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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 story

"연고이전이라는 단어는 사라져야 한다!"

by walk around 2010. 5. 10.


날벼락같은 연고지이전 소식이후, 부천서포터들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절감했다. 방금 전까지 우리집에서 밥상을 차려주던 와이프가 밥 같이 잘 먹고, 이혼을 선언하더니 저녁에 옆집에 다른 남자랑 살림을 차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을까.

근 10년동안 청춘의 열정을 바친 축구단에 대한 기억이 너무 진했다. 부천서포터들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냥 순순히 잊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주었다."

연고지이전 선언이 터져나온지 약 한달. 부천서포터들은 가슴을 가라앉히고 상황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주로 부천종합운동장의 서포터 사무실겸 창고에 모였다. 경기도 없는데, 서포터들이 그렇게 자주 모인 것도 드문일이다.

당시에는 이미 K리그 시즌이 시작됐다. K리그 뉴스가 우리와 상관이 없기는 처음이다. 모든 상황이 익숙치 않았다.

"이번 일은 구단에서 결정했다기 보다는 모기업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떠난 팀을 받아들이다니, (일부) 제주도민은 너무 한 것 아닙니까!"

하지만 다 부질없는 이야기였다. 한바탕 성토의 마당이 지난 후 분위기는 뜻밖의 분위기로 흘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다른 팀과 다른 팀을 지지하는 서포터를 적대시하던 부천서포터가 갑자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며 짐짓 축구계 전체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런 반응은 사람이라면 자연스럽운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가족을 인터뷰하면 십중팔구 "앞으로는 이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 그렇게 사회를 사랑해서? 물론 그런 이타심이 발현될 수도 있지만, '이런 일'이 없도록 관련자를 처벌하고 시스템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한풀이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침, 당시에는 K리그 구단 중 U와 P가 연고이전설에 휘발렸다. J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거론되는 목적지는 서울이었다. 이들 구단의 서포터들은 구단에 질의서를 보내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부 서포터들은 상황이 상당히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물론 언급된 구단들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K리그 모든 구단이 부천SK의 제주 이전에 찬성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혹시 다른 구단들도 연고이전을 염두에 두고있기 때문에 찬성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마저 솔솔 피어올랐다.

아무튼 부천서포터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목표의식 비슷한 것을 만들고, 함께 할 단체나 개인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축구계 전체를 걱정하는 모습으로, 한편으로는 연고이전의 주체를 공격하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앞서 든 비유에서, 이제 같이 못살게 된 배우자이지만, 그녀가 잘 사는 것만은 볼 수없다는 식의 독기같은 게 생겨난 것 같다. 말하자면 한풀이 비슷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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