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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FC 1995

부천FC가 선물한 5분의 천국같은 시간

by walk around 2010. 3. 22.


어쩌면 제 인생에 가장 간절했던 축구경기였습니다. 지난 3월 20일 오후 2시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부천FC 1995와 천안시청의 경기. 2010 하나은행 FA컵 2라운드였던 이 경기는 부천FC에게는 너무나 중요했던 경기였습니다.

경기에서 이길 경우, 3라운드에 진출하는데 K리그 팀을 만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K리그 팀이었던 부천SK가 제주로 떠난 후 우여곡절 끝에 팀을 만든 부천SK 서포터 헤르메스가 다시 K리그 팀을 만나는 사상 유래가 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 부천FC와 그 팀을 지지하는 헤르메스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온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또 부천FC는 가난한 팀인데, 3라운드 진출할 경우 입장 수익 등 많은 부가수입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가뭄에 단비같은 소식입니다.



경기 내내 감당하기 힘든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목소리는 이미 경기시작 10분만에 나갔습니다. 후반 36분 부천FC가 선제골을 넣었습니다. 이럴수가! 제 눈 앞에서 기적이 시작된 것입니다. 천안시청은 내셔널리그팀입니다. 부천FC가 3부리그, 천안시청은 2부리그 팀인 셈입니다.

그리고 5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게 천국의 느낌일까요. 여기저기 사람들의 휴대폰이 박살나 구르고, 안경이 부셔졌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던 부천서포터는 그렇게 서로를 꽉 끌어 안았습니다.

하지만 선물은 거기까지. 후반 41분, 43분 잇따라 골을 내주었습니다. 그것도 첫 만회골은 과거 부천SK 시절 부천서포터의 영웅이었던 이원식이 주인공이었습니다.

패닉에 가까운 상태로 하루가 흐르고 어제 저녁, 축구장에 들고 갔던 가방을 풀었습니다. 가방만 봐도 고통을 복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방을 쌀 때의 설레임이 떠올랐습니다.


비가 올 때를 대비해서 모자를 챙겼고 집 밖에 나갔다가 되돌아 와서 수건도 챙겼습니다. 비를 맞으면 닦으며 응원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머플러. 낮 경기라고 선글라스도 챙기고, 날씨가 추울 것이라는 말에 양말도 하나 더 챙기고, 두통약과 치약/치솔까지. 경기장을 갈 때는 가장 아끼는 신발, 가장 아끼는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소중한 경기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입장권을 살 때 받은 팜플렛입니다. '역대 FA컵 성적'란에 '첫 출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첫 출전'이라는 단어를 보니, 전날의 패배가 조금 치유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네. 부천FC의 첫 도전이 그 정도면 할만큼 한 것 아닐까.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너무 아쉽지만. 잃은 게 너무 많지만.

제게는 이 경기가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이 걸린 경기보다 절실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끝났네요. 다시 K3리그가 시작됩니다. 부천FC의 도전도 다시 시작됩니다. 어차피 100년을 보고 시작한 도전입니다. 하지만 죽기전에 이루고 싶군요. 팬이 만들어 운영하는 구단의 세계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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