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미쳐 서포터임을 자임한지 15년이 넘었습니다. 대학생이었던 제가 아이 아빠가 되었고, 지금은 아이가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갑니다.

한 분야에 이 정도 시간을 몰입했으면,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투자한 시간이 가치있는 시간이 되니까요.

요즘 뭔가 깨달은 게 있습니다. 90년대 말, 00년대 초 부천 헤르메스를 통역까지 대동하고 직접 찾아와서 '서포터의 자세', '응원방식', '선수단을 대하는 자세', '구단과의 관계' 등을 꼬치꼬치 묻고 갔던 우라와레드 다이아몬드 서포터가 엄청나게 성장하는 것을 보고,

또 역으로 제가 사이타마를 찾아가서 우라와보이즈 대표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쪽 사람들을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느낀 것인데요... 듣고 보면 참 의외일 수 있습니다.

그건은 바로 '서포터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라와레드 다이아몬드 서포터즈의 대표적인 3단 통천.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문양 안에 서포터를 상징하는 숫자 '12'가 새겨져 있다. 우라와 보이즈가 가장 아까는 통천 중 하나로 벌써 수년째 사용하고 있다.


우라와보이즈는 서로 무지하게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존경과 믿음이 무지막지하게 얽혀 있는 사랑. 근 10년 넘게 상장한 볼륨의 시스템을 유지하며 운영하는 내면에는 결국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게 상명하복의 일본 전통문화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만, 차차 이야기할 남미나 유럽사례를 들어도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또, 우라와 서포터 사이에도 내부에 계파다툼이 있지만 큰 틀이 깨지지는 않고, 자발적 소수는 어디에나 있기는 합니다.

우리 서포터는 조금 커지기 시작할 때, 반으로 쪼개지는 게 흔한 일입니다. 현재 K리그 서포터들도 모임이 쪼개진 곳이 몇 있고, 부천도 하나로 화합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분열이 성장의 길목에서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우라와보이즈를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확고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반 관중도 서포터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사랑'은 서포터의 기본 덕목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서포터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90분 내내 응원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경기에 패한 선수들에게 박수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사람이 누군가를 저렇게 지지할 수도 있구나"라는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 결론은 "결국 서포터는 조건없는 사랑 위에 서 있는 조직"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어제까지 욕하던 선수가 우리 팀에 오면 바로 자세를 바꾸어 "이제 너는 우리 가족이며 아무도 너를 건드릴 수 없다"는 식으로 면상을 싹 바꿀 수 있는 것 입니다. 사랑은 사랑인데, 지극히 배타적인 사랑입니다.

또 믿음과 존경이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이런 전제조건을 깬 대상은 다시 축구장에 올 수 없는 없는 잔인한 측면도 있긴 합니다.

이제 20년을 바라보는 부천서포터즈 헤르메스는 늙은 조직입니다. 전통이 있다는 것은 좋지만, 매너리즘에 빠져 있고 걸어온 선구자적이고 험난한 길을 우리 스스로 잊고 있기도 합니다.

팀을 잃어도 헤르메스가 살아있으면 언제든지 재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어쩌면 있는 팀도 지킬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듭니다.

돈을 횡령하거나, (성)폭력 또는 거짓사실 유포와 같은 중죄가 아니라 의견차이, 관점차이, 친분의 차이 정도는 무시하고 한 차에 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어쩌다 경기장 일 때문에 한 경기 응원을 제대로 못하면 "죽기 전에 부천FC를 응원할 수 있는 경기가 한 경기 줄었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듭니다.

죽기 전에 이런 생각이 들겠죠. "아! 우리 딸은 한번만 더 안아 봤으면!" 또 이런 생각도 들겠죠. "부천FC 경기 한 경기만 응원해 봤으면!"

앞으로 몇년이나 또 몇 경기나 열정을 토해내며 어려운 시절 힘을 주었던 부천축구를 응원할 수 있을까요. 세어보면 의외로 몇 경기 안됩니다. 여든, 아흔까지 장수만세를 외친다해도, 팀에 대한 사랑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꿈을 이룰 시간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1. 보시니 2010.05.15 11:13 신고

    애정, 사랑이 서포터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군요.
    축구팀을 그냥 축구팀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으로 보는 것 같네요.

    • walk around 2010.05.16 01:35 신고

      대단한 통찰력! 맞아요. 축구팀이 그냥 팀이 아니라 어떤 '존재'예요. 서포터에겐...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부지런해지는 것 같습니다. 2005년 6월 사진입니다. 한 축구팀을 사랑한 사람들이 모여서 장비를 정리하는 모습인데요. 일의 양이 만만치 않습니다. 정말 무지막지한 일거리입니다.

소녀들이 사랑에 빠지면 책 한권을 빼곡하게 편지로 채워서 주기도 합니다. 주체할 수 없는 열의를 그렇게 소진하는 것입니다. 서포터즈가 장비를 만들고 정리하는 것도 그런 차원 같습니다. 무언가 하고 싶은데, 방법이 이런 것입니다. 이렇게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바치는 것이죠.


햇볕에 말린 걸개를 다시 접고 있습니다. 이렇게 걸개가 뽀송뽀송해지면 신혼집 이불 말린 것처럼 기분이 참좋습니다. ^^




  1. 보시니 2010.05.11 09:49 신고

    정말 애정이 없으면 엄두도 못낼 일들을
    써포터 분들이 하고 계시군요.~!!
    이런 열정이 부러울 뿐입니다.


아직은 대부분의 K3팀이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않습니다. 부천FC의 경우 풀타임 직원은 1~2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사무국장도 자원봉사, 경기진행도 자원봉사, 심지어 단장도 자원봉사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비용절감은 구단의 지상과제가 됩니다. 부천FC가 창단 후 처음으로 리그에 참여한 2008년에는 자원봉사 열기가 그야말로 뜨거웠습니다. 2009년에는 잉글랜드 7부리그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와 초청경기를 하고, 팀이 리그 선수에도 잠시 오르는 등 성적까지 좋아서 신이난 팬들의 자원봉사 참여가 이어졌습니다. 


위 사진은 구단 물품판매를 자처한 부천서포터즈 회원들입니다. 지금도 경기장에서 볼 수 있는 얼굴들입니다. 올해에는 부천FC 구단이 중고생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을 하기 때문에 과거보다는 일손 수요가 줄었습니다.


경기 후 경기장 곳곳에 설치했던 테이블을 정리하는 모습입니다. 경기 전에 감독관, 아나운서, 대기심 등을 위한 책상을 사용하는데 경기 후에는 모두 치워야 합니다. 이들의 의자와 볼보이의 의자도 치워야 합니다. 지금도 경기 후에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팬들의 봉사 덕분에 경기 후 정리는 보통 20분 안에 속성으로 끝이 납니다. 


쓰레기 청소하는 팬들입니다. 경기장을  관리하는 시설관리공단에 청소를 의뢰하면 경기장 사용료가 많이 비싸집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청소는 구단이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경기 후 이렇게 뒷정리를 하는 모습을 보면 뭐랄까. 기분이 묘합니다. 이들은 왜 편하게 경기를 볼 수 있는 FC서울, 인천유나이티드, 수원삼성 같은 팀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그런 곳에 가면 청소할 필요도 없고, 스타도 있고, 구단의 팬서비스도 즐길 수 있습니다. 팀이 망할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런 에너지와 열정을 이들에게 준 것인지는 "축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 단장이 한국에 왔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과 일치해서 더 가슴에 와 닿았었는데요,

"football is community"

확신에 찬 이 말을 듣고 부천FC 팬들은 덩달아 더욱 강한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구단과 팬이 편을 가르는 순간 그 구단은 어려워 집니다. 팬이 구단을 내꺼라고 생각하고, 구단은 우리도 팬이라고 생각해야 벽이 없는 소통이 이뤄지면서 커뮤니티가 이뤄집니다.

여기서 모든 구성원이 소질과 정성과 아이디어를 더해서 구단을 만들어가고 성취를 하면서 모두가 같은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축구의 의미, 축구의 철학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구요. ^^


표 판매 자원봉사입니다. 종종 표 판매는 아르바이트로 대체 하기도 합니다.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도 팬인데, 표를 판매하면 경기를 전반전 못보거든요. 축구는 현장에서 보는 게 기본이기 때문에 이런 막대한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원봉사 중 주요(?) 보직 몇 명은 경기를 거의 못보는 것 같습니다. 부천구단을 만들어 축구를 보는 게 소원이어서 축구단 만들고 자원봉사를 하는데, 정작 만들고 나니 경기를 못보는 것이죠. 아이러니입니다. 어쩌면 구단의 존재자체가 그들에게는 행복일 것입니다.


경기전 자원봉사자들의 작전(?) 회의입니다. 요즘에는 다들 숙달될 조교가 되어서 이런 작전회의는 거의 필요가 없습니다.


홈경기 후 매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경기 후 우르르 몰려가서 A보드를 철거하는 것. A보드도 부천서포터가 직접 만들어 팀에 기증한 것입니다

이렇게 경기 한 번 보는 게 힘들기 때문에 구단 직원이나 팬들은 홈 경기보다 원정경기가 차라리 편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아무런 준비없이 그저 경기만 볼 수 있으니까요. 오가는 게 좀 부담이지만. 내일 부천은 청주로 원정을 갑니다. 팬들은 청주까지 운전만 하면 됩니다. 그래도 그게 더 편합니다. 노동 안하고 축구를 볼 수 있으니까요.

부천FC 서포터 헤르메스의 거대한 유니폼 통천
부천FC 선수들과 서포터, 철문 사이에 두고 랄랄라
부천상인들, 부천FC 팬과 선수 위해 거리에 음식 내놓다
K3 부천FC 서포터, 거리에서 합창
'AFC챔스 진출한 부천FC 팀닥터로 세계 누비고 싶다'




  1. 줌마띠~! 2010.04.24 09:50 신고

    진짜~ 좋아하지 않으면...하기 힘든 일~ ㅎㅎ

  2. walk around 2010.04.25 10:04 신고

    그렇죠.. 살짝~ 미쳐야 할 수 있는 그런...^^;

  3. 보시니 2010.04.26 10:50 신고

    써포터가 아니라 거의 가족 수준이네요~
    이런 팬들이 있어 3부리그에서도 즐거운 축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walk around 2010.04.26 11:39 신고

      그렇게 보이세요? 역시 사진의 힘은 위대합니다. ^^ 저 친구들 자기들까리 맨날 다퉈요..ㅋ 사진으로 보니까 다 친해 보이네..^^



사실 이 통천은 좀 심하게 큽니다. 이 사진은 제가 직접 찍은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부천서포터 통천 인증샷이 되었습니다. 아마 2002년이 아닐까 합니다.


한 부천 서포터 회원이 만든 바탕화면용 이미지입니다. 이렇게 관중이 많았는데…. 우라와 레즈와 같은 구단이 될 수 있었는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K3에서 경기를 하면서 부천FC는 N석과 S석, 그리고 본부석 건너편은 사용을 하지 않습니다. 경기장이 3만8천석에 달하는 대규모이기 때문에 본부석 쪽만 얼추 채워도 수천명이 됩니다. 하지만 경기당 1~2천명 수준의 관중이 오기 때문에 현재는 본부석만 채워도 상당한 집객입니다.

특히 부천FC의 경우는 이 1~2천명의 관중이 5,000원(성인기준)을 내고 입장하는 유료관중이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했군요. 아무튼 통천이 크기는 정말 큽니다. 이 통천을 만들 때 후원을 한 푸마는 마케팅 효과가 톡톡했습니다. 거의 10년 가까이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2002년 부천SK가 아직 부천에 있던 시절, 경기 후 유니폼 통천을 정리하는 부천서포터입니다. 일단 트랙으로 내려와 통천을 평평하게 펼쳐야 합니다.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는데, 습기차고 비시즌 때 사용을 안하니까 곰팡이 냄새도 쫌 나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시즌 중반에 가면 대략 상태가 좋아지고, 그러다 장마 만나서 한번 비 제대로 맞으면 또 축 늘어집니다.



펼친 다음에 크게 몇번을 접습니다. 이때는 팀웍이 쫌 중요합니다. 사람도 많이 필요합니다.


많이 작아지면 약간 폭을 좁게 잡고 돌돌 만다는 생각으로 여러번 접어 나갑니다. 이때도 양끝이 어긋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아주 작아졌습니다. 사진 속 얼굴 중 부천SK가 부천을 떠난 후 경기장에 안보이는 친구들이 있네요. 다시 부천에 축구가 돌아왔습니다. 토요일에 부천종합운동장에 오세요! 다시 통천 평쳐 봅시다. 그런데 이번주와 다음주는 원정이군요. --;


K3 팀을 창단한 이후에도 종종 이 통천을 사용하는데, 이 사진은 지낸해 통천 사용 후 정리하는 모습입니다. 아무래도 K리그 때보다는 팬이 줄었지만, 그래도 통천 치울 정도는 됩니다. ㅋ


정리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경기 후 참여하는 사람의 비율은 오히려 높아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서포터도 남녀가 유별했는데, 요즘에는 여성의 참여가 두드러집니다. 원정담당 등 보직(?)을 맡는 여성들도 늘고 있습니다. 통천을 정리할 때도 남자만 있는 게 아닙니다. 특히 부천에서는...^^  구단에 팬을 위해 많은 것을 해주는 큰 구단을 놔두고 이렇게 고생을 자처한 사람들이 부천FC를 더욱 살찌웠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이 사람들이 구단의 주인이니까.


관련글 :

응원장비를 정리하는 K리그 시절 부천FC 서포터
선수들 연습 때부터 통천을 펼치는 일본 서포터
열정의 응원, J리그 우라와레즈 서포터즈


<관련사진>


2002년


  1. 남바 2010.04.23 01:04 신고

    저 유니폼 통천... 2009년 7월18일 유맨전에 사용하다가 찢어졌다고 들었는데.. 괜찮나요??

    • walk around 2010.04.23 08:46 신고

      소매 아랫부분에서 가로로 찢어졌어요. 현재는 그 상태 그대로라고 합니다. 아랫부분만 들면 그냥 네모난 통천이 되는 것이고.. 관중이 사용할 때는 위에서 하나 아래에서 하나 이렇게 쌍으로 펼쳐야 합니다. 모양은 좀 빠지지만 아직 사용은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 찢어진 상태에서 사용하는 사진도 찾으면 올릴 생각입니다.



2005년 3월 사진입니다.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겨우내 먼지에 내려 앉은 응원장비를 손 보는 날이었을 겁니다. 지금도 만만치 않지만 부천서포터의 응원 장비는 너무 많았습니다. 나중에는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고, 90년대 후반에 만든 도구도 있어서 응원도구들이 고색창연했습니다.

물론 그때는 지금은 함께 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팀이 있어서 응원준비를 한다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하드의 폴더 순으로 정리하다보니 이제 부천서포터의 부천SK 시절 사진을 정리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사진이 나올지 모르겠네요. 폴더 안에는 여기저기 부천FC 1995와 뒤섞여 있기도 합니다.



이 장면은 2002년 7월입니다. 경기 후 응원도구를 정리하는 헤르메스입니다. 경기 후 정리하는 사람만 합쳐도 요즘 부천FC 1995 경기에 나오는 사람 수와 얼추 비슷하네요. 요즘에 부천서포터가 지치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부천FC가 예전 부천SK의 위용을 되찾는 날이 오겠죠.


사진 속의 사람들 중 일부는 많지는 않지만 다른 K리그 구단 서포터로 갔답니다. 일부는 부천SK 연고이전 후 아예 축구를 떠났고. 일부는 즐기는 종목을 바꾸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수백명이 남아서 부천FC 1995를 만들고 지키고 있습니다.


장비는 많았지만 정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보니 경기 후 저렇게 경기장을 환하게 밝혀두는 것도 부럽네요. 요즘에는 전기료가 아까워서 경기 후 최소한의 불만 남기고 모두 꺼버립니다. 그게 1부리그 팀과 3부리그 팀의 제정 규모 차이겠죠.

응원장비를 정리하는 사진은 찾는대로 그냥 이 게시물에 추가할 생각입니다. ^^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일본에게도 2002년 월드컵은 특별했습니다. 4강에 미치지 못하지만 일본도 최초로 16강에 갔으니 할만큼 했다는 분위기였습니다. 덕분에 일본 프로리그 관중도 늘었고, 국가대표 서포터도 폭증했습니다. 보통 서포터는 골대 뒤에 한무리가 있고 그 주위를 일반관중이 감싸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2003년 5월 한일전에서는 경기장 거의 전체가 서포터였습니다.

여기서 서포터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유니폼은 당연히 입고 90분 내내 서서 뛰면서 응원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2003년에는 홈팀 서포터 자리인 N석이 모자라, S석도 거의 다 채웠습니다. 정말 상당한 규모입니다.


국립 요요기경기장.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운동장 정도의 역사성이 있지 않을까요? 낡은 시설이지만 아직 쓸만합니다. 지난해 포항이 우승한 AFC챔스 결승도 이 경기장에서 했고, 올해 설날 한일전도 이 경기장에서 했습니다.



일본 축구팬들은 경기 시작 전에 경기장 복도에 삼삼오오 있는 걸 즐기는 모양입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2002년 방문해서 봤던 사이타마 구장의 우라와레즈 팬들도 복도에 모여서 경기 시작을 기다렸습니다.



경기장에는 비가 오고 있습니다. 일본 팬들은 대부분 흰 비옷을 입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 시작이 임박하자 모두 비옷을 벗었습니다. 비가 올때 비옷을 입고 있느냐 아니면 선수들과 함께 비를 맞느냐도 서포터냐 일반 관중이냐를 비교하는 잣대일 수 있습니다. 중간에 검은 옷을 입은 응원 리더가 분위기를 잡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S석입니다. 당시 S석에는 프로축구 서포터와 일본 국가대표 서포터를 겸하는 사람들이 주로 모여 있었습니다. 검은 복장의 리더는 우라와레즈의 리더 복장과 비슷합니다. 아해 사진은 우라와레즈 서포터입니다. 서포터단체의 중심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중에 당시 전체 리더였던 가타씨도 있습니다.




사진은 N석의 울트라니폰입니다. 2006 월드컵을 준비하는 마음을 유니폼 통천에 담았습니다. 경기장 조명을 끄고 한 껏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이때 S석에서는 체게바라 통천이 올라왔다가 내려갔고, 이어서 양쪽 사이드에는 초대형 일장기가 올라갔습니다.


이제 경기 시작입니다. 경기 시작 시점에 머플러를 쫙 펼치는 것도 서포터의 특징입니다. 당시에는 전 경기장 관중들이 머플러를 펼쳤습니다. 거의 1,2년마다 한번은 일본의 축구장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이 시기를 정점으로 일본 서포터의 수가 줄어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체 관중은 줄지 않고, 한일전은 여전히 거의 매진상태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지난 설에 있었던 한일전의 S석 일본 서포터 사진입니다. N석은 거의 채웠지만, S석쪽은 대부분 일반 관중이고 서포터로 보이는 사람들은 열댓명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이건 그냥 지나가는 사진인데요. 당시 한국 관중석에 있던 한 여성인데, 윤손아씨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맞다면 일반 관중석에 섞여서 응원하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2010년 2월 14일 일본 도쿄의 국립경기장(요요기 경기장)에서 벌어진 동아시아대회 한일전이 끝난 후, 한중일 3국의 선수단이 각자 자국 팬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아래 동영상을 보시면 한국, 중국, 일본 순서로 선수단이 관중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한국도 이기고 우승까지한 역사적인 대회인데 팬에 대한 인사는 다소 성의가 없어 보였습니다. 펜스 앞까지 만와서 손 흔들다 가버렸스니다. 이 정도면 원정간 사람들 참 맥빠집니다. 한국은 팬 바로 앞까지 왔으니 아쉬운 감이 있지만 중간은 한 것 같습니다.

일본 선수들이 좀 놀라웠습니다. 갑자기 전 선수들이 본부석부터 시작하여 경기장 4면을 터벅터벅 돌며 관중석 바로 앞에 가서 인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야유를 묵묵히 받고 서 있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S석의 한줌도 안되는 서포터에게도 모두 도열해서 고개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인사라기 보다는 대회의 부진을 사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본부석 건너편의 팬에게 인사를 하고, 메인 서포터즈가 버티는 N석까지 터벅터벅 걷더니 엄청난 야유를 받으면서 팬에게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인사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래 동영상 끝부분이 N석에 인사하는 일본 선수들입니다. 동영상의 경기장 전광판을 보시는 것이 당시 상황을 더 이해하기 좋은 것 같습니다. 경기장 중앙에 중국 선수들 때문에 좀 어수선 합니다.

한국에 대패를 한 후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경기장을 돌며 인사를 하는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장면을 본 일이 없습니다.

사실 이런 모습은 j리그 관전을 위해 일본을 찾을 때 자주 본 모습이기도 합니다. 팬 지상주의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라와레즈의 경우 경기 전에 호명된 선수들이 4면에 다가가 인사를 하고, 경기 후에도 모든 선수들이 4면의 관중을 일일이 찾아가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패해서 1부리그에서 2부리그로 주저 앉은 경기를 마친 후에도 팬들에게 다가가 야유 속에서 끝까지 인사하는 모습을 본 일도 있습니다(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팀은 아니지만 도쿄 베르디, 05년 12월).

특히 N석의 서포터석 앞에서는 경기가 승리했을 경우, 한참 같이 노래하고 점프하다 들어가더군요. 콘서트장이 따로 없었고, 축구장 올 맛이 날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경기 후 황급히 경기장을 뜨기 바쁜 우리 선수들과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일본은 경기에서는 졌지만 팬을 사랑하는 마음에서는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S석의 서포터들은 '세계4강' 게이트기를 거꾸로 들고 선수들을 맞았다.
국전 대패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오카다 감독의 "세계4강" 발언을 비꼬는 듯 했다.




  1. kcyland 2010.03.06 15:05 신고

    잘 읽고 갑니다.

 

 

 

 

 

 

2010년 2월 14일 일본 도쿄의 국립경기장(요요기 경기장)에서 벌어진 동아시아대회 한일전에서 일본 서포터는 몇 가지 응원코드를 선보였습니다. 그 중 하나가 깃발을 사용한 응원이었습니다.

관련 게시글 : 이동국의 PK 방해하는 일본 서포터

눈에 띄는 또 하나는 응원코드는 전범기(욱일기, 욱일승천기) 사용입니다. 욱일기를 90분 내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비교적 큰 크기의 욱일기를 어딘가에 꽁꽁 숨겨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흔들었습니다. 일반 일장기 깃발을 90분 내내 흔들어댄 것에 비하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래 동영상을 보시면 약 25초 지점에서 갑자기 숨었던 욱일기가 나타나 힘차게 휘날리다가 상황이 종료되자 황급히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전범기는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습니다. 위에 '관련 게시글'에는 전범기를 흔드는 모습을 캡쳐해 놓았습니다.(모바일로 보면 화면이 작아서 잘 안 보이네요. 데스크톱으로 보는 게 좋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평상시 응원 모습입니다. 수많은 일장기가 있지만 전범기는 없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1-3 대패가 거의 확정적인 순간에는 파란색 전범기가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깃발을 만드는데 많은 정성이 들어갔을 텐데, 왜 거의 90분 동안 다리 아래 숨겼다가 경기 막판에 사용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래 동영상에 파란 전범기가 있습니다.(응원코드를 떠나 욱일기의 등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상황에 따른 깃발 선택은 역시 우라와레즈(우라와 레드 다이아몬드)의 우라와보이즈의 응원방식과 같습니다. 아래 사진은 우라와보이즈의 평소응원 모습니다. 잉글랜드기 변형, 체크무늬 등의 깃발이 보입니다.

그런데 아래 사진을 보면 갑자기 여러개의 브라질기가 등장했습니다. 우라와레즈의 브라질 출신 선수의 활약이 두드러질 때, 그의 개인 응원을 할 때만 순식간에 등장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한일전의 전범기와 같은 패턴입니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봐야 정확하겠지만, 이런 응원코드는 선수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깃발을 사용한 PK나 프리킥 방해도 그렇지만, 특정 시점에 특정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선수들에게 "주의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라와보이즈나 이번 한일전의 일본 서포터는 특정 순간부터 하나의 응원가를 수분간 계속 부르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선수들이 골을 성공시키기 전까지는 이 노래를 멈추지 않겠다"는 압박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우라와레즈 경기에서는 한 노래를 20분인가 부르다가 결국 골이 들어가자 노래를 그친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번 한일전에도 후반에 같은 노래를 계속 불렀지만 결국 골이 터지지 않자 그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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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응원방식은 결국 "경기 결과에 팬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축구의 특징을 잘 살린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축구장에 올 때는 "오늘 선수들이 경기를 이기나 한번 볼까?"라는 방관자가 아니라 "오늘 나도 선수들과 함께 뛰어서 경기에서 이겨보자!"라는 적극적인 참여의 자세가 어울립니다.

그래야 뜨거운 승리를 따냈을 때, "선수들이 이겼어"가 아니라, "우리가 이겼어"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었을 때, "한국 대표팀 4강"이라는 표현보다 "대한민국 4강"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은, 온 국민의 응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함께 승리를 일구어 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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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래 사진은 2006 남아공월드컵 때 일본 측 관중석에 걸린 욱일기입니다.


<2012년 11월 30일>

아래 사진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가가와신지를 응원하는 일본인이 잉글랜드 올드 트레포트에서 펼친 전범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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