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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죽음'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by walk around 2009. 11. 3.

1998년 녹색연합이 전국 성인 남녀 8백40명을 상대로 실시한 ‘죽음’에 대한 설문조사에는 "'죽음'하면 떠오르는 것은?"이라는 질문이 있었다.

나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아쉬움'이라는 답이 나왔다. 아쉬움이라…. 아쉬움이라는 말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떠오르는 말이 아닐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난 겨울 태안에 자원봉사 갔는데, 정말 현장에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시간 후에 바위 밑에서 바위에 단단히 붙어있는 소라를 보았습니다. 분명히 살아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기분이 묘했습니다. 울컥하는 것이 "살아있는 것인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잠시 생각에 빠졌습니다.

'죽음'하면 떠오르는 것?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38.1%가 생명, 평온, 자유, 빛, 희망, 안식, 고요, 다음 생애에 대한 기대, 살아있다는 것, 자기반성, 영원한 귀의, 천당, 열반, 축제 등 “긍정적인 인상이 떠오른다”고 답변했다.

부정적인 인상을 떠올리는 사람은 36.9%로 비율로 볼 때 만만치 않았다. 이들은 ‘죽음’을 접하면 외로움, 고통, 두려움, 허망함, 공포, 이별, 슬픔, 어둠, 장례, 답답함, 끔찍함, 단절, 가족과 자식들의 문제, 허무 등이 생각난다고 답했다.

‘죽음’이라는 말을 들어도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은 11.9%였다. 하얀색, 천당과 지옥, 이세상 끝 등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을 한 사람은 13.1%였다.

활동량이 가장 많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없는 30대와 40대는 죽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다. 특히 40대의 경우 절반이 넘는 53.6%가 죽음을 삶의 고통으로부터 해방, 영원한 안식처, 편안함, 영원한 귀의, 휴식 등과 같은 긍정적인 인상을 떠올렸다. 그들의 삶이 편하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병 없이 건강하게 살다가 주변의 모든 것을 서서히 정리하고 조용한 곳에서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죽음을 맞고싶다고 답했다.

자신에 즉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희망을 남긴 이들도 있었다.

“자식들에게 유언을 남길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기 때문에 삶에 집착하지 않고 당당하게 죽고 싶다.”
“가족이나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고 싶다.”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역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60.7%로 압도적이었다.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10.7%. 나무나 풀같은 식물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도 9.5%나 됐다. “태어나고 싶지않다”, “불가능하다”며 환생 자체를 원하지 않거나 부정하는 사람도 9.5%였다. 기타는 9.6%였는데 이들은 새나 물, 온순한 동물, 무생물 등으로 환생하기를 원했다.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 중에서 특히 ‘자기 자신’으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9.8%였다. 이성으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11.8%.

죽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은 얼굴은 가족이 65%로 가장 많았다. 가족 중에서는 부모님, 자식, 배우자, 가족모두 순이었다. 가족 다음으로 떠오를 것 같은 얼굴은 애인의 얼굴. 8.3%가 애인의 손을 들어줬다. 그밖에 자신이 상처를 준 사람들, 친구 등이 떠오를 것으로 짐작했다. “아무생각이 없을 것이다”고 대답한 사람은 9.5%였다.

자신이 죽으면 “화장하겠다”고 답한 사람은 58.3%. 매장은 30.9%로 나타났다. 과거보다 화장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음을 보여준다.

장례는 대다수의 사람이 “검소하게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92.8%가 검소한 장례를 원한 것이다.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사람은 2.4%에 불과했다. 부모의 장례는 65.5%가 “소박하게 하겠다”고 했으며 “성대하게 하겠다”는 16.7%로 자신의 경우보다 다소 높게 나타났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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