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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천 story41

2006 올스타전에서의 연고이전 반대시위 2006년 국가대표 앙골라전에서의 시위 이후, 부천 축구팬의 자체적인 창단 작업이 진행되는 와중에 한번의 시위가 더 있었다. 2006년 8월 20일 인천 문학경기장. 2006 하우젠 K리그 올스타전 경기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각 구단의 서포터들은 연고이전 반대시위를 다시 한번 했다. 국가대표 경기 보다 사람 수는 적었지만, 강도는 쳐지지 않았다. 덕분에 경기장은 좀 어수선했다. 하지만, 중계진도 일부 인터넷 매체를 제외한 언론도 이 시위를 외면했다. 서포터들은 게속해서 옛 부천과 안양의 응원가를 불러댔다. 부천의 팬들은 참으로 오랜만에 자신들의 응원가를 목놓아 불러볼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안양팬은 말할 것도 없고.. 관련 시위는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이 시위 역시 한국 연고지이전사에 남을 시위였다. 당.. 2011. 11. 22.
대행사에 이어 K위원도 포기, 결국 다시 팬만 남았다 K씨와 창단 TF는 많은 회의를 했다. 회의는 처음에는 부천시에서 하다가 점점 서울지역에서 하는 날이 많아졌다. 주로 K씨의 동선이 서울 쪽이었기 때문이다. 잠실의 올림픽파크텔에서 럭셔리하게 커피를 마시며 회의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K씨의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의 사무실 한 켠에서 회의를 하며, "앞으로 이곳을 아지트로 삼고 일을 하자"는 말을 나누며 고정적인 공간이 생긴 것은 자축하기도 했다. 조직이 갖추어지고, 주로 이름을 빌려주는 수준이었지만 부천시의 인사들도 조금씩 참여를 시키는 등 조금씩 자리를 잡아 갔다. K씨는 시청도 직접 방문하는 등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2007년 10월 창단 설명회. 소중한 사람들이 사진 속에 들어 있다. 중간중간 오해도 갈등도 있지만, 이렇게 힘든 시절을 생각하며 모.. 2011. 11. 21.
대행사의 창단작업 포기! 그러나 새롭게 다가온 희망 창단 및 운영 대행사 선정, 분데스리가 마케팅 담당 에릭 로렌츠 방한 등 기세 좋게 시작한 부천의 창단 작업은 이후 소강 상태에 빠졌다. 그 사이 부천서포터도 일부 이탈했다. 새로운 취미를 만든 친구들도 생겼다. 다행히 2006년에는 월드컵이라도 있어서 아무 생각없이 축구를 볼 수 있는 여건은 되었다. 부천서포터 일부도 독일을 찾았다. 그들은 경기장에 부천FC 창단을 기원하는 걸개를 내걸었다. (사진 참조 : 왼쪽의 "세계가 비웃는 연고이전" 걸개는 독일 현지에서 급하게 제작해 걸었다. 하노버) 하지만 귀한 시간은 그냥 흘렀다. 월드컵을 전후로 기업과 지자체의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았을 때 창단 작업을 진행하려던 계획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지경이었다. 당시에는 대행사와도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월드컵 등.. 2011. 11. 18.
분데스리가 관계자의 공수표, 더뎌지는 창단 작업 그러나 기대와 달리 분데스리가 마케팅 담당은 이후 후속 액션을 보이지 않았다. 부천 측에서 연락을 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중간의 대행업체가 관리를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점 이후 창단된 부천FC 1995는 지속적으로 분데스리가에 연락을 했고, 당시 논의한 내용을 이어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분데스리가 사무국에서는 에릭로렌츠가 자리를 옮겼다며 후속 대화는 하지 않았다. 부천으로서는 아쉬운 순간이었다. 당시에 에릭 로렌츠는 부천에게 분데스리가의 유서 깊은 팀들의 창단 및 구단 운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자매결연 등을 추진하는 등의 의견을 내놨다. 당시 기사를 찾아보면 이런 의견을 꽤 강하게 내놓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현장에 와서 이토록 환영을 하고, 간절함을 보인 팬들을 본 이후에 침묵을 .. 2011. 11. 18.
"부천FC 창단 돕겠다"는 분데스리가 관계자의 방한 창단 및 운영업체 선정 PT가 끝난 이후 별다른 이슈는 없었다. 다만, 창단을 위한 시민모임은 한숨 돌렸고, 업체는 본업을 진행하면서 창단을 위해 뛰어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팀이 사라진 후 상실감에 빠져서 도대체 주말에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이 시기에 집에 있는 가구를 도색하고, 길에 버려진 가구를 주어와서 수리해서 사용하는 일이 푹 빠졌다. 집에 페인트통이 난무하고, 베란다에는 항상 작업이 진행 중인 가구들이 있었다. 심지어 아파트 현관 타일도 직접 갈았다. 새벽 3시까지 타일을 갈다가 축구팀 생각나서 멍 하니 앉아 있다. 아무튼 업체가 정해진 후 2개월 반이 지난 2006년 8월 5일. 창단업체는 독일 분데스리가 사무국의 에릭로렌츠(Erik Lorenz) 마케팅 담당을 부.. 2011. 11. 14.
부천FC 창단 및 운영 대행업체 선정! 출발은 상큼 2006년 5월 21일 서울 대학로 붉은악마 쉼터. 부천FC 창단 및 운영 업체를 선전하는 PT 장소는 설레임으로 가득찼다. 부천팬들은 "이제 전문가들이 참여를 하면 창단 작업에 날개를 달겠구나"하는 희망을 품었다. 당시 시민구단 창단 조직위(시민모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행사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 조직위(시민모임) 간부들은 물론이고, 서포터들도 대거 행사장을 찾았다. 업체 관계자가 PT를 하고, 시민모임 간부들이 채점을 해서 가부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업체도 비교적 성실하게 준비를 했다. 이 과정만 거치면 1,2년 안에 K리그 팀이 창단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ㅠ.ㅠ 업체의 PT 중. 모두 진지하다. 시민모임 간부들은 더 심각하다. 시민모임 간부들은 당시 힘을 보태준 정망 고마운 분.. 2011. 11. 11.
구단 창단 및 운영업체 선정 PT 앞두고 야심찬 공지 2006년 5월 21일 창단 및 운영업체 선정 공지를 앞두고 조직위는 지금까지 진행사항을 팬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 구단이 사라진 여운이 가시지 않은 터라 어떤 소식이든 작은 진행에 사람들은 집중했고, 일희일비 했다. 일을 진행하는 조직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휴대폰 전화요금은 20만원에 육박했다. 평소 3,4만원에 비하면 많이 늘어난 통화량이다. 2006년 4월 어느날 조직위는 아래 이라는 공지를 올렸다. 내용을 이제와 읽어보니 이때만 해도 아직 K리그 팀 창단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직접 작성한 문건인데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부천지역 연고 프로축구단은 꿈이 아닙니다 본 시민모임은 지역민의, 지역민을 위한 축구단 창단을 지향합니다. 시민모임은 지역 축구단을 순식간에 잃은 아픔을 털.. 2011. 11. 9.
부천FC 창단, 구단 창단하고 운영할 대행사를 선정하면 어떨까? 시민구단 창단 조직위는 대부분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생업을 뒤로하고 창단 작업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창단 및 운영을 대행할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었다. 조직위와 서포터즈클럽 헤르메스는 창단 대행사의 업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대행사는 실무를 진행하고 팀이 창단되면 운영까지 하는 그림이었다. 공적, 사적으로 알게된 업체들과 접촉을 했는데 마침 한두업체가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그 중 한 업체와는 구체적인 창단 논의가 이어졌다. 주로 서울시내 커피숍을 전전하며 이뤄진 창단논의는 희망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조직위는 대행사가 지자체에 하기 힘든 요청도 시민 입장으로 할 수 있었는데, 대행사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당시 조직위는 아래와 같은 요구를 시 측에 하겠다는 입장을 대행사 후보들.. 2011. 11. 8.
시의원과 미팅을 앞두고 자료 준비… 부천시에 축구단이 필요한 이유! 축구협회 앞에서도 시위를 했고, SK본사 앞에서도 시위를 했다. 심지어 국가대표 평가전 현장에서도 시위를 했다. 이제 마냥 시위만 할 상황이 아니었다. 시위를 해서 뭘 어쩌겠는가. 화풀이, 한풀이밖에 안되는 것이다. 관련글 : 2006년 삼일절 국가대표 앙골라 평가전에서의 연고이전 반대시위 그리고 부천SK의 연고 이전 후 약 보름간 갈만한 곳은 거의 갔다. 시장도 만났고, 지역 국회의원, 심지어 도지사도 만났다. 하지만 아직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관련글 : 팀을 잃은 부천서포터, 창단준비위 구성하고 지역 명사들 만나다 이제 어디가 남았을까. 시의회였다. 시의회 일부 의원들과 약속이 되었다. 매번 기대했다가 매번 실망했지만, 다시 기대를 걸고 충실하게 준비를 했다. 특히 시의원들에게 구단 창단의 당위.. 2011. 11. 1.
2006년 삼일절 국가대표 앙골라 평가전에서의 연고이전 반대시위 이전글 : "反연고이전 시위를 국가대표 경기 때 하면 어떨까?" 이전글을 먼저 봐야 이 글이 이해될지 모르겠다. 부천SK의 연고지 이전을 비난하는 시위를 국가대표 경기 때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된 후, 일부 축구팬들은 자발적으로 활발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축구팬들이 준비를 하는지는 몰랐다. 그런데, 실제 경기장에서 시위를 하는 것을 보고 준비가 대단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위준비 사실이 알려지자, SK에서는 이를 심각하게 본 것 같다. 마침 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점에서 전국에 중계되는 경기에서 자사를 비판하는 시위가 열릴 예정이라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SK 측은 이 경기시간에 시청 앞에서 거리응원을 할 예정이었다. 자사가 개최한 대형 이벤트에.. 2011. 10. 27.
지역 국회의원과 만남을 앞두고 설레며 준비한 미팅자료 관련글 : 팀을 잃은 부천서포터, 창단준비위 구성하고 지역 명사들 만나다 앞서 연고이전으로 구단을 잃은 부천SK의 서포터즈클럽 헤르메스 중심으로 구성된 창단준비위가 손학규 도지사, 김문수 의원 등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이 만남은 원래 김문수 의원을 만나기로 한 자리였는데, 마침 함께 행사에 참여한 당시 손학규 도지사도 함께 했습니다. 당시 준비위는 김문수 의원과 약속이 잡힌 후, 부푼 마음으로 대화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그 자료를 컴퓨터 하드에서 찾았습니다. 이 자료를 눈썹 휘날리며 한가닥 희망을 붙잡는 심정으로 작성한 기억이 납니다. 파일 이름이 "060218_문수만남"입니다. 2월 19일 만났으니, 미팅 전날 밤에 작성한 모양입니다. 다음은 당시 미팅자료 입니다. 일부만 올렸습니다. ■.. 2011. 10. 21.
부천SK 연고지이전 후 준비한 성명서 및 축구팬에 대한 제안 부천SK의 제주 연고이전 발표(2006.2.2) 이후, 연고이전 반대 비대위·붉은악마·프로축구 서포터즈 연합 공동 기자회견(2.8), 당시 붉은악마 의장이었던 오중권씨와 헤르메스 정해춘 등의 부천시청 방문(2.10), 대한축구협회 및 SK본사 앞에서의 연고이전 반대 시위(2.14), 손학규 도지사·김문수 의원 만남(2.19) 등 팬들의 숨가쁜 행보는 비대위의 사전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부천서포터 창단 멤버였던 이희천님이 최종적으로 정리한 성명서와 행동강령을 지금까지도 하드에 저장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글을 적어내려갈 때의 배신감과 상실감이 사무치게 느껴진다. 지금은 물론 아래와 같은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상황이었고 지금도 아픔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지금 정리하.. 2011. 10. 15.