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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book, movie

백인 남성에 맥못추는 여성의 기본 심리는 열등감?

by walk around 2009. 9. 15.


이번 포스팅에는 좀 과격한 문장이 섞일지 모르겠다. 그전에 확실하게 해 둘 것이 있다. 나는 황인종, 특히 한국 여성과 백인이 결혼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례를 많이 알고 있다. 이들의 결혼은 사랑에서 시작됐고 훌륭하게 결실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결혼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정상적인 사랑이 아니다. 얼마전 TV에서 보았지만 백인이 길을 물어볼 때와 동남아인이 물어볼 때 태도가 180% 다른, 즉 인간에 대한 성찰없이 순전히 피부색을 보고 반응을 결정하는 단세포적인 사람들이 대상이다. 또한 백인들이 자신만의 커뮤니티에서 "한국 여성은 쉽다"고 말하며, 잠자리 파트너를 서로 소개시켜 줄 정도로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여성들이 대상이다.

또 한국 남성에 대해서는 외모, 학벌, 가정환경을 따지다가 백인이라면 얼굴이 좀 일그러져도, 사정없이 배가 나와도, 학벌이 미스테리해도 전혀 문제삼지 않는 여성도 대상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그렇다고 좋아하는 것은 아닌) 백인은 40대 나이에 사정없느 뚱뚱하고 대머리이지만 한국에서 20대 여성들과 벌갈아가며 사귀고 있다. 아무튼 이번 포스팅의 대상은 극히 일부가 될 것이다.

프랑스의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자술가, 혁명가 프란츠 파농(사진)은 저서 <검은피부 하얀가면>의 두번째 장에서 유색인 여성과 백인 남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프란츠 파농은 프랑스의 식민지인 안틸레스(Antilles) 출신이고 흑인이다. 그는 안틸레스 흑인 마요테라는 여성이 백인 남성에 대해 언급한 책을 보고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그녀는 그(백인 남성)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 백인을 통해 자신의 자신의 인생에 투영된 일말의 백인성만 얻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그 백인이 미남인지 추남인지를 스스로에게 자문할 때조차도 그녀는 쓴다. "내게 정작 필요한 것은 파란 눈과 금발과 하얀 피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사랑한다"고. 이 말을 위계적으로 재배치해 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의 문장을 이끌어 낼 수가 있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는 파란 눈과 근발과 하얀 피부를 가졌으므로"라는 문장 말이다."

그러면서 파농은 "유색 인종이 백인 남자에 매달리는 것은 열등감 때문"이라는 취지로 설명을 한다. 그리고 "백인 남성들에 굶주린 미치광이 유색인 여성들은 항상 대기 중이다"고 개탄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백인을 추종하는 흑인 여성에 대해 "백인이나 심지어는 자기 자신과 동종인 흑인을 대하는 흑인의 태도에선 종종 병리학 영역의 변경에 서 있는 일련의 정신착란과 같은 형태를 엿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파농의 해석이 순수한 사랑으로 엮인 유색인 여성·백인 남성 커플에게 해당이 안된다고 생각하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개념없이 백인 남성을 추종하는 여성, 즉 백인들로 하여금 한국 여성을 가볍고 문란하고 쉬운 여성으로 인식하게 만든 그런 여성에게는 적용이 가능할 것 같다.

백인 옆에 있는 여성들은 상대와 만남이 사랑인지 아니면 자아도취 내지는 과시욕인지 따져봐야 한다. 적어도 만나는 백인이 눈 앞에서는 웃다가 집에 돌아가서는 백인 남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늘도 골빈 여자 만났다"고 자랑하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또 그 백인 남자의 수첩에 있는 수많은 여성 중 하나가 아니기를 바란다. 혼자 무시 당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어쨌든 함께 속한 한국이라는 커뮤니티가 수모를 당하는 게 기분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