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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단의 문화사 <오컬티즘> … 어렸을 때 본 잡지같은 책

by walk around 2013. 7. 28.

오컬티즘. 자비네 되링만토이펠 지음/김희상 옮김. (저자 이름 끝내주네.)

 

어렸을 때 어린이 잡지를 보면 '세계의 괴수', '4차원 세계로 가는 문' 뭐 이런 내용이 많았다. 버뮤다 삼각지대, 아틀란티스 대륙 등 묘하고 신화 같은 이야기에 가슴이 설레였다. 유럽 사람들도 비슷했던 모양이다. 오히려 초딩 시절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런 세계에 탐닉했던 것 같다.

 

<오컬티즘>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군침을 흘리면서 집어든 책인데, 전체적으로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순간순간 재미난 사례가 있고, 한편으로는 고대부터 이성적이었을 것 같았던 독일 사람들도 불과 일이백년 전만해도 말도 안되는 심령에 빠져 허우적 대던, 어쩌면 우리나라 토템과 비교도 안될 정도의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에 열광하던 천상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수확이다.

 

(이런 유럽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지금 한창 읽고 있는 <친밀한 살인자들>에서 극에 다다르고 있다.)

 

 

아무튼 사람들의 인격과 교양은 경제젹과 교육 정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서양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게 알겠다.

 

유럽인들이 믿었던 18세기 토끼를 낳은 처녀 이야기. 개구리왕의 왕관 이야기 등은 같은 시기 동양 사람들도 믿지 않았을 것 같다. ㅎㅎ

 

컬티즘의 득세의 배경에 '돈벌이'가 있다는 것도 재미있다. 서양 사이트 중에 돈벌이를 위한 컬티즘 사이트가 있다는 많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라이프치히에서는 1737년 이런 책도 나왔단다. <꼭 알아야 할 138가지 비밀, 새롭게 발견해서 철저한 검증을 거쳤음>

 

"한사코 고전에서 뽑았다고 하지만 그 비결이라는 게 읽고 있으면 헛웃음만 나온다. 그런 사기가 따로없을 정도. 와인에 절인 청어와 장어, 양젖이나 그 발톱을 섞어서 마시라는 대목에서는 토역질이 나올 지경이다. 그밖에도 어떻게 해야 개구리왕의 희고 검은 줄이 들어간 왕관을 탈취할 수 있을지, 또는 어찌해야 마법으로부터 뱀과 삵을 쫓거나 마법의 거울을 만드는 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심을 자랑하고 있다. 슐레지엔 지방에서 뱀파이어가 출현했다고 하지를 않나, 돌연 마녀 사냥꾼들이 벌건 대낮에 무리를 지어 나타나 사람들에게 꼬챙이에 꿴 구운 고기를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 오.. 너무 재미있다.

 

그 와중에 칸트는 "인간의 지성은 허약하기는 하지만 알고 싶다는 지식욕만큼은 뜨겁기만 하다. 처음에는 진실과 거짓을 가리지 않고 끌어 모으지만, 갈수록 개념은 순화의 과정을 거치며 작은 부분만 남긴다. 나머지는 쓰레기로 말끔히 버려진다."라고 말했는데, 이런 과정이 계속 비슷하게 반복되고, 또 일반 원리에 벗어나는 사람들이 종종 등장하는 게 문제 아닐까.

 

17, 18세기에 유럽에는 귀신들린 사람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퇴마사도 일이 좀 있었나보다. 하지만 그 귀신이라는 게 미덥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그데부르크의 목사 엘리아스 카스파어 라이하르트는 악마가 무슨 얼간이 쪼다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무지막지하게 굴겠냐며 혀를 찼다. 그는 신들림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발작이 있을 때마다 찬물을 끼엊는 것. 아무리 뜨거운 신내림도 금세 식어버릴 것" ㅎㅎㅎ

 

점점.. 어린이 잡지에서 봤던 아이템들이 등장한다. 아마도 어린이 잡지들은 외국의 신비주의 트렌드를 순차적으로 우리 어린이들에게 소개해준 것 같다.

 

"아리안을 직접 불러낸 아틀란티스 전설. 그러니까 몰락한 문명의 단계는 민족 신비주의를 떠받드는 주축."

 

영국의 미스테리 서클로 빼놓을 수 없는 신비주의의 한 축이다. 사람들은 이 미스테리 서클이 신비와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 이후에도 믿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 책의 저자는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칼 구스타프 융의 지적으로 답변을 대신한다. 융은 저서 <현대라는 이름의 전설>에서 UFO와 같은 외계인 현상을 믿는 심리의 원인은 바로 그런 현상 자체를 일으킨 사람이나 사건에서 찾아야만 한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마음 속 인상에는 그것을 불러일으킨 사람 또는 사건 등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미디어가 그림이나 기사로 쏟아내는 뉴스의 홍수가 바로 전설을 만든 주범이다. 전설을 만드는 것은 미디어 그 자체이다.

 

동의한다. 어린이 잡지가 주범이었다. ㅎㅎ

 

저자의 또 의미심장한 지적. 서구에서 일반화된 모양이지만.

 

"예로부터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 왔던 의미체계, 이를 테면 기독교라는 종교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조각조각 분해되고 말았다. 그 조각들은 사이버공간이라는 자유로운 세계를 떠돌다가 검색이라는 낚시바늘에 의해 낚여 수면 위로 떠오를 따름."

 

"위키피디아는 이런 풍소를 극명하게 보여 줌. '지식의 품질이나 깊이로 인정을 받았던 권위를 다른 무엇보다 속도에서 그 우위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속도를 앞세운 우위가 설명과 해석을 모아놓은 따분한 백과사전을 대체하기에 이르렀다는 주장."

 

이 지점에서 위키피디어 운영자와 저자의 통찰력에 박수!

 

그런데... 이런 풍조는 좀 위험하긴하다. 이를 다시 정확성으로 돌릴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