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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FC 1995

부천FC가 나를 실망시키는 방법

by walk around 2010. 8. 19.



부천FC의 경기를 무슨 일이 있어도 보러가고, 심지어 시간을 내서 구단에서 자원봉사를 하지만, 언제나 부천FC 때문에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부천FC 때문에 항상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어렵습니다. 

부천FC가 나를 괴롭히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올해 초 FA컵 1라운드에서 강호 고려대를 4-0으로 완파해서 한껏 기대를 키워 놓더니, 2라운드에서는 1-0으로 앞서다가 종료 5분을 남기고 2골을 내주고 무너지는 것은 아주 잔인한 방법이었습니다.

4연승을 한 후, 1박의 일정으로 기쁘게 떠난 삼척 신우전자와 원정경기에서 실수로 선제골을 내주더니 0-3으로 참패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비교적 약체로 분류되는 고양과 경기에서 고전 끝에 2-1로 겨우 이겨서 속을 태우게 만들고, 역시 약체로 분류되는 서울 마르티스와 경기 때 전반 고전하며 2골이나 내주면서 짜증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올해 전력이 현저하게 약화된 천안FC에게 0-1로 지는 수도 있습니다. 부천출신 선수들이 대거 입단한 서울유나이티드와 원정 경기에서 1-3으로 패하고, 비교적 약체 춘천에게 3골이나 내주고, 플레이오프의 주요 길목에서 경주에게 1-3으로 홈 첫 패배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징계를 받아서 관중을 경기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고

철문으로 경기를 보게하는 방법도 있군요.


부천FC는 올해에만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잔인하게 나를 괴롭혔습니다. 실제 경기마다 가슴을 조린 수많은 시간을 생각하면, 왜 돈 쓰고 시간 쓰고 친구와 가족과 함께 경기장을 가서 부천FC라는 고문 전문가를 만나는 지 모르겠습니다.

나뿐 아니라 경기장에 가면 경기를 보며, 성질을 내고 자증을 내며 꾸역꾸역 경기장은 물론 원정도 오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모여 앉아 부천FC가 선사하는 다양한 고문을 돈을 내고 온몸으로 당합니다. 이런 고통 속에서 골이 들어가고, 승리를 만끽 합니다. 고문 속에 맛보는 시원한 물맛이라고 할까요.

이래서 축구는 결국 "고통을 즐기는 종목"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이런 접근방법은 내가 표절한 것입니다. 닉 혼비가 <Fever Pitch>에서 먼저 한 말입니다.

"축구팀들은 대단히 독창적인 방법으로 서포터에게 슬픔을 가져다 준다. 우선 웸블리에서 벌어지는 빅 매치에서 선제골을 넣었다가 지는 방법이 있다. 1부리그 선두에 올랐다가 침몰하는 방법도 있다. 어려운 원정경기에서 무승부를 이끌어낸 다음 홈경기에서 지기도 한다.

어떤 주에는 리버풀같은 강팀에게 이기고 다음 주에는 약체 스컨토프에게 지기도 한다. 시즌 중반이 지날 때까지 승격될 것처럼 잘 나가다가, 갑자기 곤두박질쳐서는 강등되기도 한다. 이미 최악의 사태는 지나갔다고 안심하는 그때, 축구팀은 늘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축구 서포터의 심정을 참 독창적인 시각으로 설명했습니다. 서포터에게 자신이 지지하는 축구팀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고문전문가입니다. ㅎㅎ

부천SK가 제주로 떠나고, 부천FC가 출범해 한없이 행복했지만 지금은 매년 팀이 생존을 걱정해야 합니다. 어쩌면 부천FC 서포터는 닉 혼비보다 더한 고문을 당하고 있습니다. 닉 혼비는 적어도 팀의 존폐여부로 고문을 당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축구단을 연고이전으로 잃고 이렇게 퇴근 후

서포터 창고에 모여 울게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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