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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football itself

"아르헨티나 경기 즐긴다?" 허정무 감독의 무서운 노림수

by walk around 2010. 6. 15.

아르헨티나와 조별 예선 2차전을 앞두고 "한국 선수단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르헨과 경기를 즐겨라"라는 허정무 감독의 지시가 있었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아르헨과 경기는 즐기고, 나이지리아에 총력을 다한다는 의미가 있다는 해설이 덧붙은 기사도 있습니다.

심지어 "아르헨과 경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다"는 허정무 감독의 멘트를 소개한 기사도 있습니다. 정말일까요? 허정무 감독은 아르헨과 경기를 즐기기로 작정을 했을까요? 그래서 선수들은 쉬고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독부터 선수까지 모두 아르헨과의 경기는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를 하고 있으며, 따라서 경기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는 오는 6월 17일 8시 30분(한국시간)입니다. 장소는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입니다.

조별 예선경기 중 유일한 고지대 경기입니다. 이 경기를 즐길 생각이었다면 산소마스크 등 고가의 장비를 사용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가상의 아르헨전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인(2010년 6월 3일), 에콰도르(2010년 5월 16일), 파라과이(2010년 8월 12일) 등과 평가전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대표팀에게는 막대한 데이터가 코칭스탭과 선수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수들은 아르헨 선수들이 습관까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체력은 한국이 한수 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이지리아와 경기에서 골을 기록한 수비수 에인세(마르세유)는 32살입니다. 에인세의 이름이 화면에 나타나는 순간, "아르헨의 수비가 생각보다 약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시가 뛰는 팀의 후방에 프랑스 리그에서 뛰는 에인세가 있다니.

한 게시판에 보니까 박주영의 09-10시즌 2호골은 에인세를 제치고 넣었다고 하는군요. 아래 사진이 골 장면 화면 캡쳐입니다. 가운데가 박주영, 인상착의로 봐서 왼쪽이 에인세 같죠?


허정무 감독은 1986년 6월 2일 멕시코 월드컵에서 마라도나를 만났습니다. 올림피코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경기에서 허정무 감독은 마라도나를 걷어찼고, 이후 한국팀의 투지가 살아났습니다.

마라도나는 이 사건을 염두에 두었는지, 한국 축구는 태권축구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는 모양입니다.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한 허정무 감독은 이런 말을 듣고 "즐기자"라는 말을 할 성격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온화한(?) 성격으로 지금의 자리에 절대 오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보다는 "긴장하지 말고 대범하게 하자"는 의미로 분위기를 잡아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준비 많이 했고, 데이터도 있고, 자원도 역대 어느 대회보다 훌륭합니다. 체력은 더 좋은 것 같고, 경기 전부터 한국축구를 무시하는 수모도 적당히 당했습니다. 즐기고 싶지만 즐길 분위기가 아닌 셈입이다.

역시나 14일 기자회견에서 박지성 선수가 "아르헨 목표는 승리. 비길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는군요. 데이터도 충분히 들고 있다고 합니다. 하긴 4팀 중 2팀이 올라가는 토너먼트에서 재수없으면 2승하고도 떨어지는 판에 3경기 중 한 경기를, 그것도 수용인원 9만이 넘는 울트라 초대형 경기장에서 경기를 즐길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아르헨과 경기가 있는 날. 제가 사랑하는 3부리그 부천FC의 훈련이 있는 날입니다. 부천FC 선수들은 '경기'와 '훈련' 중 이구동성 '훈련'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이런 선수들과 함께 축구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이날은 아르헨 경기를 관전하지 않고, 부천FC의 훈련을 지켜볼 생각입니다.

월드컵이 제 아무리 화려하다 하지만, 저에게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나의 팀이 하는 축구가 진짜 축구'입니다. 하지만 DMB까지 끄고 있겠다는 건 장담하지 못하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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