연고이전을 되돌릴 수 없었지만, 연고이전을 팬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축구에서 연고이전이 무엇인지 시중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긍정적인 것 같다.

2006년 3월 1일에는 국가대표팀이 앙골라와 평가전을 갖기로 되어 있었다. 붉은악마의 한 간부는 이 경기에서 "연고이전 반대 시위를 하자"고 제안했다. 프로축구 서포터즈 연합, 특히 부천 서포터즈에게는 반가운 제안이었다. 2월 14일 시위로는 울분도 풀리지 않았고, 얻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부천SK의 잡지 광고. 최고의 명문구단이 되겠다는 카피가 있지만,
 연고이전이라는 멍애를 짊어지고 명문구단이 되는 것은 진정한 축구판에서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광고를 보고, 현재의 제주 유나이티드를 본다면 역사를 아는 팬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될까?

당시 붉은악마 간부의 제안은 붉은악마 내부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의견은 아니었다. 일단 운을 띄우고 대의원들의 의결을 거쳐 쉽지 않게 대표팀 경기에서의 시위가 이뤄지는 것으로 결정됐다. 다만 전반전은 시위, 후반전은 정상적인 응원이 조건이었다.

이후 경기에서의 시위 준비는 붉은악마와 각 서포터들이 자체적으로 준비했다. 부천서포터즈는 따로 연락을 받고 준비한 것은 없고, 프로축구 서포터즈 연합에서 하는 일을 함께 하는 정도였다. 대표팀 경기와 관련하여 특정 프로축구 서포터즈가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앙골라전에서의 시위를 위하여 붉은악마와 프로축구 서포터즈 연합은 걸개를 한두개 준비하기로 했고, 팬들에게 전반에는 검정색 웃옷을 입을 것을 권하기로 했다. 변변한 준비는 아니었던 셈이다. 팬들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전반에 검정옷, 후반에 붉은옷을 입을 것이라는 기대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무튼 당시 붉은악마는 시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앙골라전 시위계획을 회원들에게 공지하고, 언론에도 알렸다. 하지만 효과는 여전히 미지수였고, 전반적인 분위기는 "한번 시늉이나 해보자" 정도였다. 부천 서포터즈는 "신경 써준 게 어디냐"는 분위기 강했다.

하지만 앙골라전을 앞두고 팬들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 시위를 위해 준비된 구호 중 일부(느낌표는 북박자)

"대~한민국" 구호에 맞추어

- 퇴~출 SK !! ! !!
- 지~역 연고 !! ! !! 정~착하라 !! ! !!(반복)
- 연~고 이전 !! ! !! 결~사반대 !! ! !!(반복)

대한민국승리한다 구호에 맞추어

- 연! 고! 이! 전! 반! 대! 한! 다! 연고 !! 이전 !! 반대 !! 한다 !! 연고이전 오~ 반대한다 오~ 연고이전 반대한다 오~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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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FC 19952011.10.04 00:16

축구를 보면서, 또 부천SK라는 팀을 좋아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지방원정을 떠났던 곳이 포항이었다. 벌써 15년 가까이 지난 이야기다.

그때 원정을 함께 떠난 부천SK의 서포터 헤르메스 회원은 나까지 모두 5명. 그나마 늦었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서 마구 달려서 S석 2층 난간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느낌은 뭐랄까. 가슴이 마구 뛰는 흥분상태?

선수들에게 비록 늦었으나 우리가 왔다는 것을 알려야했다. "오! 필승코리아"의 원곡인 "오! 부천FC"를 부르고, 지금에 비해 아주 약하기 짝이 없는 홍염을 터뜨렸다.

부천SK의 목동구장 시절. 서포터즈클럽 헤르메스
대한민국 서포터 최초의 홍염, 최초의 연막, 최초의 게이트기, 최초의 통천 도입

"경기 안보인다!"는 포항 관중의 원성이 들렸지만 응원을 계속됐다. 우리만의 착각일까. 선수들이 서포터를 바라봤다. 다시 우리만의 착각일까. 경기에 힘이 붙기 시작한다. 그날 5명은 목이 완전히 나갔다. 하지만 가슴은 벅찼다. 내게 소중한 존재를 위해 무언가를 쏟아붓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그 경기의 승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축구단을 위해서 이렇게 먼 곳까지 갈수도 있는 것이구나. 많은 사람들의 견제 속에서도 응원을 할 수 있는 것이구나. 5명이 가도 선수들에게 힘을 줄 수 있고, 서로 멀리 바라보며 교감을 할 수 있는 것이구나 등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이후 부천SK는 더욱 중요한 존재가 되었고, 아예 1년 내내 전경기 관전을 목표로 세우고 실제 이뤄내기도 했다. 새벽 3~5시에 서울에 도착해 바로 출근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

그렇게 따라다니던 소중했던 부천SK는 이 세상에 이제 없다. 대신 팬들이 만들어낸 부천FC 1995라는 팀이 있다. 2011년 10월 1일 토요일. 부천FC는 경주로 시즌 마지막 원정을 떠났다. 경기장은 부천SK 시절에 비할 바 못된다. 관중석 약 2~3백석 정도의 인조잔디 구장이었다.

2011.10.1 부천FC 1995와 경주시민구단의 경기에서의 헤르메스

이 경기장을 찾은 부천FC의 서포터는 10명 정도. 역시 홍염도 터뜨리고 열심히 응원했다. 이 경기에서 이겨도, 져도 챔피언 결정전은 이미 불가능하다. 순위에도 지장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왔다. 우리팀 경기이기 때문이다. 경기는 1-3으로 졌다.

...

경기 후 가족과 함께 포항으로 갔다. 그냥 놀러갔다. 다음 날.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포항제철 옆 대로를 지났다. 스틸러스구단의 선수들이 그려진 깃발이 나부낀다. 구단기도 나부낀다.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구단과 경기하던 팀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멀리 있는 팀이되어 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구단은 어제 경주시민구단이라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구단과 경기를 했고, 그나마 졌다.

그런데, 이날 나붙은 경기 일정을 보니 하필 제주유나이티드와 경기였다. 포항과 제주. 제주의 포항원정.

묘한 기분이 들었다. 포항은 내 축구관전기에 아주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헤르메스가 한때 무려 버스 5대를 띄웠던 대규모 원정지도 포항이었다.

사진으로 확인되는 버스만 7대. 한때 헤르메스의 원정인원은 리그 최다였다.(여기는 포항은 아닌 듯)

축구단은 유기체가 아니다. 축구단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제주유나이티드는 이제 나에게 그리고 헤르메스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완전히 다른 팀이다. 추억을 공유한 선수도 거의 없다. 모기업의 의사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구단 직원은 부천의 추억을 기억이나할까.

제주유나이티드는 이제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축구단은 유기체가 아니며,
축구단에 쏟아부은 나와 동료들의 열정만 기억에 남았을뿐.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기분은 이상했다. 마침 차의 오디오에서는 이소라의 노래가 나온다. 송창식의 노래 '사랑이야'를 이소라가 부른 곡. 가사가 가슴에 꽂혔다. 첫 원정의 설레임이 다시 떠올랐다.

포항서포터 옆을 지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헐레벌떡 올라가서 관중석을 빙 돌아 반대편으로 뛰어 가고, 두 명은 걸개를 걸고, 하나는 홍염을 터뜨리고, 두 명은 노래를 시작했을 때의 느낌.

잠시 경기를 보러갈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의미없는 짓이다. 완전히 미친 짓이다. 그때 그 팀은 없다. 그 팀에 쏟아 부은 나와 동료들의 열정만이 기억에 남았고, 지금 그 기억으로 묘한 것일 뿐. 지금 저 팀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다시 스탈야드에 올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그때는 부천FC 1995가 오게될 것이다. 내가 오지 못한다면 자식이, 아니면 자식의 자식이 오게될 것이다.


이제 아무 것도 아니고.. 떠났지만... 곱게 보낼 수 없었던..
2006.3.1. 국가대표 앙골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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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 story2011.06.09 23:44
그럼 잠시 부천SK라는 팀과 부천의 인연에 대해서 살펴보자.

1995년부터 유공코끼리를 응원하던 팬들은 부천유공을 거쳐 1997년 10월 부천유공 SK FC로 바뀌는 듯 하다가 부천SK로 이름이 바뀌는 것을 목격한다. 그와중에 팀의 지역연고도 바뀌었고, 팀의 상징색도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응원단은 조용히 변화를 받아들였다. 당시 서포터는 아직 지역연고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고, 서울에 3개의 팀이 몰려 있는 등 연고정책이 다소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이다.

1997년 당시 부천유공은 목동종합운동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홈구장인 동대문에서 빠질 때도 저항이 더 없지 않았나 싶다. 적어도 천안으로 떠난 일화천마보다는 가까운 곳으로 옮겼으니까.


부천유공 서포터 헤르메스의 초창기 모습. 동대문에서 여러팀을 번갈아가며 응원하던 팬들은
차츰 '자신의 팀'을 찾기 시작했고, 그중 부천서포터 헤르메스가 가장 먼저 틀을 잡았다.


83년 출범한 프로축구의 원년 멤버인 부천유공축구단은 서울, 인천, 경기를 연고로 했다. 89년에 인천, 경기로 연고를 조정했다. 91년에 서울로 들어왔다가, 96년에 부천으로 옮겼다. 그때는 이미 서포터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당시 부천시는 축구단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곳이었다. 부천시는 2000년 3월 완공을 목표로 춘의동 산 19번 일대의 부천종합운동장을, 2003년쯤 완공되는 상동택개발지구내에 축구전용구장을 건립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축구전용구장은 공수표가 됐다. 2003년 경 부천SK 구단 관계자는 "축구전용구장을 건립하여 운영하고 기부채납하라"는 시의 제안을 구단이 거부한 것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당시 법상 그런 식의 축구장 건립이 가능했던 것인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아무튼 어떤 이유로 축구전용구장 건립 계획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타이거월드(현 웅진플레이도시)가 들어섰다.


부천종합운동장 조감도. 이 조감도는 부천SK 서포터에게는 '약속의 땅'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구장에서 부천서포터는 팀을 잃어버리는 절망을 맛보게 된다.

이 시점이 부천축구의 전환점이었다. 당시 어떻게든 전용구장이 지어졌다면, 부천은 우라와 같은 축구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종합운동장 완공 후 구단이 리그 중위권만 오갈 때도 전국 1위 관중을 동원한 곳이 부천이다. 아담한 전용구장이 생겼다면 이 지역 축구는 아마 폭발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부천에 온 부천SK는 팬들에게 "영원히 부천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고, 자리를 잡아갔다. 하지만.. 또다시 제주로 떠나면서 팬들은 SK 본사 앞에 눈물을 흘리며 섰다.

<관련글> 시위대, 축구협회에서 자연스럽게 부천SK 모기업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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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 story2011.02.01 18:21

2006년 부천SK의 연고지이전 상황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2003년말부터 2004년초에 있었던 부천SK 매각·시민구단 전환 해프닝을 다뤘다.

이전 이야기 : 부천 STORY

다시 2006년 부천SK의 연고지이전 상황으로 돌아와서...

2006년 2월 14일 대한축구협회 앞에서 연고이전 반대 시위를 했던 축구팬들은 종로 쪽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누가 인솔하지도 않았는데, 발길은 SK주식회사 본사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향하는 동안 팬들은 각 팀들의 응원가를 불렀다. SK를 비난하는 응원가를 급조해서 부르기도 했다. 그중에 "그따위로 축구하려면~"으로 시작하는 노래는 향후 연고이전 반대 시위의 주제가 역할을 했다.

SK주식회사 본사 앞에 모인 팬들은 돌아가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부천SK의 팬들은 눈물을 쏟아냈다. 입고 있던 부천SK의 유니폼을 찢어서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끔 직원들이 나와서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 들어가곤 했다.

그렇게 시위는 막을 내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참가한 사람들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따로 모여서 제작하지도 않았는데, 정말 많은 피켓 등 시위 도구가 등장했고, 톡톡 튀는 문구도 많았다. 우리나라에 축구를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행사를 마치면서 서포터들은 3월 1일 국가대표 평가전에 연고이전 반대 목소리를 더욱 강하게 내자는 무언의 합의를 했다. 이후 온라인을 통해 실제 경기장에서의 시위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이 세워졌다.

사진은 SK주식회사 본사 앞으로 출발 전 축구협회에서의 시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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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 story2011.02.01 16:55

이전 이야기 : 부천 STORY

계속해서 2003년말부터 2004년 초까지 부천SK 팬을 불안하게 했던 구단 매각과 시민구단 관련 이야기이다.

당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팬들은 아예 '부천시민구단창단시민모임'를 만들어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2003년 12월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강OO 부천 단장은 12월 30일 부천시의 주도로 시민 구단을 창단할 경우 비용 부담 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구단이 보유하고 있는 100억원 상당의 자산인 K리그 가입권( 40억원)과 선수단을 무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시에 전달했다고 한다.

강 단장은 "중국의 다롄 스더와 매각 협상이 상당 부분 진행됐지만 그동안 구단을 성원해온 부천 시민들에게 연고지를 존속시키도록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이 순 리라고 판단해 시의 의사를 먼저 타진해보기로 했다"고 밝혔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부천측은 내년 2월 말까지로 시민구단 창단 기한을 설정하고 만일 시민구단화가 어려울 경우 다롄 스더를 운영하고 있는 중국 석유화학업체 스더 그룹과 다시 매각 협상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매각이나 시민구단 전환 모두 이뤄지지 않았다.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면서 SK주식회사는 구단을 조용히 예전처럼 운영하기 시작했다. 시민모임도 활동을 중지했다. 그러던 와중에 2006년 2월 기습적인 제주로의 연고이전이 감행된 것이다.

시민모임 카페 첫 화면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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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 story2011.01.31 13:57


이전 이야기 : 부천 STORY


기자회견, 시위... 일단 간단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행동은 다 했다. 하지만 연고이전 이라는 것이 되돌릴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계속 비난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게다가 축구에서의 연고이전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크게 부각될 문제도 아니었다.

물론 연고이전 문제는 우리나라에 축구문화가 정착되고, 팬이 늘어날수록 점점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느 정도 뜻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문제로 여겨졌다. 언론의 관심도 큰 편은 아니었다.

부천서포터가 할 수 있는 것 또는 해야할 것은 이제 두 가지. 첫번째는 SK주식회사나 제주유나이티드를 비난하며 화풀이를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새로운 팀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하는 것이다.

2002시즌 개막전. 부천은 기본적으로 축구장에 사람이 많은 도시이다.

여기서 잠깐. 부천SK는 이전에도 팬들의 가슴을 쓸어 내리게 한 일이 여러번 있었다. 2003년말에는 느닷없이 팀을 매각하겠다는 발표를 해서 팬들을 어리둥정하게 만들었다.

2003년 11월에는 중국의 기업 스더가 매입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 기간동안 팬들은 팀이 잘못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이후,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던 뒤끝이라 의외였다.

하지만 중국매각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2003년 말부터 2004년 여름까지 매각이 아닌 시민구단 전환을 모색했다. 매각추진과 마찬가지로 팬들이 불안했던 것은 물론이다. 이 기간 중에 팀 분이기는 어수선했고, 관중동원 1위 팀이던 부천SK의 관중은 경기장을 떠났다. 성적도 당연히 나빴다.

당시 모기업인 SK주식회사도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부천시가 독자적으로 1부리그 팀을 맡기에도 부담이었다. 무엇보다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었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도 어려웠다.

결국 <스포츠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당시 부천시는 "▲시민구단화 이후 늘어나게 될 투자부담을 감당하기 힘들고 ▲시민이 앞장서지 않는 관주도의 시민구단화는 어려우며 ▲부천 연고의 팀이 없어지는 것도 감수할 수 있다" 등 입장을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이 때 처음 만난 것인데, 한번 만나서 이 중차대한 일을 결정한 모양이다.

팀 매각과 시민구단화 등이 오르내리던 2004년 1월 부천서포터는 축구팬들과 상황을 공유하고,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 매일 다투지만 결국 의지할 곳은 같은 축구팬밖에 없었던 것 같다.

2004년 2월 부천서포터 대표자 회의 시종 무거운 분위기.
부천서포터들은 마음 놓고 축구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부천서포터는 당시 서포터인 헤르메스와 비교적 나이가 있는 회원들로 구성된 후원회가 있었는데, 후원회 명의로 아래와 같은 공문이 각 서포터에게 전달되었다. 지근 보면 다소 억지스러운 내용도 있다. 참고로 이때는 2003년 9월부터 시작된 안양LG의 연고지 이전 논란이 거의 '서울LG'로 종결되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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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신 : 회장님
참 조 : 운영위
발 신 : 부천서포터즈 후원회 이희천
제 목 : 부천시민구단 창단 기원 공지 요청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국 프로축구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점을 서로 공유했으면 합니다.
새로운 한해, 모두의 발전과 조직의 건투를 바랍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이번 안양LG의 연고지 이전과 부천SK축구팀의 매각 사태를 익히 매체를 통해서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이로 인해 긴해 각 서포터즈 회장님께 저희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부탁을 드리려 합니다.

현재 부천서포터즈가 앉고 있는 어려움과 추후 모든 서포터즈에서도 생길 수 있는 심각성에 대해서 알려 드리며, 향후 발생될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을 없애고, 또한 일방적으로 당해온 언론,연맹,협회등의 단일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으면 합니다.

이번 제안과 부탁이 각 서포터즈 내부에서도 반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말씀 드릴 부분은 각 서포터즈의 화합을 말씀드리자는 것은 아닙니다.제가 서포터즈 회장을 약7년간 있으며, 문제점에 대해 절대 각 서포터즈만이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느끼었으며, 전체의 목소리 조차도 귀담아 듣지 않는 언론과 연맹에 대해 더욱 적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심판 문제 및 한국프로축구 연맹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우리들의 힘으로 뭉쳐 쉽게 풀어 갈 수 있음에도, 뭉치지 못해 손해 보고 피해 입는쪽은 항상 서포터즈와 프로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이였다는 것은 더욱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번일을 시작으로 서포터즈 모두가 각성하며, 착하게 서포팅하자는 말씀은 아닙니다.
각자의 위치와 그간 각 서포터즈가 이끌어오고 추구해온 컨셉과 그 자리에서 계속 운영하되, 각 서포터즈 혼자의 힘으로 풀기 어려울때나 혹은 같은 목소리가 필요할 때의 서로의 힘을 모이자는 것입니다.

먼저 시작이 부천과 안양으로 시작되겠지만, 이번일의 시작으로 한국 프로축구서포터즈의 생각과 마인드를 더욱 널리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아래의 내용을 보시고, 저희에게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연고지 이전 반대]

지금 안양과 부천의 일이 곧 남의 일이 아닌듯 합니다.
얼마전 성남 일화의 연고지 이전에 대해 성남시가 적극 개입했듯이, 투자하는 기업이 원해도 이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며, 안양LG와 부천SK의 경우만 보더라도 투자하는 기업이 연고지 이전과 매각받는 기업이 적극적으로 연고지 이전을 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포팅하는 팀이 시민구단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연고지 이전의 생각은 기업주의 머리속에 있을 것이고, 조속한 연고지 정착에 투자 보다는 언제든지 좀 더 낳은 연고지로 변경하고 싶은 생각으로 지금도 구단을 운영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안양LG와 부천SK가 연고지 이전이 결정된다면, 각 팀의 구단주와 투자자들에게는 좋은 사례를 마련하는 것이고, 어느날 아침 눈을 뜨고 TV의 스포츠 뉴스에서 우리가 서포팅하는 팀의 연고지 이전에 기사를 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서포터즈가 한 목소리로 이번일에 대한 STOP을 걸어 주지 않는다면, 축구에 무관심한 모든이들 역시도 당연한 기업의 권리로 생각할 것이며, 기업들은 당연히 투자하는 기업주의 마음에 의해 쉽게 연고지 변경이 이루어 질것 입니다.


[각팀의 시민구단화 추진]

한국 프로스포츠는 전문 스포츠마켓팅을 토대와 바탕으로 이루어져 적절한 수익 사업과 구단운영이 이루는 것이 아닌, 일방적 기업의 이익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기업이 돈이 많다면 많은 투자를 하겠지만, 기업의 어려움이 있다면 쉽게 구단을 매각이나 포기할 수 밖에는 없으며, 이런 운영 방식이 통상례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운영방식이 모태가 되어, 항상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팬들은 따라가기 마련이며, 팬들을 무시하는 여러가지 사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투자기업들은 팬들에게 고마워하기 보다는 기업의 노동자로 생각하며, 가끔은 우리의 노력에 대해서도 당연한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익이 나지 않는다면, 죄책감없이 프로스포츠팀을 해체할 수 있으며, 이것은 어느 종목의 프로스포츠와도 마찬가지 입니다.

언제가는 13개 축구프로팀이 아닌 6개 축구프로팀으로 리그를 한다는 것도 악몽이 아닐것이라는 사례를 SK가 보여 주었습니다.

현재 부천서포터즈와 시민들의 항의에 의해, 그나마 마지막으로 SK 구단의 모든것을 무상으로 부천시에 제공한다는 제안을 하였으며, 그 기간은 2달여로 압축되고 있습니다.

더욱 무서운것은 이것이 시작일뿐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께서도 한국프로축구환경을 알다시피 수익이 나지 않고 매년 100억의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면, 어느 누구도 쉽게 한국 프로축구에 투자하려, 운영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그 많은 투자와 좋은 하드웨어에도 썰렁한 관중동원의 실패를 구단주로써도 축구의 관심을 멀어지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년의 대전시티즌을 보듯이 한국의 프로스포츠에서도 충분히 흑자를 낼 수 있다는 모델을 보여 주었으며, 시민구단이라는 점이 더욱 놀라운 점이였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한국프로축구사의 첫 흑자의 시작이기는 했지만 다른팀의 사정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의 시작은 이미 부산아이콘스의 전신인 부산대우가 시작을 했으며, 부천SK가 그 뒤를 뒤따라 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민구단과 모든팀들 역시 장기간의 안정된 투자가 확보된 팀은 단 한곳도 없습니다.

만약 대기업이 운영하는 현 축구팀이 기업의 사정에 의해 투자가 어려워진다면,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으며, 인수자가 없다면 사생아 처럼 길바닥에 버려질 것입니다.

지금 가장 효과적인 모든 프로축구팀의 방향은 시민구단입니다.
언제든지 떠날수 있는 기업과 달리 시민구단 만이 장기적으로 한국 프로축구팀을 살릴 수 있으며, 축구 인프라에도 가장 적합한 시스템이자 한국 축구 발전의 미래 모델 입니다.

추후 부천시민구단 뿐만이 아닌, 다른 모든팀이 자발적으로 시민구단이 되도록 저희도 노력할 것이며 여러분들께 지원도 약속드리겠습니다.

또한, 이번 기회를 경험삼아 좋은 사례를 남겨 기업이 자발적인 시민구단을 만들도록 저희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심판 문제]

한국 프로축구 심판의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더욱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전북,수원,대전,안양,부천 등 심판 문제에 대해 2003년도는 거의 전쟁터였습니다.
하지만, 책임을 관할하고 있는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아직도 뿌리부터의 개혁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5년전 프로축구연맹의 김원동 사무국장과의 미팅에서도 "심판 문제"에 대해 지적을 했으며, 어이없는 답변인 "우리 관할 아님"이라는 말로 팬들을 기만했습니다.

아직도 원초적인 문제인 "심판진들의 경쟁"을 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리 교육을 시키고 외국에 유학을 보낸들 바뀌지 않을 것이며, 팬들과 서포터즈들의 과격화는 증가될 것입니다.

단순히 문제를 서포터즈만의 문화를 이끄는 프로연맹에 대해서도 각 서포터즈의 힘이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지금 안양서포터즈와 부천서포터즈가 닥친 어려움은 단순히 몇천명의 양서포터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실 겁니다.

기업이 그간 한국프로축구팀을 맡아 운영해준 고마움도 있지만, 냉정히 돈 되지 않으면 버리고 떠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지금도 3개의 팀(대전,대구,인천)을 제외한, 기업이 운영하는 모든 팀의 앞날 일수도 있습니다.

또한, 지금도 대전을 제외한 모든팀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인 연고지 정착(Franchisee)이 향후 몇년안에 해결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Sponser Company인 기업이 손을 털고 나갈것은 눈에 보듯 뻔한 일입니다.

먼저 시작이 된 안양 LG의 연고지 이전 계획과 부천SK의 매각 발표의 경우는 시작일 뿐입니다.

지금이라도 축구를 사랑하는 서포터즈들이 같은 목소리를 낸다면 추후 기업들이 쉽게 연고지 이전을 기획하지 않을 것이며, 기업이 운영을 하기 어렵다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민구단을 만들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정말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안양LG의 연고지 이전 발표는 추후 이런 발표가 나지 않도록 철저히 "LG의 만행"을 시민들에게 알려야 하며, 부천SK의 축구팀 매각은 "부천시민구단" 창단이라는 기회 부여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 2가지가 명확히 전체 서포터즈의 의견이라는 것이 알려져야만 추후 기업들이 팬들의 단합을 무서할 것이며, 기업 이미지를 생명으로 하는 대기업들이 쉽사리 행동에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 서포터즈 여러분들이 도움을 주신다면 이번일을 계기로 추후 꼭 보답을 드릴것을 약속드립니다.

부디 좋은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부천서포터즈 후원회 "부천시민구단" 준비위 이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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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요청 덕분에 당시 13개 K리그 서포터들은 아래와 같은 공통의 공지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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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안양LG"와 "부천SK"에 대한 한국프로축구서포터즈 통합 공지◈

이번 안양 LG의 "연고지 이전"과 부천SK의 "부천 시민구단"에 대해 13개 서포터즈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연고지 이전 반대

현 지역 연고지 정착과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그간 많은 노력을 해준 프로축구팀들이 단순히 수익의 논리를 앞세워 그간 성원해준 팬들을 하루아침에 버리자 하는 것은 프로축구 서포터즈와 팬들을 농락하는 것이며, 또한 향후 같은일의 재발의 사례를 만드는 것임에 한국 프로축구 서포터즈와 프로축구 팬들은 이번 안양 LG의 연고지 이전을 강력히 반대하는 바이다.


2. 시민구단 창단

한국 프로축구팀이 지역 연고지에 조속히 정착하고, 장기적으로 한국 축구 발전 모태가 될 수 있도록 현 프로축구팀의 시민구단화에 대해 더욱 노력할 것이며, 이번 부천 SK 프로축구팀의 "부천시민축구팀"이 창단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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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다행히 팀이 매각되거나, 무리한 시민구단화는 추진되지 않았다. 팀도 찬찬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2005년에는 정해성 감독을 중심으로 승수도 쌓기 시작했다. 관중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Posted by walk a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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