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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football itself

손님은 없는데 종업원이 고액 연봉 받는 식당?

by walk around 2009. 8. 18.

한국축구, 변해야 한다 ①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하루에 손님이 10명 정도 오는 식당입니다. 손님은 적지만 좌석은 100석이나 됩니다. 인테리어도 화려합니다. 요리사는 2명, 서버는 3명이 근무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식당의 요리사, 서버 등 모두 5명의 종업원이 월 수백만원을 받는 고액 연봉자라는 점입니다. 이 식당의 메뉴는 5,000원정도. 하루 평균 5만원, 월 평균 150만원을 벌어들입니다. 하지만 종업원의 연봉은 요지부동입니다.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식당입니다. 경제논리로도 일반 상식으로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수익구조를 갖고 있는 사업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일부 프로축구 구단이 그렇습니다.

외부에 정확한 액수는 공개되지 않지만, 많게는 200억 적게는 수십억원의 예산을 갖고 선수들에게 후한 대접을 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후한 대접의 의미는 손님 수, 즉 관중 수에 비해 후한 대접이라는 의미입니다.

국제규모 경기장에 한 경기에 수백명에 불과한 경기가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선수들의 연봉은 1억이 기본입니다.

이 같은 수익구조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제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기업 덕분입니다. 이들은 프로축구 구단을 수익이 아닌 홍보의 도구로 간주했기 때문에 수익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더 큰 홍보효과와 기업의 묘한 자존심 경쟁이 겹쳐서 스타선수의 몸값은 시장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올랐습니다.

한국 프로축구는 이런 기형적인 구조를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프로축구가 모기업의 홍보의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이런 관점은 기업에도 구단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프로축구와 모기업 홍보의 공멸 시나리오는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 한국 프로축구 경기의 관중 수는 한심한 수준이다. 요즘 공식 발표되는 관중 수를 믿는 순진한 사람은 없다. 뻥튀기해도 1~2천명인 경기도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18일 K3리그 부천FC 1995와 잉글랜드 7부리그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의 경기 장면. 이날 폭우 속에 약 2만5천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일본 프로축구도 한국과 비슷한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일본 이야기도 복잡하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관중 감소 등 매출이 줄어들자 1999년 본적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먼저 고비용 구조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의 연봉 수준을 반으로 싹둑 잘랐습니다. 그리고 신인의 연봉 상한을 정하는 등 자국 선수들의 연봉도 대폭 삭감했습니다. 그밖에 리그와 소속 구단을 살리기 위한 몇 가지 극적인 조치가 있었지만 일단 금전적인 면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결과 J리그는 부흥했습니다. 비용을 줄이고 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민 결과, 관중 수익만으로도 구단이 운영될 정도의 팀이 속속 생기고 있습니다.

다행이 우리 프로축구계의 분위기도 변하고 있습니다. 수년전만 해도 대부분의 K리그 팀들이 대기업 소속이었습니다. 지금은 선수들에게 과도한 연봉을 지급할 여력이 있는 대기업 산하 구단이 K리그 전체 15개 구단 중 9개 입니다. 지자체의 도움으로 기업의 후원을 받아 어렵게 운영되고 있는 구단이 5개 입니다. 광주상무 같은 특수한 형태의 구단이 1개 있고요. 그리고 대기업 산하 구단 중에도 실탄이 넉넉하지 않은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게다가 아시아축구연맹(AFC)의 엄포 덕분에 대기업 소속팀이 독립법인으로 분사하면서 과거처럼 모기업이 자금이 부서간 이동이라는 간단한 절차가 아닌 법인간 이동이라는 쉽지 않은 절차를 거치게 됐다는 점도 한국 프로축구를 둘러싼 극적인 변화입니다.

전반적으로 볼 때, 한국 프로구단도 은근히 구조조정을 원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셈입니다.

자발적인 계기는 아니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변화인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프로축구 선수들은 구단이 버는만큼 연봉을 받는 경제논리 속에 포함되는 '정상적인 사회인'이 되어야 합니다. 손님은 없는데 높은 급여를 받는 상상 속의 식당 종업원과 같은 처우는 장기적으로 선수에게도 축구계 전체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 아래 기사는 2012년 2월 21일자 경향신문의 칼럼입니다. 아주 좋은 내용이네요. 문제제기가 늦었다 생각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문제제기입니다. (링크 : [기자의 눈]축구선수 프라이버시와 연봉 공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