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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 story

잠시 되돌아 본 부천SK의 부천 정착기

by walk around 2011. 6. 9.

그럼 잠시 부천SK라는 팀과 부천의 인연에 대해서 살펴보자.

1995년부터 유공코끼리를 응원하던 팬들은 부천유공을 거쳐 1997년 10월 부천유공 SK FC로 바뀌는 듯 하다가 부천SK로 이름이 바뀌는 것을 목격한다. 그와중에 팀의 지역연고도 바뀌었고, 팀의 상징색도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응원단은 조용히 변화를 받아들였다. 당시 서포터는 아직 지역연고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고, 서울에 3개의 팀이 몰려 있는 등 연고정책이 다소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이다.

1997년 당시 부천유공은 목동종합운동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홈구장인 동대문에서 빠질 때도 저항이 더 없지 않았나 싶다. 적어도 천안으로 떠난 일화천마보다는 가까운 곳으로 옮겼으니까.


부천유공 서포터 헤르메스의 초창기 모습. 동대문에서 여러팀을 번갈아가며 응원하던 팬들은
차츰 '자신의 팀'을 찾기 시작했고, 그중 부천서포터 헤르메스가 가장 먼저 틀을 잡았다.


83년 출범한 프로축구의 원년 멤버인 부천유공축구단은 서울, 인천, 경기를 연고로 했다. 89년에 인천, 경기로 연고를 조정했다. 91년에 서울로 들어왔다가, 96년에 부천으로 옮겼다. 그때는 이미 서포터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당시 부천시는 축구단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곳이었다. 부천시는 2000년 3월 완공을 목표로 춘의동 산 19번 일대의 부천종합운동장을, 2003년쯤 완공되는 상동택개발지구내에 축구전용구장을 건립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축구전용구장은 공수표가 됐다. 2003년 경 부천SK 구단 관계자는 "축구전용구장을 건립하여 운영하고 기부채납하라"는 시의 제안을 구단이 거부한 것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당시 법상 그런 식의 축구장 건립이 가능했던 것인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아무튼 어떤 이유로 축구전용구장 건립 계획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타이거월드(현 웅진플레이도시)가 들어섰다.


부천종합운동장 조감도. 이 조감도는 부천SK 서포터에게는 '약속의 땅'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구장에서 부천서포터는 팀을 잃어버리는 절망을 맛보게 된다.

이 시점이 부천축구의 전환점이었다. 당시 어떻게든 전용구장이 지어졌다면, 부천은 우라와 같은 축구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종합운동장 완공 후 구단이 리그 중위권만 오갈 때도 전국 1위 관중을 동원한 곳이 부천이다. 아담한 전용구장이 생겼다면 이 지역 축구는 아마 폭발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부천에 온 부천SK는 팬들에게 "영원히 부천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고, 자리를 잡아갔다. 하지만.. 또다시 제주로 떠나면서 팬들은 SK 본사 앞에 눈물을 흘리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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