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The Fan

오스트리아에서 활약하던 서정원 코치 만나러 갔던 길

by walk around 2009. 10. 9.


서정원 코치를 만나기 위해 오스트리아 리트로 가는 길. 기차밖 풍경.

2006년 독일월드컵 조별 예선이 한창이던 6월. 유럽은 완전히 찜통이었습니다. 낮 온도가 거의 40도에 육박했습니다. 19일 늙은 프랑스와 극적으로 1:1로 비긴 한국은 1승 1무로 일약 G조 1위로 올라섰습니다.


프랑스와 경기는 구동독 지역의 라이프찌히에서 벌어졌습니다. 조별예선 3차전 스위스와의 경기는 24일에 하노버에서 시작됩니다. 줄잡아 4일 정도의 시간이 비는 것입니다.


월드컵을 관전하러 떠난 축구 팬들은 이 시간 동안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의 관광지를 주로 돌았습니다. 일찌감치 하노버로 가서 체력을 비축하는 팬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일행과 함께 남는 시간을 좀 더 의미있게 써보자고 결정하고, 체코 프라하와 오스트리아 빈 등을 거쳐서 당시 서정원이 뛰고 있는 클럽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리트 가는 길에 찬 1량 짜리 기차의 소박한 인테리어

찾아가는 길에 잠시 혼동했습니다. 당시 서정원이 뛰던 팀은 SV리트라는 팀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최성용 선수가 라스크린츠에서 뛰었습니다. 두 정보가 머리에서 꼬이고 일행 모두 피곤 속에 집단환각(?)에 빠져서 '린츠'라는 도시로 갔습니다. 서정원이 있을리 없습니다.


리트 풍경

다행히 오스트리아는 작은 나라입니다. 반나절만 기차타면 에지간한 곳은 갈 수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리트'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리트가는 길은 완전 전원길이었습니다. 농촌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가는 길에 간이역에서 기차를 갈아타는데, 기차가 단 1량이었습니다. 리트가 얼마나 작은 도시인지 대충 짐작이 갔습니다. 승객은 거의 우리 일행이 전부였습니다.

NORD. 북쪽구역. 서포터석이군요.

1량짜리 기차를 타고가며 소똥 냄새를 제대로 맡을 수 있었습니다. 소똥을 농사에 쓰는지, 아니면 주변의 목축업을 하는 농가가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림옆서 같은 유럽의 농촌에서도 소똥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리트는 정말 조용한 전원마을이었습니다. 인기척도 거의 없었습니다. 듣기로는 리트와 주변마을 인구를 다 합쳐서 1만5천명이라고 합니다. 정말일까? 눈에 보이는 규모로는 그보다 훨씬 적어 보였습니다.


구단 사무실 앞. 기념품 홍보부스. 서정원 맨 위 오른쪽.

길을 엉터리로 설명해 준 동네 주민 덕분에 가까운 거리를 빙 돌아서 어렵게 리트구단의 홈구장을 찾았습니다. "야! 이 정도면 딱 적당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아담한 구장이었습니다. 좌석은 약 8,000석 동네 주민 2명 중 하나가 와야 만원이라는데, 실제 경기마다 만원이라고 합니다.

서정원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친구처럼 대해 준 리트구단 직원

당시 서정원은 이 팀에서 발군의 실력으로 대활약을 펼치면서 2부리그에서 갓올라온 약체 리트를 1부리그 상위권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경기장 주위를 맴돌다 구단 관계자를 만나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경기장 전경. 많은 A보도 광고판이 부럽다.

서정원은 리트에 없었습니다. 당시 월드컵 해설을 위해 독일로 갔다고 합니다. 리트까지 먼 길을 갔지만 허탕을 친 셈입니다. 하지만, 뭐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가 돌아와서 "한국의 축구팬 대여섯명이 와서 당신 유니폼을 사갔다"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구단 직원들은 "기자가 아닌 팬이 온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시골 마을에 한국인이 올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소박한 벤치

리트 구단 직원들은 우리를 환대했습니다. 문이 잠긴 기념품 샵도 열어주고, 구단 사무실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작은 구단이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지도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당시 구단 창단과 운영이 지상과제 였던 부천FC와 서울유나이티드의 서포터로 구성된 우리 일행은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습니다.

2006 독일월드컵 조별 예선 3차전 응원을 위해 하노버로 가는 길에 들른 짤즈부르크.
서정원이 리트에 가기 전에 있던 곳

길에서 만난 리트 주민들은 "세오를 아느냐"는 질문에 엄지 손을 치켜들었습니다. 그는 리트에서 영웅이었습니다. 물론 리트역 앞에서 만난 한 더벅머리 총각은 같은 질문에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답했습니다. 어디나 인구의 100%가 다 축구팬은 아니겠죠? --;

하노버로 가는 기차. 이때까지는 좋았다. 하노버에서 울며 돌아올 줄 몰랐다.

아쉬웠던 점은 비시즌 중이란 구단 상품이 빈약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일행은 돈을 걷어서 필요한 물품을 적은 메모를 리트구단 직원에게 주었습니다. 사이즈가 입고되면 한국으로 보내달라며 명함도 주었습니다.

그렇게 돌아온 후 한달이 지나 사무실로 소포가 왔습니다. 리트에서 온 소포였습니다. 이런 옷에는 서정원 코치의 사인도 있습니다. 서 코치가 "정말 한국에서 팬들이 리트에 왔었느냐"며 신나게 사인을 했다는 에피소드도 메모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는 사인을 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사실 부천SK 서포터였던 나에게 그는 안양LG, 수원삼성 유니폼을 입고 우리를 공격하던 적이었습니다. 뿌연 기억이네요. 그가 수원의 퍼런 유니폼을 입고 우리측 진영에서 찬스를 맞을 때 "안돼! 세오!"라고 외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무튼 그는 지금 이집트에서 청소년 대표 코치로 있고, 그의 지도를 받은 공격수들은 2경기 연속 3골을 터뜨리며 8강에 가 있습니다. 오늘 4강 역사를 위한 한판이 벌어지는군요. 그리고 이렇게 난리를 치면서 리트까지 다녀왔는데 아직 서정원 코치를 직접 만나본 일은 없네요. 그냥 추억입니다.


서정원

안양 LG(현 FC서울) : 1992~1997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1998년
수원 삼성 : 1999~2004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 2005년 2~6월
오스트리아 SV리트 : 2005년 7월~2007년 5월
現 청소년 국가대표 코치




아래 동영상은 2000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 서정원의 극적 동점골 장면입니다.



<포스트 링크>

청소년 축구대표 입장에서 바라 본 코칭스탭 
청소년대표, 8강전의 적은 어수선한 경기장 분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