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이야기 : 부천 STORY
2006년 2월 8일 서울 대학로 붉은악마 쉼터에서의 연고이전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비대위 위원장의 성명에 이어서 당시 붉은악마 의장의 성명도 낭독이 됐다. 공교롭게도 당시 의장은 부천SK의 서포터였다.
붉은악마 쉼터에 모인 서포터들은 상당히 진지했다. 뜨거운 동지애마저 느껴졌다. 언제나 기세등등하고 강한 모습을 보이던 부천서포터들은 완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비대위의 준비는 비교적 치밀했다. 관련자료, 발표문, 회의실의 걸개까지.. 흡사 장례식장을 방불케 했다. 팬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온 걸개도 상당수였다.
붉은악마 의장의 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붉은악마 의장 발표문>
2006년은 독일월드컵이 열리는 희망적인 한해 시작이었습니다. 붉은악마 역시 독일월드컵 원정을 준비하며, 어느 때 보다 바쁜 한해를 시작하고 있던 와중 한국 축구 사에 큰 치욕적인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2월 2일 SK프로축구단은 사전에 아무 얘기 없이 기습적으로 연고를 이전하였습니다. 이는 그간 부천 팀에 사랑과 열정을 아끼지 않은 팬들뿐 아니라 대한민국 축구 전 팬들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되는 일이며, 그동안 축구인 들이 그렇게 말한 연고 정착이란 수순에 큰 악영향을 끼치는 일로 치부됩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축구의 근간이 흔들리는 이 시점에 붉은악마는 어느 때 보다 강도 높게 대응하기로 하였습니다.
벌써 3번째 이런 아픔을 경험 하였습니다. 첫 번째 천안이 성남으로 이전할 때 저희는 그저 바라만 봐야 했습니다. 두 번째 안양이 서울로 연고 이전할 때 붉은악마는 연고이전 반대를 외쳤지만, 대중적인 인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젠 세 번째입니다. 더 이상 연고가 기업의 이윤에 따라 수시로 바뀔 수 있다는 잘 못된 생각을 고쳐야 합니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많은 분들이 아셔야 합니다. 대한민국 축구가 발전되길 진정으로 바란다면, 많은 분들이 이번 일에 저희와 함께 나가야만 제 4의 연고이전, 제 5의 연고이전을 막을 수 있습니다.
연고이전이 묵인되는 대한민국 축구판은 전 세계의 놀림감이며, 축구 선진국 진입을 가로막는 큰 장애가 되는 일입니다. 세계 축구 선진국은 한국이 아무리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도 이런 우리를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작금의 한국 축구 상황에서 과연 독일월드컵 원정이 무엇이며, 세계인이 함께 하는 축제가 무엇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심도 있게 고민해 나갈 것입니다.
붉은악마는 이 땅에 연고이전이란 단어가 사라질 수 있도록, 비대위와 함께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 한국 축구 근간인 프로축구의 연고이전은 대한민국 축구를 10년 뒤 아니 100년 뒤로 후퇴하는 일임을 알아주시고, 이번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와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06년 2월8일 붉은악마 의장
이어서 부천서포터즈 대표의 성명이 낭독됐다.
<부천 서포터 대표 발표문>
부천 서포터 대표 김OO 입니다.
저를 비롯한 부천 서포터와 여기에 모인 축구팬들은 불과 일주일전만해도 이런 일로 기자회견을 가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구단 측은 서포터 대표들을 만나 앞으로의 구단 운영, 경기장 보수, 선수단과의 팬 미팅 행사일정 등을 논의하며 곧 다가올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는 듯 했고, 많은 부천 팬들은 작년의 돌풍이 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자며 시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연고이전 발표로 인해 현재 수많은 부천지역 팬들은 큰 충격으로 허탈감과 배신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연고이전 사유로 내세운 ‘관중이 없는 부천에선 더 이상 축구단을 운영할 수 없다’라는 말은 86만 부천시민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부천시대가 개막된 2001년 이후 부천은 2년 연속 평균관중 수 1위에 오르며 축구도시로 자리매김 하였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구단은 파행적인 운영을 일삼으며 팀의 간판선수들을 타 구단으로 이적시키기 바빴고, 그에 비해 전력보강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4년 동안 5명의 감독이 교체되면서 전통의 명문구단 부천은 2년 연속 최하위라는 불명예까지 얻게 됩니다. 게다가 축구단의 前단장은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축구단은 해체하는 것이 좋다.’, ‘원정 경기에서는 패하는 것이 회사 이미지에 좋다.’라는 등 - 구단 고위층 인사가 했다는 말로는 믿기지 않는 망언을 서슴없이 내뱉음으로써 지역 팬들의 신뢰도를 완전히 잃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SK가 어찌 부천의 시장성, 관중 등을 논할 수 있단 말입니까?
비록 2003년, 2004년 최하위의 성적과 파행적인 구단운영에 실망한 지역 팬들의 발걸음이 뜸했던 것은 사실이나 재작년에 취임한 정해성 감독의 색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작년 시즌 후기리그 2위라는 돌풍을 일으켰고, 그 동안 부천축구단을 외면했던 지역 팬들도 하나 둘 경기장을 찾으면서 관중 수 역시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 모든 것이 좋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SK는 연고 이전을 결정했습니다.
SK는 한국 축구의 발전, 축구단의 생존을 위해 연고 이전을 결정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 동안 부천 서포터는 구단과의 미팅을 통해 축구단의 지역 정착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하였고, SK프로축구단은 지역에 경기 홍보 현수막 몇 개를 부착하였을 뿐 지역 팬들을 위해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SK프로축구단이 이제 와서 부천은 안 된다며 제주도에서 새롭게 시작 하겠다는 건 무슨 의도 입니까? 또한, 제주도에서의 어떠한 비전이나 계획도 내놓고 있지 않아 저 많은 축구팬들의 믿음을 전혀 사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로스포츠, 특히 프로축구에서의 연고지 개념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자 구단 운영과 발전의 필수적인 요소인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지역과 밀착된 해외 구단들을 부러워하고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SK는 이번 제주도와의 연고 협상에서도 제주도에 영구히 머물겠다는 뜻을 밝히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SK주식회사의 사장은 수가 틀리면 다시 이전하거나 해체 할 수도 있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부천 서포터즈가 연고지 이전 반대 운동에 동참한 이유는 SK프로축구단의 연고지 이전 철회를 요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자칫 연고 이전이 한국 축구를 망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아무런 비전과 계획도 없이 해체 할 경우 쏟아질 비난이 두려워 반강제로 운영하는,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서커스 유랑극단 공연하듯 이동하는 구단은 한국축구의 기생충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SK가 더 이상 축구팬을 우롱하지 말고, 축구계를 떠날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제주도와 서귀포시에서 SK에 제공한 금액은 충분히 K2리그 구단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유랑극단이 아닌 영원히 제주도를 위해 뛰어 줄 진짜 제주도의 축구단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단기적인 화려함 때문에 믿을 수 없는 파트너와 손을 잡지 말고, 장기적인 꿈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10년 친구를 하루아침에 배신한 당사자를 믿음으로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부천의 축구팬들은 부천을 위해 뛰어 줄 진정한 부천 축구단을 창단하기 위한 작업에 매진할 것이며, 팀이 창단될 경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는 미약한 힘이지만 다시 시작하는 부천축구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최초의 서포터인 부천 서포터는 다시 한국 최고의 축구리그인 K리그에서 응원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2월 8일 부천 서포터 헤르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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