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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FC 1995

"왜 당신은 부천FC의 서포터인가"

by walk around 2010. 5. 26.




"시가와 파이프 연기, 욕설(전에도 들어보긴 했지만, 어른들이 그렇게 큰 소리로 욕을 하는 것은 그때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으로 남성적인 분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책을 읽으며 무한한 동질감에 메모를 하기는 오랫만입니다. 요즘 읽는 닉 혼비(Nick Hornby)의 <피퍼 피치(Fever Pitch)>에는 부천FC 열혈 서포터들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축구 서포터 중에서 유난히 남성적인 분위기의 부천서포터는 예나 지금이나 악명이 높습니다. 오죽 했으면 과거 부천SK 시절 상대팀 선수들은 부천FC 서포터만 만나면 혀를 내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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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상암에서의 FA컵 준결승 전북현대와 경기에서
경기장에 난입한 부천서포터를 질타하는 기사의 일부

잘 한 일은 아니지만 경기장에 난입하여 그라운드를 초토화시킨 적도 여러번. K3에 와서도 지난해 11월 7일 청주원정에서도 경기장 난입으로 구단이 2경기 무관중이라는 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팬들은 남은 시즌 마지막 2경기를 경기장 철문에 기대고 봐야 했습니다.(청주 건은 다소 과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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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문에 기댄 부천서포터의 응원

그렇죠. 한마디로 또라이들입니다. 또라이라서 부천에 팀이 없어졌을 때, 인근 인천유나이티드나, 수원삼성 또는 FC서울로 이적(?)하지 않고, 차라리 축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또라이라서 스타도 하나없는 팀을 3부리그에 만들었고, 과거 응원하던 팀보다 예산규모가 50분의 1에 불과한 작은 구단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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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피버 피치>의 내용입니다.

"솔직히 더비 카운티가 1부리그에서 꼴찌로 마감한 1990/91 시즌에 평균 1만7천명에 가까운 관중을 모았다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모든 시즌을 통틀어 최악의 축구경기라 부를만한 더비팀의 경기를 보러 적어도 열여덟번씩은 축구장을 찾아간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정말이지, 그들은 대체 왜 거기에 갔던 것일까?"

제가 빵 터진 부분입니다. 요즘 부천FC 관중을 보며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올해 다소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고 있습니다. 월드컵 열기를 타게 되면 부천FC 관중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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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FC 선수들은 대부분 엘리트 코스를 거쳤던 '유망주' 출신입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현재는 낮에 일하고, 밤에 운동 합니다. 훈련 여건이 그들에게 최고의 컨디션을 선사하지는 못합니다. 당연히 경기도 상위리그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기술적인 면은 비슷하다고 해도, 체력적인 면이 차이가 날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부천FC 팬들은 경기장을 찾아 갑니다. 대체 왜 그들은 경기장에 가는 것일까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축구장에 와 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증오했다는 것이었다… 경기를 보는 내내 즐거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킥오프 몇분 만에 분도가 터져나왔다. '이런 개망신이 있나!'"

이 내용을 보고도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정말 부천팬들 사이에 있어보면 자기팀에 대해서도 자주 성토를 합니다. 화도 냅니다. 다시는 축구장에 오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다들 다시 경기장에 옵니다. 그리고 책의 바로 다음 내용에서 가슴이 많이 아렸습니다.

"'고통으로서의 오락'이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고, 나는 내가 찾던 바로 그것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바로 그 개념이 내 인생을 형성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제대로 된 해석입니다. 고통으로서의 오락. 부천FC를 좋아하며 정말 터무니없는 고통에 시달립니다. 구단의 재정을 걱정해야 하고, 다른 관중들이 놀랄까봐 욕도 못합니다. 연승을 하면 구단 계좌에 승리수당이 충분히 있는지 걱정입니다. 후원사가 줄어들면 가슴이 청렁 내려 앉습니다. 결정적으로 내년에 다시 우리팀을 볼 수 있을지 공포에 빠지기도 합니다.

부천팬은 누구나 수원삼성 옷을 입고 수원에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눈치는 좀 보이겠지만 월드컵 대표가 있는 팀을 마음 편히 응원할 수 있습니다. AFC원정도 갈 수 있고, 외국인 선수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천 서포터는 흩어지지 않고 고통 속에 다시 부천FC를 보러 경기장에 옵니다. 와서 입장료 내고 봉사활동도 합니다. 미친거 아닙니까. 부천FC가 도대체 그들에게 뭐길래… 대체 그 이유가 뭘까요. 닉 혼비가 먼저 경험한 모양입니다. 그는 별볼일 없던 시절의 아스날 팬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섯 골과 토튼햄의 그 훌륭한 선수들도 나를 흥분시키지 못했다. 나는 고작 스토크를 상대로, 1-0으로, 그것도 상대 골키퍼가 막아낸 페널티킥을 도로 차넣어 근근이 이긴 팀과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다."

...

맞는 것 같습니다. 부천서포터. 적어도 K3의 부천FC를 지지하는 팬들은 다른 이유로는 설명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유없이 부천FC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를 이어 오직 이 팀만을 응원하겠노라고 하늘에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1주에 한번 이런 또라이들을 경기장에서 만나는 것은 내 인생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이런 집단을 만나는 것은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이유없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과의 한 평생이라… 정말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You will never walk alone"

6월 5일 토요일 오후 7시 부천종합운동장. 부천FC는 남양주시민구단과 경기를 갖습니다. 그리고 경기장에는 부천FC와 사랑에 빠진 많은 또라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커뮤니티 안으로 더욱 많은 '진짜 축구'를 찾던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링크 : 부천FC 1995 공식서포터즈 헤르메스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