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응원가 중 하나입니다. 이 포스트는 지금 작성 중이고 계속 컨텐츠가 보강될 예정입니다. 지금은 부실합니다. ^^;

아래 응원가는 가사의 내용으로 볼 때, 하프타임 때 부를 노래 같군요.

Don't let your heads drop.
네 머리를 떨구지 말아라.

All the players who will get on the pitch after half-time have to keep their heads held high.
하프타임 이후 피치에 올라갈 선수들은 머리를 높게 들어야 한다.

We are liverpool. you are playing for liverpool.
우리는 리버풀이고, 너는 리버풀을 위해 뛰는 것이다.

Do not forget that.
그것을 잊지 말아라.

You have to held your heads high for the supporters.
서포터즈를 위해 머리를 높게 들어야만 한다.

You have to do it for them.
그들을 위해 해내야만 한다.

You cannot call yourselves liverpool players if you have your heads down.
만약 고개를 떨군다면 자신을 리버풀 선수라고 부를수 없을 것이다.

If you create a few chance, you have possibility of getting back into this.
만약 우리가 몇몇 기회를 얻는다면 우리는 만회할 가능성을 얻는 것이다.

Believe you can do it and we will.
네가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다.

Give yourselves to be a heroes.
영웅이 될 기회를 잡아라.

축구에 서포터의 공간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다. 축구단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질문에 눈과 귀가 번쩍 뜨일 것이다. 축구단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서포터는 반가우면서도 힘들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서포터는 축구의 일부, 아니 축구 그 자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 중 일부는 서포터가 축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수도권의 한 구단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이 구단 사람들은 서포터들을 성가신 존재로 생각해요. 요구사항을 말해도 무시하구요"라고 말했다. 약 10년 전 한 구단의 단장은 "축구단에 서포터가 무슨 소용이 있나. 몇 명되지도 않아서 구단 수익에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서포터 문화를 선도했던 잉글랜드에서도 이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Fanatics>라는 책 서두에는 "(구단에) 기여하는 사람들은 축구가 대중의 게임인지 아니면 구단 투자자 등 양복입은 사람들의 게임인지 의문을 제기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존에서 득템한 흡사 논문 분위기의 이 단행본은 축구에서의 팬의 힘, 정체성, 정신 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축구판에서 점잖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의문 내지는 불만으로 주위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팬십을 이야기하며, 캐쥬얼, 타탄아미, 울트라스 등을 우선 언급하고 있다.

결국 어떤 의미 부여가 있을지 기대된다.

관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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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축구장 관중석, 너무 얌전하다

한국 프로축구와 유럽 프로축구의 결정적 차이
 
잉글랜드 유맨 "팬과 함께 저가항공 타겠다"   


 
  1. 조니양 2011.11.24 14:18 신고

    정말 재미있는 논문이네요~! 축구 서포터즈에 관
    해 저런 궁금증을 가져본적이 있는데, 신기합니다.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 ^^

    • walk around 2011.12.04 12:31 신고

      간만에 달린 제 블로그의 댓글이네요.. 의욕적으로 읽기 시작해서 지금은 소강상태입니다. 오늘 생각난 김에 한 페이지 더 진도 나가야겠네요 ^^

몇개월 전에 부천FC 서포터즈 헤르메스가 사용하는 부천종합운동장의 창고를 포스팅한 일이 있습니다. 부천서포터인 저에게는 서포터 창고는 남다른 기억으로 남는 공간입니다. 아마 모든 서포터가 그럴 것입니다. 그 안을 뒤적이다 보면 거의 10년된 장비들도 나타납니다. 묻어있는 먼지만큼 추억도 장난이 아닙니다.

관련 게시글 : 부천FC 서포터즈 헤르메스 창고이야기

부천SK는 수퍼리그 원년 1983년에 유공 코끼리 구단으로 창단했습니다. 연고지는 서울 인천 경기를 포괄하는 광역연고였습니다. 1989년에 서울을 빼고 인천 경기 연고로 가다가, 1991년에 서울을 연고지로 했습니다. 그러다 프로축구연맹이 1996년에 서울연고 팀을 쫓아내면서 LG는 안양으로 일화는 천안으로 유공은 부천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부천에는 종합운동장이 없었습니다. 할수없이 1996년도부터 2000년까지 서울 목동경기장에서 홈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헤르메스도 목동구장에 창고를 얻어서 사용했습니다.



스타디움 외벽 기둥에 있는 안내 문구입니다. 때는 2000년 겨울. 이제 곧 2001년 부천종합운동장으로 떠나면서 이 창고도 비워줘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 기록을 해두려고 목동을 찾았습니다. 사진기는 필카였죠. 오늘 밤에 스캔했습니다.



앗! 이 사진은 심령사진? 제 생각에는 당시 골초였던 저의 담배이거나 렌즈 앞에 뭐가 날아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스타디움 외벽의 유리문이 헤르메스 창고 입구입니다.



내부입니다. 들어서면 당시 사용하던 걸개와 비슷한 문구가 들어오는 사람을 반깁니다.



스캔이 빠딱하게 됐네요. 분위기 살리려고 트리밍은 하지 않았습니다. 맞은편 벽 앞에 탐탐이(작은북)가 아닌 큰 북이 있네요. 큰북은 동대문에서 사용하고, 목동부터는 거의 사용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부벽의 안내글입니다. 헤르메스의 의미. 가입방법 등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매 경기 수십명이 제발로 찾아와 가입할 정도로 인기있는 서포터였습니다. 물론 K3에서 건재한 지금도 인기서포터입니다. ^^



당시 부유한 구단에서는 서포터를 우대했습니다. 할인표를 판매했고 원정버스도 준비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서포터가 부천FC를 살리기 위해 돈내고 경기장에 들어와 노가다를 하는데, 헤르메스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서포터 창고는 정신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장마철에는 저 장비들 냄새가 끝내줍니다. 그래도 하나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련하지만 그리고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입니다.

K3 부천FC의 광주원정을 함께 하다
"내 유골을 부천종합운동장에 뿌려달라"
"왜 당신은 부천FC의 서포터인가"




  1. 보시니 2010.07.09 09:40 신고

    헤르메스 서포터스의 분위기는 붉은 악마 보다도 더 열정적인 모습인것 같습니다.
    이런 열정에 몸을 담은 walk around 님이 부럽기만 해요~^^

    • walk around 2010.07.09 09:59 신고

      감사합니다. ^^ 일부에서는 한심하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ㅎㅎ T.T




"시가와 파이프 연기, 욕설(전에도 들어보긴 했지만, 어른들이 그렇게 큰 소리로 욕을 하는 것은 그때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으로 남성적인 분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책을 읽으며 무한한 동질감에 메모를 하기는 오랫만입니다. 요즘 읽는 닉 혼비(Nick Hornby)의 <피퍼 피치(Fever Pitch)>에는 부천FC 열혈 서포터들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축구 서포터 중에서 유난히 남성적인 분위기의 부천서포터는 예나 지금이나 악명이 높습니다. 오죽 했으면 과거 부천SK 시절 상대팀 선수들은 부천FC 서포터만 만나면 혀를 내둘렀습니다.

관련 게시글 :
"선수들이 가장 꺼렸던 서포터는 부천 헤르메스"


2003년 11월 상암에서의 FA컵 준결승 전북현대와 경기에서
경기장에 난입한 부천서포터를 질타하는 기사의 일부

잘 한 일은 아니지만 경기장에 난입하여 그라운드를 초토화시킨 적도 여러번. K3에 와서도 지난해 11월 7일 청주원정에서도 경기장 난입으로 구단이 2경기 무관중이라는 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팬들은 남은 시즌 마지막 2경기를 경기장 철문에 기대고 봐야 했습니다.(청주 건은 다소 과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관련 게시글 :
부천FC 선수들과 서포터, 철문 사이에 두고 랄랄라
철문에 기댄 부천서포터의 응원

그렇죠. 한마디로 또라이들입니다. 또라이라서 부천에 팀이 없어졌을 때, 인근 인천유나이티드나, 수원삼성 또는 FC서울로 이적(?)하지 않고, 차라리 축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또라이라서 스타도 하나없는 팀을 3부리그에 만들었고, 과거 응원하던 팀보다 예산규모가 50분의 1에 불과한 작은 구단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관련 게시글 :
선수들과 천리길 마다하지 않는 K3 부천서포터
원정경기까지 함께 가는 부천FC의 외국인 서포터들
표 팔고, 책상 나르고… K3 부천FC 팬들의 자원봉사 열전

또, <피버 피치>의 내용입니다.

"솔직히 더비 카운티가 1부리그에서 꼴찌로 마감한 1990/91 시즌에 평균 1만7천명에 가까운 관중을 모았다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모든 시즌을 통틀어 최악의 축구경기라 부를만한 더비팀의 경기를 보러 적어도 열여덟번씩은 축구장을 찾아간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정말이지, 그들은 대체 왜 거기에 갔던 것일까?"

제가 빵 터진 부분입니다. 요즘 부천FC 관중을 보며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올해 다소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고 있습니다. 월드컵 열기를 타게 되면 부천FC 관중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련 게시글 :
K리그 못지 않은 관중이 몰리는 K3구단. 이유가 뭘까?

부천FC 선수들은 대부분 엘리트 코스를 거쳤던 '유망주' 출신입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현재는 낮에 일하고, 밤에 운동 합니다. 훈련 여건이 그들에게 최고의 컨디션을 선사하지는 못합니다. 당연히 경기도 상위리그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기술적인 면은 비슷하다고 해도, 체력적인 면이 차이가 날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부천FC 팬들은 경기장을 찾아 갑니다. 대체 왜 그들은 경기장에 가는 것일까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축구장에 와 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증오했다는 것이었다… 경기를 보는 내내 즐거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킥오프 몇분 만에 분도가 터져나왔다. '이런 개망신이 있나!'"

이 내용을 보고도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정말 부천팬들 사이에 있어보면 자기팀에 대해서도 자주 성토를 합니다. 화도 냅니다. 다시는 축구장에 오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다들 다시 경기장에 옵니다. 그리고 책의 바로 다음 내용에서 가슴이 많이 아렸습니다.

"'고통으로서의 오락'이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고, 나는 내가 찾던 바로 그것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바로 그 개념이 내 인생을 형성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제대로 된 해석입니다. 고통으로서의 오락. 부천FC를 좋아하며 정말 터무니없는 고통에 시달립니다. 구단의 재정을 걱정해야 하고, 다른 관중들이 놀랄까봐 욕도 못합니다. 연승을 하면 구단 계좌에 승리수당이 충분히 있는지 걱정입니다. 후원사가 줄어들면 가슴이 청렁 내려 앉습니다. 결정적으로 내년에 다시 우리팀을 볼 수 있을지 공포에 빠지기도 합니다.

부천팬은 누구나 수원삼성 옷을 입고 수원에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눈치는 좀 보이겠지만 월드컵 대표가 있는 팀을 마음 편히 응원할 수 있습니다. AFC원정도 갈 수 있고, 외국인 선수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천 서포터는 흩어지지 않고 고통 속에 다시 부천FC를 보러 경기장에 옵니다. 와서 입장료 내고 봉사활동도 합니다. 미친거 아닙니까. 부천FC가 도대체 그들에게 뭐길래… 대체 그 이유가 뭘까요. 닉 혼비가 먼저 경험한 모양입니다. 그는 별볼일 없던 시절의 아스날 팬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섯 골과 토튼햄의 그 훌륭한 선수들도 나를 흥분시키지 못했다. 나는 고작 스토크를 상대로, 1-0으로, 그것도 상대 골키퍼가 막아낸 페널티킥을 도로 차넣어 근근이 이긴 팀과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다."

...

맞는 것 같습니다. 부천서포터. 적어도 K3의 부천FC를 지지하는 팬들은 다른 이유로는 설명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유없이 부천FC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를 이어 오직 이 팀만을 응원하겠노라고 하늘에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1주에 한번 이런 또라이들을 경기장에서 만나는 것은 내 인생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이런 집단을 만나는 것은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이유없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과의 한 평생이라… 정말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You will never walk alone"

6월 5일 토요일 오후 7시 부천종합운동장. 부천FC는 남양주시민구단과 경기를 갖습니다. 그리고 경기장에는 부천FC와 사랑에 빠진 많은 또라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커뮤니티 안으로 더욱 많은 '진짜 축구'를 찾던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링크 : 부천FC 1995 공식서포터즈 헤르메스 홈페이지




최근 수원삼성의 서포터즈 그랑블루의 서포터즈 응원가 음반 녹음으로 각 구단 서포터즈 사이에서 응원가 음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부 축구관련 게시판에서는 '원조' 논쟁이 벌어지는 모양입니다.

지난 1월 29일 그랑블루는 노브레인 등 인기 음악인과 함께 응원가를 녹음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부 매체는 국내 최초의 서포터즈 음반 출시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서포터즈 응원가 음반은 발매된 바 있습니다. 가장 최초의 음반은 붉은악마가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제작한 'We all will be there for you'입니다. 약 30명의 붉은악마 회원들이 참여했고, '대한민국' 구호, '오! 필승코리아' 등 21편의 구호와 응원가가 실려있습니다.

1997년 붉은악마가 제작한 사상 첫 축구 서포터 응원가 앨범. 다소 거친 녹음이지만 축구 서포터 초창기 멤버들의 꾸밈없는 열정을 읽을 수 있다. 이 CD에는 이미 '대한민국' 구호와 '오! 필승코리아'가 담겨있다.


이 CD를 구해서 보관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입니다. 타고난 정리벽 때문에 보존도 잘 되어 있는 편입니다.

개별 서포터즈 클럽 차원에서 제작된 최초의 응원가 음반은 부천SK 서포터즈 헤르메스가 2002년에 제작한 'Two steps behind'입니다(사진 아래).

이 음반에는 응원박수와 '100% your supporter', '오! 필승코리아'의 원곡인 'To be number one Bucheon FC' 등 29곡의 구호와 응원곡이 담겨 있습니다. 부천서포터 20여명이 강남의 한 녹음실에서 녹음을 했으며, 완성된 음반은 인터넷과 오프라인에서 판매했습니다.

음반의 응원가는 부천SK의 연고지 이전이후 경기장에서 들을 수 없었지만, 음반을 제작한 헤르메스가 2008년 K3 부천FC를 창단해 리그에 참여하면서 다시 경기장에서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음반 내지에서 헤르메스는 "1995년 대한민국 최초의 서포터로 이땅에 태어나 1997년 헤르메스라는 이름으로 내딛은지 6년이 흘렀다"며 "오직 부천FC를 위해 뛰고 땀 흘렸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이제 또 다른 걸음마를 시작한다"고 음반제작의 변을 밝혔습니다.

헤르메스는 또 "어떠한 역경이 오더라도 우린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또 그 믿음을 계속된다"고 말해, 팀 잃은 후 다시 팀을 창단하는 저력에 걸맞는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저도 이 음반 녹음할 때 녹음실에서 소리소리 질렀는데요. 밀폐된 공간에서 무지하게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음반이 나온 후에는 보람은 있었습니다.

<부천FC 관련 포스트>

FA컵 꿈이룬 부천FC, 1R에서 대학최강 고려대 만나다

"선수들이 가장 꺼렸던 서포터는 부천 헤르메스"
부천FC 선수들과 서포터, 철문 사이에 두고 랄랄라
부천FC 팬들, 철문에 기대어 응원하다

K3 부천FC 서포터, 거리에서 합창
'AFC챔스 진출한 부천FC 팀닥터로 세계 누비고 싶다'
"부천선수들, 사우나에서 벌거벗고 만나자!"

추억에 젖는 부천SK 출신 선수들
옛 영웅 맞이한 부천FC 팬들 '훌쩍훌쩍'
니폼니시, "부천 서포터에게 인사 전해달라"
'확' 달라진 부천FC 1995 팬들 '나의 구단을 위해서라면…'


  1. 보시니 2010.02.09 00:02 신고

    우와~ 팬들이라면
    저런 아이템에 무척 뿌듯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열정이 담겨 있으니 말이죠!

    • walk around 2010.02.09 08:43 신고

      그래요.. 그래서 아마 이런 아이템에 대해서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더욱 갖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2. 오지코리아 2010.02.09 00:29 신고

    붉은악마가 녹음한게 최초군요.
    잘 보관하시면 ..앞으로 돈좀 되겠는걸요.
    잘 보고 갑니다^^

    • walk around 2010.02.09 08:45 신고

      우리나라 서포터 형식의 축구 응원단이 꿈틀된 것이 1995년이고, 어느 정도 조직화된 것이 1997년 같은데요. 이 음반이 1997년 나왔으니까 거의 초창기 한국 서포터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3. 2017.06.29 02:41

    비밀댓글입니다

축구장에 가보면 양쪽 골대 뒤에 경기를 하는 팀의 응원단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서포터즈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목에 머플러(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축구 구단들이 수익을 위해서 여러가지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는데, 그중 머플러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유럽은 겨울에도 시즌이 진행되기 때문에 머플러는 경기장을 찾을 때 중요한 소품입니다.

2007년 3월 24일 한국과 우루과이 평가전. 경기시작을 앞두고 붉은악마가 머플러를 펼쳐 들었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0-2로 패했다.

머플러는 훌륭한 응원도구가 되는데, 팬들은 머플러를 경기전후 한껏 펼치곤 합니다. 머플러에는 자신이 지지하는 클럽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과 일체감을 과시합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머플러를 짧게 잡고 허공에서 휘두르면 정신 사나운(또는 화려한) 장면이 연출되는데, 상대팀이 PK, 프리킥 등 공격할 때 또는 너무나 흥겨울 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2007년 6월 2일. 네덜란드와 평가전에서 머플러를 펼친 붉은악마. 이 경기에서도 0-2패.

유럽과 달리 한 여름에도 시즌을 진행하는 한국 등 아시아 리그에서는 보온성 머플러 대신 수건(타올) 형식의 면 머플러를 만들어 팬에게 판매하곤 합니다. 땀을 닦는 등 실용적이지만 묵직한 무게함은 떨어지는 편입니다.

규모간 큰 서포터즈클럽은 구단이 판매하는 머플러 대신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제작한 머플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서포터즈클럽 내 소조직들이 개별적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003년 5월 31일 도쿄 한일전 경기 전에 머플러를 펼쳐즌 울트라니폰.
이 경기에서는 한국이 안정환의 골로 1-0 승리.

2002년 월드컵 조별예선 1차전에서 머플러를 펼쳐든 폴란드 응원단.

재정이 탄탄하지 않은 클럽을 지지하는 서포터즈는 이렇게 독자적인 머플러 제작을 자제하는 편입니다. 구단이 살아야 머플러 두를 일도 생기는 것이니, 일단 구단 수익을 위해 구단 상품(머천다이즈)을 구매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반면에, 부자구단의 서포터즈나 국가대표 서포터 같이 규모가 크고 독자적인 생깔이 큰 팬집단은 전통이 있는 자체 머플러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머플러에 이런 의미가 있고, 각 구단의 정체성이 담기다보니 유니폼 못지 않게 머플러를 수집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관련 포스트> 게이트 기, 축구클럽의 영광을 표현하는 응원도구




몸푸는 시간이 지나고 선수 소개의 시간. 양 서포터는 머플러를 피고, 게이트기를 들었습니다. 게이트기는 말 그대로 게이트처럼 생긴 응원도구입니다. 참고로 예전에 작성한 게이트기 관련 포스팅입니다.

링크 : 게이트 기, 축구클럽의 영광을 표현하는 응원도구

우라와 보이즈는 선수 소개 때 함성이 독특했습니다. “워~ 워!워!워!워!워!워!…”를 계속 하다가 선수 이름 호명하는 순간 함성을 지르는 식이었습니다.

경기 시작. 경기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할 게 없습니다. 우라와 센다이 모두 90분 내내 짜증 나는 경기를 했습니다. 나중에는 졸았습니다. 재미 없어도 그렇게 재미없는 축구는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선수들이 뛰기는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서포터 응원이 그들이 걷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엄청난 서포팅을 등에 업고 걷는 다는 것은 거의 죄악으로 보였습니다.


브라질 출신 선수를 응원할 때는 브라질 국기가 등장한다. 재미있는 점은 맨 위 사진과 비교해 볼 때, 전혀 보이지 않던 브라질 국기가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나타난다는 점. 평소에는 브라질 국기가 보이지 않는다.

우라와 보이즈는 90분 내내 서포팅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쉬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서포팅을 한다고 해서 경기 상황에 맞에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점은 부천FC 1995 서포터 헤르메스가 확실하게 앞서고있다고 자부합니다.

단지 그들에게 부러운 것은 엄청난 인원을 바탕으로 노래 하나를 20분 이상 돌릴 수 있는 인프라가 된다는 점. 우라와 보이즈는 어쩌다 하나를 시작하면 적어도 5분은 그대로 갔습니다. 5분 내내 엄청난 목소리였습니다.

보라색원 오른쪽은 메인 리딩, 왼쪽은 서브 리딩. 둘 다 경기를 거의 안봅니다. --;
푸른 원은 경찰. 센다이 서포터와 우라와 관중 사이에는 10미터 정도의 안전지대(빈자리)도 있습니다.

탐탐이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수 소리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머플러를 돌리는 사람은 우라와 홈 팬 중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습니다. 센다이 마찬가지. 깃발을 흔드는 사람은 있었습니다. 작은 깃발을 든 애들은 경기 내내 깃발을 흔들었습니다. 체력이 장난이 아닙니다. --;

우라와 보이스의 박수 소리는 귀를 때리는 수준이었습니다.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골이 들어가는 순간. 경기장은 환호의 도가니.

센다이는 응원을 할 때 리딩이 있고 각 섹터별로 서브 리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리딩들은 경기를 거의 보지않았습니다 -.-; 가무단 리더 수준이었습니다. 응원은 강력한데, 생각은 별로 없는 애들 같았습니다.

우라와는 특별히 리딩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리딩은 있었습니다. 우라와 리딩은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관중석. 일반 관중석은 가족들이 모여서 마을의 만남의 장이 벌어졌습니다. 아줌마들은 거의 계모임 분위기입니다. 아줌마들은 붉은 옷을 입고,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애를 태우며 관전하고 있었습니다.

상대의 거친 플레이나 비신사적인 플레이가 터지면 욕설이 터져 나오고, 누군가 유머 섞인 욕설이 나오면, 웃음이 터졌습니다. 야유를 할 때 휘파람과 휘슬 소리도 컸다. 학교 체육 선생들이 들고 다는 휘슬을 들고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

우라와시의 기념품 매장.

상대 선수 중 마음에 안드는 놈이 있으면 우라와 보이즈는 “헤이! 헤이! (선수 이름) 뻑큐!”라는 구호를 연창했습니다. 이건 시민들도 다 따라했습니다. 온 관중이 다 뻑뀨 날리는 장면은 참 감동적입니다. 심판에게 욕하는 것도 장난 수준을 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 있으면 해당 구단은 징계입니다.

센다이 골킥이 우라와 코너킥으로 판정이 번복됐을 때에는 센다이 서포터가 광분을 했는데, 뛰어 내려올 기세였습니다.

우라와 보이즈의 서포팅의 주도권은 검은 옷을 입은 한 소모임이 잡고 있었습니다. 일단 이 소모임의 머릿수도 제일 많고, 서포팅이 시작되면 굉장한 에너지를 보여줬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펄쩍펄쩍 뛰고 목소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에 필적하는 소모임이 약 4, 5개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이들은 응원을 하면서 서로 협조하며 어느 정도 공통되는 공유 의식을 가지고 함께 힘을 합치고 있었습니다.

저도 기념품을 샀습니다.

유심히 보니 사실 우라와 보이즈도 서포터 회원만 따지면 전성기의 부천 헤르메스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골대 뒤에서 그 주위를 감싸고 서포팅을 따라해 주는 일반 관중에서 차이가 많이 납니다.

우라와와 센다이의 경기는 후반까지 무득점 무승부였는데, 후반 끝나기 10분전 우라와 보이즈는 “이 경기를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지, 작심한 듯 응원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노래를 후반 끝나기 10분전에 시작해, 연장전(당시 J리그 연장전 있고 승부차기는 없음) 시작 전 휴식 타임, 연장 전반, 휴식 타임, 연장 후반 종료 직전 골든골날 때까지 계속 불렀습니다. 꼭 미친 사람들 같았습니다. 마치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올리는 원시인들 분위기.

후반 직전 우라와 선수가 골든골을 넣었습니다. 당연히 경기장은 광란의 도가니로 빠졌습니다. 경기 후 선수들은 서포터에게 인사하기 전에 나머지 3면에 돌아가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인터뷰를 하느라 인사를 못한
선수는 인터뷰 후에 혼자 사방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했습니다. 힘겹게 인사하고 라커로 향하기 바쁜 우리나라 축구선수들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링크 : 축구 선수들, 수줍음 털고 팬에게 다가가라

경기 후 우라와 보이즈의 '가타'라는 리더 중 한 명을 만났습니다. "오늘 경기 어떻게 보셨습니까"라고 묻길래, "경기는 좀 지루한 감이 있었고, 응원은 감동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우리는 센다이와 패싸움 하러 간다”며 “2주 후 한국에서 보자”며 자리를 떳습니다(2주호 만날 약속이 있었습니다). 다른 우라와의 친구가 우라와 시내를 구경시켜 주고 저녁을 같이 먹어줬습니다.

경기장 앞에서 팬들의 마찰이 있었는데, 아이를 안고 가는 센다이 유니폼 입은 젋은 부부를 우라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머리채를 잡아 당기는 것이었습니다. 집단으로 툭툭 시비를 걸다가 센다이 팬들이 조용히 있자, 떠밀어 냈습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는 가타가 머리를 휘날리며 싸우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아마 위협을 하는 수준이겠지만. 아무튼 팬들의 무한 충성과 상대에 적개심에 가까운 배타성이 J리그의 힘이 배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식사 후 도쿄의 호텔로 왔습니다. 거의 파김치였습니다. 호텔에서 TV를 봤습니다. 오늘 경기한 J리그 선수들이 그새 씻고, 옷 갈아입고 TV 스튜디오에 출연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서포터들에게 인사드린다"며 공손하게 다시 한 번 인사를 했습니다.

당시 우라와에서는 선수들의 팬에 대한 존경심에 가까운 사랑, “우리가 원하는 건 승리다”라는 것을 응원을 통해 확실하게 보여주는 서포터, 상대를 압박하는 거친 야유, 가족·이웃과 함께 하는 응원 등을 배웠습니다.


황선홍과 홍명보 뛰었던 가시와 레이솔 홈구장에 가봤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활약하던 서정원 코치 만나러 갔던 길
열정의 응원, J리그 우라와레즈 서포터즈 - 사이타마 방문기 1


  1. 무한에너지 2010.01.15 23:55 신고

    오웃!! 대단합니다. 열기가 그대로 전해저 오는 듯 하네요^^

    • walk around 2010.01.16 03:52 신고

      동영상이 있으면 더 좋을 텐데... 구경 하느라 사진도 간신히 몇장만 찍었네요 ^^;

  2. 보시니 2010.01.16 10:53 신고

    축구 경기 자체는 재미없었어도 써포터들의 모습이 볼거리 자체인 것 같네요.
    너무 폭력적이거나 인신공격적으로 과열만 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격한 응원도 하나의 볼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 walk around 2010.01.16 23:35 신고

      우라와 레즈는 극성스런 팬 덕분에 성장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서포터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고 과격한 것 같습니다. 축구팬이 직업인 사람도 있더라고요..^^;

  3. 레알 2010.01.17 22:33 신고

    우리나라도 "정신차려 심판" 이런 구호나 심판을 향해서 욕을 하기도 합니다. ㅎ
    사진 보니,,,포스가 장난 아닌데요...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저런 분위기가 어서 왓으면 바램이에요. ^^

 

 

 

 


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2002년 9월 오사카를 방문했는데, 일이 끝난 후 도쿄에 갔습니다. 도쿄 인근 사이타마에서 열리는 축구경기를 볼 계획이었습니다.

당시 일시적 휴직자여서 시간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돈은 없었죠. 오사카에서 도쿄까지 신간센 12만원은 부담이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신간센 흡연석을 탔는데 3시간 정도 소요되는 긴 시간이었지만 담배를 마음껏 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때는 담배를 끊기 전이었으니까.

우라와 레즈 경기를 보기 위해 지하철에서 내려 경기장으로 향가는 팬. 가족단위가 많았다.

도쿄역에서 약 한 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옆의 부천정도. 내가 가야할 곳은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였습니다. 가까운 역 이름은 '우라와 미노소'.

사이타마는 도쿄 옆의 현이고, 우라와는 사이타마 현의 수도입니다. 사이타마에는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라는 미쯔비시 자동차가 설립한 프로축구단이 있고, 역시 사이타마 내에 있는 오미야라는 도시도 '오미야 아르디자'라는 프로축구단이 있습니다. 수원에서 뛰었던 주총련계 재일동포 안영학 선수가 요즘 오미야에서 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었던 장외룡씨가 감독으로 있습니다.

경기장 앞 간이 기념품 판매대. 상품은 다양, 소비자는 바글바글.

오미야가 "J1을 향해!"라는 내용의 포스터를 시내 곳곳에 붙였던데, 지금은 그들은 꿈을 이룬 셈이군요. J1잔류에 성공하고 있고, 외국인 선수와 감독도 선임할 정도니까요.

당시 우라와 레즈는 J1에 있었고, 오미야는 J2 또는 JFL에 있었습니다. 제가 보러간 경기는 우라와 레즈와 이제 막 J1에 올라온 센다이 베갈타의 경기였습니다. 지금은 센다이 베갈타는 J2로 주저 앉았을 것입니다.

우라와 미소노 역에서 내려서 멀리 보이는 사이타마 경기장을 향해 걸었습니다. 이미 역은 우라와 레즈의 상징색인 붉은색 물결입니다. 2002월드컵 거리응원 분위기입니다.

경기장 내부 복도. 더위를 피해 경기 전까지 휴식하는 사람들.

지하철 안에서 붉은옷을 입은 팬들은 온통 축구이야기 입니다. 아니, 우라와 레즈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축구경기가 없었을 1,2주를 어떻게 살았는지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연령대는 다양했습니다. 노인부터 어리 아이까지 옷은 대부분 붉은색이었습니다. 특히 가족단위가 많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이타마 스타디움은 2002 월드컵을 위해 신축된 축구 전용 구장입니다. 경기장에서는 2002월드컵 때 카메룬-사우디, 터키-브라질, 잉글랜드-스웨덴 그리고 일본-벨기에전이 열렸습니다.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 이들이 서포터가 아닌 일반 팬이라는 점이 놀랍다.

정원은 무려 6만3천명. 초대형 경기장인데요, A매치가 아닌 리그경기인데, 2층을 약간 빼고는 거의 들어 찼습니다. 팀 관계자는 "연간회원권은 이미 매진"이라고 했는데, 현장판매분은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포터석은 N석은 일찌감치 매진. S석도 자리가 없었습니다. 1층 자리도 없었습니다. 결국 2층 표를 사서 메뚜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티켓 가격은 3만원.

우라와 미소노역에 내려 경기장으로 걸을 때에는 30분 정도 걷습니다. 셔틀버스도 없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린 수천명의 붉은 응원단이 우르르 걸어갑니다.

경기장 앞. 간이 기념품 판매소가 있었습니다. 머플러는 모두 타올식. 가격은 우리 돈 2만원 선, 약 5종류, 티셔츠는 10 종류가 넘었고, 우리돈 4만원선.그 밖에 가방, 열쇠고리, 스티커, 볼펜 등 없는 게 없었습니다. 매대 앞은 사람들도 바글바글.

경기장 중앙석 1층을 서성거렸습니다. 주변에는 아저씨, 아줌마, 아이들, 할머니 모여 앉아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대형 깃발을 들고, 웃통까지 벗어제낀 한 아저씨에게 "당신은 서포터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우리는 서포터의 친구들"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신간센으로 2시간 도쿄로 와서, 도쿄에서 지하철로 1시간 30분. 사이타마까지 이렇게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 수천명이 센다이 베갈타의 승리를 기원하며 사이타마 스타디움을 찾았다. 서포터 고유 응원도구인 절단통천, 깃발, 게이트기 등이 보인다.

사이타마에서는 일반관중도 서포터처럼 응원을 합니다. 서포터는 아니지만 응원의 수준은 서포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강도가 좀 차이가 날뿐, 이들은 스스로 '서포터의 친구들'이라고 칭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모두 일어나서 펄쩍펄쩍 뛰지는 않았지만, 대형 깃발을 흔드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 아저씨는 맥주까지 사주며 “우라와 보이즈석(서포터석)으로 가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표는 매진이지만, 자리는 구해 줄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운데서 경기와 홈, 원정 서포터 모두 볼 수 있어 거절했습니다.

경기 시작 30분 전. 그러다 먼저 우라와 선수 하나가 뛰어 나왔습니다. 우라와 서포터는 거의 광란의 도가니 직전까지 갔습니다. 거의 5만의 관중이 자아내는 탄식은 중저음이 뛰어난 고급 오디오의 음향 같았습니다.

선수도 손을 흔들며 홈 관중에게 친밀함을 표시했습니다. 동네 동생, 형님 만난 듯이 흔들고, 광중석 가까이 다가와 인사를 하며 한두마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홈 관중과 선수가 매우 친밀해 보였습니다.

경기장의 수천개 깃발은 모두 기립. 전투를 위해 선수들이 하프라인에 도열했기 때문.

잠시 후 상대인 센다이 베갈타(vegalta) 선수들이 나왔습니다. 우라와 서포터의 야유. 인원이 많아서인지 야유가 정말 야유다웠습니다. 야! 이 정도면 상대가 위축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서포터 일반 관중 할 것 없이, 모두 센다이 선수들에게 뻑큐를 날렸습니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습니다. 수천명이 경기장을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날리는 뻑큐. --; 정망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라와 팬들은 상대와 우라와와 경기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에 대한 무한한 적대감을 나타내며 거의 증오심에 가까운 경쟁의식을 마음껏 드러냈습니다. 제가 우라와 선수라면 이런 홈팬의 기세에 눌려 경기에 진다는 생각을 못할 것입니다.

S석 센타이 서포터들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일단 인원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처음으로 J1에 올라온 팀인데, 지난 번 우라와가 센다이 원정 갔을 때 우라와 서포터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여 양측의 감정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대형 유니폼 통천을 펼쳐든 우라와 보이즈. 사람들 사이로 촬영되어 좀 아쉽습니다.

사이타마 오기 전 친분이 있는 우라와 서포터에게 연락을 했을 때 “경기 후 센다이 서포터 패주러 간다”고 말하며 경기 후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로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손님이 갔는데, 상대 서포터와 분쟁을 위해 무시하는 셈입니다.

다른 친구와 시간을 보냈지만, 한국의 정서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들은 손님 보다는 자신 스스로의 일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약이나, 중대한 일이 있으면 손님이 와도 일단 자기 일 먼저 다 하고 보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센다이 서포터들은 다른 서포터들이 에지간해서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우라와 보이즈를 건드렸습니다. 원정에서도 자기들 관중석에 레이스 풀고, 우렁찬 야유를 하는 등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순간순간 센다이 서포터가 더 사납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센다이와 사이타마는 원정을 다니기에는 먼 거리입니다. 줄잡아 4시간 이상 걸립니다. 그럼에도 센다이 원정 서포터의 규모는 수천명에 달했습니다.

골대 뒤를 꽉 채운 우라와 레즈 서포터들.

야유 공방 후 먼저 센다이 서포터가 응원을 시작했습니다. 일본 고유의 노래로 응원가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트위스트 시스터즈의 ‘위 낫 거너 테이크 잇’ 등 록음악도 많이 변형했습니다. 이 노래는 부천SK 서포터이고 지금은 부천FC 1995를 창단한 서포터 헤르메스가 90년대 후반부터 사용하던 응원가이기도 합니다.

센다이 서포터와 우라와 홈 관중 사이에는 거의 두 블럭을 비웠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경찰에 곳곳에 서 있었습니다. 이는 J 리그 다른 경기에서도 보기 힘든 것으로 우라와 홈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센다이가 좀 오래 설친다 싶은 생각이 들을 때 우라와 보이즈가 응원을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붉은 곰이 눈 앞의 노란 삵쾡이의 거친 재롱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용트림을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들의 첫 곡(?)은 클레멘타인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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