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부터 2002년까지 도쿄인근 치바현 가시와시를 연고로 하는 가시와 레이솔 구단 팬들은 행복했을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가시와 구단은 한국의 대표적인 두 선수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황선홍과 홍명보입니다.
2007년 12월 월간축구 베스트일레븐 황성홍과 홍명보의 가시와 레이솔 시절 소개 기사
홍명보는 1999년부터 가시와에 있었고, 전남에 있던 황선홍이 후에 합류했습니다. 당시 홍명보는 한국인 선수로서 이례적으로 팀의 주장을 담당하며, 팬들 사이에서 '신'의 호칭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함께 가시와의 홈구장인 '가시와 노하 파크 스타디움'에서 뛰었습니다. 지금은 히다치 가시와 축구장이 생겨서 노하 파크 스타디움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새 구장은 전용구장이니까요.
노하 파크 스타디움은 전형적인 지방도시의 종합운동장이었습니다. 잔디의 상태는 당장 A매치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가시와 구단이 잘 사용을 하지 않으니, 보다 하위 레벨의 경기가 주로 열리는 모양인데, 2009년 11월 방문했을 때에는 동네 유소년팀이 경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라커는 매우 평범했습니다. 하지만 깔끔했습니다. 수납 공간은 부족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라커에는 여자 화장실과 남자 화장실이 나눠져 있는데, 그다지 의미는 없습니다. 남녀 혼성경기는 없기 때문이죠. 샤워실도 좋았고, 온수도 잘 나왔습니다. --;
지방 경기장 치고 경기장 관리를 위한 장비가 장난이 아닙니다. 잘 보이지 않지만 용달차도 있고, 각종 도구가 아기자기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국내 주요 경기장도 많이 가봤지만, 이렇게 장비가 많은 곳은 드물었습니다.
본부석은 평범했습니다. 최근 지어지는 우리나라의 지방구장은 이 정도를 능가합니다. 물론 이 노하 파크 스타디움은 한눈에 보기에도 10년은 훌쩍 넘어 보였습니다. 당시에는 참 좋은 경기장이었을 것입니다. 언제 지어졌는지 확인하고 올껄 그랬습니다.
이 사진이 참 중요한 사진인데요. 서포터즈석이라고 할 수 있는 N석과 S석의 의자를 없애고, 손잡이를 달았습니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앉아서 볼 사람이 없으니까 손잡이 잡고 펄쩍펄쩍 뛰면서 축구를 즐기라는 배려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구장이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건의해본 적은 많지만, "종합운동장에서 축구뿐 아니라 다양한 종목이 경기를 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곤 했습니다.
아무튼 가시와는 많은 노력 끝에 꽤 괜찮은 팬 집단을 가진 구단이 된 모양입니다. 주요 경기 장면을 보면 가시와 서포터즈의 포스도 꽤 강해 보입니다. 물론 이제는 그 서포터석에 '홍명보 神'이라는 현수막은 사라졌지만. 이 두 선수가 가시와에서 활약하던 시점을 기점으로 가시와 서포터가 늘고, 힘도 더욱 강력해졌다고 합니다.(아래 사진)
가시와에서는 잠시 이충성이라는 일본으로 귀화한 제일교포 3세가 뛰었습니다. 지금 그는 아마 노정윤이 뛰었던 산프레체 히로시마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대표 노크했다가 탈락한 후, 일본 귀화 후 일본 올림픽 대표로 발탁되기도 했습니다. 아래 링크는 그가 가시와 시절 뛰었던 모습입니다. 가시와 서포터의 모습과 선수의 팬 서비스 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팀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은 듯 합니다.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q9NMhByKc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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