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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FC 1995

2000년 그날처럼 부천과 수원이 경기를 합니다

by walk around 2011. 7. 15.

1999년 어느 날 부천SK는 어쩐 일인지 특유의 세밀한 플레이는 어디다 두고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합니다. 결국 수원삼성에 1-5로 대패합니다.

그리고 2000년 5월 리그 개막전. 부천SK는 수원으로 원정을 갑니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기적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부천SK가 지난해 패배에 대한 살풀이라도 하듯 골을 쏟아냅니다. 골을 넣어도 공격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5-1으로 승리합니다. 부천SK 역사에 남을 대승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축구사이트 web2soccer는 이 장면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그 영상을 운 좋게 저도 다운 받아서 가지고 있습니다. 화질은 안습입니다.


이 경기는 현장에서 보았는데, 감수성 주민인 저는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분통 터진 기억을 치유해준 선수들에게 너무 고마웠습니다. 화면이 흐리지만 추억의 멤버들의 모습은 실루엣만 봐도 기억이 납니다.

자정이 지났으니 오늘이군요. 오늘 오전 11시. 진짜 부천의 축구단 부천FC 1995가 수원 연고의 내셔널리그 구단 수원시청과 경기를 합니다. 줄여서 말하면 예전처럼 부천과 수원의 경기입니다. 그렇게 부르고 나니, 많았던 부천SK과 수원삼성의 경기가 생각이 나고, 그중 앞서 소개한 경기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부천FC는 이미 그제 용인시청을 승부차기 끝에 잡았습니다. 경기 내용은 대등했습니다. 오늘 경기할 수원시청은 현재 내셔널리그에서 용인시청에 비해 승점 2점 앞서고 있습니다. 전력차이가 크지 않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천이 해볼만 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창단 후 역사가 오래지 않아, 이번 전국체전 예선에서 뭔가 보여줘야 했던 용인시청과 달리, 수원시청은 체전에 대한 열의가 크지 않을 것으로 파악됩니다. 아니, 그렇게 여기고 싶다는 게 맞겠군요.

그리고 부천은 2010 FA컵에서 당시 내셔널 최강 천안시청과 대등한 경기를 했습니다. 이번 상대는 당시 천안시청보다 약하고, 부천FC는 그때보다 더 강합니다.

부천FC는 부담을 갖지 않고 신나게 하는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나타냈습니다. 연습경기에서 보여주는 속도와 자신감을 보여준다면, 수원시청은 이미 잡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내셔널리그 팀의 경기를 가만히 보면, 의외로 선수들이 체력이 약합니다. 오늘 경기는 양팀의 기량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체력과 이에 따른 집중력이 변수인데, 이런 변수들은 부천FC 선수들이 극복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가난한 구단 부천FC는 이번 체전예선에서 당초 예상과 달리 승승장구하면서, 초과 지출이 되어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 문제는 나중. 일단 대회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 이겨서 도대표가 될 경우, 초과지출을 제하고도 선수단에게 톡톡하게 인심을 쓸 정도의 지원금도 있다고 하는군요. 잘 하면 컵대회 참가 자금도.. ㅠ.ㅠ

아무튼 옛 생각이 나게하는 부천과 수원의 경기. 결과도 앞서 소개한 옛 경기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고생이 많은 부천FC 팬 여러분 좋은 꿈 꾸세요. 고생 많이 하니까 즐거운 날도 있을 것이라 믿으며…



※ 아래글은 2000년 5월 4일 수원전 후기입니다. 그떄 감격이 생생하네요. ㅠ.ㅠ
 
스타군단 수원과 탄탄한 미드필드의 부천의 리그 개막전

2000년 5월 14일 수원종합운동장. 부천과 수원의 리그 개막전이 벌어졌다. 당시 수원에는 서정원, 고종수, 박건하, 이성남 등 스타 선수가 즐비했고 원정경기였기 때문에 어려운 경기가 예상됐다. 위안이 되는 것은 리그를 앞두고 벌어진 컵대회에서 부천이 1승 1무로 우세했다는 점이었다. 이임생-강철의 수비와 이을용-김기동의 미드필드 라인도 해볼만 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팬들의 설레임과 환호 속에 경기가 시작됐다. 양팀의 치열한 공방전. 그러나 수원이 다소 우세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것 같았다. 사이드로 공를 빼서 패스를 통해 문전 앞으로 공을 몰아가는 부분 전술이 돋보였다. 한번 비기고, 한번 이겼으니 이번에는 질 차례인가. 장신 비탈리가 수비진 사이에서 자리를 잡고 능숙하게 수비를 등지고 찬스를 노릴 때마다 불안했다.

그러나 전반 17분 흥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골키퍼 이용발이 길게 차 준 공을 이성재가 수원 골에이리어 앞에서 잡았다. 멀리서 날아온 공을 잘 잡았다고 느끼는 순간. 이성재의 발을 떠난 골은 그대로 수원의 골대 그물을 출렁이게 했다. 1-0

양팀의 경기에서 선취골은 큰 의미였다. 앞서 벌어진 컵대회에서 양팀은 1-1 또는 1-0의 승부를 냈기 때문에 한골의 의미가 유난히 컷다.

선취골을 넣은 부천의 움직임이 좋아졌다. 부천은 트레이드 마크였던 오밀조밀한 미들 패스는 물론 경기장을 크게 흔드는 크로스와 종패스로 쉴새없이 공격의 활로를 뚫었다. 후반 33분 이번에는 윤정춘이 기회를 잡았다. 혼자 공을 좀 길게 몰고 간다 싶더니 수원 페널티 에이리어 정면에서 그대로 추가골을 결정지었다.

원정을 떠난 부천 서포터는 승리를 확신하며 열광했다. 이 정도 되면 승기를 잡은 쪽 서포터는 힘든 줄 모르고 응원을 하게된다.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선수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상대 문전 앞에서 아슬아슬한 찬스를 만드는가 싶더니 기어이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2-0도 만족할만한 점수 차이인데, 이제 3-0이 눈앞에 온 것이다.

선수단이 키커를 두고 설왕설래 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골키퍼 이용발이 상대 진영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당시 이용발은 정확한 킥으로 눈길을 끌곤했다. 승부차기 단골 키커였고, 후반 이원식 등 공격수의 빠른 발을 이용해 역습을 할 때에는 예의 정확한 킥으로 쇄도하는 공격수 앞 쪽에 공을 떨궈주곤 했다.

이용발은 페널티킥을 침착하게 성공시켰다. 전반 40분에 3-0. 이미 승부의 추는 기울었다. 원정 서포터는 모처럼 수원전에서 여유있는 하프타임을 맞았다. 후반에는 어떤 경기가 펼쳐질까. 기대가 컷다.

스트라이커는 물론 골키퍼도 골을 넣은 전반 “하지만 설욕은 끝나지 않았다”

후반 초반. 잠시 수원의 반격이 거세지는 것 같더니 이내 부천의 공격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3-0으로 앞서고 있었지만 부천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앞서는 상황에서 철저하게 수비 축구로 일관하고, 최대한 시간을 지연하는 플레이를 하는 일부 팀과 달리 부천은 예나 지금이나 앞서는 상황에서도 공격을 늦추지 않는다. 덕분에 다 이긴 경기에서도 공격을 하다 역습을 허용하는 바람에 비기거나 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부천을 미워할 수 없는 것은, 부천 팬이라면 누구나 당당하게 플레이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축구는 기본적으로 골을 넣어서 승리를 하는 스포츠이며, 앞서는 상황에서 억지로 시간을 끄는 것은 K리그의 발전과 리그 흥행을 위해서도 결코 좋지 않다.

계속해서 추가 득점을 노리던 부천은 후반 15분 스트라이커 곽경근이 4번째 골을 넣었다. 원정 서포터 진영은 광란의 도가니였다. 4-0은 축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점수차이다. 상대는 당시 수도권 라이벌로 지목되던 수원이었다.

이때부터 부천 응원단에서는 “한 골 더!”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4골도 배부른데, 한 골을 더 넣으라니…. 사연이 있었다. 99년 8월 28일 당시 부천구단이 홈경기장으로 사용하던 목동운동장에서 벌어진 수원과 리그경기에서 부천이 수원에게 1-5로 대패한 일이 있었다. 수원은 용병 샤샤의 4골과 비탈리의 추가골로 부천클럽 역사에 길이 기억될 참패를 안겼다. 부천은 주로 후반 20분 이후에 출전하던 ‘후반전의 사나이’ 이원식을 후반 시작부터 투입하는 등 경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샤샤-비탈리-서정원-고종수로 이어지는 수원의 공격라인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부천은 후반 34분 곽경근이 만회골을 터뜨렸지만 이미 무게 추는 기울어져 있었다. 경기 후 서포터들은 치욕적인 패배의 충격을 진정시키지 못해 한참동안 경기장을 떠나지 못했고, 상당수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일이 어떻게 되려는지 약 1년이 지난 후 4-0으로 부천이 앞선 상황에서 후반 36분 수원의 비탈 리가 만회골을 터뜨렸다. 4-1. 이제 1년 전의 설욕을 위해서는 부천의 한 골이 남았다. 그러나 마지막 한 골이 터지지 않았다. 우루과이 용병 샤리와 교체된 전경준, 이성재와 교체된 조진호 등이 부지런히 뛰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는가 싶었다. 그래 4-1. 이 정도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반 45분. 경기 종료 직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스트라이커 곽경근이 수원진영 중앙에서 골을 잡았다. 그리고 전진 패스. 이 패스는 당시 주로 후반에 투입되어 뛰어난 개인기로 상대 진영을 휘젓고 다니던 전경준이 잡았다. 전경준은 공을 트래핑하고, 터치하더니 그대로 공을 수원 골대에 꽂아버렸다. 5-1!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99년 8월의 아픈 추억은 수원 하늘에 날려 보냈다. 리그 개막전에서 앞서는 상황에서 마치 서포터의 한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신들린 듯이 뛰어준 선수들이 너무 고마웠고, 그 시간에 한 팀을 사랑하는 동료들과 같은 장소에서 기적같은 장면을 목격했다 것에 감사했다.

선수단과 서포터는 수원종합운동장의 높은 난간을 사이에 두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기쁨을 만끽했다. 주장 강철을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서포터만큼이나 기뻐하고 있었다. 리그에 앞서 벌어진 컵대회 우승에 이은 리그 개막전에서의 통쾌한 승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금도 “오대일!”이라는 서포터의 쉬어터진 함성을 들으며 쉴새없이 상대 문전으로 달리던 선수들의 뒷모습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