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football itself

2003년 한일전, 웃통 벗고 한국 응원단에 뛰어든 일본 응원단

by walk around 2010. 2. 3.

2003년 5월 31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한일전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접했던 한일전 중에서 관중석 분위기가 가장 살벌했습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2002 월드컵의 공동 개최국이었던 한국이 4강에 오른 것에 대해 질투를 느끼고 있었고, 경기장과 거리에 쏟아져 나온 붉은인파를 보면서 은근히 두려움도 느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분위기가 달아 올랐는지도 모릅니다.

위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기장은 푸른물결이었습니다. 원정팀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붉은악마와 재일교포를 비롯한 한국 응원단 약 2천여명의 제외하고는 모두 푸른색 옷이었습니다.

0-0으로 팽팽하게 맛서던 상황에서 맞은 하프타임 갑자기 일본서포터 울트라스 쪽에 있던 한 남자가 웃통을 벗은채 한국 응원단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도발입니다. 한국 응원단에서는 고함이 터졌고, 응원용 북이 일본 울트라스 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웃통 벗은 남자는 사람들에게 가려져 있네요.

신속하게 경찰이 투입되어 양 진영을 갈라 놓았습니다. 동그라미를 친 것이 일본 경찰의 모자입니다. --; 분위기는 신속하게 가라앉았습니다. 하지만 입씨름은 계속 됐습니다.

이때 느낀 것이 숫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붉은악마를 비롯한 한국 응원단은 두려워 하지않고, "그래, 너 잘 걸렸다"는 분위기라는 점입니다. "한국인이 경제대국 또는 인구대국인 일본이나 중국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서양에서는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2004년 5월 중국 창샤에서 공한증에 쩔은 중국 응원단 수천명이 불과 1~2백명의 붉은악마에게 달려 들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중국 공안이 막았지만, 그전까지 소수의 한국인들이 밀리지 않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맨 앞에서 중국 서포터 치우미를 영접(?)한 저도 별로 무섭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도 웃통 벗은 중년의 아저씨들이 있었는데, 차라리 웃겼습니다. 사진은 없네요. 아래 사진이 당시 모습입니다. 창샤 이야기는 후에 자세히 할 생각입니다.

이 경기는 아테네올림픽 최종예선이었고 조재진, 김동진의 릴레이골로 2대0으로 이겼습니다. 덕분에 중국은 공한증에 또 한번 쩔어야 했습니다.

경기는 후반 42분 안정환의 골로 1-0 한국의 승리였습니다. 이 사진은 경기가 끝났을 때입니다. 한국 팬들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곧장 나가지 않고 일본 팬들이 흩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남자야 그렇다 치고 여자와 아이들이 위험할 수 있었습니다. 

(치안이 잘 되어 있는 일본에서 설마? 일본은 J리그 경기 후에 패싸움이 자주 일어나고, 2002년 사이타마에서는 아이를 안은 여자(원정팀 유니폼을 입은)가 우라와레즈 서포터에 의해 머리채를 잡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 자세한 내용은 : 사이타마 우라와레즈 홈경기 관전기)

당시 울트라스와 입씨름을 한 사람은 재일교포였습니다. 하긴 일본말을 잘 해야 입씨름도 하지요. 왜 그랬냐고 물어봤습니다. "울트라스 쪽에서 '한국인은 열등 국민'이라는 식의 고함이 들려서 대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평소 일본 사회에서는 숨 죽이고 살고 있었는데, 주변에 같은 편이 있다는 생각에 그간의 울분을 쏟아냈다며 훌쩍였습니다.



경기장이 좀 잠잠해지자, 한국 팬들이 짐을 싸고 있습니다. 재일교포들은 화장실에 가서 붉은옷을 평상복으로 갈아입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일본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하니까요.

재미있는 점은 이때 일본 팬 중 상당수가 '대한민국'이라며 한국 응원을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참 스펙트럼이 다양한 나라입니다. 심지어 한 울트라스 회원은 저에게 오더니, "집에서 밤잠을 설치며 만들었다. 난 한국 축구를 좋아한다"며 밑도 끝도 없이 걸개를 선물했습니다. 아래 사진입니다. 아직도 이게 집에 있습니다.

경기장에서 나오자 도쿄거리에는 "일본이 한국에게 아깝게 졌다" 호외가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링크 : 일본신문, 축구 한일전에서 패하면 호외까지 뿌려

2월 14일에도 도쿄에서 동아시아선수권 한일전이 있습니다. 입장권은 구했고, 항공권이나 숙박도 해결이 됐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분위기일지 또 누군가 웃통 벗고 분위기 파악을 못할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