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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football itself

내 책상 위의 라르손 사진을 보며…

by walk around 2009. 9. 11.


책상 위의 라르손 사진액자. 신문에 난 사진을 오려서 액자에 넣었다.

내 책상에는 언젠가부터 스코틀랜드 셀틱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라르손의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이 책상에 자리 잡은지 5~6년 정도 된 것 같다. 한 신문에서 나온 사진인데, 난 신문에서 오려낸 사진을 위해 액자를 샀다.

사실 사진을 오려낼 때 라르손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우리나라의 클럽을 지지하는 나에게 외국 선수는 별로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다. 하지만 셀틱 유니폼을 입은 대머리의 라르손 사진은 뭔가 대단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같았다.

라르손을 처음 본 것은 1994년 미국월드컵을 중계하는 TV화면이었다. 당시 군복무 중이었기 때문에 라르손이 뛰는 스웨덴 대표 경기는 제대로 못 봤다. 하긴 한국 경기도 훈련 때문에 뉴스 시간에 하이라이트로 봐야했다.
최근 맨체스터유나이티드로 단기임대되어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미련없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드문드문 본 미국월드컵에서 라르손은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강한 인상이었지만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요란한 파마를 한 겉멋 제대로 든 선수", "운이 좋아서 스웨덴 국가대표가 된 것 같은 교체 전문선수"가 라르손에 대한 인상이었다. 엄청나게 나쁜 인상을 가졌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의 이름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당시 라르손은 교체 선수로서 좋은 활약을 펼쳤고, 3·4위전에서는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런 라르손이 우리나라 신문에 셀틱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 것이다. 그는 마치 "나 여기 살아있어"라고 말하는 듯 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미국월드컵에서 본 라르손이라면 지금쯤 축구선수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스웨덴의 복지혜택 속에 하루하루 그냥저냥 살고 있어야 했다.
1994 미국월드컵의 라르손은 이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라르손은 축구 전쟁터인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셀틱에서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치렁치렁하던 레게파마는 어디가고 삭발한 상태였다. 게다가 사진 속의 그는 7번 배번을 달고 골을 성공시키고 달려나가고 있었다. 그의 발 밑으로 잔디가 패여서 흩뿌려지고 있었다.

이런 강렬한 인상 덕분에 신문에 실린 라르손의 사진은 수년간 내 책상을 장식하고 있다. 그런 라르손을 최근에 또 만났다. 2006년 12월 박지성이 있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가 라르손을 3개월 동안 단기임대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그는 셀틱을 거쳐 바르셀로나에서 뛰다가 고행 스웨덴의 헬싱보리에서 뛰고 있었다.

라르손은 3개월 동안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벌써 라르손은 맨유의 레전드라는 말까지 나왔다. 불과 3개월만에. 맨유는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결국 고향으로 미련없이 돌아갔다. 더 늙기 전에 고향 팬에게 제대로된 플레이를 더 보여주고 싶다는 게 이유 중 하나였다.
내가 전혀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던 기간동안 그는 바르셀로나 등에서 맹활약 중이었다.

여기까지 알게되자 라르손은 내 마음 속에서 더 이상 비교할 대상이 없는 영웅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이런 축구선수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헨릭 라르손(Henrik Larsson). 1971년 9월 20일생이다. 178cm 72kg.

1989 Hogaborgs BK 21경기 1골. 이 때만해도 별 볼 일없는 선수였다. 1990 Hogaborgs BK 21경기 7골. 이 정도면 스웨덴에서 조금 주목을 받을만 한 것 같다. 1991 Hogaborgs BK 22경기 15골. 점점 장난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라르손이 맨유의 끈적한 러브콜을 뒤로 하며 둥지를 튼 Helsingborgs로 팔려간다.

1992 Helsingborgs IF 27경기 32골. 이런. 한경기에서 한골 이상을 넣는 괴력을 보이기 시작한다. 1993 Helsingborgs IF 25경기 16골. 조금 쪼그라 들었지만 94미국월드컵에 스웨덴 대표가 되기에는 크게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저렴하게 선수를 데리고 와서 비싸게 팔아먹는 게 특기인 네덜란드 클럽이 라르손을 주목했다. 93/94 Feyenoord Rotterdam 15경기 1골. 라르손에게도 적응기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Feyenoord 스카웃 담당은 애가 좀 탔을 것 같다. 94/95 Feyenoord Rotterdam 23경기 8골.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95/96 Feyenoord Rotterdam 32경기 10골. 역시 중상의 활약. 96/97 Feyenoord Rotterdam 31경기 7골. 꾸준했지만 빅클럽에 팔아먹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결국 빅리그가 아닌 스코틀랜드로 떠난다.
라르손의 부상장면. 잘 보이지 않지만, 발목이 형이상학적으로 꺽였다.

97/98 Celtic Glasgow 35경기 16골. 스코틀랜드 날씨가 스웨덴과 비슷할까. 아무튼 Feyenoord가 후회할 활약을 펼치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빅리그 중위권에는 충분히 통할 텐데…. 98/99 Celtic Glasgow 35경기 29골. 골이 폭발했다.

99/00 Celtic Glasgow 9경기 8골. 짧은 출장시간은 이 시기가 라르손에게 힘든 시기였음을 보여준다. 그는 올림피그 리옹과 UEFA컵 경기에서 엉켜 넘어지면서 부상을 입는다. 부상을 입을 당시 동영상은 인터넷 곳곳을 떠돌며 축구부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동시에 기적적인 재기사례로도 소개되고 있다.

1년을 재기에 몰두한 라르손. 02/03 Celtic Glasgow 35경기 28골. 01/02 Celtic Glasgow 33경기 29골, 00/01 Celtic Glasgow 37경기 35골. 재활을 하며 뭘 잘못 먹었는지, 실로 무지막지한 성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레게머리의 날라리 선수인 줄 알았던 라르손은 멀리 아시아 한편의 안티도 모르게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책상 위의 라르손 사진은 아마 이즈음에 촬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축구팬이 만든 라르손 윈도우 바탕화면. 그는 바탕화면에 깔아도 손색없는 영웅이다.

03/04 Celtic Glasgow 37경기 30골. 계속되는 골 폭풍. 바르셀로나가 그를 업어 가신다. 05/06 FC Barcelona에서 28경기 10골, 04/05 FC Barcelona 12경기 3골. 04/05시즌에서 다소 부진했던 라르손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2006년부터 Helsingborgs IF 15경기 8골. 이 시기에 잠시 맨유로 임대됐고 순식간에 엄청난 활약을 하며 '우렁각시' 역할을 톡톡하게 하고 고향으로 또 돌아갔다.

책상 위의 사진 속 라르손의 얼굴에는 이미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현역이다.
※ 개인 홈피에 있던 글. 개인 홈피 폐쇄에 따라 블로그로 옮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