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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 story

분노를 쏟을 대상을 찾다

by walk around 2009. 9. 13.

사실 연고이전 결정을 누가 내렸는지 알아내는 것은 당시 시점에서 중요한 일이 아닌지 모른다. 하지만 졸지에 팀을 잃고 큰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는 확실하게 부각되는 공공의 적이 필요할 지 모른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토해내야 그나마 제 정신이 돌아올 것 같았으니까.

연고이전을 발표하기 바로 직전까지 SK구단은 구단의 미래 전략을 도출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이 용역은 서울의 S대학교 대학원 체육과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한창 연구가 진행 중일 때 이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S대학교 대학원 조교를 만나 팬으로서 구단의 전략을 제안하기도 했다.

혹시 이 연구보고서가 "연고를 제주로 옮겨야 팀이 발전할 것"이라는 결론을 담고 있었을까? 확인해 봤다. 연구 참여자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하지만 연구보고서 말미에 "아름다운 경기장이 있지만 아직 연고 팀이 없는 서귀포 구장을 홈구장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는 언급을 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그간 이미 뿌리를 내린 부천에 머무를 것을 제안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하긴, SK구단은 연고이전을 발표하기 불과 수일 전에 부천 팬들을 모아두고 새 시즌을 대비한 계획을 발표하고 서로 상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연구에 따라 제주 이전이 준비 중이라면 그런 일정은 가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이전 계획을 갖고도 팬과 그런 만남을 가졌다면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니까.

하지만 연구에 참여한 사람 중 제주이전에 어떤 역할을 한 인사는 있는 것 같다. 연구 참여자 중 한명이 훗날 SK구단과 제주시의 연고협약 관련 행사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주도 관계자가 이 연구 참여자에게 "고맙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창고에서의 대화는 대부분 망연자실한 상태에서의 넋두리였지만, 결국 연고이전에 대한 분노의 대상은 구단을 운영하는 SK주식회사로 굳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폭박 직전의 분노를 쏟아내는 일이었다. 당장은 "분노를 쏟아내는 것이 향후 팀 창단 작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와 같은 이성적인 의견에 귀를 기울일 상황도 아니었고, 그런 의견도 주변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