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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living

'전설의 고향'을 본 아이, "저 언니는 왜 피 질질 흘려?"

by walk around 2009. 8. 11.

← '전설의 고향' 포스터. 난 이것만 봐도 무섭다


난 '전설의 고향' 같은 프로그램은 절대 못 본다. 공포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나에게는 '돈 내고 사서 고생하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어쩌다 할 수 없이 공포물을 볼 때는 영화관 천정을 보다가 주변이 환해지면 스크린을 본다. 적어도 낮 장면에서는 귀신이 안나오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내는 공포물 팬이다. 아내 덕분에 난 극장에서 천장만 보다 나온 게 한두번이 아니다. 나를 놀리는 게 재미있어서 더 공포물을 선호하는지 모르겠다.

8월 11일 저녁. TV에서 '전설의 고향'이 방송 중이다. 6살짜리 딸도 엄마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의 이해할 수 없는 대화도 시작됐다.

"전설의 고향 재미있지"

"응. 그런데 저 아저씨 왜 눈이 없어?"

헉… 모르긴 몰라도 방금 전에 끔찍한 화면이 지나간 모양이다. TV 옆에 가지도 못하고 "무슨 장면이야"라고 물었다. 아내는 "시체"라고 짧게 답했다. 이런….

잠시 후 딸은 "저 언니는 왜 피를 질질 흘려?", "머리 묶어야지, 그치?", "귀신이 언제 나와?(이미 나왔는데)" 등 4차원 발언을 쏟아냈다.

아내는 잠시 후 채널을 돌렸다. 칼로 사람을 해하는 등 잔인한 장면이 너무 많이 나와서 아이에게는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로.

'전설의 고향'을 보며 쏟아낸 딸의 발언을 들으며 귀신을 무서워 하는 것은 본능이 아니라 학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두려움은 인간이 인간을 스스로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발전한 본능이긴 하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귀신의 이미지는 실제 귀신과 다를 수도 있고, TV 속 귀신에 대한 두려움 자체는 학습 때문일 가능성도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전설의 고향'을 보며 귀신을 '언니'라고 부르는 딸을 보면.

한편으로 놀랍도록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존재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