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박지성을 보는 영국인들, 남아공을 보는 한국인들

by walk around 2011. 7. 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지난 5월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바르셀로나를 만났습니다. 박지성은 선발이었습니다. 박지성은 뛰고 또 뛰었지만, 팀의 1-3 패배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팀은 졌지만, 박지성의 플레이를 비난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전체적으로 바르샤에게 털린 경기였고, 그나마 박지성은 그와중에 페이스를 지킨 맨유의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경기 후 느닷없이 일부 영국 매체에서 박지성 책임론이 제기됩니다. 대부분 동의하지 않은 억지스러운 책임론이지만, 개운치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동양 선수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진설명 : 맨유가, 특히 박지성이 알렉스에게 털렸다는 기사의 사진과 캡션.
기사의 필자는 Sachin Nakrani. 이름보고 일본인줄 알았는데, 백인이다. 트윗 아이디 : @sachinnakrani)

2년 전 두 팀은 역시 결승에서 만났습니다. 0-2로 맨유가 또 졌고, 박지성도 그 경기에 뛰었습니다. 역시 일부 매체는 박지성의 플레이에서 패배의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이런 박지성에 대한 지나친 저평가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또는 근거없는 문화적 우월감도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는 이런 저평가의 서러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88 서울올림픽 유치 후 개최 가능성을 끊임없이 의심 당했습니다. 안전성, 경기장 시설 등 모든 게 밖에서 보기에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2002 월드컵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코리안 디스카운트는 스포츠에서도 유효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막연한 깎아내리기에 대해서는 피해자이면서 잔인한 가해자이기도 합니다.

2006 남아공월드컵에 대해 우리 미디어는 깎아내리기 바빴습니다. 특히 치안문제 등은 완전히 최악으로 묘사됐습니다. 간단한 안전수칙을 준수하면 대부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나라이지만, 극도로 위험한 나라로 묘사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전을 이유로 남아공행을 포기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남아공으로 월드컵을 관전하러 간 사람들은 경기가 없으면 숙소에 머물기 일쑤였습니다.

저도 남아공에 가려다 직장 문제로 못 갔지만, 남아공행이 취소됐을 때 주위에서 모두 "위험한 곳에 안가서 다행이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막상 남아공 월드컵을 TV로 보니, 뭔가 좀 이상했습니다. 일본과 네덜란드 경기. 선수들이 입장할 때 해설자는 "경기장이 장관입니다. 지금 오렌지 빛 물결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고..." 네덜란드 응원단은 그 위험한 남아공에 수천명이 간 모양입니다. 남아공에 네덜란드 피를 받은 사람이 많죠. 하지만 관광객도 많았습니다. 일본인도 득실득실했습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네덜란드 응원단)

(일본 사람들도 남아공을 무더기로 찾았다)

미국과 슬로베니아 경기는 그렇게 위험하다던 요하네스버그였지만 미국 관중들은 역시 수천명이 찾아갔습니다. 



우리나라 응원단은 경제력이나 인구 규모에 비해 참 적었습니다. 개별 참가자는 거의 없었고, 붉은악마처럼 단체로 가거나, 기업 이벤트 또는 방송국 촬영 관련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많은 분들도 남아공이 위험하다는 말에 지레 남아공행을 포기했습니다. 물론 남아공에서 사고가 더러 있었지만, 그것이 엄청난 수준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아래 사진의 호주 사람들에게도 남아공은 같은 남아공이었습니다.


용기있게 남아공 개인 여행으로 월드컵을 즐긴 한국인들은 남아공을 만끽했습니다. 아래 링크를 보시죠.

http://worldcup.tistory.com/2460489
http://worldcup.tistory.com/2460485

어쩌면 우리가 남아공에 대한 지나친 우려는 남아공 디스카운트는 아니었을까요? 어떤 상황, 사람, 조직을 판단할 때 '우리보다 또는 나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지레 깎아내리는 행위.... 거의 야만에 가까운 행위로 생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