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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450년전 무덤에서 발견된 아낙의 편지

by walk around 2009. 8. 15.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와서 보여주세요.”

약 4백50년 전 한 아낙이 죽은 남편에게 보낸 편지가 현대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 일이 있다. 안동에 살았던 이응태(사망당시 31세)의 아내. 아내는 한글로 남편에 대한 사랑을 썼다. 남편이 사망할 당시 이들 사이에는 귀여운 아들이 있었고 아내의 배 속에는 둘째가 있었다.

단란한 가정에 벼락같은 소식. 남편이 둘째의 출산을 얼마 앞두고 병에 걸렸다. 아내는 정성껏 남편의 병간호를 하며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렸다.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을 섞어서 짚신을 만드는 정성을 바쳤다.

이응태의 형 몸태도 동생을 그리는 간절한 심정을 부채에 담았다. 한문으로 된 형의 편지에는 조카에 대한 사랑과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잘 나타나있다.

아내의 눈물겨운 간호와 형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1586년 병술년 이응태는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의 무덤에서는 편지들 외에 아기들의 앙증맞은 저고리도 함께 묻혀 있었다.

이 순애보 편지는 1998년 4월 후손들이 경북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의 묘지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가로 60㎝, 세로 33㎝ 크기의 한지에 붓으로 쓰여진 이 편지는 1998년 9월 25일부터 안동대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그러고보니 한지의 보존력이 정말 대단하다. 당시의 아낙도 글을 남길 수 있게 한 한글의 위대함도 새삼스럽다.


<아내의 편지 전문>

원이 아버지에게

병술년(1586)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당신 언제나 “둘이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주세요. 당신 내 뱃 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픔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형의 편지 전문>

외로이 나만 내버려두고 자네는 죽어서 누구와 더불어 함께 지내려느냐.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다니 어찌 이렇게 급하단 말인가.

땅을 친들 그저 망망하기만 하고 하늘에 호소한들 대답이 없구나.

자네가 남기고 간 자식 그래도 내가 살아있으니 보살필 수 있구나.

부모님이 장수하시도록 부지런히 도와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