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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 story

"부천FC 창단 돕겠다"는 분데스리가 관계자의 방한

by walk around 2011. 11. 14.

창단 및 운영업체 선정 PT가 끝난 이후 별다른 이슈는 없었다. 다만, 창단을 위한 시민모임은 한숨 돌렸고, 업체는 본업을 진행하면서 창단을 위해 뛰어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팀이 사라진 후 상실감에 빠져서 도대체 주말에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이 시기에 집에 있는 가구를 도색하고, 길에 버려진 가구를 주어와서 수리해서 사용하는 일이 푹 빠졌다. 집에 페인트통이 난무하고, 베란다에는 항상 작업이 진행 중인 가구들이 있었다. 심지어 아파트 현관 타일도 직접 갈았다. 새벽 3시까지 타일을 갈다가 축구팀 생각나서 멍 하니 앉아 있다.

아무튼 업체가 정해진 후 2개월 반이 지난 2006년 8월 5일. 창단업체는 독일 분데스리가 사무국의 에릭로렌츠(Erik Lorenz) 마케팅 담당을 부천으로 데리고 왔다.

부천팬에게는 엄청난 일이었다. 세계 유명리그의 사무국 마케팅 담당이 직접 부천까지 왔으니 뭐가 되도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방문일 점심을 부천의 한 고깃집에서 거하게 먹었다. 이 자리에는 시민모임과 서포터들이 대거 참석했다. 식사 후 자리를 부천종합운동장으로 옮겼다. 이제나저제나 팀 창단을 기다리는 부천팬들이 대거 경기장을 찾았다.

부천팬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이렇게 희망을 찾아서 헤매야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부천팬들의 반응은 상상이상이었다. 사람들이 에릭 로렌츠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간절함이 있었다. 나도 그랬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딱 어울리는 말이다.

현장 곳곳에 언제 만들었는지 걸개가 걸려 있었고, 함성도 간간히 들렸다. 에릭로렌츠는 그야말로 환대를 받았다. 걸개와 팬을 보며 깜짝 놀라기도 했다. 부천종합운동장을 보고 시설에 만족해 하기도 했다. 서포터들은 기념티, 머플러 등 다양한 선물도 내놨다. 사진도 찍고,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자리에서 에릭로렌츠는 '현찰'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앞으로 부천이 팀을 창단하는 과정에 분데스리가 또는 하위리그 팀과 연결을 시켜줘서 그쪽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고, 혹시 마케팅적으로 도울 것이 있다면 돕겠다는 정도였다.

벙벙한 제안이었지만, 그는 최소한 커뮤니케이션이라도 지속적으로 할 것 같은 인상을 확실하게 주었다. 그리고 부천팬들이 축구단 창단을 위해 뛰고 있고, 이런 작업에 대해 외국에서도 관심이 있다는 등의 주위 환기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는 차라리 오지 않은 것만 못했다. 시민모임과 팬의 가슴 속에서 현실과 다른 기대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 사진들을 보며 개인적으로 반성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행사를 진행한 사람 중 한명이라는 것에 취한 듯한 목이 힘들어간 나의 자세와 표정. 내가 봐도 참 가당치도 않다. 시간을 돌려서 되돌아가서 자세를 바로 잡아주고 싶다. 어쩌면 이제 곧 창단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취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한다.

블라인드는 현재는 구단에 관여하지 않는 분들 중 공개를 원치 않으실 것 같은 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