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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가 지구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 기사의 요건을 생각한다

by walk around 2011. 8. 2.

요즘 유난히 자극적인 기사가 많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클릭 수를 유발해 수익을 창출하고 매체가 생존하는 것이 공익에 우선하는 매체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 신성한 직업으로 취급받던 '기자직'이 '기자질'처럼 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기자질'이 '고자질'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저도 한 때 기자였습니다. 이때 어떤 상황을 정리하는 누군가의 발언을 기사 중에 삽입을 하면, 데스크(기사를 검토하여 편집부에 넘기는 사람)는 이런 질문을 하곤했습니다.

"이 사람 대표성 있어?"

어떤 사안을 대중에게 보도할 때는, 보도 내용에 보편성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동네 슈퍼마켓 앞 파라솔에서 소주를 마시던 아저씨가 술 마시다가 호기를 부리며 "일본 총리 놈 목을 부러뜨려야 해!"라고 소리쳤다고 칩시다. 이런 상황이 "한국 국민, '일본 총리 목 부려뜨려야..' 격앙"이라고 기사를 쓰면 이게 기사일까요?

직장인들은 술 자리에서 종종 상사를 씹으며 안주로 삼습니다. "우리 부장, 정말 나쁜 놈이야!"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술집 안에 차고 넘쳐납니다. 그렇다고 "A사 김대리, '부장 나쁜놈' 발언 파문" 이렇게 기사를 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일반 시민의 발언이 모두 기사감이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현장을 목격하거나, 생생한 여론을 들여주거나, 신뢰성이 담보되는 등의 조건이 있으면 기사에 얼마든지 인용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청용 부상소식에 일본 네티즌 웃음"이라는 기사 제목을 보았습니다. 일본 네티즌이 이청용 다쳤다고 단체로 모여서 웃기라도 했을까요? 기사를 보면 '몇몇' 댓글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생각없는 몇몇 네티즌은 손 가는대로 댓글 좀 달았다가, 한국 기자가 기사를 쓰고, 포털이 첫 화면에 올려서 오늘 아침 대한민국 국민 상당수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게 정상일까요?

제가 아주 오래전에 캡쳐 해놓은 화면입니다. 너무 공감했습니다.


전형적인 침소봉대 기사의 댓글입니다. 역시 몇몇 네티즌이 쓴 댓글, 그게 초등학생인지, 열등감있는 사람인지, 뭔지도 모를 누군가의 아무것도 아닌 댓글을 기사화하여 네티즌의 싸움을 부채질합니다.

이런 방식의 보도는 좌파의 우파의 싸움을 만들기도 하고, 지역간 싸움을 부채질 하기도 합니다. 세대간 싸움도 부채질합니다. 그것이 fact로 인정받을만한 fact를 근거로 싸우는 게 아니라, 기자가, 아니 자칭 기자가 제기한 필부필부의 아무 것도 아닌 말 몇 마디가 싸움의 근거가 됩니다. 이게 정상입니까.

이미 훈련을 받은 기자라면 기사의 요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이라는 학문은 완성도도 높습니다. 우리가 참고하지 않을 뿐입니다.

제대로 된 기사, 양식이 있는 편집이 절실한 시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