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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FC 1995

부천FC, 부천SK, 포항 스틸야드, 제주유나이티드 …

by walk around 2011. 10. 4.

축구를 보면서, 또 부천SK라는 팀을 좋아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지방원정을 떠났던 곳이 포항이었다. 벌써 15년 가까이 지난 이야기다.

그때 원정을 함께 떠난 부천SK의 서포터 헤르메스 회원은 나까지 모두 5명. 그나마 늦었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서 마구 달려서 S석 2층 난간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느낌은 뭐랄까. 가슴이 마구 뛰는 흥분상태?

선수들에게 비록 늦었으나 우리가 왔다는 것을 알려야했다. "오! 필승코리아"의 원곡인 "오! 부천FC"를 부르고, 지금에 비해 아주 약하기 짝이 없는 홍염을 터뜨렸다.

부천SK의 목동구장 시절. 서포터즈클럽 헤르메스
대한민국 서포터 최초의 자체 제작 홍염, 최초의 연막, 최초의 게이트기, 최초의 통천 도입

"경기 안보인다!"는 포항 관중의 원성이 들렸지만 응원을 계속됐다. 우리만의 착각일까. 선수들이 서포터를 바라봤다. 다시 우리만의 착각일까. 경기에 힘이 붙기 시작한다. 그날 5명은 목이 완전히 나갔다. 하지만 가슴은 벅찼다. 내게 소중한 존재를 위해 무언가를 쏟아붓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그 경기의 승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축구단을 위해서 이렇게 먼 곳까지 갈수도 있는 것이구나. 많은 사람들의 견제 속에서도 응원을 할 수 있는 것이구나. 5명이 가도 선수들에게 힘을 줄 수 있고, 서로 멀리 바라보며 교감을 할 수 있는 것이구나 등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이후 부천SK는 더욱 중요한 존재가 되었고, 아예 1년 내내 전경기 관전을 목표로 세우고 실제 이뤄내기도 했다. 새벽 3~5시에 서울에 도착해 바로 출근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

그렇게 따라다니던 소중했던 부천SK는 이 세상에 이제 없다. 대신 팬들이 만들어낸 부천FC 1995라는 팀이 있다. 2011년 10월 1일 토요일. 부천FC는 경주로 시즌 마지막 원정을 떠났다. 경기장은 부천SK 시절에 비할 바 못된다. 관중석 약 2~3백석 정도의 인조잔디 구장이었다.

2011.10.1 부천FC 1995와 경주시민구단의 경기에서의 헤르메스

이 경기장을 찾은 부천FC의 서포터는 10명 정도. 역시 홍염도 터뜨리고 열심히 응원했다. 이 경기에서 이겨도, 져도 챔피언 결정전은 이미 불가능하다. 순위에도 지장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왔다. 우리팀 경기이기 때문이다. 경기는 1-3으로 졌다.

...

경기 후 가족과 함께 포항으로 갔다. 그냥 놀러갔다. 다음 날.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포항제철 옆 대로를 지났다. 스틸러스구단의 선수들이 그려진 깃발이 나부낀다. 구단기도 나부낀다.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구단과 경기하던 팀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멀리 있는 팀이되어 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구단은 어제 경주시민구단이라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구단과 경기를 했고, 그나마 졌다.

그런데, 이날 나붙은 경기 일정을 보니 하필 제주유나이티드와 경기였다. 포항과 제주. 제주의 포항원정.

묘한 기분이 들었다. 포항은 내 축구관전기에 아주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헤르메스가 한때 무려 버스 5대를 띄웠던 대규모 원정지도 포항이었다.

사진으로 확인되는 버스만 7대. 한때 헤르메스의 원정인원은 리그 최다였다.(여기는 포항은 아닌 듯)

축구단은 유기체가 아니다. 축구단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제주유나이티드는 이제 나에게 그리고 헤르메스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완전히 다른 팀이다. 추억을 공유한 선수도 거의 없다. 모기업의 의사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구단 직원은 부천의 추억을 기억이나할까.

제주유나이티드는 이제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축구단은 유기체가 아니며,
축구단에 쏟아부은 나와 동료들의 열정만 기억에 남았을뿐.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기분은 이상했다. 마침 차의 오디오에서는 이소라의 노래가 나온다. 송창식의 노래 '사랑이야'를 이소라가 부른 곡. 가사가 가슴에 꽂혔다. 첫 원정의 설레임이 다시 떠올랐다.

포항서포터 옆을 지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헐레벌떡 올라가서 관중석을 빙 돌아 반대편으로 뛰어 가고, 두 명은 걸개를 걸고, 하나는 홍염을 터뜨리고, 두 명은 노래를 시작했을 때의 느낌.

잠시 경기를 보러갈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의미없는 짓이다. 완전히 미친 짓이다. 그때 그 팀은 없다. 그 팀에 쏟아 부은 나와 동료들의 열정만이 기억에 남았고, 지금 그 기억으로 묘한 것일 뿐. 지금 저 팀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다시 스탈야드에 올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그때는 부천FC 1995가 오게될 것이다. 내가 오지 못한다면 자식이, 아니면 자식의 자식이 오게될 것이다.


이제 아무 것도 아니고.. 떠났지만... 곱게 보낼 수 없었던..
2006.3.1. 국가대표 앙골라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