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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FC 1995

당신은 어쩌다 부천FC의 수렁에 빠졌나?

by walk around 2010. 8. 21.

1990년대 중반. 프로축구는 동대문운동장에서 많은 경기를 했다. 당시 서울을 연고로 하는 팀이 무려 3팀이었다. 유공, 일화, LG가 그들이다. 하지만 연맹은 이들을 모두 서울에서 쫓아냈다. 이때는 경기장에 가서 축구를 봐도 별 감응이 없었다.

마이크를 든 응원단장. 트랙에서 응원을 유도하는 치어리더. 경기장은 산만함의 극치였다. 군 제대 후 "취미 하나 가져볼까"하고 동대문운동장에 왔다가 실망만 하고, 그 이후에는 알바를 하며 돈 벌기 바빴다.

서울에서 쫓겨난 유공은 부천을 연고지로 선택했다. 그런데 부천에는 경기장이 없었다. 1996년에 임시로 홈구장을 목동운동장으로 지정했다. 경기장을 목동으로 옮긴 후에 니폼니시 감독의 명성과 윤정환의 플레이에 매료되어 다시 부천의 경기를 기웃거렸다.

같은해 PC통신 유니텔을 시작하면서 유공인가 부천 게시판에 아마 첫 게시글인가를 남기면서 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도 유니텔에 올린 글의 제목이 생각난다. 니포 감독이 우리 대표팀을 위해 중앙아시아 쪽 팀들의 정보를 전해준다는 기사를 읽고 "니포 감독 고마워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고, 윤정환의 부상 소식을 듣고 "윤정환 때문에 미치겠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부천FC 선수들과 팬들

그 이후 어영부영 부천서포터가 되어서 여기까지 오고 있다. 그리고 딸을 포함한 온가족이 빠돌이와 빠순이가 되었다. 이후 2001년 부천종합운동장이 완공이 되어 첫 경기를 치를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천이라는 곳에 와 보았다. T.T

1995년에 니포감독이 일화에 있었다면? 윤정환이 LG에 있었다면? 축구인생은 180도 변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집이 인천 또는 부천이기 때문에 부천SK를 응원한 사람은 전체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서울지역 사람들이 절반이 약간 안되고, 나머지는 기타 지역 같다.

모두 사연은 천차만별이다. 불쌍한 사람들. 하필 부천을 좋아하게 되다니! 그리고 그들은 서포터가 되고서야 알았을 것이다. 축구단이 없어지면 야구를 보러갈지언정, 다른 팀으로는 갈 수 없다는 것을.(물론 그럼에도 다른 팀으로 간 사람들이 있긴 하다) 그들은 재미난 것이 넘치는 요즘 세상에 부천FC라는 아슬아슬한 축구팀을 키워가고 있다. 이성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물론 수준 높은 오락을 제공할수록 팬이 즐거워하는 관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더 나은 축구팀이라는 평가를 받는 토튼햄은 아스날만 한 서포터들을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재미있는 축구를 한다는 팀(웨스트햄, 첼시, 노위치)도 관중을 많이 모으지 못한다.

우리들이 원하는 것이 반드시 무슨 컵이나 리그 우승이 아닌 것처럼, 훌륭한 경기 내용도 아니다. 우리 가운데 이성적으로 응원할 팀을 선택한 사람은 거의 없다. 어쩌다보니 그 팀을 응원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팀이 2부리그에서 3부리그로 강등되거나, 가장 우수한 선수들을 팔아치우거나, 뻔히 경기할 줄 모르는 선수들을 사들이거나, 꺽다리 최전방 공격수에게 공을 제대로 패스 못하는 일이 700번이나 반복되어도, 그저 우리는 욕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 2주동안 전전긍긍하다가 다시 축구장으로 돌아와서 또 그 곤욕을 치르는 것이다"


하하하...

이 부분은 완전 '아바타'이다. 닉 혼비는 아예 부천FC 서포터를 대놓고 그린 것 같다. 우승해도 내셔널리그 못가는 리그, 과거 지지하던 구단의 1명의 선수 연봉과 비슷한 구단의 1년 운영비. 그래도 경기를 보며 성질을 내다가 다시 경기장으로 온다.

부천서포터도 재미있는 축구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주말에 할 수 있는 즐거운 일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안다. 토요일 오후에 주위에 모여앉은 침울한 얼굴들을 보면, 보기 즐거운 축구의 존재는 정글 한가운데 쓰러지는 나무의 존재와 같다. 우리는 그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왜 쓰러지는지를 제대로 이해할 입장은 아닌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부천FC와 한국을 찾은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 단장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중요한 것은 주말에 내가 경기장 현장에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곳에서 같은 팀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다. 경기 중에는 선수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야 하고(그래서 경기장 현장이 중요하고), 우리는 그렇게 커뮤니티를 이루는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초대형 클럽의 팬이었던 유맨 설립자들과 팬들은 맨유 경기를 '현장'에서 볼 수 없었으며(티켓 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이유 등), 그래서 팀을 잃었다는 심정이 되었고, 결국 팀의 수준과 상관없이 '내 품안에 들어오고 나를 인정해주는' 팀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나에게도 그리고 부천FC 팬에게도 축구의 수준은 두번째 문제다. 수준이 문제라면 그들이 경기장에 가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K3 수준도 만만치 않지만, 우리나라에는 더 수준이 높은 리그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부천FC, 그리고 그 팀을 둘러싼 구성원들의 커뮤니티이고,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즉 우리가 함께 한다는 의식과 지금 내가 응원하는 팀이 내 것이라는 주인의식이 핵심 가치가 되는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는소비가 전부이다. 제품의 품질은 중요하지 않다. 

다양한 이유로 부천FC의 수렁에 빠진 사람들.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거운 커뮤니케이션 속에 즐거운 커뮤니티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 파란색 글씨는 닉 혼비의 <Fever Pitch>에서 따온 글이다. 부천을 설명하는 글에 무리없이 녹아 드는 게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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