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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living

오래된 셔츠를 보내며…

by walk around 2010. 1. 31.



2002년 아니면 2003년이었을 것입니다. 벌써 8~9년정도 된 옷이네요. 평범한 셔츠입니다. 따뜻한 촉감이고, 디자인도 무난해서 열심히 입었습니다. 입을 때마다 요즘 나오는 슬림핏 셔츠에 비해서 너무 펑퍼짐하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복장이 편한 직장을 다닐 때에도 청바지에 입고 다녔고, 정장을 입어야 하는 직장에 다닐 때도 넥타이만 매고 그냥 입고 다녔습니다.

올해도 벌써 여러번 입었는데, 소매만 좀 헤졌는 줄 알았더니 목이 많이 헤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지난해부터 티가 났을 텐데, 어영부영 계속 입고 다녔습니다.

정이 많이 들어서 그냥 입고 싶지만, 꼭 이런 옷을 입은 날 회사에서 중요한 일이 생겨서 민망해지거나, 단정함이 요구되는 약속이 생깁니다. 누군가는 이런 옷을 입으면 검소하다고 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결국 이제 이 옷을 떠나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보내기 전에 함께 한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자 사진을 찍어뒀습니다. 언젠가부터 생긴 버릇. 오래한 물건 사진찍기. 셔츠를 하나 사면 거의 10년을 입으니까 이렇게 앞으로 새로운 셔츠를 몇번 보내면 저도 이 세상을 떠날 시간이 되겠군요.

마음 같아서는 함께 한 모든 물건을 간직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가진 공간이 좁습니다. 그리고 보관한다고 해서 그걸 또 빼놓고 들여다보지도 않습니다. 수고했다. 잘 가라.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