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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The Fan

당신이 좋아하는 클럽의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다면?

by walk around 2010. 8. 3.

이것은 축구팬에게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클럽의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게시글의 제목에 '클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제목만 보면 내가 좋아하는 동아리나 (홍대 앞의) 클럽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듣는다면 기분이 어떨까하는 다소 생뚱 맞은 문제제기가 됩니다.

이 블로그의 특성대로 여기서 '클럽'은 축구팀입니다. 유럽이나 남미의 경우 대부분의 프로팀은 동네 클럽팀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기업의 형태를 갖춘 현재도 클럽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축구팀 이름에 흔히 붙는 F.C.가 Football Club의 줄임말이니까요.

심지어 클럽의 형태와는 거리가 먼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프로팀도 F.C.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물론 흔히 '수원삼성'으로 불리는 '삼성전자축구단'이나, 흔히 'FC서울'로 불리는 'GS스포츠'처럼 솔직하게 클럽이 아닌 기업의 팀이라는 것을 밝히는 구단도 있기는 합니다.


아무튼 클럽이라는 것은 누군가 만들어 주신 축구팀이 아니라, 지역민의 힘으로 만들어낸 공동체의 팀이라는 의미가 묻어 있습니다. 따라서 클럽의 팬은 곧 클럽의 주인이고, 지분이 굳이 없어도 "이 클럽은 나의 팀"이라는 소속감을 갖게 마련입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클럽과 관련된 소식은 어느 정도는 알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평소에 클럽을 위해 시간을 내서 일하는 것도 없고, 경기장 관전마저 가끔할 지라도 클럽의 소식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어면 심하게 자존심이 상합니다. 마치 여친 새로산 물건 이야기를 다른 남자로부터 듣는 느낌이랄까.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나는 아스날 팬 친구들 가운데서 무언가 긴장이 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자신이 모르는 아스날 관련 소식을 남에게서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데 2군 선수 가운데 누가 부상을 당했다거나, 유니폼 디자인이 바뀔 에정이라는 등의 중요한 소식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는 일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오랜만에 인용하는 <Fever Pitch>의 한 구절입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을 너무나 많이 봤고, 이런 정보력의 차이가 서포터 집단 내의 분쟁으로까지 번지는 것을 여러번 봤기 때문입니다.

클럽에 대해 너무 많은 따끈따끈한 정보를 가진 팬은 그렇지 않은 팬들로 부터 '재수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도 합니다. 심지어 "저 친구 뭐가 있는 거 아냐", "구단이 저 친구 편애 하는 거 아냐"라는 식의 몽상적 오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까요? 일부 유럽구단은 홈페이지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뉴스'라는 이름으로 게시합니다. 정보가 될법한 것은 모두 뉴스가 됩니다. 팬에게는 "지난 경기에서 누가 골을 넣었다"는 것보다 "어떤 선수가 넘어져서 코가 깨졌는데, 흉터 크기를 줄이려고 성형외과 의사에게 시술을 받았다"는 뉴스가 더 신나는 화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화제는 팬과 구단의 친밀함을 더욱 강화시킵니다.

부천FC 1995와 전략적 제휴 관계인 잉글랜드 AFC 윔블던 홈페이지(www.afcwimbledon.co.uk)에 가보면, 하루 서너건 이상의 자잘한 뉴스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시 지난해 부천FC와 친선경기를 가졌으며, 현재 제휴협상 중인 잉글랜드의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fc-utd.com)는 트위터(twitter.com/FCUnitedMcr)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도 말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팔로와 언팔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부천FC도 홈페이지 게시판에 자잘한 이야기를 짬이 날 때마다 올리고 있습니다. 구단 관계자들과 팬들은 열심히 트윗질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트위터 덕분에 경기장을 찾는 팬들도 생기고 있습니다.

이런 소통이 줄어들 때는 밑도 끝도 없는 황당한 이야기가 창궐하게 됩니다. "선수단이 반으로 갈라졌다", "유명 선수가 입단의사를 타진했는데 구단이 뚜렸한 이유없이 거절했다" 등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한 소설이 생겨납니다. 정보가 차단되면서 유언비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소통을 위한 정보제공을 하다보면, 정보제공이 구단의 장기발전 전략, 선수 운용대책 등 비밀성 정보를 밖으로 흘리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보제공을 통해 (인권침해, 경제적 손실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 안는다면 과감한 공개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정보공개를 통한 전략노출보다 팬과 클럽, 즉 공동체의 화합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축구는 커뮤니케이션이다"라는 말이 더욱 와닿습니다.

물론 화합과 발전을 위한 중용의 덕은 소통 담당자의 역량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합니다. 이게 가이드라인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상의 이야기는 다른 종목이나 연예인 팬클럽의 팬십에도 일정 부분 유사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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