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football itself

스포츠스타는 당신들의 액세사리가 아니다

by walk around 2009. 5. 16.


"아~ 철수 걔? 내가 잘 알잖아. 한번 불러볼까?"

'철수'라는 이름 속에 알만한 스포츠스타 이름을 넣으면 얼마나 폼이 날까? 2002월드컵 직후라면 정환, 운재, 명보 뭐 이런 이름들이 '철수'자리에 들어가면 확실하게 잘 나가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스포츠스타가 잘 나가는 사람들의 일종의 액세서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가령 요즘같은 때에는 김연아, 박태환을 불러앉힐 정도의 힘을 보이면 제대로 뽀대가 날 것이다.

15일 역도선수 장미란이 "훈련에 전념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글을 언론사에 보냈다고 한다. 각종 행사에서 장미란 선수를 너무 많이 찾아서 훈련에 지장을 받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고충이 심했는지 짐작이 간다.

현재 K리그 한 구단의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 한 인사는 예전에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운동선수를 술자리에 부르는 것을 자기과시로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의 저변에는 스포츠스타를 연예인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물론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는 연예인과 같지만, 월드컵·WBC·올림픽 등에서 보았듯 그들은 우리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고, 국가적 자부심을 높일 수 있는 일종의 '전사'다. 그들에게는 국가적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혹독한 훈련이 필요하고, 고도의 집중력도 필요하다.

어쩌면 이런 분위기 때문에 될성부러운 스포츠 선수가 나타나면 팬들이 "제발 외국으로 나가라"고 노래를 부르는지 모르겠다. 박지성이 한국에서 생활을 했다면, 그의 표현대로 '축구감옥'에서 살 수 있었을까?

몇일전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 한 유명 스포츠스타를 두고 "싸가지가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광고를 만들 때 시간을 재촉하고 섭외를 할 때에도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수요가 많으면 공급이 부족한 것은 상식이다. 찾는 곳이 많으면 제한된 시간을 활용하는 와중에 모든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당연히 섭외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 선수가 광고만드는 사람에게 "이런 일 해서 얼마나 버세요"라며 비아냥 거린 것도 아닌데, 시간이 없고 섭외가 어렵다고 싸가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는 부탁을 거절하기 참 어렵다. 권력있는 정치인이, 힘 있는 관청에서, 친척이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인간관계가 폭 넓은 연예인이 부르면 무작정 거절하기 힘들다. 누가 감히 이들의 부름을 거절하겠는가.

마케팅 대행사가 여러 곳에서의 부름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지만, 우리나라 안에서 사업을 해야하는 대행사는 오히려 힘 있는 자의 부름을 거절하기 어렵다.

심지어 장미란이 언론사에 보낸 글에서 보듯 사전에 협의도 없이 "누가 온다"고 홍보를 해버리면 스포츠스타 입장에서는 참 난감하다. 스포츠스타가 현장을 찾지 않을 경우, 사정을 알리없는 대중들은 "성공하더니 싸가지가 없다"며 씹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미래가 촉망되던 많은 스포츠선수들이 젊은 나이에 이리저리 불려다니다가 어떤 연예인과 사귄다는 루머가 돌더니 금새 망가져버린 사례는 흔하다. 선수자신의 자제력도 문제지만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고 액세서리처럼 달고 다니려는 어떤 사람들도 문제다.

김연아가 집중 훈련이 필요할 때는 캐나다로 떠나고, 박태환도 떠나고, 젊을 때 외국으로 진출한 축구선수가 빛을 보는 것은 우리나라에서의 시달림을 벗어났기 때문일지 모른다.

스포츠스타는 액세서리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를 대표해서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고, 몇명 앞에서 부끄럽게 앉아 있는 것보다 수만명 앞에서 당당하게 승리해 국가 전체를 열광시키는 것이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진짜 잘 나가는 사람, 잘 나가는 기관이라면 통 크게 스포츠스타들에 대한 관심을 접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