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서포터는 특정팀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팬을 말합니다. 너무 좋아한 나머지 평생 오직 한팀만을 사랑할 것을 맹세한 사람들입니다. 서포터는 당연히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선수들과도 친분이 쌓이게 됩니다.

먼 곳으로 원정을 떠나서 교통편이 마땅치 않을 때 갑자기 구단관계자가 선수단 버스를 태워줘서 선수들과 친분을 쌓기도 하고, 선수가 이런저런 부탁을 하려고 연락을 하는 바람에 선수와 말을 트기도 합니다. 팬과 선수의 모임같은 행사에 갔다가 전화번호를 교환하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한국에 서포터라는 조직이 생기기 시작한 90년대 중후반부터 서포터들 사이에는 "선수들과 연락하지 말라"는 일종의 불문율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이런 원칙아닌 원칙은 서포터에게 매우 유용한 것 같습니다.(따지고 보면 선수에게도 유용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특정 선수와 개인적인 친분을 가져서는 곤란하다" 정도가 되겠네요. 팀에 기여하는 선수를 좋아하는 거야 있을 수 있는 것이니까.


특정 선수와 가까워지면 팀을 지지한다는 서포터는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선수는 팀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특정 선수를 따라서 응원하는 팀을 바꾼다는 것은 역시 90년대 중후반부터 서포터들이 이야기한 '유랑극단'이 되기 딱 좋습니다.

"오늘 뛰실 거예요, 밥?"은 내가 아스날 선수에게 건넨 단 네 마디 말 가운데 하나이며(다른 세 마디도 적어보면, 그 다음 시즌에 부상에서 회복 중이던 밥 윌슨에게 했던 말 "다리는 어때요, 밥?", 찰리 조지, 팻 라이스, 앨런 볼, 버티 미에게 했던 말 "사인 좀 해주실 수 있어요?", 내가 철이 든 다음 아스날 기념품 가게 바깥에서 브라이언 마우드에게 했던 말 "다리는 어때요, 브라이언?"이다.)

요즘 외우다시피 읽고 있는 <Fever Pitch>의 한 구절입니다. 저자 닉 혼비는 세계가 알아주는 아스날 서포터이지만,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스날 선수와 단 네마디를 나눴다고 합니다. 왜 일까?

팀이라는 것은, 사실은 거기서 뛰는 선수들보다는 우리 같은 팬에게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20년 전 그 선수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20년 후에 그들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또 몇몇 선수들은 고작 2년 뒤에도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빌라 파크나 올드 트래포드에서 드리볼을 하면서 아스날의 골문을 향해 쇄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닉 혼비가 정말 중요한 말을 할 차례입니다

아니, 아는 지금 그대로의 현실에 만족한다. 그들은 선수이고 나는 팬이며 그 경계선을 허물고 싶지 않다.

관련게시글 :

국가대표 경기에 열광하지 않는 축구팬이 있다고?
축구 서포터즈는 '배타적인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조직
부천FC 서포터즈, 자존심 강했던 초심 잊었나!




"1970년대 초, 나는 잉글랜드인 대열에 동참했다."

축구 에세이 <피버 피치(Fever Pitch)>의 48페이지에 나오는 말입니다. 축구책에서 "잉글랜드인 대열에 동참했다"는 표현은 "축구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일 것 같은데, 그 다음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전 잉글랜드인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이들과 나란히, 나 역시 잉글랜드를 미워하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전체 문맥으로 볼 때 농담반 진담반인 것 같은데, 아무튼 국가대표팀에 대해서 다소 애매한 태도를 갖고 있는 축구팬의 존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토튼햄, 리즈,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 선수들에게 깊은 반감을 갖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의 경기를 볼 때면 온몸을 비비 꼬기 시작했고, 우리들 대다수가 그러했듯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경기와 나 자신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국가대표팀에 대한 무덤덤한 태도는 클럽 서포터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피버 피치>의 저자 닉 혼비는 심지어 이런 말도 합니다.

"차라리 웨일스 사람이나 스코틀랜드 사람, 아니면 네덜란드 사람이 되는 편이 나았다. 다른 나라 축구팬들도 그럴까? 예전에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기 선수들이 외국에서 망신을 당하고 돌아오자 공항에서 썪은 토마토를 던졌던 일이 있는데, 나로서는 그만한 관심조차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많은 사람들이 국가대표의 성적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클럽의 성적에 관심이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른 몇일 후 이탈리아 기자를 만났습니다.

안정환이 이탈리아에게 골을 넣었다는 이유로 페루자에서 쫒겨날 상황에 이르고, 봉변을 당할 우려가 있으나 이탈리아 여행을 자제하라는 보도까지 나오는 와중이었습니다.

"당신도 한국 사람을 보면 화가 납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나는 삼프도리아 서포터이며 국가대표의 성적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이탈리아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는 부연설명도 하더군요.

2005년 6월 1일 독일국가대표는 자국에서 개최하는 월드컵을 준비하며, 자국의 명문팀 바이에른 뮌헨과 평가전을 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뮌헨은 대표팀을 4-2로 대파합니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대표팀 골키퍼 레만에게 조롱과 야유를 했습니다. 뭰헨 소속 올리버 칸이 최고이기 때문에 레만을 빼야한다는 이유였습니다.

대표팀 코치 비어호프는 "관중들의 편파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국가대표팀을 그런 식으로 대우해서는 안된다"며 흥분했다고 합니다.(조이뉴스24, 2005.6.2) 발단은 골키퍼이지만 "난 독일 사람이 아니라 바이에른 사람이다"고 말하는 뮌헨 서포터들이 대표팀을 조롱하는 것은 크게 이상할 것도 없어 보입니다.

한국 대표팀과 부천FC가 경기를 한다면? 당연히 부천FC 골대 뒤로 갈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대표팀 경기에 관심이 크고, 여러 장면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코끝이 찡해지기도 합니다. 지면 화도 납니다. 민족이라는 동질감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일단, 닉 혼비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나는 잉글랜드가 이기기를 바라긴 했지만, 잉글랜드는 나의 팀이 아니었다."



  1. Choe,Jieun 2010.06.15 21:20 신고

    Fever Pitch 책 정말 좋으셨나보네요. ^^

거리응원은 축구관전이라기 보다는 축제의 의미가 강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경기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응원이라는 것도 선수들에게 전달되지 않아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즉, 거리응원은 서포터와 같은 축구 마니아에게는 어울리지 않고, 평소에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이벤트 같습니다. 광장의 아름답고 패셔너블한 여성들을 월드컵 이후 리그 경기장에서 볼 수 있을까요? 설마!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체코 프라하에 설치된 대형 화면입니다.


지난해 7월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유맨·현지에서는 'FC United'로 칭함)의 단장은 "맨유의 경기장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경기장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팀을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맨유 경기를 눈 앞에서 직접 볼 수 없게 되자, 그들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축구를 보기위해 팀을 새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축구는 커뮤니티이자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입니다. 유맨의 팬들은 그들이 맨유 경기에 갈 수 없다는 이유로 커뮤니티가 와해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또 변함없는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매개체로서의 축구팀이 필요했고, 그렇게 만든 팀과 경기장에서 커뮤니케이션하며 한경기 한경기를 함께 치뤄나가고 있습니다.

혹자는 "맨유 경기 보러갈 돈이 없으면, 펍에서 TV로 경기를 보며 응원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서포터에게는 잔인한 말입니다. 경기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뛰며 경기를 보는 것과 맥주병 들고 TV보며 옹알거리며 축구를 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점이 유맨의 팬들을 세계 최강팀의 서포터에서 순식간에 잉글랜드 7부리그 팀의 서포터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축구팬에게 현장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12번째 선수도 선수입니다. 경기에 개입해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TV 모니터 앞에서는 경기에 영향을 주기 어렵겠죠.

"아스날과 나의 관계는 완전히 개인적인 것이었다. 아스날은 내가 경기장에 들어가 있을 때만 존재했다. 따라서 원정경기에서 저조한 성적을 내더라도 나는 그다지 실망하지 않았다."

요즘 손에서 떼지 않고 있는 닉 혼비의 피버 피치(Fever Pitch)에 나오는 말입니다(앞으로 열개 이상의 포스팅에 이 책의 인용문구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닉 혼비는 경기장에서 호흡할 때 진짜 축구관전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그렇다고 거리응원을 '모니터 앞의 딴따라 짓'으로 폄훼하기에는 몇 가지 장점도 있습니다.

한국의 거리응원은 1997년 10월 11일 카자흐스탄과 경기 때 처음으로 시작됐습니다. 당시 결성 초창기의 붉은악마는 신문사가 설치한 대형화면이 있는 광화문을 거리응원 장소로 정했고, 열정적인 응원을 선보인 뒤에 그 모습을 카자흐스탄으로 보내서, 전반전을 마친 선수들에게 '에너지'를 전달해 주고자 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커뮤니티가 커뮤니케이션하려고 한 축구 마니아적 행위였습니다.

당시 종로경찰서는 집회 신청을 붉은악마 초창기 멤버 전명준님에게 "축구를 이유로 집회 신청한 경우는 처음"이라며 집회를 허가했습니다. 모인 인원은 수십명에 불과했습니다. 경기 중에 수백명으로 늘었죠.

서포터가 해외원정을 떠나기 어려운 시절. 서포터의 입장에서 선수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만든 열혈 서포터들의 순수한 열정에서 거리응원이 시작됐습니다.

2002년에도 선수들은 "경기 후 TV에서 거리응원 인파를 보고 힘을 얻었다"고 언론에 밝혔습니다. 아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거리응원은 대중에게 '축구' 자체를 알리는 효과도 있습니다. 90년대 후반, 지금에 비해 초라했던 거리응원을 할 때는 정말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거리응원단은 마치 하라주쿠의 노란머리 소녀 취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홍보효과는 있었습니다.

이런 순기능이 있지만 여하튼 간접응원이라는 것은 정작 경기 중에는 힘을 줄 수 없는 한계는 있습니다. 부상을 입고 쓰러진 선수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힘들어 하는 선수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성질이 급한 저에게 개인적으로 맞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2002년 거리응원에 감명을 받은 2006년 월드컵 개최국 독일이 거리응원을 한국에서 '수입'했지만, 사람들은 화면 앞에서 점핑을 하지 않았습니다. '축구는 현장'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 다른 유럽국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 월드컵도 거리응원 때문에 떠들썩합니다. 큰 축제가 준비 중인 셈입니다. 이 축제가 축구자체 보다는 어쩌면 그간 너무 힘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신나게 응어리를 풀 수 있는 일종의 록 콘서트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거리응원이 축구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면 2002년 이후 그렇게 허무하게 K리그 관중이 줄어들지 않았겠죠.


  1. Choe,Jieun 2010.06.11 05:54 신고

    미국도 4년 전 보다는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가 꽤 나오고 있어요. 토요일에는 길거리는 아니지만 한국그리스전 함께 보는 국제기구 모임도 있고 사이트 보신 축제도 있고.. 사진찍을 겸 한번 두루두루 가볼참

  2. hangang0312 2010.06.11 21:26 신고

    2002년의 거리응원은 아직도 생각하는 것 만으로 설레입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축구를 응원하고 경기에 참여한다는 의미 보다는 축제를 즐긴다라는게 정확한 표현인 것 같네요. 개막전이 얼마 안 남았네요. 내일 소극적이지만 한국팀의 승리를 바라며, 워밍업해볼랍니다.^^

    • walk around 2010.06.14 08:45 신고

      안나가려다가 동네 경기장에서 중계를 봤는데... 역시 모여서 오징어 씹으며 보니까 재미있더군요. 모르는 사람하고도 이야기 하고...^^

오늘 무거운 짐을 하나 내려놨습니다. 제가 속했던 한 모임에서 탈퇴했습니다. 모임의 직함을 내려두고, 모임의 운영자 방에서 나와서 일반 회원이 된 것인데요.

그 직함이란 게 사실 오래 전부터 유명무실 했기 때문에 실제 생활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지만, 어째 가슴에 구멍이 하나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네요. 그래도 한 때는 젊음을 모두 던지다시피 했기 때문에 추억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모임의 진정한 발전을 기원하며, 힘겨웠던 추억의 페이지를 덮습니다.

※ 이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음주 수요일 남아공 여행도 못가게 되었네요. 비행기, 호텔 등 예약도 모두 환불불가인데.. 오늘 정말 역사적인 날이 되었네요. 모임에서 나오면서 남아공 간다는 말도 했는데, 본의 아니게 헛말이 되었네요. 경제적 손실이 너무 크네. 이제 한달간 그냥 잠수나 타야겠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 최대한 환불 작업.. 해외 사이트에서 예약한 호텔은 완전 환불 불가. 항공권은 수수료 내고 환불. 남아공 국내선은 그냥 환불 해주는 것 같고.. 준비는 몇달 취소는 1시간.. 책도 많이 읽었는데..T.T 30% 정도 건질 것 같다. 그거 건져서 술이나 마셔야 겠다.



2016년 10월 26일 FA컵 준결승 as. FC서울 경기 홍염 영상 링크

https://youtu.be/_F5mtvUY4Mc

 

축구장에서 보는 홍염은 사람을 흥분시키는 묘약입니다. 붉은 불빛이 보는 사람들의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하는 것 같고, 마치 뜨거운 열정을 태우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문제는 홍염이 원래 조난 당한 배의 구조용이라는 건데, 사용하려면 소방법 관련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모양입니다. 자격이 있어도 축구장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것은 안전상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응원도구입니다.

부천서포터는 홍염을 제작해서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헤르메스에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튼 당시 서포터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마그네슘 등을 구해서 직접 만들어서 사용했는데, 효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 아예 조난용 홍염을 구입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부천에서 홍염을 처음 만든 것이 98년(99시즌 사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00년 안양



2001년 홈에서의 모습입니다.





2002년



2003년 11월 상암. FA컵 전북현대와 준결승.





경기장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이 사진은 잘 나가던 부천SK가  망가지던 2004년경인 것 같습니다.


2008년 4월 5일 화성 신우전자와 경기 당시, 홍염이 꺼진 직후 연막에 쌓인 헤르메스


2010년 9월 11일 용인전



2010년 10월 16일 홈 vs. 삼척신우전자 0-1 패.


여기서 잠시 이탈리아 피오렌티나 서포터즈의 홍염입니다.





  1. 줌마띠~! 2010.05.22 09:03 신고

    경기장 밖에서 보면...자칫 불이 난줄 알겟어요~

    • walk around 2010.05.23 00:56 신고

      네 맞아요. 상당히 밝아서 온통 불이 난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또 그게 홍염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2. 보시니 2010.05.22 09:27 신고

    조심해서 다루셔야겠네요.
    축구 경기보면 뭐, 거의 항상 등장하는 아이템이라 응원 도구의 일종인지 알았는데
    좀 위험한 것이었군요!

    • walk around 2010.05.23 00:58 신고

      네 홍염은 기본적으로 위험해요. 그래서 일부 제품은 소방관련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다룰 수 있습니다. 워낙 위험해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극도로 조심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3. 마오 2014.10.24 03:09

    홍염은 안양의 서포터인 RED가 가장 먼저 사용했습니다.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부천의 원로들에게도 물어 보십시오.
    전구단이 한국최초의 홍염하면 안양의 RED로 다 알고 있습니다.

    • walk around 2014.10.26 17:40 신고

      그런가요? 자료 링크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마오 2015.12.10 21:55

      그런가요...그럼 지금 올리신 사진들이 헤르메스가 처음으로 홍염을 사용했다는 무슨 증거가 될 수 있습니까? 다른 게시물을 보니 홍염만이 아닌 통천,연막을 모두 헤르메스가 처음 사용했다고 글 쓰셨던데, 더구나 원정버스 사진 올리고 당시 헤르메스의 원정규모가 리그 최고 였다는둥...역사를 상당히 왜곡 하고 계시네요.....헤르메스 초기 멤버시면 이런식의 왜곡은 좀 유치하게 느껴지네요.

    • walk around 2015.12.15 00:28 신고

      사진은 근거가 아니라 사례의 의미겠죠. 원정규모는 해마다 순위가 달랐겠죠. 하지만 한 경기에 5개 끌고 간 것은 부천이 처음이었습니다. 당시에 기록 세우자면서 무리해서 5대 만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 이후에 많이 달라졌을 수 있지만..

  4. 마오 2018.11.28 22:56

    1998년 FA CUP에서 안양의 RED가 최초로 홍염을 사용하는 영상입니다.
    https://youtu.be/Tna07Ht9esU

    자료 수정 정중히 요청합니다.


부천FC 서포터 헤르메스는 한국 최초로 통천을 응원에 사용한 서포터입니다. 그리고 한국 최초로 한방에 두개의 대형 통천을 펼친 서포터이기도 합니다.


1999년 목동입니다. 이제 막 전성기에 접어들기 직전의 헤르메스 모습입니다. 이 통천 색깔이 이렇게 밝은 것이었군요. 지금은 누리끼끼.


2000년 대한화재컵 결승. 잠실종합운동장. 걸개를 용달차로 가지고 와서 아예 세팅을 해버렸다.


2000년의 모습입니다. 둘 다 대형 통천입니다. 한번에 두개 모두 펼치고 헤르메스는 기쁨에 빠져서 이를 기념하는 시계 등 기념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 우라와보이즈 대표 가타(좌), 헤르메스 대표 이희천(우). 2002년 5월.

부천FC 서포터즈 헤르메스와 교류관계에 있는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드(이하 우라와레즈) 서포터모임 '우라와 보이즈(Urawa Boys)'의 대표 '가타'가 2002년 5월29일 한국을 방문해 헤르메스 대표 이희천님과 약 4시간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당시 만남은 약1년만이었습니다. 1년 전에는 가타 외에 아비스파 후쿠오카 등 J리그 서포터 대표 10명 정도가 함께 왔습니다. 우라와레즈 서포터와 헤르메스(이희천, 신동민)는 사전에 미팅을 하기로 했었는데, 국내 축구관련 행사 때문에 왔던 다른 구단 서포터들도 따라왔습니다.

명동의 한 삽겹살 집에서 만났는데, 10여명의 청년들이 무지하게 먹어대는 바람에 출혈이 엄청났습니다. 특이한 점은 삽겹살과 제육볶음을 함께 주문해 먹었다는 점입니다.

2001년 만남에는 우라와보이즈와 헤르메스의 '걸개교환', '배너교환', '응원가 교환' 등의 협력방법과 아시아에 뿌리 내리기 시작한 서포터 문화의 방향성에 대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결론을 내린 것은 없었고, 이야기한 내용을 각자 모임으로 들고가서 의견들을 구한 후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2002년 가타가 헤르메스를 다시 찾았을 때, 2001년과 달리 속 깊은 대화가 많이 오갔습니다. 서포터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습니다. "HERMES와 URAWA BOYS의 서포터즈는 너무나도 같은 컨셉과 사상들을 갖고 있다. 서포터즈라는 Pride에 대해 다시한번 우리를 비춰보았으면 한다"는 내용의 대화가 오갔습니다.

농담을 하며 일년만에 길어진 머리를 화제 삼아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먼저 싸움에 대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2002년 5월 1일, 부천과 성남 경기 후에 헤르메스와 성남 선수단과 충돌이 있었습니다. 당시 샤샤와 한 헤르메스 회원의 몸싸움에서 시작한 싸움은 헤르메스와 성남팬의 다툼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성남 팬 한명이 병원에 입원을 하였고, 덕분에 문제가 좀 복잡하게 꼬이던 시기였습니다.

아래 이야기는 당시 이야기 녹취입니다. 번역문제로 어휘가 좀 거친 면이 있습니다. 지금보면 몇가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입장들이 있습니다. 경기장에서의 욕설이 대표적입니다. 지금은 욕설이 '야유'로 대체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욕설을 하려면 욕설이 관중의 웅성거림에 뭍여버리는 2만 이상의 관중일 때 부분적으로 이해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또 한가지 가타의 말과 현실이 약간 다른 점은 우라와레즈 서포터는 폭력적이라는 점입니다. 적어도 제가 경험한 우라와 서포터는 상대팀 유니폼을 입고 지나가는 아이 안은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서 넘어뜨리고 욕을 할 정도로 필요이상 과격한 집단이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전체적인 방침을 따르지 않는 일부 어긋한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가타 : 서포터간 싸움은 J리그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새로운 성장을 하기 위한 단계라고 생각한다. 어린애들이 성장하며, 아프기도 하고, 싸우고 건강하게 자라는것 처럼... 유럽 등에서도 경기장 주변에서 흔히 있는 일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본인들이 반성하는 경우가 많다.

다툼이 자신의 클럽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안타까운 일이다. 조직적인 싸움을 하는 홀리건이 아닌 이상, 기준이 있고 생각이 있는 마찰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간이다. 어쩔수 없이 자제하지 못할 경우도 분명 생긴다. 축구는 마약같이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 때가 있다.

희천 : 같은 생각이다. 우리의 이번 일에 대해서는 무척 유감스럽고 죄송스럽지만, 일단 한국의 취약한 경기장 안전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고 생각한다. 한국 프로야구를 봐도 알겠지만, 많은 경기에서 팬들간의 무수한 싸움을 거치면서 관중문화가 성숙된 면이 있다. 

약간의 지역감정이 프로스포츠엔 분명 필요하고, 구단과 경기장은 안전 책임에 대해 좀 더 신경 쓴다면 좋은 관람도 가능하리라 본다.

가타 : 얼마전 사이타마 홈경기 개막에서 패한적이 있다. 그날 6만명의 관중들이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냈고, 서포터즈들이 출입구에서 우라와 선수 대표를 불러 사과를 받았냈다. 생각없이 한일이 아니다. 우린 선수들이 좀더 화이팅 할수 있도록 야유를 하고 욕설을 퍼붓는다. 한국의 축구의 투지를 우리 선수들이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선수들이 프로이기 앞서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과 야유를 병행해야 한다.

희천 : 작년에 우리 역시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냈다. 우리가 선수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런 표현을 하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갔을 것이다. 선수들이 오해를 했겠지만 분명한 건 우린 너무나도 선수들을 사랑한다. 어머니가 눈물을 머금고 자식을 때리듯, 우린 가슴아픈 매질을 한것이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나약해지지 않도록 우리의 표현은 계속 될것이다.

가타 : 우린 우리팀과 우리 서포터즈에 대한 Pride를 갖고 있다. (중간에 가시마 서포터즈에 대한 칭찬을 했다) 가시마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말한다. 우린 3,400여개의 소모임으로 이루어져 있고, J-리그에서 가장 높은 관중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응원장비 역시 모두가 개개인이 직접 경기때 집에서 갖고온다.

통천과 깃발 깃대 등 응원도구도 순수하게 갹출하여 제작하고, 이것이 응원장비를 사랑할 수 있고 팀에 대한 애정로 바뀌게 되었다. 타 서포터즈처럼 구단 혹은 기업에서 지원을 받는다면 장비에 대한 애정도 없어 진다. 분명한건 우리는 우리팀에 대한 Pride를 갖도록 먼저 노력을 하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이것이 서포팅에 표현이 된다.

희천 : 아직까지(2002년)는 K리그에는 왜 서포팅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다. 가끔 선수가 나올때면 우뢰와 같은 여자들의 목소리 "깍~~" 소리가 나는데, 축구장인지 콘서트장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얼마 후 그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모습과 늘지 않는 관중들의 모습을 보면 팀에 대한 Pride 보다는 선수에 대한 사랑 표현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우리가 가져야 할것은 팀에 대한 충성도 이다. 왜 팀을 사랑해야 되는가.. Pride를 왜 가져야 되는가.. 왜 과격해야 한는가.. 이유를 분명히 가져야 한다. 그건 팀을 사랑할때 자연스럽게 깨우쳐 진다. 이유없는 과격은 필요치 않다.

가타 : 얼마전 우라와레즈 구단에 잉글랜드 문화원 대표가 2002월드컵 잉글랜드 경기 시(사이타마) 우라와 레즈의 서포터들이 참여해 주길 바랬다. 우리의 답은 이랬다. "우리가 왜 남의 나라 경기에 남의 유니폼을 입고 응원을 해줘야 하나?.. 우리는 응원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리고 프랑스 월드컵에 갔을때 프랑스 국민들이 외국팀을 응원하는 것을 보았는가..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우린 자존심이 있다. 남의 나라 경기 따라다니며 서포팅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흥분했음)

희천 : 우리나라는 외국팀을 응원하는 시민서포터즈가 있다. 사실 그들은 진정한 서포터는 아니었고 자원봉사자 개념이다. 왜 대신 서포팅을 해주어야 하는가는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가타 : J-리그에서 우라와 레즈 서포터즈가 가장 과격하다고 한다. 그것은 필요한 조치이다.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며, 이것이 바로 경기 승패와 직결될 때가 많다. 내가 다닌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리그 경기장을 갔을때 우리의 모습이 순수하게 보일 때가 많았다. 경기장은 전쟁터와 같았다.

남미에 있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도 얼마나 과격한지 쉽게 들을 수 있다. 욕설과 과격은 서포팅의 중요한 기물이 될 수가 있다. 다만, 폭력은 안된다. 그만큼 서포터즈는 절제 할지 아는 능력도 필요하다.

희천 : 같은 생각이다. K-리그도 우리같은 과격한 모임이 있다. 얼마전 전북 원정 경기 때, 신문에 보도된 바와 같이 욕설이 난무하는 서포터들이라는 표현을 보고 의외로 되묻고 싶었다. 경기장에서 박수만 치고 노래 부르는 성가대가 프로축구장에 필요한것인가!

폭력은 절대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경기장 내의 과격은 분명 필요하다.한국 대표선수들이 유럽에서 경기를 치를때 야유만 받아도, 흥분하고 골 에어리어만 가도 흥분으로 경기를 패할 때가 많다.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지만, 우린 경기장 외부를 지휘하는 사람들이다.

작전에 "심리전"은 분명 필요하다. 상대 선수가 우리의 욕설로 경기를 패한다면 그것 만큼 좋은 작전과 선수는 없다. 그만큼 우리 나라 선수들이 야유에 약하고 심리전에 약하다는 결과이다. 큰 대회 때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결과 중 하나가 이런 이유라고 생각된다.

야유와 폭언에 능숙하지 못해 국가대표 성적이 좋지 못하다면 우리의 책임도 있다.

가타 : Pride가 중요하다. 우리가 얘기하는 Pride는 우라와 레즈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다. 많은 관중들이 서포터화가 되었으면 한다. HERMES CD의 문구인 "OUR PRIDE OF REDS"의 'OUR'라는 단어가 마음에 든다. 우리 역시 올해 슬로건에 "모두가 한마음"이라는 표현을 위해 'OUR'를 쓴다. 물론 구단에서 지정했지만, 이것 마저 같다는 생각이 드니 참 재미있다. 일본에선 URAWA REDS가, 한국에선 HERMES가 같은 색깔과 컨셉으로 최고의 서포터가 되길 바란다.

희천 : Pride는 소속감이다. 우리 서포터즈 만큼 소속감을 뚜렷이 느끼는 곳도 드물다. 벌써 소모임에서 응원장비를 집에 두고 관리를 하고, 부천이라는 단어에 맥박이 뛰는걸 느끼는 친구들이 많다. 이번 CD 제작때도 한겨울에 그 추위에도 짜장면 하나로 견뎌가며, 제작하는걸 보고, 한편으론 가슴아프지만 우리의 끈끈함을 느꼈다. 이것이 Pride라 생각한다.

2002년 당시의 서포터 문화에 대한 양측의 고민과 우호적인 모습이 녹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면 약간 현실과 맞지 않는 내용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쳐 발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2002년 9월 다시 헤르메스와 우라와 보이즈가 사이타마에서 만났습니다(신동민).  3번째 만남이었지만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한때 한국으로 신사유람을 왔던 우라와 보이즈는 걷잡을 수 없이 성장했고, 겸손하던 모습은 "우리가 세계 최고"라는 우월감으로 변해있었습니다. 덕분에 더 이상 "협력"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얼마전 K리그의 한 서포터즈가 우라와 서포터즈와의 교류를 검토할 때 오히려 싫은 소리를 들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제안은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지금 한국의 어떤 모임이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은 모양이 심하게 빠지는 행위입니다.

축구 서포터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사회를 위해 순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틀과 흐름을 어떻게 잡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 본 게시물은 2002년 6월 13일 부천서포터즈 헤르메스 홈페이지 게시판 이희천님 게시물 수정본입니다.

관련 게시글:

축구 서포터즈는 '배타적인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조직
부천FC 서포터즈, 자존심 강했던 초심 잊었나!
"내 돈 내고 경기장 와서 일한다" 3부리그 부천FC의 팬들
원정 서포터의 강력한 응원은 어떤 의미?


우라와 레즈는 역사가 화려한 팀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적만 두고 보면 별거 아닌 팀입니다. 우라와 레즈의 화려함 뒤의 무언가를 설명하는 글이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링크 : J리그, 우라와 레즈에 대한 환상과...진실...ACL

이런 지적을 상당 부분 인정해도 관중은 3만 이상이고, 원정 서포터는 대체로 대규모이며, 지역연고에 힘쓰고, 팬을 위한 마케팅에 열중한다는 것은 사실 같습니다.

한 지인이 "우라와 레즈가 2부리그에 있을 때, 당시 리그 팀 중에는 서포터 문화가 정착하지 않은 곳이 있었다. 홈경기 때 서포터가 따라오지 않는 팀도 있었"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K3의 부천 서포터 상황과 좀 비슷하네요.

"우라와 서포터는 매 경기 대규모 원정단이 떠났고,  상대 서포터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사생결단 응원을 했다"


2002년 사이타마에 우라와 레즈의 경기 관전을 위해 찾았을 때 모습

이런 우라와 서포터의 모습이 J2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실제 우라와는 J2로 떨어졌을 때 관중이 늘기도 했습니다. 팬의 활동은 팬의 증가라는 선순환을 이뤄냈습니다. 하긴 이들은 심지어 K리그에도 충격을 주었습니다.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링크 : 우라와 방한, K리그에 신선한 자극
링크 : 우라와레즈의 힘은?

이들이 J2 시절 원정을 다니며 '축구문화 불모지'에서 맥없는 응원을 한 것은, 스스로 '선구자'라는 마인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2년 부천을 두번째 찾았던 우라와 보이즈 카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린 우리팀과 우리 서포터즈에 대한 Pride를 갖고 있다. (중간에 가시마 서포터즈에 대한 칭찬. 당시 가시마 잘 나가던 시절) 가시마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말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분위기.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심.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는 일관성.

한때 헤르메스 게시판은 자부심과 우월감으로 넘쳤습니다. 우리는 지옥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입니다.
서포터 세계에서 많은 것을 최초로 해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요즘 너무 약해졌습니다. 어떤 원정에서는 야유회 분위기도 납니다. 다른 사람이 그런 게 아니라 일단 저도 그랬습니다.
최근 블로그 정리를 위해 하드를 뒤지면서,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고 반성 중입니다.

할 수 없이 빠질 때가 있겠지만, 관중석에 서면 목동처럼 할 생각입니다. 그게 본연의 모습이었고, 우리를 우리로 만든 초심이었다 생각합니다.

우라와 보이즈와 헤르메스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배타적인 강력한 사랑'의 정도와 함께 '초심'의 존재여부라고 생각합니다. 부천서포터즈는 유약하게 변했습니다.

상대가 서포터가 있던 없던, 경기장이 스타디움이던 대학교 운동장이던 그것은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부천이 그럴듯한 전용구장에서 경기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전에 분데스리가 중계보며 입김 불어가며 머플러 감고, 빵모자 쓴 노부부 서포터를 보며 저렇게 살자 했는데,  그것도 결국 팀이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사실 모범 사례로 우라와 레즈 이야기를 하는 건 사실 서글픈 일입니다. 모기업 미쯔비시는 일제시대 한인 강제 노역시킨 기업이 아닙니까? 아직 사과도 배상도 없습니다.

부천이 ACL에 나갔다면 우리 스타디움에는 "강제노역 제국주의 구단 미쯔비시FC는 꺼져라"는 걸개가 걸렸을 텐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