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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The Fan

우리나라 축구장 관중석, 너무 얌전하다

by walk around 2010. 6. 24.

2002년 월드컵은 축구를 보는 자세에 약간의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경기장이 잘 보이는 경기장 중앙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누가 잘 하고, 누가 실수를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전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2002년에 붉은악마 응원 방법이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고 거리 응원을 통해 학습할 기회가 제공되면서 '선수들과 함께 하는' 응원이 알려질 기회를 잡았다. 그럼에도 K리그나 내셔널리그, K3리그 경기장 관중석은 아직도 너무나 조용하다. 심지어 월드컵이 아닌 국가대표 경기장도 차분하기만 하다.

일부 관중이 상대팀에게 야유를 하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매너가 없다"고 비난하기 일쑤다. 상대를 비꼬는 응원구호가 나오면 인상을 쓰기도 한다. 상대팀이지만 한국을 찾은 손님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리그에서도 마찬가지다.

축구는 그런 종목이 아니다. 2002년 한국팀이 경기를 갖는 모든 경기장에서 상대팀이 찬스를 잡았을 때는 큰 야유가 나왔다. 중계는 되지 않았지만, 경기장 골대 뒤에서는 상대 선수들에게 영어 속어가 난무했다. 이탈리아와 경기 때 "비에리! 뻑큐!"라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비에리가 선제골을 넣고 응원석을 가리키며 손가락 질을 하고 조용하라는 제스쳐를 했는데, 아마도 자신에게 육두문자를 날리던 한국 팬에 대한 도발이었을 것이다.

당시 한국에 패한 팀들은 심판 탓을 하거나 한국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는 비난을 했지만 관중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당연하다. 그들에게 거친 관중은 생활이다. 월드컵에서 졸전을 펼치면 공항에서 토마토로 맞을 각오를 해야하는 게 그들이고, 리그원정 경기에서 무지막지한 비난과 비아냥을 들어야 하는 게 일상이다.(박지성이 아이트호벤에서 홈팬에게 당했던 야유를 생각해보라!)

신이 난 우리(아스날 팬)는 당시로선 최신곡이었던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노래에 맞추어 "찰리 조지! 슈퍼스타! 당신은 몇 골이나 넣었나요?"라고 소리를 질러댔다.(그러면, 더비 팬들은 전국의 다른 팬들이 그랬던 것처럼, "찰리 조지! 슈퍼스타! 여자처럼 브라자를 찬다지요!"라고 응수했다.

<Fever Pitch>에서 살짝 소개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팬들의 응원이다. 최근 티켓값이 올라서 관중석에는 유니폼 대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경기장 폭력에 대한 사전예방이 강화되면서 전체적으로 얌전해지기 전까지 프리미어리그 관중들의 응원은 풍자와 비아냥의 한마당이었다. 상대 선수에게 "당신이 골을 넣는 순간, 당신 아내는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식이다.

욕을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머, 비꼬기, 야유 정도는 응원의 일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박자성에 대한 개고기송도 유머의 일종).

<Fever Pitch>에서는 그밖에 "네놈 머리통을 차버릴 테다", "런던 앰뷸런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게 될꺼야", "밖에 나가면 두고 보자" 등의 응원가가 소개되고 있다.

많이 아는 이야기지만, 2002년 월드컵 예선의 우루과이과 호주의 플레이오프에서 호주는 홈에서 진행된 1차전에서 1-0으로 이겼다. 하지만 우루과이에서 속개된 2차전에서 우루과이에게 0-3으로 패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호주팀이 2차전을 몬테비데오 공항에 도착했을 때 우루과이의 팬들이 호주 선수들에게 침을 뱉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 심지어 목을 베는 시늉을 하며 "너희들이 경기에서 이기면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고 위협했다.

2006 독일월드컵 때 이 두나라는 또 만났는데, 호주는 이때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루과이 주변국에 있다가 경기 직전에 우루과이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있다. 결국 2006년에는 호주가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축구의 매력은 팬이 경기결과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력이 약한 팀의 팬들은 "선수뿐 아니라 내가 잘 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분명한 동기를 갖고 경기장에 들어설 수 있다. 팬이, 특히 서포터가 12번째 선수라는 표현은 그래서 정확하다.

2006 독일월드컵 스위스전 직전 기세를 올리는 스위스 응원단.
축구장과 하노버 시내 곳곳에서 본 그들은 깔끔하고 조용한 스위스의 국가 이미지와는 딴판이었다.
오히려 강하고 배타적인 모습이었다. 스위스 전체가 아닌 스위스 축구팬만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스위스팬들이 얼마나 과격하고 위협적인지 경기전날 하노버 시내를 나다니는 게 꺼려졌다.
실제 하노버 시내에서는 한국인 여성이 스위스 응원단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진 것도 억울한데, 스위스 팬에 폭행당해)


한국과 경기하는 상대팀 선수들을 곱게 대해줄 필요가 없다. 2006 독일월드컵에서 홈구장 분위기를 만든 스위스 팬들은 경기 중에 마음껏 야유하고, 경기 후 한국을 조롱하고 한국 팬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업사이드 상황에서 골을 넣고 기뻐하며 항의하는 한국 선수들을 조롱했다.

당시 현장에서 분한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와 중에 한국 여성에서 추근대는 스위스 남자들이 있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일본에서 열리는 한일전에서 일본 관중이 한국팀에게 보내는 야유도 상당하다.

관련 게시글 :
한일전의 한국 대표팀, 일본 서포터 야유 속에 등장
이동국의 PK 방해하는 일본 서포터

우리 경기장은 너무 얌전하다. 축구에서 상대팀은 손님은 아니다. 손님하고 승부를 가른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적이라고 표현하기는 좀 과격한 느낌이지만, 어쨌든 이겨야할 대상이다. 그리고 승리를 위해 관중이 참여해야 한다. 유독 축구에서 중요한 경기를 홈앤드어웨이를 굳이 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K3리그를 비롯한 각급 리그도 마찬가지다.

(이번 16강전 우루과이와 경기 때, 한국팀은 스위스나 일본보다 훨씬 더 과격한 상대팀의 팬들을 만날 것이다. 적어도 기사를 통해서 보건데, 우루과이 팬들은 자신들이 우승후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호주에게 한 것을 보면 대강 경기장 분위기가 짐작이 간다.)

※ 아래 내용은 2012년 2월에 추가


2012년 2월 6일. 첼시와 맨유의 경기. 루니가 PK를 할 때, 첼시 팬들(어른쪽)이 야유와 손짓으로 PK를 방해하고 있다. 정지 영상이지만, 동영상으로 볼 때는 정도가 이 보다 심했다.


2012년 2월 26일 아스날과 토트넘의 경기. 토트넘의 아데바요르가 PK 준비를 하고 있고, 역시 뒤의 아스날 팬들이 머플러와 손을 흔들고 야유하며 하며 방해한다.(물론 두 팀이 특수 관계지만, 그렇다고 아스날 팬들이 토트넘 PK 때만 이러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