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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book, movie

프랑스 식민지 출신이 분석한 식민근성

by walk around 2009. 9. 4.


"오랜 세월을 프랑스에서 지낸 흑인들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서 귀향한다. … 온몸에 마치 새로운 활력이 솟아나기라도 하는 듯 잔뜩 뻐기는 자세로 거만하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검은피부 하얀가면>의 저자 프란츠 파농은 프랑스령 안틸레스(Antilles) 출신이다. 남미의 토종 유색인종이고 파농을 스스로 이 지역 사람들을 흑인으로 칭하고 있다. 아프리카와는 다른 면이 있겠지만 하여튼 유색인종이다.

프랑스령 안틸레스 사람들은 프랑스를 점령군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경하는 모양이다.

앞서 소개한 <검은피부 하얀가면>의 발췌문은 언뜻 그 옛날의 재미교포 분위기를 풍긴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좀 다녀오면 한국에서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버터발음과 중간중간 섞는 영어단어가 품격(?)을 더했다.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기라도 하면 그는 더 이상 팔을 넓게 흔드는 인사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의 이 새로 태어난 "인조인간"은 짐짓 무게를 잡고 살짝 목례를 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전통을 무시하는 행위. 식민지 국가에서 나타나는 비극적인 모습 중 하나다. 자신을 지배하는 또는 지대한 영향을 주는 대상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잠시 몸을 담구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지배세력의 일원으로 간주하고 고향의 문화와 사람을 무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완장을 찬 친일파 분위기와도 비슷하다.

이 책과의 만남은 길지 않은 한 신문의 칼럼을 통해서다. 칼럼을 읽은 후 한참 후에 용케 기억해 내서 책을 구입했다.

(링크) [책읽는 경향]전남에서-검은 피부, 하얀 가면

칼럼의 내용 중 "나는 정신이 파괴된 노예가 왜 주인의 가면을 쓴 지배자가 되길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는 말이 사람을 끌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이해가 쉽지 않았다. 어려운 단어도 많고 번역책 특유의 난해한 문장도 많았다. 하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머리에 들어왔다.

내용 중에는 'R' 발음에 목숨을 거는 안틸레스 사람들의 애처로운 불어 적응기가 나온다. 혀를 굴리는 R발음을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본토 프랑스인보다 혀를 굴려서 오히려 촌닭냄새를 풍겼다는 구절에서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미쿡에 다녀온 후 애써 R, R 거리는 사람들이 주위에 난무하는 우리 사회와 안틸레스의 흑인들과 무엇이 다른가.

잠깐 길을 빗겨나서 프랑스령 안틸레스제도는 대체 어떤 곳일까?

세계지도에서 카리브해를 찾아보면 쿠바부터 길게 작은 섬들이 늘어서 있다. 이것이 안틸레스 제도이다. 쿠바에서 시작해 영연방 소속 트리니다드토바고까지이다.

안틸레스 제도의 상당수 섬들은 독립을 이루었다. 하지만 아직도 영국령 버진군도. 미국령 버진군도. 영국령 터크스카이코스제도, 영국령 케이만군도, 영국과 네덜란드가 공동으로 신탁통치하는 산마틴섬, 영국령 몬트세라트 등이 독립을 하지 못했다. 미국도 푸에르토리코라는 섬을 하나 갖고 있다.


안틸레스 제도의 지도입니다.
오른쪽 붉은 줄을 그어놓은 것이 프랑스령인 마르티니크와 과달루페입니다.


프랑스령은 마르티니크(Martinique), 과달루페(Guadeloupe) 등이 있다. 두 섬을 합쳐서 '프랑스령 안틸레스'라고 한다. 2006 독일월드컵 대표이자 유벤투스, 바르셀로나, 생제르맹에서 뛰었고, 현 박주영의 소속팀 모나코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던 릴리앙 튀랑(Lilian Thuram)이 과달루페 출신이다.

여담이지만, 튀랑은 2005년 파리 변두리에서 발생한 이민자의 소요사태 당시 당시 내무장관었던 사르코지의 "소요를 주동하는 부랑아들을 진공 청소기로 쓸어버려야 한다"는 극우발언에 대해 "나도 교외에서 자랐지만 쓰레기는 아니다"는 소신발언을 하기도 했다.

<검은피부 하얀가면>을 읽는 동안 한두번은 더 포스팅을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