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2002년 9월 오사카를 방문했는데, 일이 끝난 후 도쿄에 갔습니다. 도쿄 인근 사이타마에서 열리는 축구경기를 볼 계획이었습니다.
당시 일시적 휴직자여서 시간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돈은 없었죠. 오사카에서 도쿄까지 신간센 12만원은 부담이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신간센 흡연석을 탔는데 3시간 정도 소요되는 긴 시간이었지만 담배를 마음껏 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때는 담배를 끊기 전이었으니까.
우라와 레즈 경기를 보기 위해 지하철에서 내려 경기장으로 향가는 팬. 가족단위가 많았다.
도쿄역에서 약 한 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옆의 부천정도. 내가 가야할 곳은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였습니다. 가까운 역 이름은 '우라와 미노소'.
사이타마는 도쿄 옆의 현이고, 우라와는 사이타마 현의 수도입니다. 사이타마에는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라는 미쯔비시 자동차가 설립한 프로축구단이 있고, 역시 사이타마 내에 있는 오미야라는 도시도 '오미야 아르디자'라는 프로축구단이 있습니다. 수원에서 뛰었던 주총련계 재일동포 안영학 선수가 요즘 오미야에서 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었던 장외룡씨가 감독으로 있습니다.
경기장 앞 간이 기념품 판매대. 상품은 다양, 소비자는 바글바글.
오미야가 "J1을 향해!"라는 내용의 포스터를 시내 곳곳에 붙였던데, 지금은 그들은 꿈을 이룬 셈이군요. J1잔류에 성공하고 있고, 외국인 선수와 감독도 선임할 정도니까요.
당시 우라와 레즈는 J1에 있었고, 오미야는 J2 또는 JFL에 있었습니다. 제가 보러간 경기는 우라와 레즈와 이제 막 J1에 올라온 센다이 베갈타의 경기였습니다. 지금은 센다이 베갈타는 J2로 주저 앉았을 것입니다.
우라와 미소노 역에서 내려서 멀리 보이는 사이타마 경기장을 향해 걸었습니다. 이미 역은 우라와 레즈의 상징색인 붉은색 물결입니다. 2002월드컵 거리응원 분위기입니다.
경기장 내부 복도. 더위를 피해 경기 전까지 휴식하는 사람들.
지하철 안에서 붉은옷을 입은 팬들은 온통 축구이야기 입니다. 아니, 우라와 레즈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축구경기가 없었을 1,2주를 어떻게 살았는지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연령대는 다양했습니다. 노인부터 어리 아이까지 옷은 대부분 붉은색이었습니다. 특히 가족단위가 많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이타마 스타디움은 2002 월드컵을 위해 신축된 축구 전용 구장입니다. 경기장에서는 2002월드컵 때 카메룬-사우디, 터키-브라질, 잉글랜드-스웨덴 그리고 일본-벨기에전이 열렸습니다.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 이들이 서포터가 아닌 일반 팬이라는 점이 놀랍다.
정원은 무려 6만3천명. 초대형 경기장인데요, A매치가 아닌 리그경기인데, 2층을 약간 빼고는 거의 들어 찼습니다. 팀 관계자는 "연간회원권은 이미 매진"이라고 했는데, 현장판매분은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포터석은 N석은 일찌감치 매진. S석도 자리가 없었습니다. 1층 자리도 없었습니다. 결국 2층 표를 사서 메뚜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티켓 가격은 3만원.
우라와 미소노역에 내려 경기장으로 걸을 때에는 30분 정도 걷습니다. 셔틀버스도 없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린 수천명의 붉은 응원단이 우르르 걸어갑니다.
경기장 앞. 간이 기념품 판매소가 있었습니다. 머플러는 모두 타올식. 가격은 우리 돈 2만원 선, 약 5종류, 티셔츠는 10 종류가 넘었고, 우리돈 4만원선.그 밖에 가방, 열쇠고리, 스티커, 볼펜 등 없는 게 없었습니다. 매대 앞은 사람들도 바글바글.
경기장 중앙석 1층을 서성거렸습니다. 주변에는 아저씨, 아줌마, 아이들, 할머니 모여 앉아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대형 깃발을 들고, 웃통까지 벗어제낀 한 아저씨에게 "당신은 서포터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우리는 서포터의 친구들"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신간센으로 2시간 도쿄로 와서, 도쿄에서 지하철로 1시간 30분. 사이타마까지 이렇게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 수천명이 센다이 베갈타의 승리를 기원하며 사이타마 스타디움을 찾았다. 서포터 고유 응원도구인 절단통천, 깃발, 게이트기 등이 보인다.
사이타마에서는 일반관중도 서포터처럼 응원을 합니다. 서포터는 아니지만 응원의 수준은 서포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강도가 좀 차이가 날뿐, 이들은 스스로 '서포터의 친구들'이라고 칭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모두 일어나서 펄쩍펄쩍 뛰지는 않았지만, 대형 깃발을 흔드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 아저씨는 맥주까지 사주며 “우라와 보이즈석(서포터석)으로 가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표는 매진이지만, 자리는 구해 줄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운데서 경기와 홈, 원정 서포터 모두 볼 수 있어 거절했습니다.
경기 시작 30분 전. 그러다 먼저 우라와 선수 하나가 뛰어 나왔습니다. 우라와 서포터는 거의 광란의 도가니 직전까지 갔습니다. 거의 5만의 관중이 자아내는 탄식은 중저음이 뛰어난 고급 오디오의 음향 같았습니다.
선수도 손을 흔들며 홈 관중에게 친밀함을 표시했습니다. 동네 동생, 형님 만난 듯이 흔들고, 광중석 가까이 다가와 인사를 하며 한두마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홈 관중과 선수가 매우 친밀해 보였습니다.
경기장의 수천개 깃발은 모두 기립. 전투를 위해 선수들이 하프라인에 도열했기 때문.
잠시 후 상대인 센다이 베갈타(vegalta) 선수들이 나왔습니다. 우라와 서포터의 야유. 인원이 많아서인지 야유가 정말 야유다웠습니다. 야! 이 정도면 상대가 위축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서포터 일반 관중 할 것 없이, 모두 센다이 선수들에게 뻑큐를 날렸습니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습니다. 수천명이 경기장을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날리는 뻑큐. --; 정망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라와 팬들은 상대와 우라와와 경기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에 대한 무한한 적대감을 나타내며 거의 증오심에 가까운 경쟁의식을 마음껏 드러냈습니다. 제가 우라와 선수라면 이런 홈팬의 기세에 눌려 경기에 진다는 생각을 못할 것입니다.
S석 센타이 서포터들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일단 인원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처음으로 J1에 올라온 팀인데, 지난 번 우라와가 센다이 원정 갔을 때 우라와 서포터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여 양측의 감정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대형 유니폼 통천을 펼쳐든 우라와 보이즈. 사람들 사이로 촬영되어 좀 아쉽습니다.
사이타마 오기 전 친분이 있는 우라와 서포터에게 연락을 했을 때 “경기 후 센다이 서포터 패주러 간다”고 말하며 경기 후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로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손님이 갔는데, 상대 서포터와 분쟁을 위해 무시하는 셈입니다.
다른 친구와 시간을 보냈지만, 한국의 정서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들은 손님 보다는 자신 스스로의 일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약이나, 중대한 일이 있으면 손님이 와도 일단 자기 일 먼저 다 하고 보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센다이 서포터들은 다른 서포터들이 에지간해서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우라와 보이즈를 건드렸습니다. 원정에서도 자기들 관중석에 레이스 풀고, 우렁찬 야유를 하는 등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순간순간 센다이 서포터가 더 사납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센다이와 사이타마는 원정을 다니기에는 먼 거리입니다. 줄잡아 4시간 이상 걸립니다. 그럼에도 센다이 원정 서포터의 규모는 수천명에 달했습니다.
골대 뒤를 꽉 채운 우라와 레즈 서포터들.
야유 공방 후 먼저 센다이 서포터가 응원을 시작했습니다. 일본 고유의 노래로 응원가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트위스트 시스터즈의 ‘위 낫 거너 테이크 잇’ 등 록음악도 많이 변형했습니다. 이 노래는 부천SK 서포터이고 지금은 부천FC 1995를 창단한 서포터 헤르메스가 90년대 후반부터 사용하던 응원가이기도 합니다.
센다이 서포터와 우라와 홈 관중 사이에는 거의 두 블럭을 비웠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경찰에 곳곳에 서 있었습니다. 이는 J 리그 다른 경기에서도 보기 힘든 것으로 우라와 홈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센다이가 좀 오래 설친다 싶은 생각이 들을 때 우라와 보이즈가 응원을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붉은 곰이 눈 앞의 노란 삵쾡이의 거친 재롱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용트림을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들의 첫 곡(?)은 클레멘타인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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