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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FC 1995

부천FC 중독, 벗어날 방법이 없다

by walk around 2010. 6. 16.

"적어도 축구에 있어서 충성심이라는 것은, 용기나 친절같은 도덕적 선택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사마귀나 혹처럼 일단 생겨나면 떼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최근 제 블로그를 보신 분은 대강 짐작 하시겠지만, 역시 <Fever Pitch>에 나오는 말입니다. 닉 혼비의 이 독백은 사실 전세계 서포터의 불문율이기도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축구팬은 자신이 지지하던 팀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한 팀에 온전히 정신과 마음을 빼앗겼다면 그걸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바람을 피듯이 잠깐 동안 토튼햄을 기웃거리는 아스날 팬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축구팬에게 이혼은 가능하지만, 재혼은 불가능하다."


이런 축구판의 룰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부천FC의 서포터입니다. 부천SK가 제주로 떠났다면 간단하게 인천유나이티드나 수원삼성 또는 FC서울 등의 유니폼을 입으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저도 고향이 서울이고 부천이 고향인 사람은 많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팀이 사라진 부천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닉 혼비의 이야기처럼 이혼은 가능하지만, 재혼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부천의 골대를 향해 달려 오던, 그토록 증오하던 팀의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은 조국을 바꾸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차라리 축구를 안보는 게 낫습니다. 실제로 제 경우, 부천에 축구단이 없던 시절 DIY를 새로운 취미로 만들어서 주말마다 가구를 고치고, 집에 페인트 칠을 했습니다. 축구는 대표팀 경기 보는 게 전부였고, 그나마 흥도 나지 않았습니다.

"아스날로부터 도망칠 궁리를 했던 적도 많았지만, 그럴 방법은 전혀 없었다. 창피스럽게 패배할 때마다 인내와 용기와 자제심을 총동원하여 참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며,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불만으로 가득 차 몸을 비틀 따름이다."

부천FC가 사람 혈압을 올릴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형편없는 경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가난하고 돈 없는 구단이 수준이하의 구단 운영능력을 보주기도 합니다. 스타는 없고 주변에서도 이해를 잘 못합니다. K3에서 우승해도 내셔널리그 올라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당장 내년 재정이 걱정이라서 팬들이 팀의 생존을 걱정합니다.

하지만, 부천FC로부터 떠날 방법은 없었습니다. 팀이 실망시킬 때마다 괴로움을 극한을 오가지만, 1~2주일 후 또 경기장으로 향합니다. 경기내내 팀을 욕하면서도 다음 일정을 확인합니다. 홈 경기 뿐 아니라, 원정경기도 온가족을 다 데리고 전날부터 가서 경기를 기다립니다. 

그런 부천FC 중독자들은 늘어가고 있습니다. 적어도 스스로 서포터라고 자처한 사람이라면, 부천FC를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월드컵 대회 기간에 이따위 글이나 끄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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